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로 김우연 님은 저의 외할아버지이시고 김금자 님은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김우연 님 가족 6.25동란 피란 이야기〕 피란가(避亂歌) 문태성(시인/ 정치학박사)
2012년은 6.25 한국전쟁 62주년이 지나간 해이다. 세월은 갔으나, 6.25 동란은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글은 62년 전인 1950년 6.25 당시에, 우리 고장 영월 김삿갓면(전, 하동면)에 계시던 김우연(김태룡) 선생께서 가족을 데리고 1.4 후퇴 때 영월을 출발하여 제천, 금성, 문경, 안동 방향으로 피란을 다녀 온 ‘피란가(避亂歌)’를 쓴 것으로 자손인 큰 딸 김금자 여사(시인)께서 1995년 발행하였었다. 필자는 이 글이 사료로써 중요함을 인식하고, 발행인의 동의를 얻어 이 글을 다시 올린다. 당초 저자의 글은 한자(漢字)가 많고, 당시의 용어와 맞춤법대로 기록되어 있어 약간의 해독이 필요하므로, 원문을 가능한 싣되 사투리 등은 그대로 두며, 이해가 부족한 부분만 현재 통용어로 옮긴다. 저자의 절박했던 사연과 가슴 저미는 글귀가 당시 참상을 가늠케 한다. 국민 모두가 6.25를 상기하며, 아직도 분단된 조국 강토의 통일을 생각하며, 선조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의 참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교육적인 자료로써 후대에 전하고자 이글을 전개한다.
<피란가(避亂歌)> (6.25동란 피란 이야기)
김우연 어화 세상 벗님들아/ 나에 말 들어 보소/ 피란가를 지었으니/ 한 번 보고 웃어주소/ 잘 지으면 칭찬이요/ 못 지으면 비평이라/ 내가 지난 고생한 일/ 자랑삼아 지었도다.//
세상천지 배반하고/ 동서(東西)각국(各國) 창업되니/ 우리 나라 어디드나/ 동해중의 위치 잡아/ 지광(地廣)은 편소(片小)하나/ 금수강산 3천리라/ 단군시조 전한 사적/ 4천년에 빛나 있고/ 예의 동방 우리 나라/ 우주(宇宙)간에 찬란트니/ 어찌하여 우리 국운(國運)/ 이 지경이 되단 말가.//
38선이 무엇인지/ 국토가 양단(兩斷)되고/ 적백(赤白)이 무엇인지/ 국민이 분열되어/ 남북이 상전(相戰)하니/ 골육상쟁 이 아닌가/ 인생출세 이 세상을/ 역력히 회고(回顧)하며/ 왕고래금(往古來今) 만 만년에/ 흥망성쇠 소소(昭昭)하다/ 초한대전(楚漢大戰) 3국대전/ 임진왜란 병자호란/ 갑오년 동학란과/ 병신년 의병난리/ 구라파의 1차대전/ 태평양의 2차대전/ 말로만 들었었고/ 사기로만 보았더니/ 세상천지 큰 전쟁이/ 우리 국(國)에 발생하니/ 불쌍할 손 창생(蒼生)이요/ 억울할 손 죽음이라/ 경인년 5월달에/ 북병(北兵)이 남침하니/ 전쟁 시초 이 아닌가/ 불각(不覺)중에 이 망란(亡亂)을/ 막을 도리 바이없어/ 대전이 벌어지니/ 국부(國府)가 이동하고/ 국군이 후퇴하니/ 만민이 경동(驚動)하여/ 물 끓듯 하는구나.//
