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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격분한 현자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1818~1883)는 훌륭한 자본가도 소비자도 못되었다. 평생 빚에 허덕임. 자본주의 법칙과 문명발달사의 숨겨진 암호들을 해독하고 통찰 -> 자본주의 몰락 예견.
그는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의 안주거리. 후대에 끼친 영향력으로는 20세기 역사 바꿔 놓은 사람 중의 하나. 그러나 생존 시의 마르크스는 명성도 추종자도 없었다.
1818년 라인란트의 작은 도시 트리에에서 부르주아 집안 둘째 아들로 태어남. 아버지 하인리히는 변호사. 친구들은 중류, 상류층 자제들. 미래의 아내 제니는 이웃에 살았고 그녀의 아버지 폰 베스트팔렌 남작은 삼촌 같은 존재였다.
형 4살로 죽자 장남역할하면 누이동생들의 압제자로 군림했으나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이야기 솜씨로 동생들의 존경받음. 학급동료들은 익살과 장난기 넘치는 그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냉소에 몸을 떨었다.
그는 매서운 비판과 인신공격에 천부적 소질 지님. 유태인에게 험한 욕을 퍼붓고 변태적 쾌락까지 느끼는 듯. 부모 둘 다 랍비의 후손들. 삼촌도 랍비. 아버지는 유태주의 법령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유태교 존중.
마르크스도 밀처럼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두루 섭렵함. 아버지가 합리주의 가르치고, 폰 베스트팔렌 남작이 낭만주의자들의 이야기로 그를 매료시키고 마르크스에게 무계급의 이상적 사회주의 불어넣음. 아버지의 날카롭고 명민한 통찰의 영향으로 이상향을 그대로 믿지는 않음
본 대학에서 투쟁 시작. 자신의 주벽, 낭비벽과 싸움. 술주정하다 학교 당국에 구속되기도 함. 감옥 안에서도 카드놀이, 술마시기 -> 트리에 주막회 회장 피선에 기여. 마르크스 최초의 정치적 승리.
아버지가 베를린 대학으로 전학시킴. 그러나 엄청난 돈 써대다가 빚쟁이들에 쫒겨 5년간 10번 넘게 이사. 아버지는 그의 방탕함. 거지같은 외모(‘무어인’), 학문적 방황을 못마땅하게 여김. 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대학을 캠핑 야영장으로 생각하는 보헤미안’이 되었음.
철학 독학 후 청년 헤겔학파(종교에 대한 과격 비판론자 + 헤겔의 절충 지지파) 서클에 가입. 수업 빠지고도 헤겔의 이론 교묘하게 차용함.
1838년 그가 깊은 애정 갖고 있던 아버지 사망. 그는 어머니는 인색한 돈주머니로 여겨 장례식에도 참석 안함. 아버지 사망 후 공부를 마칠 결심하고 대학 벗어나고자 희랍철학에 대한 논문 씀. 엄정한 베를린 대학 대신 쉽게 학위 딸 수 있는 예나대학에 논문 제출해서 박사학위 땀.
젊은 언론인
중산층을 위한 진보주의 성향의 [라인신문]에 입사하여 편집인으로 일함. 공산주의로 빠지려는 과격론자들의 언로 막는데 주력. 프로이센 정부의 언론 탄압 하에서 관리들과 씨름함. 신문사 닫거나 자신의 입을 닫으라는 정부 당국의 제의에 따라 사퇴. 프로이센 귀족 출신의 미녀 재원인 제니 폰 베스트팔렌과 혼인.
1843년 파리로 감. 정치평론지의 편집을 맡으며 공산주의에 발 들여 놓고 젊고 거만한 과격론자들 무리들과 어울림. 공동편집인과의 불화로 첫 호로 폐간.
무리 중에 프리드리히 엥겔스(낮 - 아버지 사업에 열중하는 자본가, 밤 = 헤겔 독파하는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의 생활과 생존에 결정적 역할 담당함. 엥겔스는 독일인이지만 영국 맨체스트에서 방직공장 경영경험을 [1844년 영국 노동계급의 실태]에서 영국 빈민층의 실상 파헤침. 엥겔스는 그의 이중생활에 아무런 심리적 갈등을 느끼지 않음. 귀족생활하며 무산계급위해 건배하는 사람. 여우사냥, 여자사냥 즐김.
