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이형호씨 집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아래의 이형호씨 집은 흙과 나무 등을 이용해 지었다. 전원에 나와 살기 위하여 대학교 시절부터 준비하고 계획했다는 이씨의 본업은 화가이다. 이곳에 나와 그림보다 더욱 그림 같은 자연에 눌려 지내느라 한동안 작업에 손을 놓기도 했다. 서울에서 찾아오는 선후배들과 더불어 1년 반에 걸쳐 지은 이씨의 집은 자연을 그대로 포용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 더욱 끌리는 집이다. 이씨의 집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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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1년 반 동안 집을 지은 화가 이형호씨. | “치악산 아래서 안빈 낙도하는 은자의 집”
남원주 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서신림으로 빠져 나가면 치악산 남쪽에다다르게 된다.치악산 남쪽 상원사 들어가는 입구에자리잡은 너와집 두 채는 차라리 고요한절간이나 은자의 집처럼 비쳐진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계곡, 나무나 돌등 환경을 거스르지 않은 집은 그자체가 하나의 자연이 되고 만다.미술 학도였던 건축주 이형호씨는 대학교3학년 때부터 전원에서 살기 위해 전국을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을 벗하며 그림을 그렸다.그림 그리기를 구도의 길로 여겼기 때문일까.그는 전원으로 나가야 그림을 그릴 수있다는 생각에 강원도 원주를 선택했다.
‘소로길’이라는 카페와 주거로 이용되는집은 치악산을 등지고 있으면서 집 앞으로산줄기와 계곡을 마주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작은 비포장도로만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출구처럼 보인다.

▲ 철도 침목으로 골조와 기둥, 창틀을 세우고 마당에서 나온 흙으로 벽체를 만들었다.
이씨의 집이 위치한 곳은 해발 5백여m에 이르는 곳으로 해발 1천여m 높이에 있는 상원사까지 대략 4Km 거리이다. 산과 계곡을 휘감고 도는 곳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이씨의 집이 눈길을 끄는 것은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 지붕에는 흙을 얹고 방습지를 넣은 다음 참나무를 패서 만든 너와를 덮었다.
90년대 초 수도원에 전원주택 바람이 불던 당시 그는 치악산 아래에서 집과 밭 7백여평을 8백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농가를 수리하고 마당에 나무도 심고 나자 그런대로 근사한 전원주택이 만들어졌다. 이씨는 이곳에서 한동안 작업도 하고 아예 묻혀 살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러던 중 원주 일대에도 전원주택 바람이 불어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이씨의 농가도 전원주택 바람을 비껴갈 수 없었다.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와 집을 팔라고 아우성이었다. 덕분에 살 때보다는 상당히 높은 가격에 집을 팔수 있었다. 이후 치악산으로 들어와 밭을 포함해 지금의 집터를 구입하였다. 그래서 시작한 집짓기는 무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 기초는 돌과 시멘트를 섞어 다졌고 외부로 드러난 부분에는 축대처럼 돌을 쌓았다.
집터에서 나온 돌을 시멘트와 섞어 기초 공사를 하고 나서 한동안 자재를 구하러 다녔다. 철도 침목을 구해와 골조와 창문틀을 만들고 나서 또 얼마간은 일을 멈추었다. 자금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한 끝에 인건비와 자재비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집 주변에서 나오는 자재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벽체는 집터에서 나온 흙을 활용하고 지붕의 너와는 마을사람들에게서 구한 참나무를 켜서 썼다.
벽체는 벽치기공법으로 중간에 단열재를 넣고 안에서 황토를 그대로 사용해 발랐다. 외벽은 황토에 시멘트를 약간 섞어서 만들었다. 순전히 어릴 적 어른들의 집짓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약간은 즉흥적인 기분으로 조금씩 완성해 나갔다.

