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마을 정영신 인터뷰
-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정영신님은 용산의 대표 며느리로 시어머니가 다섯분이라는데?
제가 원해서라기보다 용산 참사로 돌아가신 5명 열사의 부인들이 저의 시어머니가 됐어요.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355일을 병원에서 지내면서 엄마보다 친하고, 동지애 느끼면서 살고 있고, 그 덕에 동생들이 9명이 생기고 조카도 생겼어요. 아쉬운 건 아직도 며느리는 저 혼자. 동생들이 얼른 결혼해서 제2의 용산 며느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지금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활동가라 하기엔 아직 좀 낯선데 저희들이 용산참사로 인해 잃은 게 너무 많아서 그냥 앉아 있기에는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어요. 그것들을 혼자 삭히기에는 화가 너무 많이 났고, 또 아직도 고통받는 철거민, 세입자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문제는 잊히고 있는 현실을 보고 저조차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싶었어요. 할 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 뉴스도 안보고, 신문도 안봤던 여자였지만 느닷없이 나와서.... 고민을 나누고 아픔을 공감하는 것 자체만으로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겪었던 일들을 같이 이야기하면 그분들께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겁 없이 이 세상에 나왔어요. 나온 지 1년 반됐는데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매일 느끼면서 살고 있고, 요즘은 스카이액트라고 쌍차, 강정 분들이랑 만나면서 용산만 고통 받고 있는 게 아니구나, 노동자 그리고 평화를 원하시는 분들을 알면서 조금씩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용산참사 있기 전에는 어떤 분이셨나요?
신문 아예 안보고 드라마, 비 보면서 좋아하고, 투피엠 나오면 미치고 이런 여자였는데, 요즘엔 박준 노래를 더 좋아하고... 이런 식으로 변했네요.
장례를 치른 후 용산 참사 문제는 모두 마무리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어떤 문제들이 남아있나요?
장례를 치르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2주기까지는 솔직히 모든 사람들이 용산참사 문제는 장례를 치르면서 다 끝난 문제로 여겼어요. 제일 사람들이 몰랐던 것은 철거민이 아직 감옥에 있다는 것이었고, 또 중요한 용산 참사가 있던 그 자리가 공터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올 초 3주기 되면서 많은 분들이 구속자의 문제를 이야기해줬고, 또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을 통해서 ‘아직 용산이 진행형이구나, 그런데 왜 거기가 빈 공터지?’ 하면서 한분씩 한분씩 저희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주는 기회가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제일 심각한 것은 생존자들이 지금도 감옥에 있는 현실, 그 사람들도 피해자고,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극적으로 살아남았던 것인데 그분들이 가해자가 돼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를 만든 이 세상... 이런 것들이 심각하죠.
또 하나는 개발문제, 용산을 이렇게 빈 공터로 내버려둘 거였으면 우리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줬으면 죽거나 다치거나 이런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을텐데, 우리의 이야기를 안들어주고 저렇게 만들어버렸다는 게 가장 심각한 거 같아요.
가장 가슴이 아픈 건 용산 4구에서 아버님이 투쟁하실 때 구청에 공문을 보내셨나봐요. 매일 아들, 며느리가 나가서 용역들과 싸우고 두들겨맞으까 이런 것들이 보기가 그랬겠지요. 그래서 구청에 “지금 세입자들의 문제가 이렇게 저렇게 심각하니까 관리처분 인가를 좀 지연해주면 안될까” 하는 공문을 보냈는데 역시 용산 구청에서는 “세입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관리처분 인가를 미뤄줄 수 없다”라는 답변서를 보냈는데 그것을 아버님이 가슴에 품고 올라가셨더라고요. 그게 끝내는 유품으로 남았는데 아버님 돌아가시고 장례 치른 10개월 있다가, 2010년 11월에 판결이 났어요. “용산 4구역에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관리처분 인가가 무효다”라는 판결이 난 거죠. 그래서 개발 자체가 무산되고 그러다 보니까 시공사들 다 계약 파기 해버리고, 지금은 그 때 있던 용역들이 컨테이너를 놓고 주차장으로 쓰면서 돈을 벌어먹고 살아요. 그래서 솔직히 현장을 가면 망루가 있었던 자리고 저의 꿈이 있던 자리여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날에 있었던 용역들이 아직도 거기서 살고 있고 버젓이 그 땅이 자기들 땅도 아닌데도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요. 그래서 더더욱 거리에 나와서 떠들고 다니는 것 같아요.
용산 참사로 감옥에 가신 분들 중에서 최근에 출소한 분들도 계시죠?
