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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표어 설교 +
+ 제 목 :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2)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라!"
+ 본 문 : 시 편 51장 1절 - 19절 (구약 838쪽)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아멘!
2024년 표어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라는 큰 주제로 설교를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새해 첫 주일에는 총회의 주제성구로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라!" 는 말씀으로 함께 치유 받고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느 정도로 좋아하실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이 말에 아멘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업은 축복 받은 사업이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은 축복 받은 일이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삶이,
복이 있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성경 가운데 하나님께서 좋아했던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된 점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은혜를 많이 주시기를 원하시고, 은혜 받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은혜 받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합한 사람,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다윗입니다.
왜 하나님께 다윗을 그렇게 좋아하셨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허물없이,
의롭게 살아서 자랑스러운 사람이 있고, 부끄러운 허물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아서 땅에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사람도 있고, 병들었기 때문에 역사에,
그 병듬을 통해서 오히려 위대하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공했기에 유명한 사람도 있고,
실패했기에 그 실패로 감동시키는 위대한 인물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해서 은혜를 받았다면,
그 성공한 일도 좋은 일이지만, 오히려 실패해서 은혜를 받았다면, 실패한 것도 좋은 일입니다.
다윗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매 다섯 개로 블레셋의 골리앗을 향해 도전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 민족과 전쟁을 합니다. 할례 받지 못한 불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불신앙으로 도전해 올 때에, 믿음의 사람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하고 불레셋 사람 골리앗을 향해 외쳤습니다.(삼상17:45)
그리고 골리앗을 향하여 물매 돌을 던져서,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시켜 그를 넘어뜨려 죽입니다.
이런 다윗의 용기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좋아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천재적인 시편들을 보면, 역사에 아무도 그를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감 있는 시편들은, 우리에게 최대의 감동적을 주는 찬양시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은혜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민족 역사에서 가장 부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오직 믿음으로,
살려고 했던 가장 위대한 왕이요,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 앞에 봉헌하려고 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데는, 더 크고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큰 죄를 지었으나 회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다 망합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죄를 짓고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다윗은,
길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아있으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은, 다윗은 넘어져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분이 좋으면 은혜를 받은 것 같지만, 기분 나쁘면 은혜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은혜를 많이 받았던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을 때,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돌에 맞아 죽을 때 미움이 충만하고, 분노가 충만한데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도 기분이 충만해야 하지만, 사업이 어려울 때도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헨리 나우웬이라는 유명한 영성가가 저자인 “상처 입은 치유자” 라는 책이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회의 신부로서, 전 세계 모든 목회자들의 영성을 깨워주는 위대한 학자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치유 목회자 불려지는 영성가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상처받은 치유자로 표현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뭇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았으며,
마지막 십자가의 상처를 받고, 그는 거기에서 살이 찢겨지고 피를 흘리시면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는 상처받는 생애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자기 백성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제자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마지막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는 상처를 받았고,
온 인류를 구속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처를 온 몸에 지니고 죽으신 상처받은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상처를 원망하지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인류의 모든 상처를 홀로 받으신 예수님은, 결국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상처를 받으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상처를 받으면 받은 만큼,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결론으로 맺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아픔을 겪는 분이 있습니까? 이제는 그것이 사명이 되어,
배고픈 이웃들을 치유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로부터 배신을 경험한 쓰라린 상처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원망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질병 가운데서 고침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내 주변에서 그런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좋은 치유자가 되라는 사명을 감당을 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을 찾아가서 '나는 당신보다 더 중한 병에 걸렸는데, 그 병에서 이렇게 나음받았으니,
당신도 치유자 예수님을 믿으면 나을 수 있다.' 고 기쁜소식을 전해주는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과거가 상처로 얼룩져 있을 때, 생각하면 아프고 쓰라린 나날을 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삶이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운명을 비관하거나, 원망하고 상처 입힌 사람들을 증오하며 원수 맺지 말고,
자기 자신의 그 상처를 사명으로 바꾸어서, 나같이 상처입은 사람을 치유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어떤 상처이든 그 상처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상처를 상처로 두지 말고,
그 상처를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을 모든 상처를 다 받았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도록,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받는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처를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가 부활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상처로 모든 아픔을 겪고 죽음의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그 상처가 부활로 승리해서,
상처입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허덕이는 모든 인류에게 치유자로 우뚝 서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아픈 상처가 그 어떤 것이든 솔직하게 다 드러내야 합니다.
