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계속>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무 걱정할 것은 없고... 우리 공안국에서 남조선 사람을 처음 접하다보니 우선 중경시 공안국에 문의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우선 여기에다가 내가 방금 말한 범죄사실을 인증한다는 글을 적어시오."
말을 마친 그는 백지 한장과 펜을 툭 던져주었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나는 앞에 사람이 알아듣든 말든 있는대로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으나 욕은 목구멍을 넘어오지는 않고 계속 머리를 굴렸다.
일단 버티자!
절대로 이 종이에 이놈들이 말하는 범죄사실 인증을 해서는 안된다...
이것 잘못하다가는 이곳에서 감옥살이 하는 것 아냐? 어쩌지...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지?
다시 식사하러 가라고 내보내주면 그길로 도망을 쳐?
생각을 마친 나는 계속 항변했다. 그리고 무조건 이런 글을 적기 전에 내 여권과 가방을 보자고 버텼다.
한 시간 넘게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다행이 이들은 나에게 물리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속으로 얼마나 떨었던지...
내가 계속 버티자 이들은 잠깐 작전타임을 했다.
다시 자기네들끼리 내가 절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로 한동안 시끄럽게 의견을 교환했다.
어찌나 수다스럽고 길던지... 거의 30분 동안 멍청하게 앉아서 눈알만 굴리고 있었는데...
다시 취조가 시작되고,
"좋아! 내가 당신 물건을 가져오지... 그런데 우리는 당신 가방을 훔친 도둑 두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경비가 들었어. 이건 마땅히 당신이 변상을 해야 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지?"
"내가 변상을 해야 한다고? 무슨 변상?"
"생각을 해봐. 우선 우리가 도둑 두 사람 체포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간 것도 그렇고, 그리고 지금 당신을 위해서 우리가 그 도둑 두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서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서 심문하기 위해 먹이고 재우고 있잖아... 모두 당신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우리 공안국이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 당신이 이 부분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
나는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도통 무슨 얘기인지 이해를 못하다가 이 정도 얘기를 알아듣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지만 대강 무슨 뜻인지 알고 나니 기가찰 뿐이었다.
'아하! 그래서 이 친구들을 보고 비적이나 산적이라고 했구나...'
나는 무조건 이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알았다. 그래서 내가 어쩌면 좋겠나?"
내가 순순히 동의 하자 이 친구들 얼굴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럼 그 경비를 네가 부담한다는 말이지?"
재차 들어오는 확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다시 한 동안 자기네들끼리 수근대더니 종이에 뭔가를 쓱쓱 적기 시작한다.
척 보아도 돈 계산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가 정확하게 계산을 해보았는데, 그 동안 쓴 경비가 이 정도이고... 거의 틀림없으니 네가 보고 맞으면 이곳에다 네 이름을 적고 서명을 해!"
에고고... 남아있는 금액을 보니 달러는 하나도 없고...
자기들이 돈 가방을 찿았을 때는 두 형제 도둑놈이 돈가방은 기차에서 버렸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리고 달러도 모두 두 형제가 인민폐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딱 나에게 돌려주는 돈이 인민폐 3천원 정도였다.
그냥 내가 이곳까지 왔다갔다 하는 항공료에다 택시비, 등등 경비 쓴 것 정도의 돈만 돌려주는 것이었다.
"자! 이제 서명했으니 내 여권과 나머지 돈은 돌려줘... 나는 오늘이라도 북경으로 돌아가야 해!"
제기랄 이판사판이다. 이제 될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 되어 나도 모르게 음성이 높아졌다.
어차피 예약된 비행기 시간은 놓쳤고 다음 비행기라도 있다면 오늘 중으로 북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처장이라는 친구가 서류봉투를 하나 들고 왔다.
봉투는 하얀실로 뚜껑이 덮여 있었는데, 그 실을 풀고 봉투안에서 나온 물건이 바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내 여권이었다.
여권이 책상 위로 툭 떨어지자 나는 잽싸게 여권을 집어 들었다.
'됐다... 이놈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앗! 이게 무슨...
여권을 집어들고 첫 면을 열어보니...
오매 오매... 이게 무슨...
세상에 이런 일이!
여권에 붙어 있어야할 내 사진이 없었다.
사진이 칼로 오려지고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조잡하게 칼질을 하여 삐뚤삐뚤하게 오려진 사진...
나는 이 사진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보시라!
생각해보시라...
사진이 없는 여권은 여권이 아니다. 이게 무슨 수로 내 여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이거 왜 이래? 너네들이 이랬어?"
"이런 여권이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이걸 갖고 어떻게...!"
내가 길길이 날뛰자 처장이란 사람이 픽! 하고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이거 우리가 발견했을 때부터 이렇게 되어 있었어... 우리 탓이 아니야... 도둑들이 그랬지..."
"그래? 그럼 그 도둑놈들을 만나게 해줘."
"뭐? 네가 도둑들을 만나겠다고?"
나의 역공에 이들은 허를 찔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꽤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내가 기회를 놓칠소냐. 이참에 계속 공세를 취해보자!
"그래... 난 그 형제 도둑을 만나야겠어. 만나게 해줘!"
내가 완강하게 도둑 면회를 요청하자 다시 실내에 소란이 일어났다.
자기네들끼로 음성을 높이며 말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한 동안 시간이 흐른 후 실내의 소란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결론이 난 것 같았다.
처장이 다시 젊잖게 나왔다.
"우리가 법을 검토해 봤는데... 당신은 외국인이야. 그리고 당신이 이 여권의 주인이라는 것도 아직 확인을 못했어. 그러니까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곳 법에 의하면 너는 면회 자격이 없어."
