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이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이도(李棹)이며, 그 후손들의 계대는 몇 대 동안 불분명하다. 그러나 고려 후기 최해(崔瀣)가 찬(撰)한 문의공(文義公) 이언충(李彦沖)의 묘지명이 『동문선(東文選)』에 기록되어 있고, 그 비석이 묘지 옆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면서 전의이씨임이 확인되어, 그 조부부터의 계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의이씨는 이언충과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 문장공(文莊公) 이혼(李混)의 후손에서 인물이 많이 나와 3대 인맥을 이루었다. 또 7세손인 이천(李仟)은 고려 고종 때의 장군으로 크게 이름을 날렸고, 이혼은 시조 이도의 8세손으로 고려 충선왕 때 첨의정승을 지냈다.
9세손이 이언충이며 10세손인 이익(李翊)이 예안(禮安)으로 분적하여 예안이씨로 불렸으나, 근래에 다시 전의이씨와 통합하였다. 이언충은 충렬·충선·충숙·충혜왕의 4대에 걸쳐 벼슬한 명신이며 정당문학, 예문관 대제학 등을 지냈다. 이정간은 이천의 현손이며 이언충의 재종손으로 세종 때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중추원사에 임명되고 왕으로부터 사연(賜筵) 및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또 죽음에 임박했을 때는 세종이 직접 거동하여 ‘가전충효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 여덟 자의 어필(御筆)을 내려, 이후 전의이씨는 모두 이 여덟 자를 가훈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