가련하다 내고향에/ 소개(疏開)령이 발발하니/ 남녀노소 야단(野斷)/ 의복(衣服)가지 대강 싸고/ 식량 되나 수습(收拾)하여/ 어린 자식 앞세우고/ 백발(白髮)노친 뒤를 딸고/ 순서 없이 떠났는데/ 남부여대(男負女戴) 단보따리/ 가련한 신세로다/ 소래기(솔개) 도는 곳에/ 병아리 흩어지듯/ 산중으로 가는 사람/ 야외로 가는 사람/ 울며불며 하는 거동/ 목불인견(目不忍見) 이 아닌가.//
어린 자식 앞세우고/ 백발(白髮)노친 뒤를 따라/ 완택산중 들어가서/ 석 달 동안 지날 적에/ 바위 밑에 막을 치고/ 하루 하루 지날 적에/ 높은 산에 올라서서/ 살던 고향 바라보니/ 비행기 폭격성에/ 천지가 진동하고/ 달아 쏘는 대포 소리/ 산악(山岳)이 무너진다.//
사방을 둘러보니/ 원근(遠近)을 불분(不分)이라/ 야외(野外)길 끊어지고/ 산중에만 살게 되니/ 옛적에 산중(山中)처사(處士)/ 도연명(陶淵明)과 일반(一般)이라/ 난중(亂中)에 할 일없어/ 백이숙제 본을 받아/ 산에 올라 나물 캐고/ 강태공에 본일런지/ 물에 나려 고기 잡고/ 유수세월 보낼 적에/ 밤이 되면 홀로 앉아/ 두견새를 벗을 삼고/ 이태백 본을 받아/ 월색(月色)따라 시(詩) 부르고/ 그럭 저럭 지날 적에/ 곰곰이 생각하니/ 날씨는 차와 지고/ 신세타령 절로 난다.//
날씨는 중중(重重)하고/ 교통은 끊어지니/ 고향에 부모형제/ 다시 한 번 못 만나고/ 완택산 깊은 곳에/ 우리 식구 오륙명이/ 다시 두말 할 것 없이/ 산중(山中)객귀(客鬼) 된 것 같다.//
옛집을 가보자니/ 공산군에 붙들리며/ 안동길도 백리며/ 군량(軍糧)운반(運搬) 하라 하니/ 그도 또한 못 가겠고/ 수심(愁心)없이 가는 세월/ 3개월이 지나가니/ 8월 추석 되었는데/ 천산만야 곳곳에는/ 희소식이 들려 온다/ 국군이 용전(勇戰)하고/ 유엔군 후원으로/ 공산군을 사로잡고/ 아군이 진주(進駐)한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산중 피란 그만하고/ 행장(行裝)을 수습하여/ 내 집으로 돌아가자/ 남부여대 단보따리/ 앞서가기 재촉하여/ 살던 내집 찾아드니/ 이웃 사촌 다 모였고/ 친구 벗님 다 오셔서/ 손에 손을 마주 잡고/ 눈물 먹어 하는 말이/ 어디 가서 피란하고/ 얼마만큼 고생했소/ 백발(白髮)노친 안녕하며/ 어린 자식 무고(無故)하며/ 국군의 용전(勇戰)으로/ 공산군을 물리치고/ 남북통일 될 것이오/ 태평세상 될 터이니/ 없는 것을 한탄 말고/ 오손 도손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자드니/ 또 전쟁이 후퇴한다/ 피란이라 하는 것은/ 천년에도 한 번이요/ 만년에도 한 번인데/ 우리 국운(國運) 어찌하여/ 일년이 다 못가서/ 두 번 피란 웬 말이며/ 두 번 소개 웬 말이냐.//
동짓달 그믐날에/ 소개(疏開)령이 시포(施布)되니/ 동리사람 우굴 우굴/ 남녀노소 야단이다/ 의복가지 대강 싸고/ 식량 되나 수습 후에/ 눈은 와서 은세계인데/ 순서 없이 또 떠난다.//
