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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우리는 이 년간 만났다. 우리는 그때마다 뜨거웠다. 나는 섹스가 끝나고 그녀의 음부를 만지며 참들던 그 순간의 행복을 내 삶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다. 교포 사회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내가 끝낸 장편을 출판사에 넘기고 런던으로 건너가려 할 때쯤이었다. 나는 그때 탈북 여성의 노마드적인 삶을 소재로 새로운 장편을 구상중이었다. 그녀들의 런던 생활을 알아볼 요량으로 알음알음 취재를 할 요량이었다. 런던으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날아온 뉴스가 특파원 친구에 의해 전해졌다. 대사가 본국으로 송환될 것이며 정보부의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전언이었다. 그녀의 운명의 소용돌이가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내가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 그녀는 이미 파리에 없었다.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파리에서 쓴 장편은 대박을 냈다. 백만 부를 찍을 무렵 출판사 사장이 찾아와 장기 계약을 요구했고 나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내 의식 바같의 큰 액수를 요구했다. 선뜻 받아들이는 사장을 보고 나는 내 위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나는 돈도 벌었다. 런던과 파리에 작업실을 장만했고 오가며 글을 썼다. 일 주일에 한 번 꼴로 기자들이 한국에서 나를 찾아왔다.ㅇ나는ㅁ그들을 마나주지 않았다. 신비주의의 상술이라는 악의적인 비판이 돌기도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선영을 다시 만난 건 상해에서 였다. 우리는 사십 대 중반이었다. 그녀는 그때까지 예뻤다. 나이를 피하지 못한 얕은 주름 몇 가닥을 빼곤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상해에서 그녀는 커다란 보석 가게를 가진 재력가의 남자가 되었다.
ㅡ축하해! 문학소년. 책 잘 팔린다고? 큰 상도 타고ㅡ
ㅡ피노키오, 이번엔 또 무슨 가면을 썼지? 그러다 코만 남겠어. 넌 이제 더 이상 예쁘지 않아. 정신차리라구ㅡ
ㅡ나쁜 놈. 넌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ㅡ
남자가 정보부의 고위 간부 출신이라는 것과 상해 일대를 주름잡는 폭력조직의 대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어떤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선영에게 마지막 프로포즈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둘이 살자고 했다. 선영은 거절했다.
ㅡ너는 나를 몰라. 나한테는 살이 끼었어.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그게 뭔지는 나도 몰라. 나는 내 몸 속에 그 피가 흐르는 것을 느껴. 문학소년, 넌 내게 나쁜 놈이기도 하지만 착한 소년이기도 해. 난 너와 함께 했던 그 어린 시절이 행복했어. 네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내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한 명분이기도 해. 내가 너를 받아들이면 너도 불행해. 그게 네 청혼을 바당들일 수 없는 이유야.-
섬득한 비의감이 느껴졌다. 정말 우리는 안 되는 것일까.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 먹고 있는 실체가 무엇일까. 선영은 종래 결과가 뻔한 삶을 살다가 비극적 생을 마감할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영의 곁을 떠났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십 년이 흘러갔다. 나는 오십 대 중반이 되었다.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청춘이지 않았고, 얼굴의 선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때 나마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외모에 대한 호감은 흐트러지는 치열과 흘러내리는 턱선, 쳐진 볼, 잔 주름으로 더이상 볼 게 없었다. 선영이 좋아했다던 볼 속의 옅은 보조개마저 함몰된 지 오래였다. 그 동안 나는 두 번 연애를 했다. 골수 팬임을 자처하는 사십대 미망인이 한 명 이었고, 두 살 아래의 이혼녀가 또 하나였다. 작가와 펜은 그저 책으로만 통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헤어졌고, 이혼녀와는 실제로 결혼을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그녀는 내 작품 인세의 상속권을 요구 조건으로 걸었다. 그녀는 영리했다. 나는 이런 결혼이 선영과 함께하지 못하는 지난 인생과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해 보았다.
다시 혼자가 되었고,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선영이 보고팠다.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작가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이곳 저곳 강연을 나가고 문예 창작 교실을 두어군데 맡으면서 생활을 꾸려 나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도 시골마을에 가지 않았다. 나에게 마을은 유년기를 보낸 정서속의 오지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묘지가 크케 훼손되었다는 삼촌의 연락을 받고 오년 만에 마을을 찾아갔다.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어린 시절 보아왔던 풍경들이 조금 축소 되었다는 느낌만 들뿐 전체적으로 고요했다. 선영의 교회는 없어졌고 그 자리에 최신식으로 지어진 요양보호시설이 눈에 띄었다.
