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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충북교육발전소 김한나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현이 국장님, 혜지 인턴님까지 총 출동 했어요!
저희가 총 출동하여 알차게 담아낸 강창수 회원님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그렇다면 두 눈 크게 뜨고!
이야기 듣는 마음으로 잘 읽어봐주실거죠?
☆ 지 금 만 나 러 갑 니 다 ! 강 창 수 회 원 님 ☆
지금 공개됩니다. 뾰로롱!
안녕하세요. 강창수입니다 : )
충주에 오래 계셨었는데 고향이 충주인가요?
전 고향이 제주입니다. 이건 저희 부모님께서 수확하신 귤이고요. ㅎㅎ
제주에서 육지로 오기 힘드셨을텐데 연고도 없는 곳에 오시게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제주에서 대학교를 전라도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과는 다르지만 아내랑 전라도에서 대학교를 같이 다녔어요. 10년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이 됐죠. 오와~로맨틱해요! 하하 그렇게 로맨틱한 스토리는 아니에요. 아내는 졸업하고, 전라도 광주에서 교직생활을 했어요. 그러면서 주말부부도 여러 해 했죠. 그런데 아이를 낳고 하니 유지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아내가 충주 제천으로 발령이 났고, 그래도 저도 9년 전에 충주로 넘어오게 됐어요. 아내가 발령 받아서 충주로 온 것도 있는데, 다른 이유도 있죠.
제천농고, 충주농고가 사라졌어요. 지금은 없죠. 청주농고, 보은 자연고, 영동산업고만 농업관련학과가 있는데, 북부권이 농업이 주 생산 지역인거잖아요. 생산학과 농고가 없어지고 충주농고가 인문계 전환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가면 좀 막을 수 있을까 했는데, 안됐어요. 결정적 이유는 동문회가 인문계 전환을 원해요. 정서상 농업계 고등학교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고, 교육이란 것은 꼭 필요한 것만 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필요하지 않지만 먼 미래를 보고 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그런 쪽에서 동문회가 인문계 전환을 요구해서 국원고로 바뀐 것이죠. 그래서 전 갈 곳이 없죠. 또 주말 부부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거에요. 허허. 그래서 진로진학상담교사로 전과해서 학교를 다녔죠. 6년 정도 했네요.
청소년노동인권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그럼 진로진학상담교사를 하게 되면서 부터인가요?
꼭 그것만은 아니고요. 다양한 계기가 있었죠.
진천 농고에 첫 발령이었는데 청주에서 타 고등학교에 갈 곳 없는 학생이 진천까지 넘어 가는 거였죠. 제가 2학년 원예과를 담당했어요. 한 35명 중 20명이 청주에서 오는 아이들이었어요. 지역에서 학부모들이 선호하지 않는 학교였어요.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은 농업관련 실습을 수업의 일환으로 나가야 하는데요.
2000년도에 여학생들이 농업관련 실습을 안 나가려고 하죠.
예를 들어 장미단지라고 하면 우리가 볼 때 ‘와, 예쁘겠다. 거기서 일하면 폼나겠다. 좋겠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아니거든요. 가시 찔리고, 하우스에서 탄 얼굴은 오래가요. 빛 자체가 그렇거든요. 하우스에서 차단된 빛 자체가 식물에게는 좋지만. 사람에게는 안 좋아요. 누가 가겠어요. 그러다 보니 애들이 다 공장, 액정 조립하는 곳으로 가요. 여학생들이 가면 기본적으로 성희롱, 성추행이 빈번했죠. 선배라는 사람들이 챙겨주고, 더 가르쳐주고 해야 하는데 말이죠. ‘예쁘다’하며 덥석 만지고, 커피 심부름 시키고, 청소 시키고,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어요. 실습생이니까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아니었던거죠.
거의 90%가 참고, 대부분이 참아요. 10명 중에 1,2명 정도는 친구나 부모에게만 이야기하고 학교에 이야기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상당히 과도하고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서만 담임에게 이야기를 하죠. 그러나 담임이 기본적으로 사업현장에서 대해 잘 모르고, 이런 경험이 많지 않은 담임이 대부분이니까요. 법률적으로 조언해 줄 방법을 모르는니 잘못 조언했다가 일이 커질까봐 걱정하죠. 담임들이 대부분 하는 이유가 ‘왜 그래, 학생인데 참을 줄도 알아야지, 배워야 하지 않겠어?’이런 이야기를 하는거죠.
그러다가 몇가지 일이 터졌고,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니까, 김경원 선생님이 특성화 고등학교 선생님들 간에 ‘노동인권 관련 공부를 하고, 자료를 만들어서 담임에게 나누어주자.’ 대응 매뉴얼 같은 것을 모여서 만들자고 제안 해주셔서 2001년도에 기꺼히 함께 했죠.