정처 없는 길을 떠나/ 앞산 재에 올라서서/ 살던 내 집 바라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신세타령 절로 나며/ 인성만성(人城滿城) 야단이라/ 대궐 같은 나의 집은/ 원(院)집같이 비워놓고/ 배 고르고 모은 재산/ 헌신 같이 다 버리고/ 가는 곳이 어디이며/ 목적지가 어디메나.//
왜정시대 다시 와서/ 북만주로 이민가나/ 면면촌촌(面面村村) 다 떠나니/ 인산인해 많은 사람/ 길이 좁아 갈 수 없다/ 때는 마치 섣달이라/ 눈은 와서 적설(積雪)인데/ 설상풍은 몰아치니/ 빙판길이 희미한데/ 각한령을 올라갈 제/ 한 걸음씩 올라가니/ 두 걸음씩 물러선다.//
독도길이 험타한들/ 이보다 더 할소냐/ 사면을 둘러보니/ 유리 같은 빙판이다/ 백발노인 엎어지고/ 어린자식 자빠지며/ 아이고 지고 통곡함에/ 어린 자식 부모 도리/ 오장육부 다 녹는다/ 철없는 어린아야/ 춥고 떨고 손 시러워/ 설중 빙판 앉아 우니/ 업고라도 가자하니/ 이불 봇짐 어이하며/ 진퇴양난 이런 말은/ 나를 두고 이름인가.//
그럭저럭 재를 넘어/ 동동 걸어 3일 만에/ 제천 송학 도착하니/ 생각잖은 난리로다/ 미군 아군 길을 막고/ 한 사람도 안 보내니/ 수수 만 명 많은 사람/ 비조(飛鳥)불통(不通) 하게 되니/ 함평양도(咸平兩道) 피란민과/ 북강원도 이북사람/ 불원천리(不遠千里) 배를 타고/ 주문진에 상륙하여/ 대관령을 넘어서서/ 수 만 명이 쏟아지고/ 양양 속초 간성사람/강릉 평창 영월 정선/ 수십 만 명 많은 사람/ 논들인지 밭들인지/ 인성만성 많은 사람/ 3대 같이 모였는데/ 자식 잃은 부모들은/ 자식 불러 우는 소리/ 부모 잃은 자식들은/ 부모 불러 우는 소리.//
그리고 있는 중에/ 비행기가 날아들어/ 폭격(爆擊)을 시작한다/ 피란이 무엇이야/ 난리 마중 여기 왔다/ 경장(驚壯)하다 탱크군은/ 산악(山岳) 같이 굴러가고/ 달아 쏘는 대포소리/ 비행기 폭격소리/ 산악이 무너진다/ 그리고 있는 중에/ 해가지고 저문 날에/ 길을 열어 가라 하니/ 수십 만 피난민은/ 앞서가기 재촉하여/ 배재고개 넘어설 때/ 염라국이 어디 메며/ 북망산이 여기로다/ 그물에 걸린 고기/ 강으로 달아나듯/ 길을 열어 가라 하니/ 해 다지고 저문 날에/ 그물코에 걸린 고기/ 강중으로 달아나듯/ 함정 속에 갇힌 범이/ 산중으로 달아나듯/ 앞서가기 재촉하야/ 배재고개 넘어서니/ 구사일생 나의 목숨/ 긴 한숨이 절로 난다/ 인성만성 가는 사람/ 길이 좁아 갈 수 없다.//
논뜰인지 밭뜰인지/ 천방인지 지축인지/ 언덕에 떨어져서/ 팔 부러져 우는 사람/ 구렁 아래 떨어져서/ 머리 깨고 우는 사람/ 자식 잃고 우는 사람/ 부모 잃고 우는 사람/ 우는 사람 가련하나/ 어느 누가 위로 하리/ 옛날 옛적 공부자는/ 삼강오륜 법을 지어/ 형우제공 부자유친/ 윤리도덕 전했건만/ 오늘날을 당하여는/ 윤리도덕 무너지고/ 제 몸 하나 살겠다고/ 불고 부모 달아날 제/ 제천역을 당도하야/ 피란봇짐 살펴보니/ 의보가지 죄다 잃고/ 족보까지 잃었으니/ 삼한갑족 안동 김이/ 돌김가가 되었구나.//
