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인니어'라고 통칭하는 인도네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서 ‘인도네시아어’를 검색해 보면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 자위 문자: ???? ?????????), 통칭 인니어(印尼語)는 인도네시아의 공용어이다. 이 지역의 교역어인 말레이어의 한 방언이 공용어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시아어와 아주 유사하여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서법도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말레이시아어와 마찬가지로 라틴 문자를 사용한다(때로는 자위 문자도 사용된다). 형태론적으로는 한국어, 일본어 등과 함께 교착어에 속하며,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한다. 사용 인구가 5백만 이상으로 많은 인도네시아어의 다른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 언어 중에서는 미낭카바우어와 계통상 가까운 편이다. 또한, 마다가스카르의 공용어인 마다가스카르어도 이 언어와 비슷한 체계를 지니고 있다.”(출처: 위키백과)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참을 들여다봐도 저 글 속에서는 인도네시아어가 무엇인지, 어떤 말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인도네시아어는 매우 생소한 언어이다. 내가 처음 인도네시아어를 접했을 때의 생소함은 뭐랄까? 마치 무속인의 주문을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동물의 소리 같은 느낌도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흔히 들어 왔던 다른 언어들에 비해 덜 발달된 언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도네시아어는 한국어에 비하면 문법도 단순하고 어휘도 적은 편이어서 낯선 발음에만 조금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언어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어에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삶을 고스란히 표현한 단어들이 많다. 또한 단순하고 쉽게 만들어지는 단어들의 조합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하나의 단어에 여러 단어를 붙여서 만드는 새로운 단어들의 향연은 참 흥미롭다. 적은 수의 어휘를 이용해 수없이 많은 문장을 만들고 새로운 어휘를 만들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단어를 잘 활용한다고 해야 할까? 새로운 단어지만 새롭지 않아서 재미난 말들, 쉽게 만들어진 말이지만 너무나 딱 떨어지게 의미가 맞아서 무릎이 ‘탁’ 쳐지는 단어들을 만날 때마다 잘 웃고 놀기 좋아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 투캉(Tukang)이라 불리는 만능 해결사
인도네시아어에 ‘투캉(Tuka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기술자나 숙련공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처음 이 단어의 의미를 배우고 나서는 우리말의 ‘-장이’쯤으로 생각했는데 실생활에서는 더 넓은 범위로 쓰인다. 어찌 보면 그저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안에 무엇인가가 고장 나거나 망가지면 인도네시아 인들은 투캉을 부른다. 화장실에 문제가 있으면 ‘투캉 토일릿(tukang toilet)’을 부르고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투캉 아체(tukang ac)’를 부른다. 문을 고치는 사람은 투캉 핀투(tukang pintu)라고 한다. 집수리를 할라치면 모든 투캉들이 총출동한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을 하는 것뿐인데 왜 굳이 투캉이라는 말을 붙여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자신이 그 분야의 투캉이라는 것에 만족해한다. 투캉이라는 말은 장사꾼들에게도 흔히 붙여서 쓴다. ‘투캉 아이르(tukng air: 물 장수)’, ‘투캉 로티(tukang roti: 빵 장수)’ 같은 말이 그렇다. 때때로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를 직업일 때는 투캉만 붙이면 된다.
그저 ‘~하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 해석하면 될 듯하지만 이들은 투캉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는 꼭 투캉을 부른다. 이제는 내게도 익숙해진 투캉들, 나도 이제는 ‘투캉 자힛(tukang jahit)’을 불러서 옷을 수선하고 구두 굽이 망가지면 ‘투캉 스파투(tukang sepatu)’를 찾아간다. 인도네시아에는 투캉이라는 만능 해결사와 투캉이라는 만능 단어가 있다.
인도네시아 주택가에서 볼 수 있는 투캉 자힛(Tukang Jahit: 의류 수선공)
모든 일은 ‘틈팟(Tempat)’에서 한다.
인도네시아어에는 투캉이라는 말처럼 만능인 단어들이 몇 개 더 있는데 그중 가장 흔히 쓰는 말 중 하나가 장소 혹은 그릇이라는 의미의 틈팟이다. 틈팟이라는 단어 역시 다른 단어와 결합해서 여러 가지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 같은 단어다. 요리는 하는 곳은 ‘틈팟 마삭(tempat masak)’이라고 하고 주차장은 ‘틈팟 파키르(tempat pakir)’라 부른다. 장사는 ‘틈팟 주알란(tempat jualan)’에서 하고 물을 ‘틈팟 아이르(tempat air)’에 담고 꽃은 ‘틈팟 붕아(tempat bunga)’에 꽂는다. 그렇게 여러 틈팟을 거쳐 하루를 마치면 ‘틈팟 티두르(tempat tidur)’에서 잠을 잔다. 투캉만큼이나 만능이다. 장소에 대한 마땅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으면 틈팟만 붙이면 대개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 일이 틈팟에서 이루어진다. 여러 투캉들이 여러 틈팟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나 역시 오늘도 여러 틈팟을 거치고 여러 투캉들과 만난 후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을 맞는다.
소박하고 초라하지만 따뜻한 식사가 준비되는 공간, 부엌을 틈팟 마삭(Tempat Masak: 요리하는 곳)이라 부른다.
인도네시아어 속에 투캉이나 틈팟 대신 쓰는 고급 단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이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언어들은 이렇게 쉽고 단순하고 또 재미있다. 우리말에 비해 어휘가 덜 분화되어 있는 것 같지만 인도네시아어의 그 간결함과 소박함은 인도네시아인들을 닮았다. 그리고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많은 인구와 넘치는 노동력 때문에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투캉은 고단한 삶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는 말일 것이다. 그들이 진정한 투캉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을 미래를 꿈꾸게 하는 단어라면 좀 거창할까? 또, 넓디넓은 땅에서 욕심 없이 살았던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특정한 장소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공간을 분리하고 나눠서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하나의 단어에 이런저런 말을 갖다 붙여 필요할 때 쓰고 다시 빈 공간으로 놔두는 것은 또 나름 이들의 철학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자본주의 대도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자카르타에서는 이제 틈팟이 아닌 특정한 장소의 이름이 더 자주 불리는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나는 아직은 순수한 인도네시아인들처럼 순하고 소박한 이들의 언어가 좀 더 오래 남아 주길 바란다.
글_황희연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자카르타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강사로 활동 중이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연결하는 양방향 문화 홍보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