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그래피티로 세상에 저항하다
BANKSY
in London
LOCATION & TOUR
거리의 예술은 거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 (p 12~13)
이 책에 소개하는 그래피티는 대부분 뱅크시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이 거리의 담벼락에 그려진 뱅크시의 작품을 마음대로 옮기거나 사고팔고 있다.
원칙적으로 거리의 작품은 거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피티 작품이 있어야 할 곳은 거리다.
거창하게 '거리 예술품의 민주주의'라든가 '분배의 정의' 같은 것을 논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을 거리의 작품들을 훔쳐 경매에 부치는 데 필요한 가이드쯤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일례로 '쓰레기 처리장의 쥐'가 그려져 있던 문짝은 누군가에 의해 옮겨져서
2008년 9월 스코틀랜드 경매그룹의 현대 예술작품 경매에 등장했다.
그들은 작품의 진위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을 인용했는데,
이를 철회하여달라는 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인용구를 삭제하지 않았다.
작품가격은 대략 3천5백만 원 정도로 책정되었으나 팔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여러분과 같이 뱅크시의 열렬한 마니아일 뿐이다.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나누고자 쓴 것이지,
거리의 작품들을 찾아내어 훔친 뒤 경매에 팔아넘기는 이들이나
그것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카탈로그가 아니다.
또한 나의 책은 재미를 위한 것이지 작품의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뱅크시만이 작품의 진위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피티가 거리의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작품을 흉내낸 모조품도 많고,
작품의 질 또한 원본보다 나은 경우도 많다고 그는 말했다.
뱅크시는 <이브닝 스탠다드>와 인터뷰를 했는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래피티 예술은 지자체 공무원들과 작품 위에 낙서를 일삼는 아이들로 인해 생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술품 펀드 매니저들이 작품을 떼어내 벽난로 옆에 걸어놓는 것은 말이 안된다.
거리의 예술이 거리에 남아 있기 위해서는 모두의 협조가 필요하다.
누구에게도 거리 예술 작품을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
「풍선을 든 소녀」는 여성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뱅크시의 작품으로 꼽히는데,
작품의 의미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소녀는 풍선을 잡으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놓아주는 것일까.
하지만 뱅크시의 책을 찾아보면 의외로 의미가 간단하다.
책의 작품설명에는 '떠나랴 할 때는 호들갑 떨지 말고 그저 조용히 떠나라'고 쓰여 있다.
픽쳐스 온 월스라는 단체에서 이 작품을 판매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작품 설명에는
'뱅크시는 외동아들이었지만 한번도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적이 없다'고 씌어 있었다.
'제이 조플린 화이트 큐브 갤러리' 담벼락에 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6년 중순 6주 동안 그곳에 있었는데, 갤러리 측에서 지운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자신들의 전시된 작품과 비교가 되어 그랬는지 모르겠다.
뱅크시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예술의 주제를 민주화한 데 의의가 있다"고 하면서
"과거에는 고황과 왕자만 초상화가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든 초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초상화는 LA의 모텔에서 자신의 방을 청소해준 '리앤'이라는 씩씩한 청소부를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Banksy
Naked Man/Banksy? 2006년 영국 브리스톨 시 건물 외벽
뱅크시의 서명
<죽음의 신>
210년 5월에 지워져서 지금은 볼 수 없다.
<쥐를 투석기로 겨냥하는 고양이>
역시 지금은 지워지고 없다.
