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노태맹 수상자 신작시/앙리 쉬르 블라제에서의 산책 외 1편

[사이펀]

▪수상자 신작시/노태맹

앙리 쉬르 블라제에서의 산책 외

-영화 「프랜치 디스패취」에 부치다

벤야민 씨는 1929년 사람들이 붐비는 정육점 파사쥬(passage)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고, 1968년이 되어서야 경비원 한 명만 지키고 있는 시립 도살장 입구로 빠져나왔다. 대공황으로 배고픈 줄을 서던 이들은 어느덧 히피가 되어있었고, 밤거리의 여자들은 조금 더 날씬하고 화려하게 변해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강은 하루에 한 명씩의 시체를 어딘가로 실어 날랐다. 살아남은 벤야민 씨는 자전거를 타고 유리 천정이 사라진 파사쥬를 달리거나 검은 쥐들이 끄는 지하철을 타고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그림 도록을 들춰보며 글을 썼다.

건축이 철골 건축의 등장과 함께 예술에서 분리되어 홀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회화에서도 파노라마의 등장과 함께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파노라마의 보급이 정점에 달한 시기는 아케이드가 등장한 때와 일치한 다.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기술적 묘책을 동원해 파노라마를 자연과 완전히 닮은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풍 경 속에서의 하루의 시간의 경과, 달이 떠오르는 모습, 폭포 소리 등을 모방하려고 했다.

벤야민 씨가 그 살인 죄수 화가를 만난 건 미술품 경매 모임을 통해서였다. 꽃병, 과일 바구니, 산, 강 따위는 절대 그리지 않는다는 화가는 비둘기 피로 붉은 꽃을 그렸다. 아무도 떼어갈 수 없게 건물 콘크리트 벽에 그림을 그렸지만, 소용은 없었다. 벤야민 씨는 그가 스스로 죽기 위해 그림으로 굴을 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도와줄 것은 없었다. 죽여달라고 했지만 누추함과 외로움과 고통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이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Fortschritt)라고 일컫는 것은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벤야민 씨는 자신도 누군가가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찰과 대치한 바리케이드 위에서 그가 마주한 이것이 혁명인지 진보인지 또 어떤 것인지 잠시 생각했다. 안면 있던 늙은 여기자는 늘 우는 얼굴이었으나 그것은 자신의 편견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벤야민 씨는 생각했다. 그러나 젊은 혁명가의 시신을 강이 끌고 내려올 때 벤야민 씨의 산책은 하루 멈추었다. 밤 새 그는 잡지의 부고 기사 위에 앉아 있었다.

“아름다움은 항상 독을 가지고 있지요.” 기자가 말했을 때 벤야민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리사는 그 독이 바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어요. 딜레마죠. 아름다움을 위해 우리는 죽어야 하니까요.” 요리사가 떠나고 잡지가 끝났을 때 벤야민 씨의 산책도 끝이 났다. 그러나 이것을 인과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오랜 습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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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아래에서 읽다

매미가 느티나무 등걸에

악착같이 소리를 박아 넣고 있다.

느티나무에 박히지 않는 소리는

용접 불꽃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파업 노동자가 쇠 울타리에

자신을 가둬 놓고 있는 동안

8월이 왔다.

어리석은 달팽이는 살구나무 속으로

뜨거운 살을 안간힘으로 밀어 넣고

시간은 흰 구름 떼처럼

비-동시대적으로 떠다녔다.

사람들의 울음에서 피 같은 쇠 냄새가 났다.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리며

그 긴 그림자를 읽었다.

정신(animus)은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권리에 귀속될 수 없다. 왜냐 하면 아무도 자유롭게 추리하고 무엇에 대해서든지 판단할 수 있는 자신의 자연권이나 능력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으며 또한 양도하도록 강요당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정신을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는 전제 정부로 여겨져야 하며, 그 정부가 각 사람들이 무엇을 참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무엇을 거짓으로 거부해야 할지를 그리고 나아가서 어떤 견해로 신에 대해 헌신해야 하며 각자의 정신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규정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주권이 신민에게 불의를 행하는 것이며 신민의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여겨진다.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강영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