월백 설백 천지백(天地白)에/ 사면팔방 은세계라/ 하천가에 나무 주워/ 제방 위에 불 해놓고/ 식구들이 돌아앉아/ 하룻밤을 지날 적에/ 과거사를 생각하니/ 일장춘몽 이 아닌가.//
설상풍 찬 바람은/ 뼈와 살을 접해 논듯/ 4세 유아 품에 품고/ 7세 자리요를 덮혀/ 인명보호 하느라니/ 그 고생이 오죽하랴/ 어화 세상 벗님들아/ 제 것 있어 잘 산다고/ 인간 차별 하지 말고/ 없는 사람 괄시 마소/ 권불10년 부불3대/ 교불3년 못 들었소/ 10년 가는 권세 없고/ 3대부자 드문 거요/ 교 부리고 방자한 건/ 3년 가는 예가 없다.//
가사 짓는 이 자체도/ 인간 행도(行道) 50년에/ 우과 풍과 다 지나고/ 흥진비래 겪었으나/ 오늘날 이 신세는/ 둘도 없는 걸인 일세/ 그럭저럭 날 새우고/ 조반 한술 지어 먹고/ 죽령 길을 향할 적에/ 군인 헌병 길을 막고/ 단양 땅에 접전되고/ 죽령 통로 막혔으니/ 청풍 황강 가는 길로/ 빨리 가라 재촉하며/ 목목이 군인 서서/ 피란민을 안내하니/ 동해바다 깊은 물에/ 뱃사람이 후리 하듯/ 심산궁곡 사냥꾼이/ 좁은 골에 돼지 몰듯/ 수십 만 명 피란민을/ 한길로만 몰아치니/ 인성(人城)만지(滿地) 인해(人海) 중에/ 수천 대의 우마차라.//
어깨를 서로 비벼/ 길이 좁아 갈 수 없다/ 제천발 금성 갈 제/ 하나님도 무심하다/ 때 아닌 궂은비는/ 종일토록 주룩주룩/ 하늘에는 눈이 오고/ 땅에 내려 빙판 되니/ 사면팔방 은세계에/ 유리 장판 되었구나/ 아침에는 반 짐 자리/ 석양에는 왼 짐이라.//
섣달이라 차가운 비를/ 종일토록 맞았으니/ 의복 신발 전부 젖어/ 촌보를 못갈 형편/ 천운(天運)인지 인운(人運)인지/ 급한 환경 또 생긴다/ 근거리에 대포성은/ 꽈광꽝꽝 들려오고/ 빨리 가자 재촉일세/ 적세가 위급하니/ 끌고 가던 구르마는/ 다리 밑에 자빠졌고/ 몰고 가던 농우소는/ 제 멋대로 뛰는구나/ 업고 가던 어린애는/ 빙판 위에 내버리고/ 이고 가던 피란 봇짐/ 행길가에 버렸구나/ 그 중에도 불쌍한 건/ 자식 잃은 팔십 노인.//
부모 잃은 어린 자식/ 목불인견(目不忍見) 이 아닌가/ 인명은 가련하나/ 어느 누가 돌아보리/ 어떤 부인 볼작시면/ 업고 가는 어린 아이/ 벌써 얼어 죽었건만/ 정신없이 업고 간다/ 어떤 부인 효성 보소/ 머리 위에 봇짐이고/ 시어머니 업고 가니/ 출천(出天)대효(大孝) 이 아닌가/ 어떤 양반 효성 봐라/ 봇짐 위에 부친 모셔/ 북풍한설 찬바람에/ 땀 흘리며 가는 구나.//
어떤 놈의 행동 보면/부모처자 다 버리고/ 끈 떨어진 두벵인가/ 혼자 몸만 돌아치며/ 제 몸 하나 살겠다고/ 불원천리 다라난다/ 어화 세상 벗님네야/ 내 말 한 말 진담이니/ 물에 빠져 죽더라도/ 자 내 정신 잃지 말고/ 십승지지 찾지 말고/ 마음부터 고치어라/ 제 죽는 걸 싫어함은/ 인지상정 이 아닌가/ 백세 먹은 상노인도/ 죽는 것은 설워하고/ 삼척동자 어린애도/ 제 목숨은 중히 안다/ 일가족을 원을 맺고/ 어디 가면 잘 살거냐/ 명산대천 산신당에/ 백일기도 축원 말고/ 너의 양심 바로 지켜/ 수복강녕 구하여라.//