병이 든 환자가 자신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픈 곳을 감추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죄인이 됩니다.
그 죄로 그는 평생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 상처가 바로 간음과 살인죄였습니다.
어느 날, 다윗이 왕궁을 거니는데,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게 되고, 그 음욕을 이기지 못해 그를 불러 간음을 했습니다.
나중에 들려온 소식은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아야, 내가 네게 명하노니, 네 아내와 며칠 동안 휴가를 보내라." 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아 장군은 자기 가족에게, 자기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왕이여, 나와 함께 하는 군사들이 전쟁터에서 생명 걸고 싸우는데, 내가 어찌 편히 쉴 수 있습니까?"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 장군의 뜻을 굽히지 못하자, 사령관 요압에게 친서를 보냅니다.
"우리아 장군을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우리아로 맞아 죽게 하라."
그 친서를 받은 요압 사령관이 암몬과 전쟁 중, 우리야로 전방에서 싸우게 하여 죽게 만듭니다.
그리고 다윗 왕은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밧세바를 취하여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일로 다윗은 죄인이 되고, 그 죄책감으로 마음속에 큰 상처를 안고 고통하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6편 6절 말씀 보면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라고 탄식했고, 시편 32편 3절 - 4절에서는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를,
보내서 다윗을 책망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다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7-10)
그때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라고 고백할 때, 나단 선지가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이다." 라고 선포했습니다. 다윗은 죄의 상처에서 치유를 받고, 새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시를 읊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려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와 악을 사하였나이다." - 철저하게 회개하고 용서받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마음에 멍든 상처 가운데 최고의 상처는 죄가 가져온 상처입니다.
인간을 병들게 하는 모든 상처의 원인은 결국 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신음하는 상처들은, 개인 문제나 가정의 모든 문제는 결국 죄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는 모든 불행들이 결국 우리 속에 숨어있는 죄악이 뿌려놓은 결과요.
이제 그 모든 죄로 인한 상처들을 치유 받는 길은 바로 죄 사함을 받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죄는 드러내야 사함 받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죄인 됨을 고백하므로, 사함을 받습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과거의 상처들을 내 속에 감추지 말고 드러내서 주님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나의 죄를 주님 앞에 내어놓을 때, 주님은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다윗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자기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드러낸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실 때, 먼저 원하시는 것은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사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아멘! - 이렇게 용서받은 자의 감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은 죄인의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죄인의 진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용서함 받고 새로운 존재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기 자신의 사명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 - 15절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아멘! 다윗은 범죄 한 후에 주께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첫째 "나와 같이 범죄 한 자들에게 주님의 사유하심의 진리를 가르치겠습니다.
그때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고백하고, 두 번째로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내 의를 자랑하고, 내가 노력해서 의를 이루려고 했지만, 이제는 이것은,
다 무너져버리고, 주님의 의로 내가 의로워지며, 주님의 의로 내가 인정을 받고, 주님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세 번째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전파하겠습니다." 고백합니다.
이처럼 그는 범죄 한 후에 은혜 받고, 이 은혜 받은 사실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냈습니다.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잉태하였고, 죄 중에 탄생했다." 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죄인이요, 본래 의를 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지은 죄가 우연이 아니요.
본래 그런 사람이라 언제나 이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구제불능의 인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성군이 되었습니다.
