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준비가 됐습니까(you wanna get crazy)”라는 프레드 머큐리의 말에 모두 “네”라고 대답한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스틱을 던지자 손에 들고 있던 야광봉을 따라 던지는 관객들. 마치 캐나다 몬트리올을 뒤흔들었던 퀸의 최고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듯, 라이브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기획된 이틀 동안의 공연에 일찌감치 채워진 1만 8000석의 관객이라도 된 듯, 타임머신을 타고 81년 몬트리올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다. 극장에서 맘껏 소리치고 때론 미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이곳은, 서울 사당동의 극장 ‘씨너스 이수’다.극장이 콘서트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일까. 동네 중소형 극장이 대형 멀티플렉스를 제치고 국내 최초로 라이브 공연 실황을 개봉했다. 씨네 라이브라는 생소한 장르의 영화 <퀸 락 몬트리올>은 전율 그 자체다. 실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관객은 스크린 속 락 그룹 퀸을 향해 야광봉을 흔들며 환호성을 지른다. 이곳이 극장인지 까먹은 것이다. 객석에서 일어나 스크린을 향해 달려가려는 관객도 있다. 나 , , , 등 퀸의 최고 레퍼토리가 오감을 자극하는 95분 동안 스크린은 폭발적인 무대나 다름없다.
동네 극장의 조용한 반란, 영화관에서 디지털 씨네 콘서트로 관객과 스크린이 하나가 되는 소통의 시간을 만든 이는 누굴까. 그는 개별 극장들의 연합체인 씨너스 그룹에서 씨너스 이채(경기도 파주), 씨너스 이수, 남산자동차극장을 운영하는 엣나인의 정상진 대표(41)다.
<엣나인 씨네 라이브>란 이름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퀸 락 몬트리올>은 국내에서 개봉한지 3주째다. 씨너스 이수를 비롯해 이채, 센트럴, 분당 그리고 KT&G에서 운영하는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개봉할 당시만 해도 공연실황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은 실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금새 깨졌다. 입소문을 타고 1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씨너스 이수에서 처음 개봉했던 독립영화 <워낭소리> 때와 비슷한 공식을 따르는 셈이다. CGV강변을 비롯한 3개관과 씨너스 대전, 씨너스 광주 등 지방 극장까지 서서히 확대 상영이 결정됐다.
“<퀸 락 몬트리올>은 중 장년층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요. 퀸을 좋아했던 40, 50대와 락 음악에 열광하는 20, 30대가 객석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죠.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함께 열광할 수 있어 여름방학인 요즘 가족끼리 오는 분들도 많으세요. 처음엔 50, 60대 분들이 야광봉을 손에 드는 게 쑥스러운지 어색해 하셨지만 극장을 나올 땐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채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죠. 그럴 때 참, 뿌듯하답니다.”
정상진 대표도 <퀸 락 몬트리올>만큼은 매번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한번도 앉아서 본적이 없다. 계단 끝에 서거나 영사실에서 관객반응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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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공연 스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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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는 작년 <엣나인 사운드 필름페스티벌>에서 개봉할 생각이었어요. 2007년에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에서 개봉 당시 연일 화제가 됐던 공연이거든요. 영화를 본 순간 ‘바로 이거다!”란 생각을 했어요. 씨너스 이채와 이수가 갖춘 음향장비와 환상의 짝궁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죠.”
하지만 개봉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우여곡절의 원인은 바로 입장료 문제였다. <퀸 락 몬트리올>의 아시아 판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입장료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정 대표는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라이브 공연실황에 보통 공연장처럼 3만원, 5만원의 돈을 내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을 품었다.
그는 1만원이란 돈으로 타협을 봤다. 수입, 배급, 상영에 성공하고 기획, 홍보까지 담당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극장에서 얻은 모든 수익을 포기하겠다는 좀 ‘무모한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그만큼 절실했다. 국내 팬들에게 퀸의 콘서트 실황중계를 소리가 온몸을 휘감고 도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엣나인(AT9) 인증을 받은 극장에서 체험하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엣나인은 ‘극장에 가장 적합한 최상의 음향과 화질을 구현한다는 의미를 담은 음향설비’로 그가 여러 실험을 거쳐 자체 제작한 브랜드 인증마크다.
자신이 운영하는 씨너스 이수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의 씨너스 이채뿐 아니라 씨너스 분당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안의 모모하우스 등은 ‘소리가 좋은 영화관’, ‘귀로 느끼는 영화관’ 등으로 입소문이 나 있는 곳들이다.
일반 극장의 음향 출력이 8,000W라면 씨너스 이수의 경우 1만 9,200W, 씨너스 이채나 분당도 1만 5,000W를 자랑한다. 온몸으로 느끼는 입체음향에 구토증세를 느꼈다는 예민한 관객도 있지만 ‘블록버스트를 보려면 씨너스 이수로 가야 한다’는 리뷰가 종종 인터넷에 올라오곤 한다.
“사람들은 저에게 종종 소리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죠. 손해를 보면서까지 음향시스템에 번 돈을 쏟아 부으니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국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한번도 만족스럽게 본적이 없어요. 게다가 한국영화를 보면서 자막을 입혀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발음이 안 들릴 때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죠.”
그는 ‘소리가 다른 영화관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고 경기도 파주에 씨너스 1호점 이채를 짓기 시작했다. 남산자동차극장에서 번 자금을 파주 씨너스 이채에 투자한 셈이다. 2004년 그의 바람대로 국내에서 최초로 ‘소리가 다른 영화관’이 탄생했지만 2년 동안 고생한 이야기는 밤을 새도 모자랄 정도다.
“지금은 파주까지 가는 교통편이 발달했지만 당시 허허벌판인 파주에 직원들 출퇴근시키기 위해 대형1종 면허를 따고 셔틀버스를 한대 샀어요. 자동차극장에서 폼 나게 돈 벌고 밤에는 셔틀버스 운전기사로 직원들을 실어 날랐죠.(웃음) 지금은 파주신도시가 생기고 헤이리 등 예술마을이 관광단지가 되어 데이트 코스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숨통이 트였지만 아직도 적자는 면치 못하고 있네요.”
극장이 콘서트장을 대체하는 ‘씨네 라이브’라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앰프와 스피커를 하이엔드급으로 장착해 음향 출력 규모에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가라면 서운해 할 정 대표는 중소형 극장 운영자로서 자기만의 콘텐츠 개발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가 운영하는 극장이 영화감독 등 창작자가 표현하고 싶은 소리를 가장 리얼하게 구현해내는 극장이란 평을 받는 건 그 때문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영화연출을 전공한 극장주인 정상진 대표. 그는 중앙대학교 모교 후배들의 졸업 작품전을 씨너스 이수에서 상영할 기회를 주고 있다. 벌써 2년째다. 미래 영화감독이 될 후배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를 하는 셈이다.
그와 대화하는 사이 그는 마치 손해나 실패를 뻔히 알면서 도전하는 용맹함을 지닌 돈키호테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핑퐁게임이예요.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죠. 두려움은 없어요. 디지털 시대 극장의 승부는 화질보다 사운드예요. ‘영화는 반드시 제대로 된 음향설비를 갖춘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다’라는 공식을 제가 만들 겁니다.”
정상진 대표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돈키호테형 철부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최소한 우리는 극장에서 <퀸 락 몬트리올> 같은 상상도 못한 씨네 라이브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올 여름 휴가를 못간 사람들에게 <퀸 락 몬트리올>에 빠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보다 뜨거운 열기로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라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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