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 전설이 된 조막손 소년... 뒤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김서영 기자
입력 2026.09.11. 18:16
요약
초등·고학년·중등 이상화상으로 조막손... 원폭 피해, 재일교포 차별 딛고 최고 야구선수자리까지
홀어머니가 곱창구이 포장마차 하면서 키워... “야구로 성공해 호강시켜드리겠다” NPB 유일 3000안타 돌파 대기록 세운 ‘안타 제조기’ ... 지난 9일 86세로 별세
1977년 1월 한국을 일시적으로 방문한 장훈(오른쪽)과 어머니 박순분 여사./조선일보DB
일본 히로시마의 겨울.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강둑 아래서 네 살 소년이 동네 아이들과 함께 모닥불에 고구마를 굽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트럭 한 대가 후진하며 아이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어요. 소년은 트럭을 피하려다 그만 불길에 오른손을 데이고 말았죠. 결국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엄지와 검지가 구부러지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은 ‘조막손’이 됐어요. 다음 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터졌어요. 이 사고로 다섯 살 장훈은 큰누나를 잃고, 피폭의 흔적을 안고 살아가야 했죠. 해방 직후 오른손잡이였던 소년은 훗날 왼손으로 배트를 휘두르며 ‘안타 제조기’ 장훈으로 일본 야구사에 이름을 새깁니다.
장훈의 부모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했어요. 장훈은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 2세였죠. 일본인 학생들의 차별과 조롱을 견뎌야 했고, 때로는 주먹다짐까지 벌어졌어요. 하지만 그는 야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죠.
장훈이 야구선수를 꿈꾸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히로시마로 원정 온 요미우리 선수들이 접시 가득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을 우연히 봤거든요. 그 순간 장훈은 어머니 “어머니에게도 저런 음식을 먹여드리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장훈은 1946년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곱창구이 포장마차를 하며 삼 남매를 홀로 키웠거든요. 학창 시절 장훈은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야구선수로 성공해서 어머니께 비단 치마저고리를 많이 사드리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답니다.
어린 시절 화상으로 오른손 악력이 왼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에, 공을 쥐는 일부터 일상적인 동작까지 왼손과 왼발을 중심으로 다시 익혀야 했는데요. 처음에는 투수가 되려고 했지만, 고교 시절 어깨를 크게 다쳐 마운드에 설 수 없게 됐어요. 결국 그는 타자로 전향해 오른손을 배트에 대는 각도와 힘을 싣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익혔어요. 굳은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매일 방망이를 휘둘렀죠. 불편한 손을 원망하는 대신, 움직일 수 있는 손과 몸의 균형을 끝없이 다듬은 겁니다. 장훈은 피나는 노력 끝에 1958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와 계약하면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받은 계약금 200만 엔은 봉투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어머니께 건넸다고 해요.
그렇게 다져진 집념은 눈부신 기록으로 피어났어요. 1959년 프로 데뷔 첫해 신인왕을 차지했고, 1962년엔 MVP에 올랐죠. 1967년부터 1970년까지 4년 연속 타격왕을 거머쥐기도 했답니다. 그는 23시즌 동안 3085안타를 쌓아 올려, NPB 통산 3000안타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죠. 1990년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전설로 인정받았죠. 그리고 지난 9일, 장훈은 도쿄의 한 병원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가난과 차별, 원폭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그의 야구 인생은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조막손: 손가락이 없거나 오그라져서 펴지 못하는 손. ‘조막’은 ‘조각’의 옛말로, 일부분만 있는 손 모양이라는 뜻이다.
재일교포(在日僑胞): 일본에 살면서[在日] 한국 국적을 가졌거나 한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재일교포 사회는 일제강점기(1910~1945년)에 일본으로 강제동원되거나 일·학업을 위해 건너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현재 재일교포는 약 80만 명으로 추정된다.
원폭(原爆): 원자폭탄(原子爆彈)의 줄임말로,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이용해 막대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하는 핵무기.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 ‘리틀보이’가 투하돼 초기 수개월 내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훈은 일본 ( )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로, 네 살 때 ( )을 입었습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오른손을 크게 다친 데다 고교 시절에는 ( )까지 다쳐 투수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이후 ( )로 전향해 끊임없이 훈련했어요. 결국 프로야구에서 통산 ( )안타를 기록하며 일본 야구의 전설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