다양한 이유로 애들이 무단결근을 해요. 근데 그러면 결석인 거잖아요.
담임 선생님이 ‘왜 안 가려고 하니?’ 라고 물어봐야하는데 대부분의 선생님은 집까지 찾아가서 깨우고 실습장으로 보내는 것이 교사의 할 일이라고 생각 한거에요. 공간이 안전한지에 대한 생각은 안 해본 거죠. 경험을 안해 봤으니까. 그렇죠. 경험도 안 해 보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않은 것이죠. 교육공간이기 때문에 꾸준히 체크를 해야 하는데 아이가 나태하다고만 생각을 하니까 지도방법이 완전히 틀렸던 거죠.
10년간은 관심 정도였고,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이후에 조금 더 고민이 깊어지면서 공부를 더 하게 되었죠. 여전히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어요.
제가 2000년도 이야기를 했잖아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지금도 여전히 현장은 바뀌지 않았고요.
이건 아르바이트 여건 마찬가지에요. 예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교육의 문제가 아닌 사업장의 문제에요. 사용자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사업자 교육이 필요한데 그를 위해 교육을 강제 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교육인데 그들은 돈이잖아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최저만 주려고 하는거죠.
최저임금이 만약에 8,000원이라고하면 최저인거잖아요. 실은 2만원을 주던 10만원을 주던 해야 하는데 최저만 지키려고 한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도 그래요. 노동조합, 관공서 등도 그래요. 최저임금 = 최고임금인거에요. 세상에 이런게 어디 있어요. 더 이상 내려가지 말라고 잡아놓은 선인데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만 줘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이런 것을 바로잡기 위해 계속해서 투쟁해야겠죠.
흐르는대로 자연스러운 인터뷰에 이어!
자, 본격적으로 형식적 질문을 해 볼게요.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음, 어렵네요.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평범한 것 같지 않아요? ㅎㅎ 평범한 것 같아요.
그냥 상식적인 사람,
그게 제일 힘든거에요.
그래서 힘들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상식의 기준보다 못 미치거나 안 되어있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불편하고, 참을 수 없게 될 때도 있고,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전에 한번 후배 교사들과 함께 송곳이라는 책을 보고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막 고급지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ㅎㅎ 나이가 2,3년 밖에 안 된 신규 선생님이 송곳을 보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상식적으로’
등장인물 중에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인물이 있는데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그들도 그들의 기본적인 상식과 정신이 있는 것이죠. ’약자를 보호해야하고 법에 맞게 행동해야하고 법에 맞게 사람을 고용해야하고 대우해야 한다는 것.‘ 실은 이게 상식인거잖아요. 그 상식에 반하는 것에 대해 참을 수가 없는 거죠. 이 주인공이. 충분히 본인이 갖고 있는 경력으로 보면 사용자 측에 붙어서 여유 있게 살 수 있고, 몇 번만 눈감으면 되는데도 그게 안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상식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지 않을까요?
어렵겠지만, 상식적으로 살아야겠구나.
내가 하고 있는 일,
수업시간, 상담시간도 그렇고. 상식은 ‘너의 이야기를 듣겠다.’라는게 상식인데 그게 잘 안되잖아요. 그러면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내가 좀 더 여유가 있어야 하고 편해야 하는 거잖아요. 업무가 좀 없어야하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야 하는 거잖아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내가 있는 환경을 개선해야 하고, 그 싸움이 필요하다면 상식적인 선에선 그 싸움이 필요한거죠. 상식적인 것이고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싸워야 하는 것이죠. 그런 상황이 슬픈거죠.
상식적으로 살아야하는데 그게 잘 안 되잖아요 내려놓고 싶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지금도 그러고 싶은데요? ^^
가족도 있고, 아무래도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욕구로 인해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죠. 스스로가 조금 편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럴 때가 있죠.
전교조 출마를 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전교조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가요? 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 내가 필요한 곳이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일에 상식선에서 열중하고,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추구 하려고 하는 것들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조금 더 도움이 되고 싶어서 온 것이 이 자리가 아닌가 싶어요.
어떤 걸 바꾸고 싶으신가요?
학교 환경을 바꿔내고 싶어요.
선생님들이 수업을 할 수 있는 환경, 아이들이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교육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 선생님들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바꿔내고 싶은 거죠. 저는 그 부분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들이 그래야만 그 이후에 다른 교육적 문제들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선생님들이 조금 더 노력해야 할 영역이 행정업무가 아니라, 다양한 아이들을 어떻게 개개인의 능력을 끌어올리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인데 그럴 여유가 없는거죠.
선생님들도 개인마다 생각하는 고민의 영역, 좋아하는 분야(역사, 노동인권, 성평등 등)가 다를 텐데 여력이 없으니깐 본인의 테마를 잡고 아이들에게 영향 끼칠 수가 없는 거죠. 선생님 마다 좋아하는 영역이 있잖아요. 본인만의 테마나 이슈가 있으면 아이들이 그 선생님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성장을 하는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으로선 그러기가 참 어렵죠.
