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마당 오픈티켓 리뷰
4천원의 행복
오픈티켓 한 장으로 보내는 '깨알 같은' 하루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 할 지 모르겠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할인티켓이나 할인카드, 할인 쿠폰 이런 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굉장히 얄미운 존재라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생각해보라. 그 티켓(내지는 쿠폰)들은 대충 훑어 봤을 때, 표면적 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관대하고 배려깊은 척 혼자 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맨 밑에 손톱 만한 크기로 쓰여 있는 글씨들이다. '주말 공휴일 제외', '중복 사용 불가', '4인 이상 사용 가능', '얼마 이상 구매시 사용 가능', '어찌어찌 할 때 제외'... 그 글귀들 다 읽기도 전에 화가 나서 에잇 거리며 구겨 버린 쿠폰들만 지금껏 몇 장이었는지 셀 수 조차 없다. 아니 이게 무슨 쿠폰이야. 맨날 다 해 줄 것처럼 해놓고선, 결국엔 제약 많이 걸어서 쓰지도 못하게 하니까, '쿠뻥'이네 , 쿠뻥. 항상 이런식이었기 때문에 나는 관대함을 앞세우고 강조하는 류의 티켓을 전혀 신뢰하지 않으며 살았다. 분명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티켓들에게 잔뜩 마음 상해 있는 우리들에게, 상상마당 오픈티켓은 '걱정마, 내가 있잖아.'라고 말하며 손 내밀어 주는 티켓이다. 선한 표정으로 손 내밀어주니 더 의심스러워 보이기는 했다. 제약이 너무나도 많은 요즘 티켓과 쿠폰들에게 질릴대로 질려버린 우리들 아닌가. 이렇게 다 '오케이'해 줄리가 없다는 거다. 분명 주말에는 사용이 안 될 것이고, 한 번에 하나씩만 쓸 수 있을 것이고, 영화도 특정 영화만 가능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니, 믿었다. 그렇게 나의 불신을 믿고 사용하게 된 오픈티켓. 한국 말로 하면 '열린 입장권'.얼마나 열려있는지 한 번 보도록 하자. 가재미눈으로 봐도 좋다. 나중엔 그 가재미 어디 가고 없을 것이다.
때마침, 오픈티켓을 사용할 당시에 나는 돈이 없었다. 분명 월급이 들어 와야 했었던 날인데, 주말이어서인지 어쩐건지 야속한 회사 사장님은 계속 나의 빈 통장을 더욱 쓸쓸하게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따질 수는 없고, 동시에 이렇게 좋은 휴일은 그냥 집에만 있을 게 아니라 알차게 보내고 싶고... 그래서 오픈 티켓 하나 믿고 잠실에서부터 홍대 상상마당까지 오게 되었다, 무거운 육신을 이끌고. 내 지갑엔 달랑 오천원 한 장이 외롭게 승차중이었다. 소중히 모셔야 할 내 마지막 현금이었다.
오픈티켓은 상상마당 1층 매표소에서 판매한다. 티켓은 깔끔한 폴리백에 해당 달 상상마당 프로그램 안내서와, 근처 맛집 쿠폰 한 장 이 들어있었다. 과연 5월이라고 5월에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있다. 티켓 오른쪽에는 분야별로 공짜티켓 역할을 하는 쿠폰들이 귀엽게 분할되어 있다.
