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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해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ds5 gzj
종주 첫날 (11월 7일 입동)
명지 지맥 종주를 마친지 열흘이 지났다. 앞으로 날씨가 추워질 거라는 예보도 있고 어차피 시작했던 수도지맥 종주도 마쳐야 하겠기에 어제저녁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일찍 잠을 잘려고 누웠으나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언제나 처름 설레이는 마음을 억누르며 겨우 한숨 자고나니 새벽 3시다. 집사람을 깨워 빨리 간다곤 했지만 차를 타고 출발하니 3시 30분 합천읍을 지나는데 어떻게나 잠이 오는지 한쪽 길가에서 20여분 잤다. 묘산면 사무소에 도착하니 6시 40분, 앞 슈퍼마켇 아저씨가 차를(1톤 덤프)타기에 사정을 얘기하니 오도산까지 태워 주겠단다. 지난번 종주때 잘못 내려온 구간을 그냥 지나칠려니 아무래도 나 자신을 속이는것 같고 잘못 달아놓은 시그널 때문에 그냥 지나칠수 없어 싸리재까지 재 종주를 하기위해 오도산(1133.7m)까지 20.000 원 주고 문명의 이기를 이용했다.
6.25사변 직후 이곳 오도산에서 호랑이 숫놈을 잡아 동물원에 보냈는데 밤마다 암놈이 마을 주변을 돌아 다니며 울부짓는 소리를 들었다며 결국 호랑이를 잡은 그 집안은 흔적도 없이 몰락했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함께하며 7시 30분 오도산 부터 재 산행을 시작햇다. 바람이 세게불며 귀가 시리고 상당히 춥다. 그러나 지난번 달아 놓은 나의 시그널만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우측의 미녀산(930m)과 숙성산(898.9m)이 있는 유명한 산줄기 사이엔 소나무와 참나무등 천연림이 울창한 숲과 맑고 깨끗한 물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자연 휴양림으로 다양한 식생물이 분포되어 있어 청소년들의 자연학습과 가족단위 숲속 여행지로 적합한곳이며 숲속의집 수련관과 야생테크를 갖춘 오도산 자연 휴양림이 있는 삼거리 안부에서 많이달린 시그널을 뒤로하고 희미한 흔적을 따라 다음 봉우리를 향해 오르니 지난번 잘못갔던 무덤에 도착 방향표시 시그널을 회수하고 직진해서 운행했다.
오도산 KT 부산 통신망 중계소(무인 시스템)서쪽으로 내려 섰다가 다시 솟구쳐 오르면 보이는 미녀봉은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이다. 88 올림픽 가조 IC 에서 바라본 미녀봉은 감탄스러울 정도지만 이곳 반대 방향에서도 충분히 그 감상을 느낄수 있었다. 잘 다듬어진 이마, 세련된 눈썹, 오똑한 코, 힘겨워 살짝 벌리고 있는 입하며 봉곳이 솟아있는 젖가슴과 아이를 밴듯한 볼록한 배 하며 여러 산 봉우리들이 모여 만든 아름답고 고운 여인상은 사나이 마음을 흔들기라도 하는 요염한 자세 바로 그것이었다. 오도산으로 다리를 쭉 뻗고 숙성산을 향해 긴 머리를 흘러내리고 누워있는 모습은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는데다 지명 또한 신기하다.그 아래 마을엔 양기 마을이 있는가하면 음기마을도 있다.우리 남해에도 이와 비슷한 여인상을 볼수있는데 삼동 영지쪽에서 바라본 납산도 누워있는 여인상이다.