이 친구들 퍽하면 중국법 운운이다. 중국이 법치국가라는 것을 강조하겠다는 건지 뭔지...
에라 나도 이판사판 죽을판이다...
"무슨 말이야. 나는 중국법은 잘 몰라. 하지만 나는 지금 도둑 두 사람을 면회하고 가야겠어. 중국에 도둑맞은 사람이 도둑놈 면회못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런 법이 있어면 어디 있는지 알려줘. 그런 법이 없다면 나는 얼굴이라도 잠깐 보고 가겠다고..."
다시 잠깐 실내에 소란이 일어나고... 다시 결론이 난 것 같았다.
뭔가 억박지르는 분위기보다는 달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무시무시했다.
"네가 꼭 면회를 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너를 구속할 수가 있어. 지금 네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뭔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네가 이곳까지 온 것이 가상하고 또 네가 외국인라서 우리가 많이 봐주고 있는거야. 만약 네가 그 도둑들을 면회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네가 저지른 범죄사실을 그냥 묵과하지 않겠어. 너는 우리 중화인민공화국 법을 어긴 범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허걱! 구속이라니...
거의 18년 전 일이라 똑똑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아무튼 나를 구속하겠다고 나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오매 무서워...
내가 더 이상 무슨 재간이 있어 더 버틸소냐...
돈 3천여원을 받고 (정확히는 몰라도 끝자리까지 거슬러 주었다. 예를들면 3,238.45원 이런식으로...)
그리고 돈 받았다는 영수증에 서명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장까지 찍고...
그리고 잘 가라는 악수도 건네 받고...
어떤 놈은 수고했다고 어깨까지 치는데... 정말 환장하겠더구만...
걸어서 공안국을 빠져나오는데 무슨 염라대왕 만난 기분도 들었고,
이틀 동안 시달린 생각에다 어젯 밤 늦게까지 밤길에 운전하느라 온몸이 쑤씨는데...
한시 바삐 북경집으로 돌아갈 생각밖에 들지 않으니...
다시 중경 공항으로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이놈의 기사 남은 돈 3백원 받을 생각인지 룰루랄라 하면서 기가차게 운전을 잘한다.
아마도 밝은 대낮에 운전을 하는 탓이리라...
갈 때 8시간 걸렸던 길을 4시간 정도에 주파하니 엄청 빨리 도착한 셈이었다.
공항에서 비행기표를 바꾸고 멍청하게 앉아 있는데 그제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 처음으로 사천성 중경까지 온 것 하며...
그것도 모자라 혼자서 무시무시한 공안국까지 쳐들어간 것 하며...
북경으로 무사히(?) 귀환한 나는 사천에서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이를 어쩐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내가 사천성 중경시 만현 공안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한글로 타이핑하고 보니 (당시 타이핑은 지금의 컴이 절대 아니었음) 거의 다섯장이 나왔다.
이를 다시 직원을 시켜 중문으로 번역하고, 번역이 제대로 되었는지 거의 이틀을 검토하고 난 후,
나는 이 내용과 함께 앞서 1편에서 언급했던 소개서를 첨부해서 편지를 보냈다.
주소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To: 중화인민공화국 사천성 중경시 인민정부 시장 000 판공실 & 외사과
(만약 지금이었다면 한창 매스컴을 떠들석하게 하는 잘생긴 그 사람 이름을 쓸텐데...ㅋㅋㅋ)
편지를 보내고 나니 그래도 뭔가 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약간 뿌듯하기도 하고,
이제 이 일을 잊자는 다짐도 되고...
그렇게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는데...
이로부터 거의 10일 후,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 공손하고 부드러운 남자 음성이었다.
"000 선생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누구십니까?"
"여기는 사천성 중경시 시장님 판공실(비서실) 000입니다. 며칠 전에 우리가 000 선생의 편지를 받았는데, 본인 맞습니까?"
"예, 맞다니까요. 그 편지에 내 전화번호가 바로 이 전화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000선생님 그 편지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내가 그럼 거짓 내용을 적었다는 말이오?"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시정부에서는 선생님의 편지 내용을 아주 중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장님께서도 친히 그 편지를 보았습니다. 지금 그래서 우리 시에서는 만현 공안국에 사람을 보내 사실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도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쓴 내용은 한치의 추호도 없이 사실이오. 내 비록 만현 공안국 그 사람들 이름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대면을 시켜주면 내가 일일이 확이해 줄 수도 있소."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요.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명예를 걸고 편지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알겠습니다. 우리 시정부에서 조치가 끝나는대로 선생님께 다시 연락을 올리겠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일이 흐른 후 나는 또 다시 10여 일 전의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중경시 정부에서 나의 편지 내용을 모두 확인했고, 중경시 정부를 대표하여 사과한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기분 좋은 것은 내가 잃어버린 돈 금액을 달러까지 정확하게 돌려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잃어버린 돈의 액수는 정확한 것이 아니었지만 내가 주장하는 그대로의 돈을 돌려주었다. 내 구좌로...)
그리고 가방과 서류는 도둑 형제가 버린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나는 공안국 사람들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만 했지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이 사건을 똑똑하게 기억한다.
중국에서도 뭔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던 에피소드였다.
이후 나는 중국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중국인과 부닺히면서 내가 불합리한 경우를 당할 때마다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를 알게해준 나의 소중한 경험이었다.
중국에서 24년 사는 동안 참으로 겪은 일들이 많았다.
틈나는대로 독자 여러분과 만나면서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 끝 -
PS . 끝으로 부탁!
댓글 달아주세요...ㅋㅋㅋ
댓글이 재미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