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간 산행기
일시 : 2008년 1월 19일 10:00~17:00
구간 : 태봉재~정기봉~머들령~명지봉~지경수
거리 : 9.5km
참여인원 : 19명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하였던 금산둘레밟기가 오늘로서 시작이 되었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동기는 금산역사문화연구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위원이 선임되고 그동안 이러한 취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추진하는 곳이 없어 참여를 하지 못한 분들이 있어 실행이 가능하였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홍보와 참여를 권하였으나 오늘의 참여인원이 19명이 되었다. 처음 1구간을 태봉재로 시작한 것은 금산의 제일 큰 관문이고 접근로가 제일 쉬운 곳으로 선정을 하여 1구간으로 삼았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접근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처음부터 너무 어렵게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태실에서 모두가 모이는데 세 갈래 길에서 올라온다. 대전에서는 청소년수련원쪽에서 올라오고 금산에서는 태실공원쪽에서 올라오고 일부는 새로 주택단지를 조성한 능선으로 올라온다. 일행을 기다리는 중에도 마전에서 올라온 등산객을 만났는데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 올라온다. 다음에 참여하라는 권고를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시간이 되어 참여자간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배낭에 표시깃을 달아주고 선두와 중간 후미의 배낭에는 안내자 표시를 달아주고 장호씨가 금산문화원의 김현봉과장님께 부탁을 하여 글을 받아 만든 대전둘레밟기 프랭카드를 앞에 들고 모두 사진을 촬영하였다.
김면성 문화해설사님의 태실에 대한 설명과 역사를 듣고 출발을 하였다. 올라가면서 모두들 가볍고 즐거운 기분으로 추부의 마전과 뫼세기 마을 등에 대해서 김면성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올라갔다. 뫼세기에 있는 태봉은 지금은 거의 파괴되어 그 유물을 동네의 유지분이 보관하고 있다는 슬픈 우리의 현실을 들어야 했다. 또한 진산면의 오대산에 있는 태봉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 정기봉의 100미터 아래에 도착해서는 정상적인 등산로는 대전쪽의 능선으로 돌아가고 금산의 경계는 급경사에 등산로가 없는 능선으로 올라가야 했다. 일부는 등산로로 올라가고 그래도 금산의 둘레를 밟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올라가는데 너무 가파르고 낙옆이 쌓여 있어 상당히 힘이 들었다. 모두들 힘들어 한다.
정기봉에 도착하여 귤과 음료수를 마시며 등산로쪽으로 간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전화를 하려는데 장호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먼저 도착을 하여 앞서가고 있단다. 그런줄도 모르고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으니!
정기봉의 봉화대는 전라도쪽에서 올라오는 봉화를 만인산에서 받아 정기봉에서 회덕을 거쳐 청주쪽으로 해서 서울로 올라가는 봉수대이다. 또한 한성에서 내려오는 봉신을 영남과 만인산을 거쳐 호남으로 내려 보내는 절구통 양식의 봉화자리이다.
정기봉은 580m로 이 능선상의 식장산(598m)의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만인산은 그 다음으로 537m이며 대전에서는 2번째로 높은 봉우리가 정기봉이다.
중간에 성터의 흔적이 있는 지점을 지나서 무전기로 배가고파 갈 수가 없다는 무전을 받고 원래 식사장소로 선정을 해두었던 골냄이재를 포기하고 좁은 능선에서 식사를 하였다. 그런 관계로 모두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분산이되어 같이 술을 마시지 못하였다. 등산을 하면서 기력이 떨어지는 증세가 나타나면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말고 즉시 식사나 간식으로 보충을 해주어야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 식사는 모두 즐겁게 하는데 김밥과 컵라면, 도시락 등등 여러가지가 나왔다. 혹시나 해서 나는 김치찌게를 준비하여 모두 따뜻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정기봉에서 부터는 계속해서 능선을 따라 머들령을 거쳐간다. 머들령에는 대충산사에서 금산의 자랑인 정훈시인의 머들령이란 시를 코팅을 하여 안내표시판에 걸어놓았다. 이 머들령을 통해서 정훈시인이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넘어 다녔단다.