휴양림에서 내려가는 지곡천과 왼쪽의 묘산천을 양쪽에끼고 쭉 내려 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지난번에 묘산천으로 빠졌는지 모르겠다.조심한다고 하면서도 어느듯 앞뒤 진행할수도 없는 수렁에서 헤메고 있을땐 정말 황당하고 아찔하기도 하였다.그래서 싸리터재에 내려와서 이 구간을 포기 할려고 했으나 마음을 고쳐먹었다.할려면 제대로 해야지 하면서 오늘 재 종주를 하는데 약은 재탕이 더 잘 듣는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했다.9시 30분 묵은 돌탑이있는 조그마한 봉우리에 도착했으며 52분엔 삼각점을 확인하고 (합천 437 1981 재설) 왼쪽 석산 (동양산업)에선 돌깨는 파열음이 상당히 시끄럽다. 소나무에 붉은 페인트칠한 흔적을 따라 가게 된다. 그런데 이 산속에 왠 종이박스가 두개나 있길래 들춰보니 탱자가 가득하다. 약간 궁금했지만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아무래도 길을 이탈한것 같아 다시 수정하는데 약30여분이 걸렸다. 숲에 가려 시야가 없으니 잘못하면 지능으로 빠지기 일쑤다. 드디어 11시 5분 24번 국도에 내려섰다. 지난번 종주때 점심을 먹었던 광산김씨 할아버지와 수원 백씨할머니 무덤에서 충분히 쉬었다 운행을 재개하는데 아예 길흔적이 없는 잡목과 가시등 넘어진 나무들이 진로를 방해한다. 뜻밖에 헬기장이 있다(39~119~4~18)정비는 잘되어 있었다. 12시 40분 점심을 먹고 2시 25분 또 헬기장(39~119~4~30)을 통과하여 듬성듬성 큰바위들이 있는 능선은 시야도 좋은 편이다. 솔밭길이라 길도 양호한 편이고 3시 35분 합천 309 1981 재설 삼각점은 있으나 시계청소는 안되어 있다. 5시 10분 마령재에 도착 내려오는 마지막 구간에서 1시간 가까이 길찾는다고 고생했다. 진양기맥 철마산을 지나 마당재 구간과 똑같은 지역이다. 결국 계곡으로 빠진듯한 이곳이 주능임을 확인한후 길찾는다고 왔다갔다하다 그 입구에 표지기를 못달고 내려온 것이 후답자에게 미안할 뿐이다. 지나는 봉고 승합차를 얻어 타니 묘산 읍사무소앞까지 간단다. 다행이다. 오늘 저녁 잠자리는 마령재 승강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사람이 다른 것은 준비하면서 하필이면 쌀을 안갖고 왔단다. 다행히 일찍 확인이 되어 이곳 수퍼에서 쌀도 사고 물도 충분히 받아서 승강장에 가니 어두웠다. 얼렁뚱땅 집을 지어 들어가니 훈훈하고 좋은데 차소리와 바람이 어떻게나 센지 텐트가 들썩 들썩한다. 그래도 두사람이 자리펴고 누우니 우리세상이다.
종주 이틀째(11월 8일)
바다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산은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는 얘기가 있듯이 자연이란 바다와 산을 두고 하는 말이며 산의 열기는 바다가 씻어주고 바다의 평온함은 산의 남성적 기질이 지배하는 것이라 하겠다. 지금도 나의 장비를 볼라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요즈음의 첨단 장비와 비교해 보면 내가 갖고 있는것은 얼굴도 내밀수없는 조잡스럽고 불편한것 뿐이다. 주5일근무제와 웰빙붐으로 인해 높아진 국민들의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과 건강산행 그리고 여성들의 괄목할 만한 일반 산행과 클라이밍등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지금 난 우리집사람에게 해준 장비는 너무 빈약하여 같이 다니긴 해도 약간의 죄의식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어제 저녁 초저녁 잠을 설친 관계로 늦잠을 잤다. 7시 5분 절개지를 힘들게 올라 20여분 운행하니 헬기장이다. (119~4~29)함석을 땅에 깔아 놓고 글을 썼는데 헬기의 이착륙시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며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지역을 가는데 딸기나무와 잡목구간이며 길의 흔적이 전혀 없다. 