1840년대 마르크스는 세계역사 바꿀 이데올로기의 틀을 마련. 자본주의의 토대는 급속도로 붕괴하고 군중은 곧 혁명을 일으켜 자본자들을 철 지난 꽃잎처럼 떨어뜨리리라는 예측. 프로이센정부 반역죄 선고. 프랑스 정부에서 추방당함. 브뤼셀로 옮겨감.
유물사가
마르크스 철학은 헤겔의 전문용어 이용했으나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다. 같은 용어를 써도 순서 달랐다.
헤겔은 철학의 목적이 아이디어들의 전개를 통한 지식의 습득에 있다고 봄. 역사는 인간 정신활동의 소산. 물질세계((물질과 사회제도 등)는 정신세계가 인도하는 길을 갈 뿐.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신교 윤리적 노동관과 자본주의 정신]에서 같은 논지 폄.
헤겔 - 역사란 당대의 가장 유력한 민족주의에 의해 창조되어 나감.(프로이센은 당대의 중심 국가로 믿음) 마르크스는 헤겔의 이상주의 배격함. 독일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기독교의 본질]- 신이란 인간의 욕망, 필요, 속성 등의 투영. 신은 관념에 불과. 인간이 신 창조.)처럼 물질적 힘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중시.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그래도 답습. 헤겔 - 역사는 서로 대립하는 힘들의 투쟁으로 이뤄진다.
변증법 - 모든 명제나 관념에는 그 반대명제(논리적으로 합당하면서 동시에 원래 명제에는 모순되는 명제)에 부딪친다(대립관념이 있다). 관념들 간의 모순은 제3의 명제인 합성명제의 탄생을 통해 보다 높은 차원의 진리로 화합됨.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다. 말 많은 역사가들이 같은 소리 되풀이 할 분.
뉴턴 - 불변의 인과관계에 역점. 헤겔 - 불변하는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존재일 분
마르크스는 변증법과 물질주의 융합시킴. 엥겔스는 이 결합을 변증법적 유물론 혹은 유물사관이라 명명함. 마르크스는 역사의 진로를 노예제에서 봉건제도, 자본주의제도, 사회주의제도의 순으로 엮어 나감. 그 진로는 ‘인간과 생산의 관계’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토대위에 놓여짐. 모든 생산제도는 필연적으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낳음. 지배계급의 생존여부는 피지배계급의 노동에 달려 있음. 지배계급이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체제에 협조해야 함. => 상호의존적 관계 성립 지배계급은 노동자가 필요 없는 것으로 위장.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헤겔의 관심사였던 윤리, 민족주의 가치관을 이용. 체제 유지를 위한 법, 문화, 종교, 도덕, 가치관을 마르크스는 상부구조라 부른다. 상부구조 발생의 근본원인은 생산과정에 있다. 생산과정이 인식의 틀을 왜곡 형성함.
상부구조가 자동으로 생겨나 계급체제 보호하면 체제 몰락할 까닭 없다. 반란은 생산과정에서 기술혁신이 생길 때 일어난다. 물질생산력이란 신발명, 신발견, 교육, 인구성장 등의 영향을 받는 동적인 힘. 그러나 사회제도는 기술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함. 상부구조는 정적임. 지배계급이 종래의 관념을 움켜쥐고 새로운 경제적 발전을 배격하면서 역사의 흐름은 저지하려 들 때 투쟁의 불길 일어남. 신지배계급은 구지배계급과의 힘겨운 투쟁 끝에 쟁취하게 된 것.
*홍수로 익사한 독실한 영주이야기. 유물론적 역사의 흐름을 거부하는 자는 역사의 강물에 익사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찬미. 자본주의가 없었더라면 인간은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신음했을 것으로 봄. 마르크스가 가장 매섭게 비판한 이들은 자신의 통찰과 꿈을 비껴간 동료 사회주의자들. 낭만주의도 배격.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선결조건. 자본주의는 과도하게 생산적이기에 생산에 있어 덜 적극적인 사회주의의 발생을 허용하게 됨. 자본주의 본거지인 프랑스와 영국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 러시아, 독일은 기대 안함.