완전 군장을 하고 경계태세 속에 평화 마크를 그리는 군인들
Have anice day
미키와 삐에로 아저씨는 우리의 친구
(아래, 펌글)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구입한 뱅크시의 작품 <여왕2>
<소풍> 안젤리나 졸리가 구입한 그림
붉은 체크무늬 담요를 깔고 파라솔 아래서 백인가족이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고
그 옆에는 배가 홀쭉한 어린이들을 포함한 굶주린 아프리카인들이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1974년 영국 브리스톨 생 영국작가인 '뱅크시(Banksy-본명 Robert Banks)'는 서사적인 구조를 보이면서도 방법적 다양성을 통해 미술의 공적영역을 탐구하는 경향을 보여온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길거리 작품을 이용해 다양한 동시대 문제들을 들춰내고 현대미술이 안고 온 미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나라에는 고작 해외토픽성 가십란에 가끔 등장하는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뱅크시는 현재 데미언 허스트나 트레이시 에민, 마크 퀸 등 YBA로 통칭되는 젊은 작가들 이상으로 유명하다.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 <원시인 마켓에 가다>라는 작품을 몰래 대영박물관에 걸었다.(대영박물관 외에도 뉴욕메트로뮤지움, 부르클린뮤지움 등에도 그는 자신의 작품을 몰래 전시했다. 이 부분은 2부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박물관 측은 작가가 먼저 시인하기까지 이 작품이 걸려 있는지 몰랐고 지속적으로 전시했다.(박물관은 훗날 이 작품을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뱅크시가 이러한 이벤트를 벌인 의도는 장난스러움과 걸작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미술관계자들을 조롱하고 동시에 위대한 작품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역설이 담겨 있다. (사진은 타임지에 실린 관련 기사이다.)
데미언 허스트가 2005년 그의 작품<상어>로 뉴욕 경매에서 140억 원에 팔리는 등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최고의 스타작가로 꼽혔다면 뱅크시는 이들과 달리 철저히 신분을 감춘 채 이름조차 가명을 쓰며 그림을 그리는 ‘익명성’을 무기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 게릴라 예술가 등으로 부른다.
뱅크시는 형식적으로 스프레이 페인트로 벽에 그림을 그리는 낙서화가(Graffiti Artist)이자 공공미술작가에 속한다. 그러나 뱅크시 작품의 정신적 기조는 주로 정치, 사회, 환경, 자본주의, 반전과 평화 등의 주제를 통해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하고 풍자하여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가꾸자는 계몽성을 근간으로 하며 이는 구체적으로 '패러디'와 '차용'을 통해 드러난다. 그가 철저하게 익명을 이용하고 최소한의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으며 심지어 인터뷰조차 대리인을 통해 밝히는 이유는 낙서화를 그리는 행위가 일종의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영국의 법률 때문이다. 그는 이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익명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이를 바탕으로 거침없는 창작의 자유를 누리는 전략을 구사한다.
네이팜탄(2차대전부터 사용되어온 고열 투하 폭탄으로 주변 30미터를 불바다로 만들어 사람을 타죽게하거나 질식사 하게 한다.)에 놀라 발가벗고 길 위를 내달리던 사진 <베트남소녀>가 이젠 맥도널드의 손에 이끌려 걸어 나오고 있다. 어릴적부터 정신을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이러한 유형의 작품은 물론 뱅크시의 작품 속 아이들은 한결같이 이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곤경을 겪는 모습을 하고 있다.
현대물질문명을 시니컬하게 담아 낸 작품
뱅크시의 패러디(parody)
현대미술에 있어 패러디는 식상하리만큼 자주 활용되는 효과적인 하나의 기제이다. 문제는 어떤 작품에 있어 패러디는 ‘표절’이나 ‘도용’, ‘인용’ ‘차용’ ‘패스티쉬(혼성모방)’ 의 사이에서 의도의 차이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규정된다는 점이다. 이에 뱅크시는 확연히 알 수 있는 명화들을 차용하여 형식적인 의미에서의 표절과 도용을 거부하며 조롱된 관행을 패러디로 명기함으로써 그 관행의 지속적인 존재를 보장하는 방식을 취한다. 즉 뱅크시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패러디는 예술의 출처를 밝혀줌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관한 합리성과 합법성에 대한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와 경찰제복을 입은 경찰들의 사적 욕망이나 행위를 드러냄으로서 그 가식성과 권위의 가면을 벗겨낸다.