어제 저녁의 바람은 다 어데로 갔는지 오늘은 조용하다. 관기리와 소사리를 잇는 옛길을 건너 644m의 토곡산에서 삼각점을 찾을려고 이곳저곳 살폈지만 결국 못찾았다. 지도에는 표시가 분명한데 10시 15분 경북과 경남을 가르는 도계인 매화재에 진입 10분 정도 내려오니 경북 고령군 산주리에서 올라오는 산길이 뚜렷하고 리본들이 제법 붙어 있다. 10시 43분 만대산 (688m)에 도착 합천 24 1988 북구 삼각점옆에서 흐르는 땀을 식히고 정상 바로 옆엔 태양열 발전 시설이 있는데 뭐하는데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나온 비계산이 주먹을 불끈쥐고 있는것같고 오도산은 촛불을 켜 놓은 것같이 시설물이 햇빛에 반사되고 있다. 조금내려오니 무덤의 형태는 잘 알수 없으나 양천 최씨 산청군 금서면 앞면엔 양천 최씨지묘라고 100mm PVC관을 50cm정도 잘라 세우고 그 안엔 흙을 넣고 흰 페인트칠을 한뒤 조상들의 무덤을 표시해 놓고 돌보는 무덤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입석과 상석, 비석등을 잘해놓은 묘도 방치해 놓은게 참으로 많은데 그 자손들의 성의를 볼수 있는것 같았다. 11시 17분 대형 헬기장(39~119~4~33)을통과한다. 군에서 한 모양인데 내려갈때 페인트통은 갖고 가지 왜 여기다 버리고 갔을까 5개나 되는데 .... 헬기장에서 5분정도 내려오면 급경사로 우회전 해야 한다. 국제신문 시그날을 보고 그냥 무심코 내려가니 그들은 만대산에 왔다가 쌍림면 신촌리로 하산한것 같아 다시 빽하여 길을 찾았으나 숲이 짙으니 분간키 어려웠다. 다시 내려가며 오른쪽을 살피니 마루금이 살아있는것 같아 옆으로 치고 나가니 확실하다. 집사람은 그 자리에 기다리기로 하고 혼자서 빈몸으로 치고 오르니 지나간 지점을 알 수 있었다. 빽할때 여기까지 왔어도 알수 없는 급경사 지역이라 역주행이 아니면 찾기가 힘든 곳임을 알 수 있었고 잘못단 리본은 회수를 하고 오른쪽 방향으로 촘촘히 달아주며 안내 리본을 잘 달았기에 후답자는 나와 같은 고생은 안하리라 본다. 1시간 이상을 손해봤지만 잘 찾아 안내했기에 흐뭇하다. 노태산 (498m)에 1시 58분 도착해 삼각점을 찾았으나 이곳에도 없었다. 2시 10분 오래된 좁은 임도를 만났으나 곧 헤어지고 잔소나무밭을 헤치고 가야하는데 생존경쟁에 밀린 죽은 소나무가 괜히 나에게 화풀이 할려고 가는길을 가로막거나 나의 몸을 공격할려고 한다. 습기 가득한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계속 헤치다 보니 따뜻한 가을 햇볕 한조각이 그리울 뿐이다. 땀으로 얼룩진 얼굴이 금새 차가운 한기로 변한다. 합천 307 1981 재설 기점이 있는 월미재에 도착 33번 국도 확장 터널 공사장 장비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4시 10분 지렛재에 도착 합천 읍으로 가서 군내 버스로 마령재로 가는 차안에서 집사람은 태양초 고추를 흥정하며 사기도 했다. 검둥이를 회수해 지렛재 소공원으로 와서 급히 텐트를 하니 7시 30분이다. 나는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여김없는 어둠이 내리는 것이다. 체력과 시간만 허락한다면 지맥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산도 전부 가보고 싶어지는데 어디 세상살이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낙엽을 방구들로 삼고 하늘을 이불삼아 맨몸으로 하루밤의 생명을 해결하는 비박보다는 달빛과 별빛이 비치는 텐트라도 옆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누우니 이 얼마나 행복한 하루인가. 어제 저녁보다는 소음도 적고 바람도 안불어 좋으나 어두울때 자리를 잡아 땅이 고르지 못한게 흠이라면 흠이다.