자본과 자본주의의 몰락
1850년대 영국박물관의 경제학 서적들에 파묻혀 지냄. 경제학에 관한 모든 것 읽음. 노트는 80명 저자들의 문장으로 메워짐. 초저속으로 작업. [자본론]출판업자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함에 대한 난해한 분석하는 동안 런던 최하류층 거주 아파트에 사는 가족들은 비참하게 굶주림. 런던 생활 5년 동안 3명의 아이 잃음. 장의사들의 외상거부로 관을 구하지 못한 제니는 우울증 걸림. 마르크스도 깊은 비탄에 잠겼고, 자신의 곤경을 부르주아의 탓으로 여기고 복수 다짐했으나 비극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의 수입은 가장 곤궁하던 시절조차 막일꾼 품삯의 3배. 그러나 식비대신 자식들의 피아노, 음악, 댄스 레슨에 돈 탕진.
1867년 [자본론] 제 1권 출간. 나머지 3권을 사후 출판.
자본론 세단계로 나누어 검토
1) 노동착취 이론 -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기업에 기여한 만큼의 보수 지급하는 대신 노동자들이 목숨을 연명하면서 계속 일할 수 있을 만큼의 생계임금만 줌.
생산을 위해 자본가들은 공장, 기계 같은 불변자본을 제공하고 노동자들 같은 가변자본을 고용. 생산 시작되면 자본가는 생산품의 가치가 투입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합을 초과하도록 총력기울임. 초과가치 즉 이윤은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기여도보다 적은 보수 지급한 결과로 발생.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들로부터 수탈한 가치량을 ‘잉여가치’로 부름. 잉여가치와 보수의 비율이 착취율(잉여가치 클수록, 보수 낮을수록 착취율 증가). 언제라도 노동자를 대체할 산업예비군이 있기에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 가치량 만큼의 보수를 요구할 수 없다. 이윤율 - 잉여가치와 총 투입자본의 비율(잉여가치/불변자본+가변자본, 고용인력의 노동시간 연장 ->잉여가치 상승, 어린이, 여성인력 많이 고용해서 가변자본 줄이기 ->투입자본 비용 줄이면 더 이윤 취할 수 있다.)
2) 자본주의는 왜 필연적으로 멸망하는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경제적 모순과 부조리를 조심스럽게 묘사. 자본주의가 경제파열로 치닫기까지의 5단계 법칙 검토. 보이진 않는 손은 자본주의에 박수 치기는커녕 박살내고 만다.
1단계 - 떨어지는 이윤율과 자본 축적 :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달은 투입자본량의 증가를 필수적으로 유발. 이미 투자한 자본의 보존위해 끊임없이 자본 추가 투자하게 됨.
2단계 - 경제력 집중화의 가속 : 자본가들의 전쟁 승리자는 항상 대기업. 소규모 자본가들은 참패. 대기업 경제력 독식.
3단계 - 경기침체와 위기의 고조 :: 노동자 기계로 대체 -> 실업률 증가 -> 상품판매 부진 -> 기업 도산 -> 주식 휴지됨 -> 투자자 투신 -> 상품가격 폭락 -> {상황개선} 살아남은 기업 노동자 고용 -> 잠시 후 다시 악순환 -> 경기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짐. 자본주의의 비극은 위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위기에 의해 구제되어야 한다는데 있다.
4단계 - 산업 예비군 : 실업자(거리의 산업예비군) 처음 얼마간은 유순하고 비폭력적. 풍족한 노동력은 자본가들이 주도권 잡도록 돕는다. 처음 얼마간은.
5단계 - 비참해지는 프롤레타리아 : 실직, 이윤의 폭락, 감내하기 힘든 절망과 고통의 세월 속에서 그들의 처지 깨닫고 반란 일으킴. 공장과 함께 인격을 되찾음. 인간의 삶에서 노동은 중요한 역할 담당. 창조적 노동 없이 인격 발전 없다.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은 상품의 하나. 사람은 인간의 형상을 한 기계에 불과. 이 세상으로부터, 동료들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느낌. ->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의 경제를 되찾고 스스로를 해방시키도록 종용.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공산당선언 20년 후 [자본론]나옴. 프롤레타리아는 이제 혁명적 구호들을 예리한 분석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됨.
3) 자본주의에 따르는 심리적 비용 -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낙원론 힐난. 소득의 ‘공정한’ 분배나 부의 전면적 재분배에 대한 대중의 동경을 혐오함. 완성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노동자들은 스스로 생산해낸 가치만큼의 보수 받지 못할 것으로 못박음. 다만 그 잉여가 자본가들의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인민들’의 집단 활동과 복리증진에 투자되는 점이 자본주의와 다를 뿐.
