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한 남편 때문에 협의 이혼을 신청하고 숙려기간 중 상담을 신청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그 당시 외도한 남편을 한 번 용서하였다고 하였다. 한 번 눈감아 주기로 한 이유는 남편이 상간녀와 헤어졌다고 하였으며 다시는 외도하지 않겠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이 상간녀와 헤어졌다 믿었고 두 번 다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3, 4년이 흐른 어느 날 남편의 외도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더 이상 이 남자와 살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차라리 상간녀가 그 당시의 상간녀가 아니었다면 이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때의 상간녀가 지금의 상간녀 동일 인물이라는 것에 아내는 크나 큰 배신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협의이혼을 요구하였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아내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아빠 엄마가 왜 이혼하였는지 당당하게 이야기하여 줄 것이라 하였다. 그 때 “그래도 엄마는 이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상담은 받는 것이라 하였다.
너무나 담담한 아내와 상반되게 위축되어있는 남편 모습의 이미지는 내게는 강렬하였다.
아내에게 물었다. “남편분과 사는 동안 남편에게 가장 고마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내가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짧고 굵게 한마디 하였다. “무관심요.”
아내에게 다시 물었다. “남편분과 사는 동안 남편으로부터 가장 힘든 것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아내는 다시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이러니하게도 대답은 한가지였다. “무관심요.”
“남편에게 고마운 것도, 남편에게 서운하고 섭섭해서 힘들었던 것도 남편의 무관심일까요?”라고 재차 묻게 되었다. 아내는 두말할 필요 없다는 듯이 “네. 무관심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부부관계이다. 부부관계를 단 적으로 보여준 하나의 사례라고 하겠다.
이렇게 부부관계는 아이러니하고 두 부부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부부관계이다.
우리는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보따리 하나씩은 가지고 이성을 만나 로맨틱 단계를 거친 후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부부는 각자 가지고 온 보따리를 펼쳐 보이며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그것을 배우자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무의식적 욕구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서로 각자가 자기 보따리를 펼쳐 보이며 “나에게 당신이 맞춰”라고 하거나 “내가 당신에게 맞출게”로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부부관계라는 것이 내가 배우자에게 맞춘다고 해서 때로는 배우자가 나에게 맞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문제라면 왜 그 속을 아무도 모른다고 하겠는가?
우리는 어린 시절 양육 과정에서 받아보지 못했던 그것. 상대 배우자에게 그토록 원했던 그것.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것이건만 그것이 자신에게로 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밀어낸다.
왜?
그토록 원했었고 받고자 했던 그것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받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분명 위 사례의 아내는 남편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다. 부모에게서 한 번도 받지 못했던 그 관심과 사랑을 배우자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아내는 한 번도 양육자였던 부모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 받는지? 받는다면 어떻게 받고, 어떻게 주는지 도저히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결혼 생활에서 남편이 주는 관심과 사랑이 불편했다. 불편한 것이 오게 되니 불편한 것을 무의식적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에 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사는 동안 남편에게 가장 고마웠던 것이 “무관심”이었고, 그 “무관심”이 남편에게서 받았던 가장 힘든 것이 되었던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말이 되는 것이고 자신의 무의식적 역동을 정말 잘 알아차린 아내의 사례였다. 이렇듯 우리는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것이 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밀어내고 있다. 받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인가?
자, 그렇다고 한다면 언제까지 분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가슴 아파만 할 것인가?
이제 이런 역동을 알았다면, 그래서 나의 미해결 과제를 알아차렸다면 배우자로부터 그것이 올 때 밀어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의식적, 의도적으로 반갑게 내 것으로 맞이하여 소화하는 경험 하여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관심이었다면, 사랑이었다면, 인정이었다면, 자유였다면, 허용이었다면 그것이 배우자를 통하여 받게 될 때 있는 그대로 받아야 할 것이다. 밀어내지 말고 내 것으로 받아 내 안에서 경험되어지게 하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고마웠던 게 관심이었고, 힘들었던 게 무관심이었다.”고 말은 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