머들령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
등짐장사 쉬여넘고
도적이 목 직히든 곳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하라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뻐꾹기 작고 두든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리티고
파랑 갑사댕기
손에 감고 울었드니
흘러간 서른해
유월(六月)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지금은 이 시비가 태봉재의 휴게소앞에 세워져 있어 사람들이 머들령재를 태봉재로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 어릴적에도 아버지가 소(牛)의사여서 많은 소장수들이 우리집에서 머물다가 여럿이 어울려 이 고개를 넘어 대전의 오정동 우시장으로 가곤하던 고개인데 그때에도 도적들이 들끓었단다. 요광원에서 대전우시장까지 30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는데 장작을 지게에 지고 오정동 시장에 내다 팔고 그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단다. 이 요광원은 옥천과 대전, 금산의 중간지점으로 세 곳의 거리가 모두 30리라고 어릴적에 들었다. 또한 요광리의 저수지에서는 어릴적에 헤엄을 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던 저수지이다. 친구들과 저수지를 건너갔다오기 시합을 벌이다가 저수지 한가운데서 종아리에 쥐가 나서 죽을뻔한 추억도 있는 저수지다.
머들령을 지나 다음 봉우리에서 쉬면서 기다리니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 하고 무전기로 연락이 왔다. 1시간30분 이상 가야한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이곳에서 3명이 요광원으로 내려갔다. 중간중간에 다 말라버린 낙옆속에서 황경록 생태연구가께서 야생화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신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산행을 해서 힘이 많이 들었을 텐데 고생을 하셨다.
정감영씨가 모임때문에 빨리가야 한다고 해서 먼저 장호씨와 셋이서 걸음을 빨리하면서 표시깃을 달면서 내려왔다. 정감영씨의 차를 타고 태봉재까지 가서 장호씨의 차를 가져오게 하였다. 지경수가 가까운 계곡까지 길을 안내해주고 나는 다시 일행을 향해서 계곡을 올라갔다. 박은서씨외 2명이 제일먼저 내려오고 있어 표시깃을 따라 내려가게 하고 계속 올라가니 일행들이 잘 내려오고 있었다. 명지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등산로도 없고 상당히 가파라서 내려오기가 힘이 드는데 양정희씨는 키높이 신발을 신고서 어렵게 내려오고 있었다. 같이 보조를 맞추면서 내려오니 예전에 없던 계곡에 뚝이 생겨 길을 막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뚝을 넘어오니 옥천쪽으로 새길을 내면서 터널을 뚫으면서 생긴 토사를 쌓아놓은 것이었다.
뚝에 올라서니 지경수의 옛 다리에서 일행들이 기다리는 것이 보이고 휴대폰으로 고생을 했다고 힘을 주신다. 일행이 길게 늘어지고 분산이 되어서 한가지 아쉬운것은 명지봉에서 대전광역시 동구와 충청북도 옥천군, 충청남도 금산군의 3도봉에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었어야 하는데 아쉽게 되었다. 1930년도에 건설된 지경수의 다리에서 완주 기념사진을 찍고 장호씨의 차를 차고 마전으로 올라오는데 박은서씨외 2명이 다 타지를 못하여 미안하게 되었다.
태봉재에서 일부는 헤어지고 나머지 9명이서 마전의 보은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으며 오늘의 산행소감을 들었다. 장종안씨는 힘이 무척들었던 모양인데 그래도 대전과 금산의 경계를 주의깊게 보면서 천혜의 산성으로 둘러싸여있는 금산을 보고 다시금 새로운 사실을 알았단다.
모두들 힘은 들었지만 보람있는 산행을 하였단다. 산행기를 즉시 올리려하였으나 카메라를 떨어뜨려 사진이 컴퓨터로 옮겨지지 않아 사진을 볼 수가 없었고 AS가 끝나야 사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은 잘 보관이 되어있어야 하는데 훼손이 되지 않았나 걱정이 된다.
카메라의 AS가 되어 사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머들령 시는 원문을 그대로 올렸습니다.
첫댓글 이글을 보니 보람두 있었구 고생두 많이 했구나 하는게 느껴 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네 즐겁고 보람 있는 산행 했습니다 ㅎㅎ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2월 16일 산행에는 꼭 참석 할께요. 즐거운 명절 보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