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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와 일부 스타에 의존하는 시스템으로는 한류를 지속시키기에 역부족이고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공통의 영속적인 브랜드를 배제한 채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한류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경험론이 작용한 결과다.
그래서 제2기 한류는 한국을 상징하는 전통문화를 기저로 하면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문화, 기술을 창출하거나 접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통문화에 담긴 생명, 평화 사상과 웰빙 등 현대와도 어울리는 요소를 끄집어내고 여기에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신명과 감동, 그리고 한국의 강점인 IT 등 첨단기술을 연계해 한류를 확산하는 동시에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방식이다.
한국의 전통인 한복, 한지, 한글, 한옥, 한식, 한국학 등 ‘한(韓)브랜드’를 통한 한류의 확산 시도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온돌, 전통 한옥인 산사(山寺) 체험(템플스테이), 한글패션, 한지로 만든 옷, 웰빙 한식, 전통 장남감 등은 세계에서 호평을 받으며 경제적 효과와 더불어 한국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건축설계개발회사 코다(CoDA)는 지난 9월 웨일스 정부가 2003년부터 추진 중인 스완지시 재개발 프로젝트(SA1)의 주거시설 신축사업을 따내 5~10층짜리 10개 동 397가구를 온돌 방식의 한국형 아파트로 짓게 됐다. 코다측은 “한국의 온돌마루와 정보통신기술을 앞세워 쟁쟁한 영국 경쟁사들을 입찰에서 물리쳤다”며 “유럽에, 그것도 온돌을 앞세워 수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동일하이빌은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 경제특구인 마기스트랄가 12번지에 온돌을 갖춘 3,000가구의 ‘한국형 아파트’를 수출했다. 중국의 경우 신규 아파트 20%가 온돌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전통가옥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문화는 외국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인 ‘템플스테이’는 한국만의 정신문화가 다른 아시아 국가와 차별화된 관광상품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를 계기로 시작된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처음 991명에 불과했으나 2006년 10월 말 기준 4만5,948명(외국인 5,021명)으로 증가할 정도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재참가를 희망하고 프랑스인 2,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79%가 템플스테이 체험을 원했다고 밝혔다.
한복과 한글의 세계화 추세도 주목할 만하다. 올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적인 홈스타일 박람회 ‘2006 메종 에오브제’의 메인 테마는 ‘한복’과 ‘한국문화’였다.
디자이너 이상봉 씨는 올 2월 ‘파리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에서 소리꾼 장사익과 화가 임옥상의 글씨체를 담은 한글디자인 옷 51점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 톱디자이너 이렌은 “한글은 현대적이면서도 기하학적 조형미를 갖추고 있어 세계 디자인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식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된 김치가 국제화된 지 오래고 최근에는 비빔밥, 갈비찜 등이 각국 기내식으로 채택되는 등 한류 전파에 한몫하고 있다.
한지는 한브랜드 분야 중 산업화, 세계화 측면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분야로 꼽히고 있다. 한지를 이용한 우주선 보호장비나 로봇을 제작하는 연구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한ㆍ미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가 하면 한지 스피커는 고음ㆍ중음ㆍ저음ㆍ우퍼 기능에 따른 4채널 스피커를 한 장의 종이로 구현해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꿈의 스피커’라는 평가와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지(닥섬유)로 만든 옷은 일반 섬유로 만든 옷에 비해 최대 9배나 높은 원적외선 방사율로 항균성이 높고 무게가 가벼울 뿐 아니라 한지 특유의 보온성과 냄새제거 효과로 세계 유수의 섬유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세계 최초로 닥섬유를 개발한 피엔에스코리아 이삼용 대표는 원사로 한복, 청바지, 넥타이,와이셔츠 등을 제작해 국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세계 시장에도 나서 지난달 미국의 세계적 원사 회사인 듀폰사와 판매 및 마케팅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제2기 한류’의 또 다른 주역은 비보이(B-boy), 난타, 점프 등 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퓨전문화’다.
‘비보이’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익스프레션, 라스트포원, 드리프터즈 등 여러 팀들이 세계 주요대회를 석권하며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어 한류의 다음 단계를 이끌 첨병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보이팀 갬블러는 12월 2일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에서 열린 ‘비보이 호다운(B-boy Hodown 2006)’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한국의 일등이 세계의 일등’이라는 인식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주방기구를 두드리는 비언어 퍼포먼스 ‘난타’는 1997년 공연 이래 한국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아 요즘도 서울 정동 난타 전용관의 관람객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올해 외국인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한 ‘난타’는 2004년부터 한국 공연물 최초로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객석 점유율 70∼80%를 유지하고 있다.
‘점프’는 태권도, 태껸 등 동양무술에 애크러뱃 묘기가 곁들인 비언어극으로 2003년 초연 이후 벌써 40만 명이 봤다. 이스라엘, 중국, 그리스, 스페인, 인도 등 8개국에서는 120회 공연돼 9만여 명의 관객을 끌었다. 내년엔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올릴 예정이다.
12월 4일, 런던 웨스트엔드 콜리시엄 극장에서 열린 영국 왕실 문화행사인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에는 찰스 왕세자와 부인 커밀라 파커 볼스가 참석해 출연진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정말 환상적(fantastic)이었다. 너무 재미(funny)있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밖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판소리는 스토리와 독특한 성악으로 세계적인 음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프랑스 등 공연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고전소설 구운몽과 옥루몽을 응용한 애니메이션, 게임은 2008년 세계를 목표로 캐릭터 설정과 기획작업이 진행중이다.
대중문화 중 ‘주몽’, ‘황진이’, ‘궁’등 사극이나 퓨전사극이 특히 동남아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전통 문화와 역사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각 지자체마다 향토문화를 발굴,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디지털화함으로써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으로 한국을 접할 수 있도록 한류의 세계화를 넓혀가고 있다.
jjpark@hk.co.kr 박종진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