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많은 보살 한 분께서 고방 툇마루를 닦고 또 닦으신다. 내 눈에는 윤기가 흐르는 것이 깨끗하기만 한데 멈추지 않는다. "까마귀가 자귀밥을 물고 간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봉곡사 전설 맞나요?" "지는 몰라유, 스님네들이 아실 텐데 지금은 안 계시네유." 확인해 보니 김천 봉곡사의 전설이다. 사찰 이름이 빚어진 오해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귀밥이라는 우리말이 반가워 허접스러운 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믿어버렸다. 자귀는 목재 다듬는 공구다. 망치처럼 생겼는데 자루 끝에 직각 방향으로 도끼날 같은 것이 달렸다. 굽은 나무를 다듬는 데 그만이다. 자귀로 깎아낸 나뭇조각을 자귀밥이라 하는데 가끔 새들이 날아와 물어가기도 한다. <곱게 늙은 절집 중에서 p314~315>
봉곡사 [鳳谷寺, 김천 봉곡사]
도선의 창건설화가 전한다. 도선이 산 너머 구성면 연곡(燕谷)에 절터를 닦고 목수를 불러 나무를 다듬는데, 까마귀들이 날아와 재목 조각을 자꾸 물어갔다. 도선이 까마귀들을 따라가 보니 지금의 절터에 물어온 재목을 쌓아두는 것이었다. 도선이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니 과연 명당자리인지라 자신이 새만도 못하다고 한탄하면서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지안출판사에서 나온 심인보의 『곱게 늙은 절집』을 읽다가 내 근심이 풀어지고 마음이 놓이는 경험을 했다. 우연히 책 속에 언급된 한 절이 고향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사진 찍기 좋아하는 동생이 책을 훑어보다가 호기심이 당겼나보다. 주말에 그 절집으로 가기로 했다.
동생이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꽃들이 잔치를 이룬다고 한다. 또 비구니 스님 세 분이 계시는 곳이라는 말도 전해주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꽃 잔치가 열릴 만큼 꽃이 많다고 하니 무척 궁금해졌다. 항상 이름난 절집만 찾아다녔는데 심인보의 『곱게 늙은 절집』을 읽고선 호젓한 산사가 주는 편안함이 궁금해졌다. 큰 도로엔 이미 꽃들이 다 져버리고 나무들이 짙은 녹색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꽃들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절로 났다. 큰 길에서 우회전하여 계곡을 따라 한참 들어갔다. 절로 가는 길은 가난해야 제격이라더니 상점도, 술집도, 모텔도 없고 하다못해 가로등도 중앙선도 없는 가난한 길을 한참 갔다.
가는 길에 봉곡사보다 더 유명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 300호의 600년 된 조룡리 은행나무 혹은 섬계서원 은행나무라 일컫는 은행나무이다. 이제 은행잎이 파릇하고 조그맣게 나기 시작하여 은행나무인지 뭔지 구별이 가지 않았지만 나무의 굵기와 그 크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또 유주라고 불리는 뿌리의 호흡작용을 돕기 위해 공기뿌리 역할을 하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런 유주가 난 것은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한국에 몇 개 없다고 한다. 나뭇가지에 나무가 자라고, 동굴 속 종루마냥 가지 밑으로 뻗어 나온 유주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섬계서원을 지나 계곡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좁았던 길이 넓어지면서 마을이 나타난다. 멀리서도 빨간 꽃의 모습이 보이는데 홍매화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너무나 특이하게 마을 입구에 여느 집과 다름없이 자리 잡고 있는 절을 보니 왠지 범상치 않아 보이기도 했다. 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절로 걸어가는데 그 멀리에서도 절 가득 피어 있는 꽃들이 눈에 들어 왔다.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하며 경내로 걸어갔다.
봉곡사 일주문 앞 화단에 피어 있는 홍매화와 라일락의 향기가 절에 오는 사람을 반기듯 향기로웠다. 문을 들어서자 절 안은 꽃 천지였다. 적목련, 홍매화, 꽃잔디와 철쭉, 화단에는 할미꽃과 금낭화, 매발톱?까지 이곳이야말로 극락 같은 곳이었다나.^^
향긋한 향기를 내 뿜던 라일락 꽃 사이로 두 마리의 나비가 나란히 향기에 취해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어도 그 둘은 떨어질 줄 몰랐는데 나비들도 분명 꽃향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덩굴나무와 꽃잔디가 깔린 돌계단을 올라가자 대웅전이 보인다.