공산주의의 정확한 내용 알 수 없다. 마르크스는 종국에 가서 국가가 쇠퇴하여 사라질 것을 암시. 그동안은 프롤레타리아들의 독재 성행. [공산당 선언] - 재산권의 독재적 침해를 성취하기 위한 10개 항목의 계획 등장. 1. 토지사유 금지 2. 누진세 3. 상속세 철폐 4. 반역자, 이민자 재산 몰수 5. 은행 국유화, 중앙집권화 6. 교통, 통신 국유화 7. 국유 공장 확장. 8. 노동의 평등의무화. 9. 농업과 제조업의 결합. 10. 아동 무료교육, 취로 금지
유럽의 분열된 사회주의에 실망했던 마르크스는 자신이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자 아니라고 선언하기도.
마르크스 재고(再考)
마르크스의 분석 포괄적 비판은 어려운 작업. 여기서는 다음의 4가지 주제로 소박한 평가 시도
1.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 잉여가치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왜곡시켰는가? - 유물론적 원인들만이 모든 사회현상의 원인인양 묘사. 관념의 힘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오류 범함. 노동가치설(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창조해낸 가치 즉 이윤 독점) 자본가들은 티끌만큼의 가치도 스스로 창조하지 않는다고 봄. 그러나 그는 상상력, 독창성, 경영능력 같은 무형의 요인들은 기업간 국가간 경쟁에서 결정적 승부수로 작용.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이윤증대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이나 경영법과 같은 인적 자본 간과함. 마셜은 자본가들의 ‘위험감수’와 ‘기다림’이 사회에 더하는 가치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창조하는 가치에 못지않다고 주장.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에 집착함으로써 너무나 많은 역동적, 관념적 요인들 무시함.
2.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함, 실직, 자본주의의 몰락에 대한 예언은 어찌된 노릇인가? - 마르크스는 예언을 하진 않았다. 식별 가능한 경향들에 근거하여 역사의 진로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려 했던 것.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법칙을 역사의 진로에 끼워 맞추고는 예언의 정확함과 신묘함을 주장. 마르크스주의는 무신론적 과학에서 출발했으나 20세기 들어 하나의 종교로 탈바꿈하여 어떤 오류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예측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는 몰락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절대적’ 생활 수준은 더 나아짐. 마르크스는 절대빈곤에서 상대빈곤으로 한 단계 후퇴시킴.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심리적 비참함이나 소외감 강조. 행복의 정의는 더욱 상대적인 것. 실업률 증가했으나 노동인구 비율의 증가, 여성인력의 증가 감안해야. 자본주의체제의 생산수단 자본가들만이 독점하는 것 아니다. 중산계급도 증권시장 통해 간접적 소유 가능. 일부 옹호자들은 정부기능의 강화(사회보장제도의 도입)가 자본주의 구출의 변수로 작용했다고 주장. 일부는 자본주의의 뜻밖의 성공을 해외 저개발국의 값싼 노동력 착취하여 국내 경제 유지시켰다고 주장.
=> 마르크스는 자신있게 자본주의의 미래 예측, 몇 군데 수정하고 관대하게 해석하면 그의 이론은 대강 옳았다고 인정될 것.
3. 마르크스는 현대 경제학에 어떤 공헌을 했나? - 대다수 영미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실제 현상과 비슷하게 들어맞아도 이론 자체의 타당성 인정받지 못함.(여우 추적하는 개 등의 벼룩) 케인스와 대다수 현대 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 책 버림,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마르크스 저서 읽지 않음. 급진파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의 통제 강조.
4. 현대 정치에는 어떤 공헌을 했나? -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소련과 그 위성국들의 정치체제 매도. 소련(레닌-당에 의한 독재, 스탈린-국영농장 강제이주로 수백만 인민 아사, 고르바초프-자유시장경제 받아들이기)도 중국(마르크스, 마오 버리고 덩샤오핑이 자유시장운동 이끔.)도 동유럽도 마르크스의 이상 제대로 실현한 국가 현재까지 하나도 없다. 자원부족, 이기심의 팽배, 사회악의 존재 등의 문제로 가득찬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경제 변화는 극심한 고통 수반한다. 권력은 탄압으로 쉽사리 변한다. 피지배계급은 착취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등) 은 공산국가에 더 해당사항 많을 것.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젊고 비과학적 시절의 마르크스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정의 구현을 외쳤던 한 인간적 호소자로서 기억되어지고 있다. 마르크스의 미명아래 자행되었던 모든 학대와 잔학상들을 감안할 때 이것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