금성면을 다 지나고/ 청풍 황강 지낼 적에/ 동리마다 비였는데/ 피란민만 우글 우글/ 어떤 촌락 들어가서/ 빈 방 하나 구하려고/ 해는 이미 석양인데/ 이 집 저 집 다니자니/ 호구조사 내가 왔나/ 청결검사 내가 왔나/ 암행어사 직책 띄고/ 선악공판 하려왔나.//
이 집 저 집 다 다녀도/ 방 얻기는 다 틀렸다/ 어느 집에 들어가서/ 헛간에다 자리 잡고/ 가마 조각 줏어 깔고/ 이불 펴서 자리 보고/ 저녁 한 술 지어 먹고/ 어린 것들 눕혀 노니/ 악마 같은 찬 바람은/ 사정없이 불어오고/ 어린 자식 4남매가/ 자지 않고 앉아 우니/ 일촌간장 나의 마음/ 오장육부 재가 된다/ 이 애들아 울지 마라/ 너 울음에 나 죽는다/ 오늘 저녁 여기 자고/ 내일 밤엔 방에 자자/ 우는 자식 달래여서/ 이불속에 누여 놓고/ 마누라를 돌아보니/ 차마 못 볼 형태로다/ 설상에 가상으로/ 임신하여 만삭인데/ 배는 불러 채독 같고/ 몸은 부어 집동 같다/ 사오야(四五夜)를 한동함에/ 해소까지 생겼으니/ 침불안석 잘 못자고/ 식불감미(食不甘味) 밥 못 먹어/ 고생 고생 몇 몇 날에/ 일각이 여삼추(如三秋)일세.//
혼자 앉아 생각하니/ 나도 집에 있을 때는/ 대궐 같은 기와집에/ 남과 같이 살았건만/ 이 때를 당해서는/ 하루살이 거지로다/ 저 사람들 행동 보소/ 금수 보기 부끄럽다/ 반장 구장 못한 놈이/ 환장 한 놈 천지로다/ 욕심 많은 솔개미가/ 까치집을 점령하듯/ 남의 집에 들어 앉아/ 제집 같이 유세하고/ 찹쌀 퍼다 떡 해 먹고/ 멥쌀 퍼다 밥 해 먹고/ 닭은 잡아 국 끓이고/ 돼지 잡아 불고기며/ 간장 된장 고추장은 / 입맛대로 가려 먹고/ 문짝 뜯어 군불 때고/ 의롱 부숴 밥 해먹고/ 철장으로 땅을 뒤져/ 감춘 물건 찾아내어/ 남부여대 이고지고/ 호기 있게 가는 구나/ 하나님이 하찰(下察)하고/ 신의 눈은 번개 같다/ 그 마음 그 행동이/ 어디 간들 살 수 있나/ 내 재산이 중하거든/ 남의 재산 중히 알고/ 내 목숨이 중하거든/ 남의 생명 중히 아소/ 저런 심장 가지고서/ 피란이 무엇이야.//
그럭 저럭 여러 날에/ 문경 땅을 당도하니/ 관평재라 하는 재가/ 30리나 무인지경/ 이 일을 어찌하나/ 가슴 답답 나 죽겠네/ 탄탄대로 좋은 길도/ 하루 10리 못 가는데/ 적막공산 이 산중에/ 해는 이미 석양인데/ 30리나 무인산로(無人山路)/ 어찌하여 넘어가나/ 어린 아들 4남매는/ 이웃 부인 부탁하여/ 먼저 가서 기다리면/ 뒤를 따라 갈 것이니/ 아해들을 보내놓고/ 빙판길에 손길 잡고/ 세월없이 걷는 걸음/ 일보 이보 올라갈 제/ 허허 이런 변이 있나/ 마누라의 거동 보소/ 오한증이 홀발하야/ 길 가운데 주저앉아/ 인사 정신 못 차리고/ 세발 네발 떠는 구나/ 두 눈이 캄캄하고/ 억장이 무너진다.//
산고곡심(山高谷深) 이곳에서/ 두 수 없이 죽었구나/ 앞서 보낸 어린 것들/ 어미 아비 기다리고/ 잿말랑에 있을 테니/ 이 일을 어찌하며/ 떨고 앉은 마누라는/ 명재경각(命在頃刻) 이 아닌가/ 마누라가 하는 말이/ 나는 기위(기왕) 죽더라도/ 당신 혼자 어서 가서/ 자식들을 살리시오.//