종주 삼일째(11월 9일)
6시 20분 출발했다. 어둑 어둑하니 좀 이상하다. 길도 없는 산속을 마루금만 찾아서 간다. 마침내 솟아 오른 햇빛이 텁텁한 산봉우리위에 금빛을 뿌리며 지나가고 있다. 용비늘같은 붉은 갑옷을 입은 노장 소나무가 위엄을 갖추고 산꾼을 맞이한다. 인적이 보이지 않는 청산은 신령스런 산기운이 가득하고 속세의 인간은 감히 근접하기 힘든 그런 위엄을 갖고 있는 노송은 천년 만년을 지켜온 이 산의 터줒대감일것이다. 한그루의 나무이지만 엄숙하게 묵례를 하고 지나는 우리 산꾼의 마음은 평화롭기만 하다. 헬기장에 도착하니 칡넝쿨, 앵감나무등 종주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연이어 헬기장이 세군데나 있고 공원같이 단풍나무및 조경수도 많고 아스콘 포장길이 쭈욱 되어있는게 이상하다 했는데 나중 알고 보니 전직 대통령 부모님을 모신 선산이란다. 이곳은 지명상 큰재이다. 7시 10분 산불 감시 초소에 도착 (385m)만대산, 노태산이 바로 앞에 있고 그 뒤 약간 우측으로 비계산이 쫑긋하고 그 뒤의 의상봉도 보인다. 시리봉(480m)은 암산이다. 세미클라이밍해서 올라보니 전망이 아주 좋다. 7시 31분 가야산의 위용이 주변을 압도한다. 8시 5분 장등재에 도착 고령군쪽의 임도 끝지점이다. 합천쪽도 임도를 연결시켜야 할 곳이기도 하다. 9시경 도계를 따른다는 것이 건너 390m봉을 착각 올라갔다가 철탑공사 임도로 룰루랄라 타고 내려가니 지나온 오른쪽의 등이 자꾸만 꺼림직하더니 결국은 도계를 이탈 고령군 신곡리 신기마을 쪽으로 빠졌다. 도로상에 내려와서 보니 그 편차가 너무 크서 지나는 차를 얻어타고 기마재까지 올라가서 다시 빽하여 올라갔다. 이탈 지점까지 가는데 1시간 5분걸렸다. 스틱과 시그날만 들고 뛰다시피 가는데도 너릿골산위의 오래된 무덤은 크기도 하지만 커다란 상석이 옛날의 부귀를 자랑하는듯 했지만 벌초한지 몇년이나 되었는지 쓸쓸하기만 하였다. 이곳 역시 오른쪽으로 급하게 꺽어 내려오는 지역이라 방향표시기를 촘촘히 달아 놓았다. 내려오는데는 33분 걸렸는데 집사람은 걱정이 되어 두번이나 전화를 했었다. 11시 25분 1034번 지방도 기마재 간이 매점에서 국수를 한그릇씩 먹고 이른 점심으로 때웠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과 합천군 쌍책면을 가르는 군계이기도 해서 절개지 경사가 심해 우측 합천쪽으로 한참 내려와서 진입했다. 기마재 조금아래엔 고령군 환경위생사업소 (쓰레기 소각장)가 있어 하얀 연기가 계속 나고 있었다. 솜등산 (270.5m)을 거쳐 1시 15분 무덤에서 부터 도계를 벗어나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1시 55분 창녕 453 1981 재설 삼각점(207m)확인후 조금 내려오니 인동 장씨 중리파 납골당 숭조당을 2시 3분 통과 율원리, 사양리, 운봉리를 잇는 삼거리에 도착 지맥과 같이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산으로 가다를 몇번 한후 고랑큰 음달산(264.8m)쪽으로 잘살아있는 능선이 유혹하지만 뿌리치고 서낭당고개쪽으로 오다가 절개지 경사가 심하고 휀스망때문에 왼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도로를 건너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가 길이 가까운 안부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니 주차시켜놓고 텐트할 곳도 좋고 해서 오늘밤은 여기에서 자기로 합의 약 2km의 삼거리까지 다시 걸어 내려가 고령쪽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타고 검둥이를 회수해 오면서 민가에 들러 쌀도 씻고 물도 확보하여 편안한 하루저녁을 보냈다. 오늘 산행은 3시 6분에 마쳤으나 차를 회수해 오니 7시가 조금 넘어섰다. 우리 산야에 대한 사랑은 산줄기 종주를 통해서 실천하고 국토 사랑을 통해 승화된 민족정기를 다 함께 공유하는 장을 마련해 보기위해 우리 산줄기 종주를 하려는 내 마음을 오늘은 여기서 접고 내일 다시 펴리라.