오히려 뱅크시의 패러디는 구현되어야 할 인류의 공통가치, 즉 환경, 종교, 전쟁, 인종문제를 거론하고 권위와 권력에 대한 저항을 통해 전통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활용된다고 할 수 있다.((主)뱅크시의 일정한 작품에선 차용의 방법 등이 제시되기도 한다. 미술관 가짜 명화시리즈의 경우 차용한 요소 및 ‘차용’원리 그 자체가 작품의 본질을 이루는 경우임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패러디스트 뱅크시 작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기존의 문제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에 복귀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으며 일종의 상식적으로 바람직하다 여기는 역사성과 사회성 대한 관심과 고찰이다. 그가 패러디한 작품들 중 눈에 띄는 것은 에드워드 호퍼(Hopper Edward)의
뱅크시와 어바니즘(urbanism)
도시 곳곳의 벽화를 배경으로 기호화(스텐실 작업)의 의도가 수용자에게 인식되는 방식으로서의 차용을 펼치고 있는 뱅크시는 기본적으로 어바니즘에 입각한 작품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의 주요 무대는 주지하다시피 도시이며 도시적인 삶을 사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을 위한 억압과 강압, 위선과 권위에 대해 도발적인 자세를 취한다. 특히 이미 잘 알려진 브루클린, 메트로폴리탄, 루브루, 자연사박물관,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벌인 가짜 그림 걸기 등의 에피소드들은 저항으로서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뱅크시 작품에 배어있는 근원주의는 그것이 철학적이랄 수는 없지만(정보의 빈약으로 검증할 수 없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근원, 중심, 기준 및 궁극적 의미에 자신만의 생경한 잣대를 들이대는 여러 긍정적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으며 소수민족과 제3세계 등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 지배구조에 의해 억압받는 객체의 해방과 경직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열린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뱅크시는 여타 포스트모더니스트와 맞닿아 있으며 미술관이나 경찰, 백인 등 엘리트주의에 반대하여 대중성의 부각을 통해 소외된 객체들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뱅크시 작업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동물은 쥐와 아이들이다. 이것들은 대체로 의인화의 도구로서 사용되며 그것들의 역할과 행동은 다양하다. 평화마크를 목에 걸고 A(무정부주의 Anarchism)자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는가하면 우산, 낙서를 위한 마커, 스프레이깡통을 들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쥐의 메타포는 작가자신의 욕구나 심리적인 상황이다. 시궁창을 뒤지는 쥐가 평화를 요구하고 자유를 달라고 하며 인간의 권위에 거세당한 불특정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뱅크시가 그리는 아이들은 세상의 폭력과 부당함에 희생당하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자기 몸보다 큰 폭탄을 껴안으며, 네이팜탄에 놀라 발가벗고 길 위를 내달리던 <베트남소녀>가 이젠 맥도널드의 손에 이끌려 걸어 나오고 있다. 폐허위에서 인형을 든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에게 접근하려는 구호반원들을 사진기자와 텔레비전이 제지하고 있는 그림에선 미디어의 냉혹함과 잔인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뱅크시가 아이를 소재로 하는 이유는 순진한 그들이 한결 같이 이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곤경을 겪는 모습에 대한 관심이랄 수 있다. 뱅크시의 그림들은 풍자화된 탓에 웃음이 나오는 게 사실이지만 그 뒤에 머무르는 의미가 가슴에 콕콕 와닿는다는 점에서 여타 작가들의 작업스타일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뱅크시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영국 <가디언> 기사
뱅크시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벽이다. 벽이나 간판 등에 인쇄물을 붙여 작업해온 바바라 크루거나 제니홀저, 게릴라 걸스와 같은 이미 잘 알려진 작가들처럼 그 역시 벽을 사용한다. 또한 익명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게릴라 걸스와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뱅크시는 혼자 활동하며 변장을 주로 할 뿐 가면 등을 뒤집어쓰진 않는다. 뱅크시는 벽 이외에도 종이, 캔버스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그는 다른 작가들이 매체를 다양하게 끌어 들이는 것과 달리 매우 단순한 기법의 스텐실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는 재빠르게 원하는 그림을 그린 후 역시 빨리 도망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선호된다. 뱅크시는 결과적으로 미술관, 화랑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기존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심지어 합법과 위법을 넘어 대중적인 소통을 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들은 공공미술의 범주에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뱅크시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주제는 정부와 권력이며 거의 부정적인 시각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나듯이 그는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라고 지칭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제복을 입은 경찰들은 사적 욕망이나 행위를 드러냄으로서 그 권위의 가면을 벗는다. 동성끼리 키스를 하는 경찰(작품 <키스하는 경찰>), 멋지게 치장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경찰, 노상방뇨를 하는 경찰도 그려놓는다. 제복을 벗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경찰이 아니며 또한 제복 뒤에 숨겨진 권위와 권력의 음험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전쟁이나 폭력 등에 관한 작품도 매우 많이 남기고 있다.