어화 세상 벗님들아/ 나의 사정 들어 보소/ 고생 고생 고생 고생/ 이런 고생 보았는가/ 편편 약질 내 힘으론/ 업고 가도 못 할테요/ 인비목석(人非木石) 아니거든/ 두고 가도 못할테라/ 아무리 생각해도/ 진퇴양난 속수무책/ 마누라를 살리자니/ 자식새끼 다 죽이고/ 자식들을 살리자면/ 마누라가 죽는 구나/ 인생출세 기천년에/ 이런 일도 있었던가/ 인간생활 40여에/ 적악(積惡)한 일 없건마는/ 어찌하여 내 신세가/ 이 지경이 왠 일인고.//
푸른 하늘 쳐다보며/ 길이 탄식 애가 탈 제/ 어떤 사람 소를 몰고/ 관평재를 올라 온다/ 옳다 이제 살았구나/ 여보시오 저 양반아/ 피란민의 사정이오/ 임신부가 길 못가고/ 무주공산(無人空山) 이 산중에/ 두 수 없이 죽겠으니/ 소겨 조금 태워주면/ 만고적선(萬古積善) 아니겠소/ 태산 같은 그 은혜는/ 결초보은 하오리다/ 저 사람 하는 말이/ 여보 당신 정신 없소/ 거울 같은 빙판길에/ 빈소라도 극난(極難)한데/ 사람 어찌 태워주나/ 두 말 없이 가는구나.//
실망일세 낙망일세/ 닭 쫒던 개 울 보길세/ 해는 점점 석양판에/ 인적은 끊어지고/ 맹랑하다 맹랑하다/ 날은 점점 추워 온다/ 가련하고 억울하다/ 이 산중에 무삼 일로/ 일가족이 몰살하여/ 동사귀(凍死鬼)가 되단말가/ 양재기에 물을 끓여/ 마누라의 어한(禦寒)하고/ 둘이 서로 마주 앉아 신세자탄 울음 울제/ 절처봉생 이 아닌가/ 활인지불(活人之佛) 만났도다/ 어떤 사람 지게 지고/ 휘적 휘적 올라 온다/ 여보시오 저 양반아/ 피란민의 사정 보소.//
임신부가 길 못가고/ 일모(日暮) 도궁 이 산중에/ 속절없이 죽겠으니/ 인명이 불상(不詳)하오/ 지게에다 짊어지고/ 이 재 하나 넘겨주면/ 하해 같은 그 보수는/ 아낌없이 드리리다/ 저 양반의 하는 말이/ 보수 말씀 그만두고/ 날이 이미 일모하니/ 어서 빨리 오르시오/ 살았구나 살았구나/ 산중 객귀 면했구나/ 함지사지(陷之死地) 후에 생은/ 이를 두고 이름일세.//
고산준령 높은 재를/ 순식간에 넘어가니/ 어떤 촌락 내닫은데/ 아해들은 먼저 와서/ 어미 아비 기다리고/ 애가 타서 울음 운다/ 지게꾼을 하즉하야/ 보수 주어 인사하고/ 빈방 하나 얻으려고/ 애가 타서 돌아칠 제/ 먼저 왔는 친구들이/ 여기 저기 내달으며/ 손길 잡고 하는 말이/ 죽지 않고 살아왔나/ 오늘 같이 추운 날에/ 불행중에 다행일세/ 종일토록 주렸으니/ 오죽이나 시장하랴/ 술 한 잔 어한(禦寒)하고/ 식사하러 어서 가자/ 따라가서 식사하고/ 잠자리를 정할 적에/ 방 얻기는 다 틀렸고/ 헛간 하나 내 처소로다/ 일가족이 둘러앉아/ 밤샐 일이 맹랑터니/ 어떤 친구 찾아와서/ 동정(同情)하여 하는 말이/ 이래서야 될 수 있나/ 내방으로 가자 한다/ 자 내 어이 방이 널러/ 우리 식구 가자하나.//
방이 널러 그러는가/ 친구 사정 살펴보니/ 당삭(當朔)된 임신부와/ 천진난만 어린 것들/ 오늘 같이 추운 날에/ 한동(寒凍)하면 죽을 테니/ 몸이 성한 우리들은/ 한동 한들 관계있나/ 속담에 이르기를/ 어미 팔아 친구 삼은/ 오늘날 내 형편에/ 이런 때를 이름일세/ 옛적에 공부자(孔夫子)는/ 교화(敎化)중생(衆生)하실 적에/ 상강오륜 한 문구에/ 붕우유신(朋友有信) 이 아닌가.//