종주 사일째(11월 10일)
오늘은 5시간 정도면 충분히 마치리라 믿었다. 사람이 자연을 닮아 가면 좋은데 자연이 사람을 닮아가고 있으니 모든 생태계는 균형을 잃고 있다. 산행을 통한 외적인 건강을 찾는것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마음의 건강을 찾자는 새로운 산행문화의 정착을 위한 정신교육도 중요하다고 보겠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게 있다. 리지, 암벽등반은 자기 확보이지만 일반종주 산행은 무조건 안전제일 주의이며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서두르지 않는게 중요하다. 숲속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다. 알밤 한개를 줍기위해 다람쥐라도 쪼르르 달려올듯 싶었는데 아무 기척도 없고 대신 기는듯 마는듯 달팽이만 엎드려 있을뿐 그 옆엔 빨간 버섯이 예쁘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 순간에 이 산의 주인인냥 멧돼지라도 나타난다면 어쩌나 싶어 슬그머니 겁도 나지만 한적한 산길은 언제 걸어도 기분 좋은 것은 사실이다. 계절이 훨씬 우리앞을 지나갔는가 보다. 나무잎은 떨어져도 소나무에 붙은 붉은 넝쿨잎은 계절의 빛깔이라 맑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하다. 이러한 자연에 계절이 지나간것 처럼 우리 인간이 지난 뒤에도 아름다움이 항상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명앞엔 숲이 있고 문명뒤엔 사막이 있을 뿐이라는데 구름 한점 없는 늦은 가을 하늘이 투명한 햇살을 쏟아 내고 있었고 따가운 햇살에 땀이 줄줄 흐른다. 내가 가는 산야엔 야생화(들국화)가 지천이고 그중 구절초만은 하얀 자태를 더욱 뽐내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멋있게 나이 먹는 방법이라든지 아니면 빛나게 나이먹는 방법도 함께 연구하면서 한적한 소나무길을 걸어간다. 10여분 올라가니 네 그루의 소나무 가운데 감시 초소가 이쁘게 서 있다. 밭을 지나며 칡넝쿨과 딸기나무때문에 아주 최악의 상태이다. 한시간에 1km도 못가는 형편이다.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만 종주가 되는 것이다. 쌍책면 백정동과 덕곡면 피산동 사이를 가는데 세멘트 포장길도 있고 왼쪽 아래엔 개사육장이 있는듯 개가 여러마리 짖고 있었고 트렉타로 갈아 놓은 밭엔 모과가 떨어져 너무 이쁘고 좋아 일곱개를 주워 베낭에 담았다. 길이 만만치 않다. 이 길을 어떻게 갈지가 걱정이지만 집사람앞에선 고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헤치며 길을 내는데 나의 온 힘을 다 쏟았다. 절골봉을 조금 지나니 삼각점이 있다. (청봉 320 2002년 재설) 9시 45분이다. 부수봉 (306m)은 왼쪽 봉우리이다. 지맥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으나 갔다 왔다. 이곳 정상 역시 무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건너다 본 주능은 깍아지른 절벽이며 화산재처럼 붉은 바위 부서러기이며 부채손이 곱게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돼지가 참으로 많은 모양이다. 한마리도 본 적은 없지만 땅이 성한 곳이 없다. 온 산을 전부 파헤쳐 놓았는데 혹시나 만나게 될까싶어 미리 소리 소리 질러가며 운행했다. 오늘로써 수도지맥 11박 12일을 전부 비막이나 텐트로 종주하면서 너무 험한 길을 같이 다닐려니 집사람에게 죄책감도 들고 미안하기도 하다. 호강은 못시켜 주며 이렇게 험한 곳을 다닐려고 하니 가슴아픈 심정 표현키 어렵다. 누가 이렇게 힘들고 고생스러운 종주 산행을 하는지 알기나 하겠는가 330.6m의 필봉에 도착 갈림길이다. 뜻밖에 은평구청 신경수씨의 리본이 이곳에 있다. 너무 반갑다. 어디서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는 몰라도 대단한 사람의 리본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정말 힘이 솟는다. 드디어 성산 (206m) 에 도착 집사람이 다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해 온다. 내리막길엔 상당히 힘이 드는 모양이다. 마음이 아프다. 12시 10분 무덤에서 식사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1시 10분에 출발했다. 우리가 마치게 될 하산지점도 가늠해보고 낙동강과 황강의 만나는 지역을 눈여겨 보며 2시 3분 청덕교앞에서 12일간의 종주를 마치고 드디어 우리가 해냈구나 하며 두사람은 뜨거운 포옹을 했다. 무사종주를 마칠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준 우리 가족과 친구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또 다음 종주 계획을 세워보며 수도지맥 종주를 마무리 한다. 아울러 나의 549회 산행을 마쳤지만 금년말까지 560회는 채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