그분들은 얼굴 보시면 알겠지만 동네 아저씨에요. 장사하시던 아저씨가 어느 날 테러리스트가 되고, 살인자가 돼서 감옥에 갇혔다가 만기 3개월 남겨두고 가출옥하신 거에요. 하루라도 일찍 나오면 가족들에게 좋은 일인데...
그 중에 한분은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학교에서는 아빠가 살인자라며 왕따를 당하기도 하면서 아이가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빠가 나와서 많이 좋아지고 있나봐요. 둘이 참 애틋해요. 아빠 껌딱지라고 해서 아빠가 맨날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학교가면 쉬는 시간마다 전화를 한 대요. 아빠도 꼭 저녁에는 가서 딸 식사를 챙겨주고...
용산참사 이후에 재개발이 약간 주춤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강제철거 당하거나 쫓겨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특히 이 겨울에 쫓아내는 것이 참 비인간적인 처사인데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위해 애쓰시던데 그 내용이 뭔지 소개 좀 해주세요.
강제퇴거금지법은 일명 용산참사재발금지법이라고 불리는데 적어도 이 개발 현장에서는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된다는 거에요. 개발관련 법들이 많은데 개발의 유형도 참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개발에는 이 법이 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우리를 내쫓아도 되고, 또 이 개발은 동절기에 철거해도 되는 개발이기 때문에 이렇게 추운 날에도 단전, 단수 하고... 이렇게 현재의 법들이 돼있어요. 그래서 강제퇴거금지법에서는 모든 개발에서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선되어야 한다. 소유주가 아닌 거기에 살고 있는 거주민이 우선이고, 동절기나 심야에는 철거하면 안된다... 솔직히 새벽 4시에 용역들이 지붕 뚫고 오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아이들이 느닺없이 자고 있다가 천장에서 시커먼 사람들이 들어와서 집기들을 내 던지고 애들을 이불로 싸서 밖으로 내 던지고 그러거든요. 적어도 이런 일들은 없어야 되잖아요. 강제퇴거금지법 안에 이런 모든 내용을 담았어요. 그래서 개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80%가 다 동의해야 되고, 그 안에 철거 업체들이 들어오면 - 집을 철거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사람을 철거하거든요, 그래서 적어도 철거하는 업체들은 집만 철거해라, 사람들에게 이주종용하거나 협박하거나 건들지 말고 - 집만 철거하라는 내용도 그 안에 포함돼 있어요. 아쉬운 것은 3주기 때도 이 법을 발의했는데 단 한 번의 논의도 없이 폐기됐어요. 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머리 아프게겠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법이고, 이런 법이 있어야 더 이상 용산참사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내쫓기는 일이 없을텐데 그런 것들을 위에 있는 분들은 안하시더라고요.
자기 자신이랑 관련 없는 일에 연대하기 힘든데 진상규명 활동도 하시고, 재개발 문제가 아니더라도 연대활동을 많이 하시는데요, 이렇게 꾸준히 연대활동하시는 이유가?
처음에는 솔직히 힘들어서 위를 쳐다보고 다니지 않았어요. 어느 날 플래카드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는데 “제2의 용산참사 현장”이라는 거였어요. 그곳을 봤더니 철거현장이었어요. 그 문구를 보는 순간에 머리가 띵~ 하면서 너 도대체 뭐하지? 니가 그렇게 그 안에서 두들겨 맞고 여기 사람이 있는데 좀 저희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라고 외칠 때 사람들이 외면했을 때 가장 상처 많이 받았는데 저들이 저렇게 외치고 있는데 내가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안되겠구나... 적어도 저 문구를 없애야되겠다. 제2의 용산참사라는 문구가 저는 싫거든요. 그 문구만이라도 없애야 되겠다는 마음에 나왔는데 철거 문제만이 아니더라고요. 노동자들, 또 송전탑의 어르신들 이런 것들이 다 하나에요. 쫓겨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닥치는대로... 그런 곳에 가면 제가 힘을 얻고 와요. 그 사람들에게 제가 위로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제가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는 위로를 받으면서 하루하루 버티는 힘이 되거든요. 용산참사 진상규명이 되더라도 저는 아마 거리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무리 말씀 한 마디?
곧 용산 참사 4주기에요. 벌써 4년이 흘렀지만 바뀐 게 없고, 용산참사 생존자들이 감옥에 있고, 부상자들은 어제 감옥에 갇힐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어요.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 용산은 그 날 이후로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많은 분들이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와 구속자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1월 14일부터 용산참사 추모주간이에요. 매일매일 용산을 기억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요, 새정권에서는 용산참사와 같은 국가폭력은 절대로 안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올 추모제에서는 구속자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열사분들 찾아 뵙고 술한잔 올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