건너 마을에 장로교 교회가 크게 지어졌고, 고만고만한 교회가 몇 개 있었다. 멧돼지가 훼손한 산소를 고치고 인부들과 막결리를 마시는데 귀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지리 영감 목사말여. 옛날 목사님 딸을 찾는다는 데 혹시 그 처자 소식좀 아우? 옛날에 친했잔어-
-어르신도, 그게 언젠데요? 말 그대로 옛날 얘기일뿐이에요-
-그기 무신 목사가? 만날 술에 쩔어 눈이 벌게 가지고 사람들 눈도 제대로 못 보는 놈이. 신도도 하나도 없고, 교회라고 무슨 폐품 수리점 같고-
-그래도 새벽 마다 하늘보고 두 시간씩 기도는 한가카드라. 그 마을 사람들이 다 본거고-
나는 선영의 삶과 어떤 커다란 연결고리가 숨어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무슨 이유로 인생 말년에 이런 오지로 흘러들어 선영을 찾고 있는 것일까. 선영을 찾아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그는 내가 교회 안으로 들어서는 줄도 모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교회는 음산했고, 신산스러웠다. 나는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서서 계시면 주님께 예의가 아니지요. 우리 주님은 누구나 다 보고 계십니다-
그는 내가 들어오던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선영을 왜 찾습니까? 어떤 관계인지 말할 수 있습니까?-
-찾기는... 만나기로 이미 예비된 일을 말했을 뿐. 여기 사람들이 오바 한 겁니다-
-그녀 소식을 알기나 해요? 십 년전까지는 왕래가 있었지만 지금은 나도 몰라요-
-나는 평생 그녀를 기다렸소. 주님만 허락해 주신다면 여기서 죽을때까지 그 애를 기다릴 거요-
말끝에서 나는 그와 선영간에 뗄 수 없는 숙명적인 연이 숨어있을 것 같은 암시를 강하게 느꼈다.
-당신은 지금 목사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선영의 삶에 어떤 식이든 가해자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맞습니까?-
-허... 허! 가해자... 그럴 수도 있겠군요. 듣고보니.... -
-그 옛날 교회를 덮친 그악무도한 폭도들 일행이셨군요?-
나는 예감을 확신하고 한 발 더 나아갔다.
-아니지도, 그렇지도 않은..... 그래요, 나는 당신과 선영이 목숨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이가 될 거라는 걸 미리 알았소. 선영의 눈에 세상에 완전한 단 한사람의 인간으로 보였을테니까.....-
얘기가 너무 길어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교회를 덮친 폭도들이 아니었고, 마랗자면 폭도들을 불러들린 신학도였다. 박정희가 군부를 틀어쥐ㅣ고 한 걸음씩 권력을 탈취해 나갈때, 신학생들의 데모가 있었고, 전국 교회로 파급될 무렵 그에대한 지명 수배가 내려졌다. 급히 몸을 피한 게 선영의 부모가 전도사로 있었던 원주의 한 교회였다. 불행의 전조였다. 그는 정의로왔지만 정욕을 이기지 못했다. 선영의 엄마는 그의 사랑이었던 거였다. 그는 모든 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의 정욕에서 이기지 못했다. 정보부 사내들이 들이 닥쳤을때, 그는 예수 십자가 상 뒤에 숨어 있었다. 그 날, 순순히 잡혀갔었더라면 선영의 비극적 출생은 없었을 터였다. 모든 것을 하니님의 뜻으로 돌렸지만 선영의 인생에 대해서만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평생 죄와 회개의 굴레에서 고민했다. 비극적 패악의 시작이 자신이므로 선영의 인생은 내가 시작한 것이다. 선영은 그 희생자일 뿐이었다. 그는 선영을 그가 낳은 자식으로 생각했다.
목사는 언젠가 한 번은 선영이 나를 찾아올 거라는 언질을 주었다. 그의 예언이 아니라도 나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늦 가을 밤, 일교차가 심해 아침 밤의 기온이 영하를 오르 내리는 제법 쌀쌀한 십일 월 초였다. 출판사 직원들과 인사동 여자만에서 여자들만을 안주로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주차장 셔터문 앞에 웅크려 앉은 작을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그것은 외부 차량의 금지를 알리는 구조물에 헌 옷가지를 덮은 것처럼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물체가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사람임을 직감했다. 늙은 목사의 예언이 머리를 스쳤다.