(▲오픈티켓의 앞면과 뒷면. 오른쪽 밑 떨어져 나간 두 칸에는 카페와 미션 관련 쿠폰이 붙어 있다)
일단, 오픈티켓으로 영화티켓을 먼저 끊었다. 어찌하다보니 네시 영화를 끊게 되었다. 헌데 지금 시간은 열두시. 영화를 보기까지 시간이 많이 비어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6층 카페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블랙앤화이트 차림의 종업원 분들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열두시 약간 넘은 시간이었고, 카페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첫번째 손님인가 보다.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종업원 언니에게 미리 물어보았다. 언니, 오픈티켓 쓸 수 있어요? 네, 그럼요. 이 곳 종업원 언니(물론 나보다 어린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들은 어쩜 다 이리도 친절하고 예쁘신지. 단 음료가 마시고 싶어 아이스 초콜렛 라떼를 시켰다. 혼자 앉아있는 동안, 책이라도 읽어볼까 해서 그간 내 가방속에서 계속 자고 있던 소설책 한 권을 꺼낸다. 올해 초에 산 건데 아직까지 다 읽지 못했다. 핑계거리는 많다. 하지만 많으면 뭐하나, 어차피 결론은 '핑계'아니겠는가.
몇 개월 째 썩혀 놓은 책을 들춰보며 나 자신을 한 없이 자책하고 있을 무렵, 아까 주문을 받았던 친절하고 예쁜 언니가 와서 음료와 머핀을 테이블 위에 놓고 간다.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 입은 하난데 머핀은 두 개다. 괜히 코가 시큰거렸다. 아직 살 만한 세상이로구나. 한 입 먹어보았다. 공짜라해서 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녔다. 보기에도 알차보이지 않은가? 솔직히 고백하면, 진짜 맛있었다. 한 입 먹고 시동이 걸려서, 이른 시간에, 텅 빈 카페에, 나 혼자 앉아서 '예, 저 굶었습니다' 자랑하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머핀을 먹었다. 공복이기도 했다. 아, 그러면 이게 바로 21세기 도시녀들이 즐긴다는 '브런치'인건가? 비록 나는 전쟁 피난 길 중간에 숨어서 주먹밥 먹는 사람처럼 먹어대긴 했지만. 아이스 초콜렛 라떼도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양이 굉장했다. 배도 채우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서 그간 읽지 못했던 책을 즐겁게 읽었다. 물론 중간중간 기억이 나지 않아 후진을 몇 번 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슬슬 카페엔 사람들이 들어왔고, 이내 카페는 거의 만석에 가까울 정도로 북적댔다. 주말은 주말이로구나.
오래 앉아있다보니 조금 졸리는 것 같기도 하여, 카페를 나왔다. 그 다음에 들린 곳은 2층 갤러리였다. 이 곳에 들른 이유는 오픈티켓의 히든트랙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미션은, 미션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싱겁다. 2층 갤러리 안내데스크에 가서 오픈티켓을 내밀면, 도장을 찍어준다. 그 도장 찍힌 티켓을 가지고 다시 1층 매표소로 가면, 무언가 담겨있는 흰 종이봉투를 준다. 이렇게 하면 미션은 완료되는 것이다. 이번 달 미션 선물은 '미니 문구세트'라고 해야할까? 손바닥만한 크기의 무지 수첩과 가죽케이스에 들어있는 자, 그리고 상상마당 로고가 있는 귀여운 책갈피였다. 메모 할 일이 많은 내겐 더할나위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선물도 아니고, 받는 순간 잔잔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이런 선물을 요즘 사람들 말로 '소소하다'고 표현하는건가?
(▲미션 수행 후 받은 선물)
미션 도장 받으러 올라갔을 때, 겸사겸사 갤러리 구경도 했다. 갤러리 관람료는 무료다. 특이하고,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설치예술들을 보며 이건 뭘까? 저건 뭘까? 나에게 질문을 던져봄으로써 수축 되어있던 머릿평수에 자극을 주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작품들을 관람하고, 영화 시간이 되어 갤러리를 나섰다.
(▲상상마당 2층 갤러리)
영화를 보고 나오니 한창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대였다. 벌써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오픈티켓의 위력을 톡톡히 본 것 같다. 이제 라이브 공연 하나 남았는데... 이 하나는 5월 30일에 열리는 [줄리아 하트 단독 공연]에 쓰기로 했다. 매월 오픈티켓 공연 정보는 상상마당 공식 홈페이지 '오픈티켓'코너에 들어가면 자세하게 나와있다.
