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아버님 생신, 진갱빈 벌초와 추석 뒷이야기
28일(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시골로 들어갔다. 함께 가기로 하였던 복균이 조카가 경주에서 기다리겠다는 부산 큰누나 차편으로 가게 되었다는 전화 연락을 받아 아내와 단 둘이 출발하였고, 오후 2시 봉덕동 시장에 들렀다가 포항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내달려갔더니 4시 반에 고향집에 도착하였다. 물론 오는 길에 백암대게 두하 조카의 가게에 들려 예약해놓은 문어와 홍게를 싣고 왔다.
5분 일찍 먼저 도착한 백록형님과 초당형님, 금강 형수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성분들은 아버님의 94세 생신 상차림을 준비하였고, 초당형님과 나는 밤을 주우려 나섰다. 며칠 전의 태풍으로 깨끗해진 앞 개울물을 오랜만에 맨발로 건너보았으며,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 그 자체였다. 토실토실한 알밤들을 꽤 많이 주워서 돌아왔다. 그 사이 백록 형님은 집안 청소를 해놓았다.
대구에서 아내가 정성들여 준비해간 음식들과 금강님의 새끼 조기 그리고 시골사랑님의 열무김치 등으로 그럴듯한 생신 상을 차려드릴 수 있어서 모두가 함빡 웃음이었다. 평밭에서 내려온 종형님 내외도 참석하셨고, 울진 원자력에 근무하는 정균이 조카와 초당형님께서 내려오면서 사가지고 온 생일 빵으로 조촐한 축하 파티도 있었다.
이튿날 아침을 일찍 먹고는 벌초를 떠났다. 한사코 따라가고 싶다는 아버님을 모시고, 3형제와 정균이 조카 모두 다섯 명이 진티에 도착하여 8시 반에 ... 가는 길에는 똘복숭아가 때늦은 벌초의 재미와 운치를 더해 주었다. 차를 세워둔 곳에 돌아오니 두어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대구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시골에 도착하였다고 전화가 왔다. 연락 온 소내가자 장조카에게는 이쪽으로 합류하려 애쓰지 말고 이 번 태풍 폭우에 뒤틀려 놓여진 우깨골 할아버지 묘소 좌판을 삽과 괭이의 적당한 연장을 들고 찾아가서 손보라고 일러두었다.
아버님과 정균이를 온정 엘지연수원 빌려둔 방에 쉬게 하려고 하였으나 기필코 따라 가시겠다는 고집으로 다리골 산소 입구에까지 함께 갔다. 영굴 할머니 산소와 다리골 선조 산소 벌초 팀으로 두 패로 나누려고 하였지만, 산소를 제대로 찾지 못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함께 움직이기로 하였다. 먼저 개울 물나들을 넘나들며 가야하는 영굴 할머니 산소로 출발하였다. 11시가 조금 넘었다.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다. 눈감고도 갈 수 있는 조모 산소이다. 벌초 30년 만에 할머니 산소를 제대로 못 찾아 헤매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만들었다. 신발을 벗지 않고 가고 싶어하였던 형님들을 빨리 산소로 안내하고자 내 마음이 평정심을 순간적으로 잃고 말았던 것이다. 산소 계곡 입구까지 잘 도착하여서는 한 칸 위의 엉뚱한 골짜기로 들어가서 헤매고 말았다. 한 참 후에야 잘 못된 길로 들어왔음을 깨닫고, 다시 바깥으로 나갔더니 한 칸 아래의 계곡 입구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나를 믿었던 형님들께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제대로 찾아 할머니 산소 벌초를 해결하고 돌아오니 1시가 되었다. 차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와 정균이 조카와 달콤한 점심을 야외에서 자리를 잡아 맛있게 먹었다. 떡과 과일이 전부였어도 ...요기를 마치니 어인까닭인지 모르게 아버님께서 바로 집으로 가자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다리골 산소 벌초를 꼭 하고 가겠다며 우기고는 백록형님과 함께 산으로 향했다. 잘 마치고 돌아오니 2시 반이다.