선영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얼굴은 코만 남아 있었고, 몸은 수수깡처럼 말라 있었다. 그녀를 안아 집으로 들어갔다. 몸무게는 삼십 키로를 겨우 넘을 것 같았다. 옷을 입힌 채 그대로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집의 온도를 최대한 높였고, 불은 켜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려 불을 켤 생각이었다. 그녀의 가는 숨소리를 들으며 침대 밑에 누웠다. 내 나이 쉰 다섯. 우리는 다시 만났다. 역시 그녀가 불쑥 나를 찾아왔고 나는 관성처럼 받아들였다. 날이 밝는대로 병원을 찾을 생각이다. 그녀는 필히 중병에 걸린 게 틀림없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몇 해전 자궁을 들어낸 수술력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 그곳에 염증이 생겨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고, 이미 본인은 생명에 미련이 없을 것이므로 조용히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고 충고했다. 나는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의료비의 최대 액수를 제시했다. 오직 단 하나의 가능성을 위해 힘을 써보자고 했다. 의사는 이곳 저곳에 전화를 넣어본 후, 최종 결정을 했다. 국내에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인공 자궁을 이식하자는 얘기였다. 내가 그들의 말을 이해할 리 없었으나 나는 그들의 최대 옹호자가 되어 적극 매달렸다. 물론 죽어도 어떤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채. 선영이 자궁을 들어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군대시절, 나를 찾이왔던 즈음 처음이었고, 그녀는 잉태를 할 수 없는 여자로 평생을 산 거였다. 중국에서의 남자는 선영의 모든 것을 알고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매일 밤, 서너 명의 남자들을 끌어들여 집단 섹스판을 벌였고,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관음증 환자였다. 소금과 알칼리를 섞은 액체를 자궁 속에 부은 채 말초적 쾌락을 즐기기도 했다. 그녀는 철저히 버려졌다. 자궁을 들어낸 후, 그녀는 병원을 탈출해 한국 어선을 탄 거였다.
기적적으로 그녀는 살아났다.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수술은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다. 다시 살아난 건 성공이었고, 그게 얼마간 목숨의 연장이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의사는 한 달을 못 넘길 거라고 말했다. 아침 햇살이 병실에 스며들 때, 한번씩 선영에게 옛 모습이 약간 되살아났다. 의사가 말한 한 달을 넘기고 일 주일 째였다. 밤 새 혼수 상태에 빠졌다. 나는 마지막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햇볕을 받으며 의식을 되찾았다.
-나쁜 놈, 아직도 날 사랑하니?-
-이젠 끝났어. 더 이상 네 운명을 자학하지 마-
-사랑하냐고? 아직도 내가 예쁘냐고? 너한텐 내가 아직도 하얀 피부를 가진 단발머리 소녀냐고?-
그녀는 울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도닥였다.
선영은 더 이상 예쁘지도 청순하지도 않았다. 오직 오똑 솟은 코가 그녀의 옛 얼굴을 말하고 있을뿐이었다. 코 밑으로 깊게 패인 주름과 늘어진 목젖, 솟은 눈두덩 우묵한 볼 따위가 그랬다. 나도 그녀에게 그렇게 보일까? 우리는 푸르렇던 그 세월을 어디에서 보내고 이렇게 늙어 폐물이 된 채 마주 하고 있는 것일까.
-나, 지금도 널 사랑해. 이젠 정말 내 곁을 떠나지 마-
-그렇지. 역시 소설가 답군. 이런 게 완성도라는 거 맞지? 네가 말한 사랑이라는 거. 이렇게 추한 모습까지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인 거지. 소설 그만 쓰고 이젠 나를 버려. 나를 경멸하라구-
-너는 사랑이 뭔지 몰라. 너는 잘못 태어난 시대적 비극이야. 자학으로 그게 소멸되지는 않아. 사랑은 모든 원인과 결과를 다 포용하는 거야. 사랑해! 윤선영-
-.......-
-내말 들어? 아직도 널 사랑한다고-
-우리가 진짜 사랑했을까? 넌 내 어떤 이미지만을 사랑했던 게 아니고. 이제 알았어. 네가 나를 진짜 사랑했다는 거. 착한 소년이야 넌. 이제 네 사랑을 받아줄 게. 나도 너를 사...랑...해. 이제 곧 만나겠지.....그때 만.....나자고-
선영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시골의 늙은 목사 얘기를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네 아픔을 송두리째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장지를 알아보기위해 시골 마을에 전화를 넣었다. 나는 또 하나의 우연을 보았다. 선영이 죽던 날, 목사도 세상을 뜬 거였다.목사는 선영이 오면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도 남겼다고 했다. 무연고 선영의 사체는 내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선영의 연고를 증명했다. 선영은 목사의 무덤 아래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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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용량이 달려 요만큼만. 계속 쓰겠음
사랑의 기원 잘읽고 갑니다 인생의 삶을 해보지 못한 삶을 대변해서 얻을수 있는것이 또하나의 작품 소설이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친구여 화이팅!☆☆☆
그려. 소설이라고 불러줘서 고맙네. 스토리는 모방했지만 문장은 백퍼센트 내 거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