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등뒤에서 들리는
미친 웃음소리에 놀라 소녀는
떨고 있었어.
관능과 도취의 향기 넘치는 포도주를 들고
껄껄 웃는 사내,
한 옴큼 놀란 가슴은 작은 새처럼
콩콩 방아를 찧고
폭풍처럼 휩쓰는 발소리에
인근의 꽃들은 이슬방울을 떨군 채로
숨죽여 내다보았어.
소녀는 마지막 기도를 외우고
뒤돌아보았어.
진한 포도의 향기가 그때
헝클어진 머리칼 새로 풍겨왔고
으악 소리치는 순간에 소녀의 심장은
싸늘하게 굳어버렸어.
한 덩이 차고 투명한 돌이 되어서
아 그렇게 가여운 소녀 아메티스트,
순결한 그 눈물이 이미 죽음을 넘고 있었어.
2
포도의 술에 스미는 한없는 뉘우침이여.
내 이 술잔을 기울여
그대 깨끗한 영혼 위에 눈물로
죄를 씻으려 하느니.
아메티스트여,
비정한 사내의 길을 그대는
이렇게 밝혀 주는구나.
바람결에 나부끼던 검은 머리칼,
조바심에 떨던 붉은 심장이
한 점 티끌도 없이 사라지고 말아
이제는 유리보다 말간 그대 전신에
나를 비추는구나.
가혹한 슬픔을 끝끝내 내게 보이는구나.
아메티스트여,
나는 포도의 술을 붓는다.
그대 고운 이마에, 어깨에
내 용납되지 않은 사랑 위에
붓는다.
아침 포도의 액은 애잔히
온몸에 흘러들어
그대 기원의 마지막 음절까지를
적신다, 아메티스트,
보랏빛의 순수여. 아픈 빛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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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티스트(Amethyst) : 그리스 로마 신화, 포도주의 신 바쿠스(Bacchus)의 장난으로 인해 자수정이 된 소녀. 자수정(紫水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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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주신(酒神) 바쿠스는 사자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때마침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소녀 아메티스트를 보고 장난기가 발동하여 사자에게 "저 애를 혼내줘라."고 명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사자가 아메티스트를 향하여 포효하며 달려들었고, 소녀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기보다 차라리 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에 하늘이 응답하여 아메티스트는 순결한 수정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한 순간에 자신의 장난이 소녀를 돌로 만들어버린 것을 보고 바쿠스는 한없이 뉘우치며 참회의 마음으로 돌에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순수하고 투명한 수정에 포도의 빛깔이 조금씩 스며들어 이윽고 아메티스트는 보랏빛 자수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