이름난 절의 대웅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으나 호젓한 이 절집에 잘 어울리는 대웅전은 두 마리의 용이 현판 옆에서 처마를 받들고 있었다. 처마의 단청은 새로 채색한 듯 호화스런 색채를 띠고 있었지만 문에 그려져 있는 색 바랜 탱화가 그나마 오래된 절집임을 보여주었다.
절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대웅전 앞에 서서 멀리 산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기분에 절집을 찾아 근심을 풀고 마음을 놓는구나 싶다. 꽃 사진에 푹 빠진 동생은 정신없이 사진 찍느라 바쁘고 조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빠를 불러대며 여기 제비꽃 있어, 여기 할미꽃, 금낭화가 대개 많아 하며 호들갑을 떤다. 비구니만 있는 곳이라 그런가? 유난히 할미꽃이 많이 보인다. 일부러 심어 놓은 듯 꽃들 사이로 할미꽃 역시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조금 있으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 닥쳤다. 조용하던 산사가 이내 시끌벅적해졌다. 조카가 할미꽃을 가리키며 이 할미꽃은~하고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는데 그 무리들 중의 한 아줌마가 조카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뭐? 외할매꽃이라고? 한다. - -; 오늘 아마도 누군가의 제를 지낸 모양이다. 그들은 예약이라도 해 놓은 듯 우르르 대웅전 옆 스님들의 처소로 들어갔다. 다시 고요한 적막. 역시 산사는 조용해야 맛이 난다.^^
스님들 처소 옆으로 장독대가 보인다. 양지바르고 높은 곳에 마련해 놓은 장독대는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인다. 오랜만에 본 장독대의 모습이 정겨워 한참 들여다보았다. 꽃잔디와 거무튀튀한 장독의 모습이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한참 동안 경내를 돌아보고 배가 고파 밖으로 나왔다.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지라 주차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싸 온 김밥과 음료를 마시며 절 주변을 바라보았다. 다시 보아도 절이라기보다는 한옥 마냥 너무나 평범해 보였다. 올해는 꽃구경 한번 못하고 보내는구나! 아쉬워했는데 늦은 봄에 이게 웬 꽃인지 모르겠다.^^
이곳에 태어나 오래도록 살았으면서도 내 사는 곳에 이렇게 예쁜 절이 있는지 천연기념물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으니 이 얼마나 무심한 주민이었는지….
고향 근처엔 아주 큰 절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절집이란 늘 그렇게 유명하고 이름나고 사람들이 북적대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을 버려도 좋을 것 같다. 꼭꼭 숨어 있는 산사의 호젓함을 맛보았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심인보의 『곱게 늙은 절집』을 들고 누군가 한다던 체험독서를 꼭 해봐야겠다고 혼자서 생각한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해우소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비봉산(飛鳳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922년(태조 5)에 승려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이 산 너머에 있는 구성면 연곡(燕谷)에 절터를 닦고 목수를 불러 재목을 다듬는데, 까마귀들이 날아와서 재목을 다듬고 난 조각들을 자꾸 물어가기에 신기하게 생각하고 따라가보니 지금의 봉곡사 터였다.그 자리가 더 훌륭한 곳임을 판단한 도선은 자신이 미물인 새만도 못하다고 탄식하면서 자리를 옮겨 지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래되지 않으나 전성기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40여동의 당우와 오층석탑·석교(石橋) 등이 있었으며, 승려 1,000여명이 기거하였고 경남 일원과 전북 일원까지 말사(末寺)를 거느렸던 큰 절이었다고 한다.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소규모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동상실(東上室)을 비롯하여 부속건물 2동이 있다. 대웅전은 1707년(숙종 33)에 세번째의 중수를 거쳐 1916년에 단청과 함께 중수되었으며, 명부전은 1690년에 승려 대완(大完)이 중건하였고, 1908년에 중수하였다.
≪참고문헌≫ 내고장 우리향토(금릉군, 19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