▲ 대청마루가 실내에 있다. 워낙 공간이 넓어 크게 어색하지는 않다.
친구와 후배들이 함께 지은 집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와서 며칠씩 묶으면서 일을 도와 주었어요. 친구들하고 일을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하면서 진행했지요. 이 집은 나 혼자 지었다기보다는 공동 작업으로 태어난 셈이지요. 사실 인건비는 별로 안 든 것 같지만 친구들하고 얘기하면서 쉬엄쉬엄 짓다 보니 술값이 인건비보다 더 들 때도 있고 적게 들 때도 있어 나중에 보니까 인건비를 크게 줄였다고는 할 수 없더라고요.”
이씨의 집 짓기 소식이 전해지자 학교 친구들과 후배들이 품을 더해 주러 원주로 내려와 일손을 도와 주었다. 친구들 중에는 손 재주가 좋고 집 짓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도 많아 아이디어도 보태 주고 기술도 보태 주었다. 세월 가는 줄 모르게 지은 집이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집을 보는 재미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 새로 지은 집의 내부 모습. 벽면은 핸디코트로 처리하였다.
아마도 1년 반 동안 다른 일도 안 하고 자기가 살아갈 집만 짓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70년을 산다고 할 때 50일 중의 하루는 집짓는 알로 생활한 셈이다. 이러한 셈을 하지 않더라도 집짓는 일만 하고 지낸다는 것은 도시인들에게 만만히 설득될 일은 아니다. 자재는 여기저기서 끌어 모으고 품은 아는 사람들에게서 십시일반으로 부조를 받아가면서 지은 집.
애초에는 침목으로 벽체를 완성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주변 환경과 괴리될 수 있다는 생각에 흙집을 지었는데 나중에 짓고 보니 상당히 조화를 이루면서도 안정감이 있었다. 첫 번째 지은 카페를 겸한 살림집은 총 규모가 60여평으로 매우 큰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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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는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본체의 사랑방. |
천장은 골조를 가릴 수 있게 합판을 치고 흙을 발랐다.그리고 지붕에는 흙을 얹고 폴리 계통의 방습지를 덮었다. 그런 다음 인근에서 구해온 참나무를 켜 너와를 얹었다.
덕분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그런대로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내부는 방 두 개와 커다란 홀, 부엌과 욕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욕실은 흙으로 이루어진벽체 위에 타일을 붙였다
침실 사이에는 마루를 놓았다. 실내에 위치해 있는 마루이기는 하다. 하지만 상당히 운치가 있고 대화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언뜻 집 짓기는 쉬워 보인다.자세히 보면 60여평의 공간을 직접 짓는 데 들인 공과 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창문의 경우 침목으로 창틀을 했다. 커다란 창문을 버티려면 침목 정도는 돼야 견딜 듯하다.밖에서 보면 흙으로 이루어진 벽체와 침목이 잘 어울린다.

▲ 창문 앞에 설치한 의자도 이씨가 손수 만들었다.
“침목만으로 집을 짓는 경우도 간혹 볼 수 있는데 집이 우중충하고 타르 냄새 때문에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생각에 골조만을 사용했어요. 골조만큼은 튼튼하게 하자는 생각에서 침목으로 골조와 창틀을 했는데 미관상으로도 무난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또 침목은 단단하면서도 수명이 긴 것이 장점이에요. 게다가 건축 당시에는 값도 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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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물상에서 가져온 물건으로 고안한 조명. |
이씨는 자신이 지은 집을 보면 뿌듯하다고 한다. 현재의 집은 카페를 지은 이후 지어졌다.도시에 살고 있는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어울려 살고 카페는 자립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카페에서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만큼 벌 수 있단다.
집을 지는 데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이씨의창의성이다.이씨는 집을 지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유롭게 자재를 활용하고 기본 틀에 얽매이지 않게 했다.
특히 조명 감각은 더욱 그렇다.고물상에 가서 옛날 시골에서 사용하던 호롱불 수십개를 몇 만원에 구입해 그 안에전구를 넣는 방법으로 조명을 설치했다.
또, 어릴 적 초등학교 때 본 마룻바닥을구해다 깔았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벽난로를 설치하여 옛정서가 물씬 풍기게 하였다.카페를 겸한 주거 공간인 점을 감안하면파격적인 실내 디자인을 하고 있다.
“너와를 만들기 위해 칼날을 새로 제작했어요. 그 칼날을 나무 토막 위에놓고 포크레인 삽으로 내리쳐 너와를 하나둘 만들어 1백여평 되는 건물의 지붕을얹었지요.
집 짓는 일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인셈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시 그렇게 집 짓기는 어려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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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물로 제작된 벽난로. |
마당에서 돌을 골라내는 데도 몇 개월이걸렸다. 축대며 기초 둘레의 고막을 쌓은돌은 물론 배수로, 기초 공사에 들어간 돌도모두 마당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현재 살고 있는 살림집은 아주간단하게 지었다. 콘크리트 집이다.골조를 건축업자에게 평당 60여만원을 주고 외주를 주었다.
기초공사와 골조가 완성되고부터 할 일은마감 공사. 이미 집 한 채를 지어본 경험이있어 일은 순조로웠다.계획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손쉽게 지어약간은 허탈하기도 했단다.
이씨는 이제 또다른 꿈을 꾸고 있다.집을 짓고 나서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이씨의 집과 똑같은 집을 지어 달라고졸랐지만 그 때마다 거절했다.
즐겁고 행복한 일을 왜 다른 사람 손에맡기려 하느냐고.그런 그가 이제는 혼자서 지내며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지으려고 한다.
그동안 살면서 잊고 지내던 창작의 꿈을 펴기위해서라도 올 여름부터 조금씩 새로운 준비를 해 갈 작정이다.
2001/06/17 주택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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