가난하십니까? 그 가난을 가지고 주께로 오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그 가난을 통해 하나님의,
부요를 주십니다. 실패했습니까? 그 실패를 가지고 주님께 오십시오. 주님은 그 실패를 바꾸어,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 땅에서 받은 모든 상처를 홀로 간직하고, 원망하거나,
탄식하지 말고, 그 상처를 가지고 주께로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그 상처를 십자가에서 안고,
내 삶을 부활로 바꾸어놓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죽음을 들고서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그 죽음을 주님께로 가지고 나아오면 우리 주님이 그 죽음을 받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이 이루시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상처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회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축복으로 삼아야 됩니다. 그러면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치유목회 연구원 원장인 정태기목사님을 치유사역자로 크게 쓰셨습니다.
그는 신안군 작은 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습니다.
그는 신학대학을 나오고, 미국 유학을 가서 상담공부를 하며, 6년 동안 눈물겨운 세월을 보냅니다.
어느 날, 연구실을 찾아갔을 때, 발튼 교수는 "정태기, 나는 자네를 더 이상 지도할 수가 없네.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 온 공부인데...' 지난 6년 동안의 수고가 허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그 교수님의 연구실을 나오면서, 연구실 문을 세차게 닫자, 꽝하고 문 닫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등 뒤에서 다정하게 어깨를 잡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태기, 자네 이제 나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기미가 보이네." 정태기의 분노를 폭발시키고,
자기 자신을 향해서 극심한 증오의 감정을 드러낼 때에, 교수님은 손을 잡고 받아준 것입니다.
착실하게 공부할 때는 가르칠 수 없다하고, 분노의 반응을 보이자 다시 제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말합니다. "자네가 미국에 온 것은 상담 기술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고, 치유를 배우러 온 줄로 아네. 나는 그동안 너의 진실을 끄집어내려고,
애를 많이 써보았지만, 자네는 꼼짝도 하지 않더군. 하지만 계속해서 자네를 건드리는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지. 그런데도 자네는 나를 만날 때마다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었네. 6년 동안,
계속해서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겠나.
그런데 오늘 비록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자네는 겉과 속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네.
이제 자네는 공부할 수 있는 자세가 되었네." 속에서 표출한 진실을 인정받고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치료하는 의사는 환자가 자기 아픈 곳을 진실하게 말하는 자를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여러분도 가슴 속에 담아진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때 치유가 됩니다.
미국에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척추에 이상이 있어서 치료를 받는데 얼마나 통증이 심한지,
주사기를 꽂으면 다 뽑아버립니다. 의사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손과 발을 다 침대에 묶은 후,
주사를 놓고 치료를 해야 되겠습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안됩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를,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짐승처럼 묶을 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내가 그와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올라가 아내 곁에 누워 아내의 손에 자기 손을 얹어서 묶고,
다리도 묶고, 그 육중한 몸으로 얽어맵니다. 아내가 얼마나 통증이 심했던지 몸부림을 칠 때마다,
함께 고통을 나눕니다. 고통스러워하던 아내가 눈을 뜨고 자기 남편을 보면서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온 고통을 주님께 어떻게 내놓아야 합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함께 묶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난할 때 돈으로 도와주려고,
물질을 가지고 와서 주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보다 내가 가난할 때 함께 가난 속에서 고통하십니다.
내가 가난할 때 옆에서 가난하게 살아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나의 가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주님은 나와 함께 병상에서 아파하십니다. 내가 억울하게 한 맺혀 있을 때,
주님은 그 억울함 속에서 나와 함께 울어주십니다. 내가 죄지었을 때 주님은 그 죄의 아픔을,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내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내 대신 다 받으십니다.
이것을 다윗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죄 사함을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에 우리가 받은 모든 정신적인 상처, 육체적인 상처까지,
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묶어서, 거기에서 완전히 나도 죽고 내 상처도 죽고,
나의 과거도 죽고, 지금의 나의 현재도 죽고, 나의 모든 죄가 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새로운 부활로,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