친구 뒤를 따라가니/ 말과 같이 적은 방에/ 두 집 식구 합숙하니/ 이마를 맞대이고/ 눕기는 고사하고/ 발도 펴기 곤란일세/ 그럭저럭 날 세우고/ 조반 한 술 지어 먹고/ 앞길을 전진할 제/ 닥치나니 영길이라/ 인부하나 삯꾼 사서/ 임부 업혀 넘어 가니/ 마을 한 곳 당도하니/ 이 고을이 벌방우라/ 담배 찌는 건조실에/ 숙소를 정해놓고/ 나무 주어 군불 때고/ 저녁 한 술 끓여먹고/ 화롯가에 돌아앉아/ 아해들과 희롱할 제/ 어화 세상 벗님들아/ 이 일을 어찌하나/ 오를수록 태산이요/ 건널수록 대강(大江)일세/ 마누라의 하는 말이/ 해산 기미 급급하니/ 방 얻으라 재촉한다/ 예측은 하였으나/ 정신이 암암(暗暗)하고/ 의사(意思)가 막막하다/ 사고무친(四顧無親) 이 산중에/ 어디 가서 방을 얻나.//
구장(區長) 찾아 인사하고/ 반장 찾아 사정하여/ 방 한 칸 얻어내어/ 피란봇짐 옮겨놓고/ 뒷산 올라 나무 주워/ 방 뜨시게 군불 대고/ 섣달이라 이십 삼일/ 밤은 깊어 야밤중에/ 수산 생녀(生女) 하고보니/ 앵무같은 딸이로다/ 첫 국밥을 지을 적에/ 없는 것도 하도 많다/ 동해바다 어디 메요/ 미역 한 족 못 구하고/ 들기름도 없었으니/ 무우국이 있을손가/ 소금물에 된장 풀어/ 산모를 먹인 후에/ 밥은 이미 오경(五更)인데/ 수수(愁愁)한 이 몽불성(夢不成)을/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잠도 영영 아니 온다/ 산심야심 객수심(客愁心)은/ 나를 두고 이름일세.//
다만 한 칠 지내재도/ 쌀이 없어 수심이요/ 안동까지 가자하니/ 언제 가나 수심 일다/ 몸이 부은 저 산모(産母)를/ 살려내기 수심(愁心)이요/ 육칠 명의 우리 가족/ 아귀 될까 수심(愁心)일다/ 여보시오 마누라야/ 걱정망심 너무 말고/ 아무쪼록 어찌나마/ 살아나면 장땡일세/ 수심(愁心) 극정(極情) 하다 보니/ 동방(東方) 기백(旣白) 날이 새고/ 제간전촌(第看前村) 양삼가(兩三家)에/ 조반 짓는 연기로다.//
동산위에 뜨는 햇님/ 유정하기 짝이 없다/ 어제 보고 오늘 봐도/ 언제라도 햇빛이요/ 지난밤의 고생사를/ 낱낱이 위로 한다/ 얼음 깨고 물을 길러/ 조반 한 술 지어 먹고/ 아해들을 앞에 놓고/ 순순히 이른 말이/ 너의 어멈 순산하고/ 안 먹으면 죽을 테니/ 너희 오늘 왕릉 가서/ 이것 저것 사서 오되/ 돈이 전부 이뿐이니/ 시킨대로 사 오너라/ 쌀을 닷되 사고 나서/ 미역이랑 두 오리요/ 석유기름 두 홉 사고/ 들기름은 한 홉이라/ 간장일랑 오합사고/ 두 세마리 명태사서/ 속속히 다녀와야/ 너의 모친 살리겠다/ 왕릉이 몇리라오/ 오십리 길이란다/ 만약에 더디다가/ 날 저물면 큰일이다.//
아들놈은 십 오세요/ 맏딸 년이 십 일세라/ 가고 오는 백여 리에/ 어린 남매 보내 놓고/ 돌아오기 바랄 적에/ 일각이 여삼추(如三秋)라/ 사람 사는 생필품에/ 식량이 제일이라/ 모든 물자 극난이나/ 나무하나 풍족하다/ 산에 올라 나무 해다/ 방 뜨시게 불 때 놓고/ 해는 저서 석양인대/ 아들 오는 마중차로/ 동구 밖을 나서보니/ 온 동리가 술렁 술렁.//