영화 한 편 8000원, 카페에서 머핀 두개와 아이스 초콜렛 라떼 해서 11600원. 오늘 오픈티켓이 없었더라면 나는 총 19600원을 지불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 가격의 1/5 정도 되는 4000원만 썼을 뿐이고, 선물까지 받았으니... 5월 30일에 있을 줄리아하트 공연은 현장예매 할 시 3만원인데, 나는 그것도 돈 대신 이 작은 티켓 하나면 무료로 관람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상상마당 오픈티켓은 처음에 의심의 눈초리로 일관했던 나를 무색하게 했다. 이 티켓도 뒷장 밑에 작은 글씨들로 사용법과 유의사항들이 이것저것 적혀 있다. 하지만 읽어보면 제약이 되는 내용들은 딱히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말에 가서 잘 쓰고 왔다.
오픈티켓으로 보내는 하루는,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참으로 '깨알'같다. 기대 이상의 것들을 누릴 수 있고, 오픈 티켓을 사용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지하 4층 영화관에서부터 지상 6층 카페까지, 상상마당 유랑을 가능하게 한다. 4000원으로 보낸 '2만원+a'짜리 하루. 만약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마셨으면 4천원이 2천원 된다. 이러다 대머리 되면 어쩌나. 산성비 보다 치명적이다. 머리카락 간수 잘 해야한다. 그건 상상마당이 책임 안 진다.
오픈티켓을 구매하고 싶다면, 매월 초에 구매하는 게 좋다. 이 티켓의 유효기간은 한 달인데, 구매일 이후로 한 달이 아니라, 해당 월 한 달 내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마다 적용 되는 프로그램도 달라서 매월 초순에 구매를 해야 마음이 풍족하고 여유롭다. 늦게 구매하면 이걸 빨리 쓰긴 써야겠고, 시간은 없고, 해당 공연은 놓칠 거 같고... 만 오천원 주고 과젯거리 하나 더 만든 것 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티켓 한 장에 만 오천원, 몸서리 치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나는 사용 당시 한 번에 몰아서 썼지만, 한 달 동안 두고두고 쓰기 안성맞춤인 티켓임은 확실하다.
집에 돌아오고, 지갑을 열었다. 천원짜리 한 장이 남아있었다. 오늘 하루종일 나는 4천원을 소비한 것이다. 이 천원은 고이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교통비에 보태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오픈티켓은 직접 사서 쓰는 것도 괜찮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어정쩡한 가격대의 상품권들보다, 보고, 듣고, 맛 보고, 얻는 게 많은 상상마당 오픈티켓은 상상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오늘 너무 좋은 하루 선사해 준 오픈티켓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바다.
글, 사진 | 상상마당 서포터즈 2기 신지윤
첫댓글 지윤 읽어보니, '4천원을 소비한 것이다"라는 부분이 티켓가격은 제외했다는 생각이 강하네. 티켓을 구매할려면 온라인이나 현장에서 구매를 해야되는데 지갑에 5천원밖에 없는 지윤이 어떻게, 언제 오픈티켓을 구입했을까 라는 문맥이 필요할듯 하오.. 가령 "미리 월급이 남아 있을 때 구입해 놓은 오픈티켓 하나만 믿고 상상마당으로 왔다.." ....
스토리텔링에 빙의한 웅님...
제가 그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수정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카페에서 스크랩 해 온 글이라 수정이 안될 것 같고요ㅠ스크랩 게시물은 수정이 불가하다고 나와서...사이트에 올리는 글은 꼭 수정해서 올리겠습니다!
지윤! 오픈티켓으로 이렇게 글을 재밌고 깔끔하게 쓸 수 있다니 놀람! ㅋㅋ
저는 대부분 일기형식이라서ㅋㅋ이런 칭찬 제겐 과분해요ㅠㅠ흑흑언뉘감사합니당
오! 재밌다 !
나도 재밌게 읽고 내용 홈피에 오픈시켰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