전교조의 이슈는 어떤 것들이 있죠?
충북은 단체협약이 이루어졌으니까 그 체결된 내용을 학교현장에 잘 녹여야 하는 부분이 큽니다.
▲교권침해 방지 및 교권 신장
▲교원의 업무경감
▲학교 환경개선 등을 중심으로 교원의 근무조건 개선과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 등
출처 : 충북뉴스(http://www.c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1035)
올해 같은 경우 이슈가 아닌 것들이 없는 것 같아요.
고교학점제, 여전한 문제지만 교원 평가•성과급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고요.
학생인권조례, 노동 인권 관련 조례, 그런 것들이 큰 이슈가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충북이 그게 없어요. 공익제보자에 대한 조례도 없어서. 이게 사립학교와 관련한 문제거든요. 그런 것들이 중요 이슈로 되지 않을까 싶고요.
고교학점제는 다르게 이야기하면 교사의 고용과 관련해 유연화 정책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순한 고교 학점제의 문제가 아니고 교사의 수급 문제,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해줄 수 있게 해주는 건 좋은데 그러기 위해선 교사가 다양한 교과를 운영 해야 해요.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고, 예를 들어 국어교사에게 다른 영역을 하게 한다는 것이 전문적이지 않죠. 실효적인 걸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돌봄 관련 문제도도 지자체 이관 이후로 여론이 잠잠해 졌어요. 교원, 돌봄 교사 각자가 처해 있는 환경이 다르니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협의체라던가 논의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021년 버킷리스트가 있으신가요?
조합원 2500명이요!
현재는 몇 명인데요? 현재는 1600명입니다. 최근 들어서 늘기는 했지만 예전의 최고점보다는 적죠.
2500명이 과도하긴 하지만 꿈을 크게 잡고 있습니다. ㅎㅎ
이게 노동인권과 다 연관된 일이에요. 한국사회 내 노동조합이 서있는 자리가 상식의 자리인데 실은 상식의 자리가 아니잖아요.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큰 결심을 해야 되기도 하고 그렇죠. 맞아요. 학교의 분위기 마다 다른 것 같아요. 최근 20•30대도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당연하다고 생각 해야 되는데 아직은 그렇게 생각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다양한 노동조합이 있긴 하지만 가입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죠. 개인적으로 이슈를 접하거나 할 때 가입을 하는 경우가 많죠. 올해는 적극적으로 꼬시려고 생각 중입니다. ^^ 전교조 활동을 상식선으로 하고 그 모습을 보고 함께 하게 만드는 것이 지향하는 바이긴한데 이것에 대한 변화가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 삶과 관련된 개인적인 목표가 있으세요?
개인적으로는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장단 장구실력을 갖추는 것에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맨 처음 시작은 농업계고등학교에 있으니깐 풍물을 해야 되다보니 관심을 갖게 됬었죠.
그리고 코로나 끝나면 여행을 가고 싶어요.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고 집에 있으면 갑갑해요.
주말에도 7시에 일어나요. 일찍 일어나시면 뭐하세요?
예전에는 수영했죠.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동네 한바퀴 뛰었어요.
채식도 하신다면서요.
네, 채식도 하고 담배도 안하고 술도 안 먹고 밀가루도 안 먹죠.
그렇게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청주농고에 있을 때 프로젝트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생명, 종자, 제3세계, 식량무기와 관련하여 배우고 육식 대체 식재료 찾아서 먹기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어요.
이 수업을 하면서 한 달 정도 고기를 끊었었는데 해보니깐 생각보다 힘들지 않더라고요.
저는 고기를 진짜 좋아해요 아침에도 수육을 삶아 먹을 정도로요. 아침에 수육 삶아 먹다가 누구에게 들키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좋아했는데. 한 달 더 해 볼까? 1년 더 해 볼까? 마침 체중도 늘어서 체중관리 할 겸 계속 채식을 하게 됐죠. 하다 보니 건강에 참 좋더라고요. 다양한 이유가 있었죠. 담배도 끊은지 15년 가까이 되었어요.
아이들과 또 프로젝트 수업 마지막으로 한 것이 육식을 먹지 않고 모은 돈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 마지막이었어요. 학급 반으로 해서 조금 기부도 하고 그랬죠. 그 이후에 저도 그래서 1년에 1,000원씩 기부금을 올려요. 너무 큰 목표를 세운 거죠. ㅎㅎ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제 3세계에 대한 기부를 아주 조금 하고 있어요. 고기만 안 먹어도 정말 돈이 많이 모이겠네요.