돌아오는 길에 온정 LG 연수원 예약 방을 알아보았다. 여남은 명이 넘게 잘 수 있는 큰 방이었다. 저녁에 온가족이 함께 와서 놀다가 목욕까지 하기로 하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육이로 동란때 산화하신 작은 아버지 기념묘소에 가서 술 한 잔을 올렸다. 집에 도착하였더니 용수네 식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깨골 능선에 위치한 할아버지 산소 좌판 뒤틀림을 잘 해결하였고, 그 덕에 돌아오는 길에서 동행하였던 종형님과 함께 귀한 송이도 좀 땄다는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우깨골 입구 산소(진갱빈 꼬꼬 할아버지의 정실 부인 묘소) 벌초하려 갔다오라는 아버님의 분부를 실행하였다. 가고 오는 길에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고...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종형님네 예초기를 반납드렸다.
하루의 벌초를 모두 마치고 집에 왔더니 오후 5시였고, 이내 홍균네가 도착되었다. 아버님 밤 줍는 불편을 들어주고자 고향 집 왼편 밤나무골 산길을 예초기로 벌초하던 백록형님이 말벌에 쏘이는 사고가 있었다. 온 식구들이 5시 반에 온정 목욕하려 올라가서는 따뜻한 온천에 목욕을 한 후 저녁식사까지 연수원 자율식당에서 편리하게 해결하였다. 붉은 바위 형님은 밤 8시 가까이에야 도착되었다. 준비해온 포도 두 상자로 푸짐한 디저트를 ... 남정네들만 10시쯤 집으로 내려와서 잠을 잤다.
이튿날 종형님댁으로 차례를 지내려갔더니 미처 차례상차림이 준비가 덜된 탓으로 평밭 마을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하는 외가댁과 이미 흔적도 없이 허물어진 노동댁 모습이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대구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하신 맏형님과 호균이 조카가 합류되었고...
먼 라오스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온 복균이 조카 새댁을 보았다. 새신랑은 근무를 하려 온정에 가고 없었다. 비록 언어는 잘 소통되지 않았지만 잘 적응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원하였다.
10시 반쯤 진갱빈 고향집에 돌아와서 차례를 지낸 후 문중회의와 형제계 회의를 마치고, 이 번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인물평도 있었다. 백록형님의 말벌집 불사르기 복수도 그 때 쯤에 있었다.
오후에 거일 바닷가로 집안 체육대회 가려던 계획을 내일 일찍 귀경하려는 사유로 가지 않기로 한 채 감을 따거나 떠날 짐을 챙기고는 여섯 명이 건너 편 계곡에 밤을 주우려갔다. 저마다 한 가득 주워서 결실의 계절을 온가슴으로 느끼며 돌아왔다.
저녁을 홍게 파티로 간단히 먹었고, 대구 맏형님네 식구가 귀경 첫 출발하였으며. 남은 서울 형님네도 빌려놓은 온정 엘지연수원 숙소로 떠났다. 막내 동생이 서울에서 뒤늦게 내려온다고 하였으나 아직 도착되지 않았고, 노부모님을 외로이 둔 체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 함께 목욕하며 놀다가 가라는 형님들의 권유를 물렸던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동생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말에 다시 마음을 돌려먹고 도로 온정으로 올라가서 형님, 형수님과 함께 추석날 밤의 기분을 풀고 돌아왔다. 부대시설 양식당에서 생맥주와 오징어 과일 안주 등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밤 11시에 집으로 왔더니 임마뉴엘 동생이 와 있었다.
추석 이튿날이다. 일곱 시에 아침을 차려 먹고 아버지께서 이십 만원을 건네주시며, 옆집 숙웅이 형을 찾아가서 새로 구입하여 교체 설치한 수도 모터기 값을 전하라는 분부가 있었다.
집안을 마무리 정리한 다음 아홉 시에 대구로 나왔다. 오는 길에 후포 어판장에 들려서 싱싱한 오징어와 헷때기 고기를 사가지고 영천 장모님께 문안 인사드렸으며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오후 2시 반 대구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 창균이가 루이와 함께 반가이 맞아준다. 잊어버리지 말자고 2012년 추석 전후의 대강 이야기를 몇 줄의 글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