피란민들 다 떠나고/ 동리사람 다 떠난다/ 무삼일이 또 생겼나/ 가는 내역 물어보니/ 멀지 않는 관평동에/ 수 천 명의 적이 와서/ 어제 저녁 거기 자고/ 오늘 저녁 여기 온다/ 안 들르면 그만이지/ 좌이대사(坐而待死) 할 수 있나/ 생명하나 중하다고/ 사람사람 다 떠난다.//
기다리고 애가 탈 제/ 어린 남매 돌아 온다/ 하마 벌써 다녀오나/ 기특하고 기특하다/ 다리 아파 어찌 오며/ 손 시럽지 아니 하냐/ 손길 잡고 돌아와서/ 얼른 뚝딱 밥을 지어/ 저녁식사 마친 후에/ 아해들이 하는 말이/ 동리사람 다 가는데/ 우리들만 안 나가고/ 오늘 밤 이곳에서/ 난리 만나 죽을 테니/ 어서 가자 울음 운다/ 이 애들아 말 들어라/ 죽는대도 할 수 없지/ 순산하신 너의 모친/ 침침 칠야 이 밤중에/ 한 걸음을 어찌 가나/ 오늘 밤을 지낸 후에/ 내일 일찍 떠나가자/ 아해들을 달래어서/ 이불 덥혀 눕힌 후에/ 일촌 간장 좁은 곳에/ 만곡수를 넣어두고/ 지우나니 한 숨이요/ 태우나니 창자로다.//
침불안석 잠 못자고/ 전전반측(輾轉反側) 구를 적에/ 난데없는 군화소리/ 지축을 울리더니/ 문 펄쩍 여는 곳에/ 불문곡직 들어서며/ 우리는 산객(山客)이라/ 식량 달라 하는구나/ 그 사람을 살펴보니/ 완전무장 하였구나/ 수류탄은 허리 차고/ 권총일랑 손에 들고/ 따바리총 장총일랑/ 양어깨에 메였으니/ 한 번 봄에 기절되고/ 두 번 바로 볼 수 없다.//
정신을 수습하고/ 간신히 입을 열어/ 여보시오 군인양반/ 우리 사정 들어 보소/ 피란 가는 도중에서/ 임산부가 해산하고/ 산미 몇 되 있는 것을/ 차마 어찌 줄 수 있소/ 저 군인 거동 보소/ 쌀자루를 당기면서/ 당시 사정 그러하나/ 내 사정도 딱하다고/ 얌치없는 저 사람이/ 자루째로 뺏어간다/ 총칼이 무섭거든/ 누구라고 반항하리/ 인생출세 만년에/ 이런 고생 또 있던가/ 옛날 예적 진시황은/ 만권시서(萬卷詩書) 불사를 제/ 쓸고자 살생(殺生)자는/ 억지하여 살렸던가/ 오늘날에 생각하니/ 날과 백년 원수로다/ 그럭저럭 날이 새니/ 섣달이라 이십오일/ 해산한지 삼일만에/ 왕릉으로 내려갈 제/ 신생아 핏덩이는/ 십 일세가 업고 가고/ 마누라의 걷는 걸음/ 심봉사의 거동이요.//
팔세 짜리 오세 짜리/ 제 풀대로 걸어갈 제/ 연 노상(路上)에 보는 사람/ 누가 아니 처량하리/ 세상천지 대전란에/ 환장한 저 사람들/ 늙은 부모 어린 처자/ 헌신 같이 버리는데/ 출생삼일 핏덩이야/ 말할 것이 무엇이냐/ 그러나 생각하니/ 그도 또한 인생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무섭구나/ 버리지 않더라도/ 자연으로 죽을 터라/ 오리가다 헤쳐 보고/ 십리가다 헤쳐 봐도/ 허허 이런 민주 보소/ 그 것도 인간이라/ 아직도 죽지 않고/ 눈만 깜짝 하는구나.//
안동김씨 삼십대 손 등암공파 김우연
(끝).
내성의 맥(제28집) 2012.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