최근엔 영국의 이라크전쟁 지원에 대한 항의성 그림들을 여러 곳에 그리고 있는 데,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6년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콴타나모 수용소에 있는 포로의 모습을 한 인물상을 세워 놓은 예이다. 이 작품은 세계의 인권을 감시하고 간섭하는 미국이 전쟁포로에 가한 반인권적 처사에 대한 항의성 작품으로 폐장시간까지 다수의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었다. 뱅크시는 이전에도 유사한 작품을 발표한바있다. 화려하게 주목받을 무렵인 2005년 8월, 뱅크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건설한 가자지구 거대한 국경의 한 벽에 아이가 물통을 들고 있는 <페인트 통을 들고 있는 소년> 벽화 등을 그려 화제가 되었다. 유엔으로부터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통고를 받았고 이스라엘 병사들이 끝까지 총을 겨누고 있었지만 680km에 달하는 장벽에 모두 9점의 작품을 남겼다.
“팔레스타인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드는 벽”이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규탄하는 이 그림들은 벽을 넘어, 혹은 뚫거나 벽이 사라진 상상을 담은 내용들이었다.(뱅크시는 이 벽을 없애고 대신 음악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미술관을 만들고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 대한 뱅크시의 저항과 고발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의 피크닉>이란 작품을 통해 백인들의 부와 안락함이 얼마나 인종이기주의적인 것인지를 고발하고 인륜에 대한 본질보다 매체의 속성을 시각화한 <특종>, 평화로운 가운데 감시카메라가돌아가는 라는 작품으로 감시받는 현대사회의 오늘을 말한다.
부뱅크시가 <뉴욕 타임즈>나 <가디언 언 리미티드> 등 해외토픽으로 잘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5년 행해졌던 일련의 ‘미술관 테러’ 때문이다. 그는 ‘미술이란 우리에게 대체 무엇인가’라는 테마를 설정하고 2005년 3월부터 뉴욕근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브룩클린미술관, 미국자연사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작품을 슬쩍 걸어 놓는 게릴라 전시를 추진했다.
뱅크시는 먼저 모자에 수염으로 변장한 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 한쪽 벽면에 방독면을 쓴 여인의 초상화인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라는 작품을 걸어 놓았다. 이 그림은 설치 다음날까지 전시되었다. 뱅크시는 메트로폴리탄에 이어 뉴욕현대미술관에는 <토마토캠벨수프>라는, 앤디 워홀을 조롱하는 작품을 몰래 내걸었다. 지나치게 추앙받는 작가와 작품을 놓고 ‘미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는 셈이었다. 이 작품은 내리 3일간 발각되지 않고 전시되었으며 브룩클린미술관에는 <스프레이 페인트 통을 들고 있는 남자>를, 자연사박물관엔 미사일과 폭탄으로 중무장한 곤충 <딱정벌레>사진을 살짝 걸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