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두로와 시돈의 죄
본문 : 이사야 23장 1-15절
『앞장에서 남 유다 백성을 향한 애끓는 하나님의 사랑을 호소하였던 이사야 선지자가 다시 이방민족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 24장입니다. 1절에 “두로에 관한 경고라”는 말씀과 4절에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말씀이 나오는데, ‘두로와 시돈’는 오늘날 레바논에 위치한 도시의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의 ‘인천’과 ‘부산’과 같이 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써, 국제무역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와 그리스. 페르시아와 로마 등의 나라와 무역을 함으로써, 당시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부유함과 번영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갈대아 사람에 의해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없어지고, 70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두로가 다시 회복되게 될 것이라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1-7절에선 ‘해상무역으로 크게 부요했던 두로와 시돈이 멸망하게 될 것에 대한 애가’를 말하고 있으며, 8-12절에선 ‘저들이 멸망하게 된 이유가 교만하였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18절에선 ‘나라가 멸망한 지 7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나라가 회복될 것을 예언한다’는 것이 24장의 전체 내용입니다.』 자. 두로와 시돈은 당시 지중해 해안 주변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그랬던 두로와 시돈이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 왜 “슬피 부르짖으라”고, “너희는 부끄러워 할지어다”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아모스 1장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말씀이 나오는데, 당시 두로에게 서너 가지 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죄가 무엇일까요?
1.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죄’였습니다.
다같이 2절을 읽겠습니다.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주민들아, 잠잠하라.”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당시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앗수르’나 ‘바벨론’이 육지의 강자라면, ‘두로와 시돈’은 바다의 강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가랴 9장 3절에 보면,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다.” 말씀이 나오는데, 은이 먼지와 같이 많았고, 금이 거리의 진흙과 같이 쌓여 있을 정도로 부요한 도시였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부요하면, 은이 먼지같이 많고, 금이 거리에 쌓여 있을까요? 이렇게 나라가 강하고, 부유한 두로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경을 했습니다. 부러워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렇게 고달픈 삶을 사는데, 저들은 어떻게 저리 강하고 부유할 수 있을까?” 부러운 나머지, 저들이 믿는 우상을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주 순진한 학생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는 불량배인 두로를 따라다니며 배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국에는 저들의 우상이 거룩해야 할 예루살렘 성전 안까지 들어가게 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2절에 나오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이란 말은 ‘시돈 상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적으로 오염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더 나아가 신앙적으로 죄를 짓게끔 하였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죄를 지은 저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떤 말이 되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저들과 같이 남을 실족케 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두로와 시돈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들은 단지 장사꾼으로 물건을 팔았을 뿐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저들의 외모와 말에 홀려 동경하게 되었고, 저들을 따라하다가 보니,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반대로 생각을 하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실족하게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의미도 없이 한 행동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실족하게 된다면,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 보면, “나는 믿음으로 우상에게 드려졌던 고기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혹여 내가 먹는 고기로 인해 누군가가 시험에 든다면, 먹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지요? 그래요. 나로 인해 누군가가 시험에 들거나 실족하게 되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 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이렇게 남을 실족케 하는 죄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여 우리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여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자가 없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땅에만 많은 것을 쌓아 두려 하는 죄’였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되었도다.”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은 ‘나일 강 주변에서 생산되는 곡식들이 지중해를 통해 들어오는 세계적인 큰 시장이었다’는 말입니다. 어디가요? 두로와 시돈입니다. 이것만 볼 때는 ‘저들의 잘못이 무엇인가?’ 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단지 장사를 하여 돈을 번 것뿐인데요. 그런데 18절을 보면 다릅니다. 우리 18절을 읽겠습니다.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자. 이 말씀은 두로와 시돈이 멸망하여 70년이 지난 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따라서 2절 말씀과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18절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렸다”고 하는데, 멸망하기 전에는 ‘무역해서 번 모든 이익을 다 자기들이 간직하고 자기들을 위해 쌓아두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는 말은 ‘무역한 것과 이익을 주의 일을 위해 써야 하는데, 저들은 어떻게 했느냐? 오직 자기들만을 위해 사용하였다는 말이고, 하늘나라보다는 땅에 쌓아두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2장 19절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가 나오는데,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나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렇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놓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데리고 가지면 그것이 누구 것이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두로와 시도이 그랬습니다. 저들에게 주의 일에 사용하도록 부귀와 모든 것을 주셨건만, 오로지 자기들을 위하여 땅에만 쌓아놓는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여기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심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오직 자신의 안위와 행복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어떤 목적으로 살고 계십니까? 혹시 2절과 같은 삶을 살고 계십니까? 아님, 18절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 하늘에 많은 것을 쌓아두어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하나님과 사람 앞에 교만한 죄’였습니다.
다 같이 9절을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당시 두로는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쌓고, 세상적인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8절에 나오듯이 면류관을 썼고, 고관이란 직분으로 우쭐하였고,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 진 것입니다. 저들의 교만이 어떠했느냐? 에스겔 28장 2절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자. 저들이 뭐라고 그래요? ‘나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만합니까? 그런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 9절에서 저들이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할 것이고, 저들이 교만했던 만큼, 다른 사람에게 멸시를 받게끔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기로 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 말씀은 남 유다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왜 남 유다 백성에게 두로와 시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너희는 저들과 같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어리석다고 할까요? 교만하면서도 자신이 교만한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무엇일가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높이며,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까부는 것입니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며, 자기를 과시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그랬습니다. 그런 저들을 책망하시는데,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아주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우리 모두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를 하고자 하는데,
오늘 두로와 시돈의 잘못을 지적하였는데, 저들의 잘못이 무엇이라고 했어요? 첫째는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죄’였고, 둘째는 ‘땅에만 많은 것을 쌓아두려는 죄’였습니다. 셋째는 ‘교만한 죄’였습니다. 자.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저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저들이 잘못을 깨닫고, 슬피 부르짖으며 회개를 한다면, 다시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회복이요? 17절에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입니다. 여기서 ‘돌보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파카드’라고 하는데, ‘자기 사람으로 두다, 품안에 두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에는 버린 바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들을 다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품안에 두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8절에 다시 예전과 같이 무역하는 것과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하시고, 배불리 먹고, 잘 입을 수 있는 옷감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황폐하고 멸망한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축복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줄 믿습니다. ‘혹시 나도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지 않는가?’ ‘혹시 나도 하늘나라보다 이 땅을 위해 쌓아두고 있지 않는가?’ ‘혹시 나도 교만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슬피 울며 부르짖어 회개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17절과 18절에 나오는 회복의 축복을 여러분 모두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