어떤 몽상가의 생애
정승화
1
숨결이 바람이 되었고 시선은 태양이 되었다
사막과 초원에서 태어나
거룩한 반지를 가운데 손가락에 끼고
숨결 잃은 갈대 사이에 누워 태양을 본다
사랑스런 이름들이 태어났다 돌아가고
혼돈은 벌어진 틈으로 오래 머물다
어둠의 문으로 빠져나갔다
목숨 받쳐 지켜냈던 이름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공허의 이름을 지운 별들이 낭자하게 자랐다
연기를 먹고 자란 숨결의 눈동자가 사납다
한잔 술의 취기에 존귀한 이름을 버리고
21일 동안의 기도가 은총의 종을 울린다.
때를 잃은 감성과 장소를 잃은 이성을 두고
치열한 승부를 겨룬다.
2
웃음이란 치아가 보이는 일
목젖이, 막 출산한 산양의 젖처럼 보이는 일
길을 걸어오는 일은 선물 같은 것
뾰족한 고깔 위로 하늘이 열리고
약속을 이루지 못한 꿈이 첫눈처럼 내린다
멈춘 적 없는 기도와 응답과 약속이 단결한다
가죽옷을 걸친 동상이 우상으로 서 있는 사막
눈빛이 초록인 노래와 흥겨운 발바닥의 춤들,
숨겨진 몽상가의 치마가 커튼으로 내리는 날
이뤄질 약속이 근엄해진다
3
위대한 이름을 머리띠로 두르고 천막 가운데 불길로 치솟는다
태양이 유산으로 남긴 사막에서 짧은 순간 붉은 낙타를 탄다
광활이 광오가 되어 사막을 밟는다
혼돈이 온순히 어루만져지는 날, 칼을 뽑은 언어가 태양에 닿는다
울음이 웃음으로 웃음이 벅찬 눈물로 부활한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숨결이고 태양인가
숨결 위에 태양이 흐르고 빛이 쏟아진 자리에 바람이 분다
시선이 머물다 돌아오고 돌아가는 길목의 묘지 위에
타오르는 뜨거움이 만져지는 땅의 체온이 죽어있다
4
유언이 유산이 되어 기약의 도장을 찍는다
주소를 찾아 가는 길에 허물을 벗고 불의 편견을 깬다
소금이 낳은 지점에 닿아 두려움을 지우고
포로가 된 교란을 잠재우는 매복,
산양의 젖물 같은 노래로 세수를 하고 경계를 허문다
수많은 밤이 시작되는 날 거친 낙타처럼 맨발로 서서
통곡이 불멸하는 지상에서 방랑자의 시작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