생명과 관련한 부분에서 아주 상당히 마음이 편해요. 식물도 생명이니까 미안하긴 하지만 인간이 지구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생명을 죽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안정적인 것 같아요.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으신가요?
전라도에 학교를 간 게 문제였죠. ^^;
제가 91년도에 학교를 갔는데 그 당시가 518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상당히 소란스러운 때였어요. 그 당시 전남 보성고등학교 3학년 김철수 열사가 분신을 했죠. 전교조 합법화와 관련해서요. 그 사건이 굉장히 제게 영향을 미쳤어요.
그 전날 5.18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서 집회를 하던 때였거든요.
그날도 가만히 앉아있는데 별로 안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도 기억나요.
과 친구인가? 저에게 조금 무시하는 것 같이 이야기 하더라고요.
다들 앞에 나가서 지키고 있는데 저 혼자 여자 대열에 앉아있으니, 무시 당하는 느낌을 받았죠.
당시 제가 몸무게도 48kg정도 였어요. 키도 작아서 굉장히 왜소했거든요. 힘도 없고. 겁도 났죠.
그 날 저녁에 술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로 연락이 왔어요.
‘순천역으로 시간을 정해서 모여라!’
순천역으로 갔는데 그 앞에서 보성고 김철수 학생이 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전장대가 보성고등학교를 에워싸고 있고, 감식반이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침탈이 예상된다.
그 시신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 였어요. 기차를 타면 보성고까지 30분 거리였거든요.
저는 그 기차를 안탔어요. 겁이 난거죠.
그 이 후에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계속 있었죠.
제가 대학 가기 전 공부하던 학원 근처에 서점이 하나 있었어요.
그 서점에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라는 시집 안에 민중시가 들어있었어요. 여기서 처음 봤어요. 이런 시를 계기로 대학을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시가 무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덩치가 아닌 다른 것들이 내 무기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작은 서점 안에서 했던 기억이 있죠.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갔어요. ㅎㅎ
김남주 시인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이에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침반 역할을 해주기도 하죠.
여담으로 신혼집을 구하는데 망월동 관련한 기억이 계속 튀어오르는거에요. 그래서 일부러 망월동 근처로 얻었어요. 그리고 주말마다 김철수 열사랑 김남주 시인을 생각하며 망월묘에 자주 다녔죠.
충북교육발전소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누군가가 꼬셔서? ㅎㅎ 이런 부분도 있지만 가능성, 필요성, 기대감에서 였어요. 충청도내에서 교육과 관련한 이슈를 생성해 내는 단체가 없었고, 전교조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죠.
다양한 교육 이슈에 대응하고 만들어 내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충북교육발전소에게 바란다!
최근 발전소 활동에는 아쉬움이 있어요. 발전소가 교육적인 어떠한 부분을 만들어내는 것은 느껴지는데 교육관련 이슈 해결을 위해 더 타이트하게 달라붙어야하는 필요성이 있다! 고 느껴져요. 발전소는 회원 구성원 각각의 생각들이 다르긴 하지만 그 단체목적에 위반하지 않는 이상 다양한 교육 이슈에 조금 더 집중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충북교육발전소만의 돌파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갈등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돌파구 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안들을 눈여겨보고 때에 따라 발전소가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생각는 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상식, 실천.
교육이라는 부분이 다음 세대를 위한 것들이잖아요.
눈에 보이는 당장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 경쟁이 더 심화되고 있어요.
교육이라는 부분이 살아남을 사람들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누구나 다 배울 수 있는 부분인데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어떤 준비를 해야 하죠.
평등, 안전, 기후와 관련한 모든 영역들을 아이들에게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에 대한 철학과 관점에 대한 변화도 있어야하겠죠.
다음 세대를 위한 저축 같은 느낌.
근데 최근 들어서는 경쟁교육도 상당히 세련 되죠. 경쟁교육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가면을 잘 쓰고 있어요. 공정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죠. 쌍방향 교육이라던가, 온라인 교육이 평등해보였는데 실질적으로 코로나 이후 느껴보니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이 확실히 드러나고 있죠.
강창수 회원님과 함께 인터뷰 하며 우리 충북교육발전소의 역할,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 대한 것 까지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특히, 노동 인권 관련한 부분에 감수성이 많으시단 생각이 들었어요. 기본적인 것들이 상식적이어야 그 다음의 것들도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 이야기 들으며 저도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두근 두근. 2021년 첫 인터뷰! 잘 읽어보셨나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읽어내려갔을까 궁금하네요.
이야기 하지 않아도, 저마다 품고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분들의 소중하고, 귀한 이야기를 2021년에도 부지런히 다니며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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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삶에서도 상식적인 생각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는게 쉽지 않은데... 참 멋지십니다 ^^
글을 정리하며 강창수 회원님이 살아오신 인생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제 인생도 살짝쿵 정리해보는 시간이었어요.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 잘 이야기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