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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9강 - 1(2010. 11. 1.)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대방광불화엄경 왕복서) 2
(9강 유인물)
世主妙嚴品-七,大衆의 得法과 讚佛-3,十行位衆-
(6)第五行의 主火神
一心頂禮 盡十方三世(진시방삼세) 一切諸佛(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일체현성승)
我弟子等(아제자등) 講論三藏(강론삼장) 唯願三寶(유원삼보)
爲作證明(위작증명)
南無本師釋迦牟尼佛(나무본사석가모니불)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隅(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意(원해여래진실의)
인사 올리겠습니다.
먼저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늘 해 왔던 대로 유인물부터 보겠습니다.
천하의 제일 명문이라고 알려져 있는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왕복서) 2. 그 두 번째 글입니다.
당나라 청량산 대화엄사 사문, 澄觀 淸凉國師(징관 청량국사)가 찬술한 글인데, 화엄경 序文입니다. 화엄경 공부를 제일 많이 하셨고, 또 화엄경에 대한 연구 서적도 청량스님이 제일 많습니다. 또 이 분은 타고난 자질은 우리가 언급할 바가 아니고, “참으로 위대한 화엄 종주였다.” 이렇게 한 마디로 요약 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제4門인데요.
설법하는 위의가 두루 미치다. [說儀周普(설의주보)] : 설하는 위의가 두루 미치다. 이런 뜻입니다. 일단 한번 같이 소리 내서 읽겠습니다.
湛智海之澄波(담지해지징파)가 虛含萬象(허함만상)이요
皎性空之滿月(교성공지만월)이 頓落百川(돈락백천)이로
다.
不起樹王(불기수왕)하사 羅七處於法界(라칠처어법계)하
시며 無違後際(무위후제)하사 暢九會於初成(창구회어초
성)이로다.
盡宏廓之幽宗(진굉곽지유종)하사 被難思之海會(피난사
지해회)하시니
圓音落落(원음락락)에 該十刹而頓周(해십찰이돈주)하고
主伴重重(주반중중)에 極十方而齊唱(극시방이제창)이로
다.
지난 첫 번째 장 여러 번 쓰셨어요? “한 100번은 쓰자.” 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湛智海之澄波가, 맑을 잠ㆍ맑을 담. 이렇게 두 가지 음으로 부르는데요. 湛智海之澄波(담지해지징파)가 虛含萬象(허함만상)이요. 그것을 이 화엄경을 설하는데 반드시 의지한 선정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거기 과목에 보면 [의지한 禪定] 이렇게 했어요. 우리가 화엄경은 華嚴三昧(화엄삼매)라고도 부르지만, 그것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海印三昧(해인삼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 해인은 아시는 대로 바닷물이 맑으면 세상의 온 만물이 그 위에 다 비친다. 세상사 그대로ㆍ그리고 세상의 만물, 과거ㆍ현재ㆍ미래, 모든 것들이 그 화엄의 선정 속에는, 그것을 해인선정ㆍ해인삼매. 이렇게 말 하는데요. 해인이라고 하는 그런 선정 속에는 나 나타나게 되어 있고, 그 나타난 대로 그대로 다 우리에게 설파를 하는 것이 화엄경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湛智海之澄波가 虛含萬象이요. [의지한 禪定]
고요한 지혜 바다의 맑은 파도가, 澄波 = 맑은 파도가 텅 비어 萬象을 다 품고, 그랬습니다. 지혜의 바다. 지혜의 바다에 맑은 파도. 이것은 우리가 마음을, 망상을 다 비웠을 때 있을 수 있는 그런 깨달음의 지혜 = 부처님의 지혜. 지혜라고 해서 고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항상 움직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움직이는 것이 흙탕물이 아니고, 澄波 = 맑은 물결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虛含萬象이라. 이 虛자를 어떻게 번역을 할까? 제가 참... “허공처럼” 이용 했다가, 그냥 “텅 비어 萬象을 다 품고” 이렇게 했는데요. 그렇습니다. 마음이 비어야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뭔가 우리의 상식과ㆍ우리의 어떤 틀ㆍ또 우리의 어떤 가치관ㆍ내 나름의 어떤 생활방식ㆍ이래야 된다ㆍ저래야 된다 라고 하는 그런 것이 차 있으면 다른 사람의 삶이 용납될 수가 없습니다. 내 삶의 방식을 비웠을 때 다른 사람의 삶이 보입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는 자기의 그 알량한ㆍ자기의 삶의 방식. 그것만 그저 꼭 옳다고 고집하는데,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요. 그래서 상처주고ㆍ상처받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虛含萬象이라는 말이 참 좋은 말입니다. 맑은 지혜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皎性空之滿月(교성공지만월)이 頓落百川(돈락백천)이다. [應身] 그랬어요. 이것은 밝고 밝은 법성하늘의 둥근달이 한꺼번에 모든 물에 나뉘었도다. = 應身(응신) 그렇습니다. 법성의 바다. 그 皎자는 아주 밝을 교인데, 보통 밝은 것이 아니고 밝을 명자보다도 더 밝은 것이 皎자인데요. 정말 밝고 밝은 법성의 바다. “우리 성품의 바다” 해도 좋습니다. “성품의 하늘” 空자는 하늘입니다. 대개 하늘 天자만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늘을 空자로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품의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 둥근 달이, 그것은 말하자면 표현을 應身이라고 했는데 과목을요.
頓落百川이라. 몰록 100가지의 냇물에 다 떨어졌다. 이 “떨어졌다.”는 말이 거기에 나뉘어 있지요. 그러니까 하늘에 달은 하나인데 千江有水千江月(천강유수천강월)이라고 했듯이, 물이 있는 곳에는 어떻게 1000개의, 100개의 내외겠습니까? 모든 물이 있는 곳에는 다 달이 비추게 마련이지요. 심지어 술잔에도 비추고, 강릉 경포대 가면 그런 이야기 있지요? 술잔에도 비추고ㆍ호수에도 비추고ㆍ바다에도 비추고ㆍ내 앞에 앉은 그 사람의 눈동자에도 비춘다. 이런 말을 하지요? 그와 같이 정말 부처님의 본래의 법신은, 그것을 滿月에 비유를 했는데, 법신은 하나이지만 應身. 우리들에게 응해주는 몸.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몸은 곳곳에 다 비추는 겁니다.
그래서 아수라에게는 아수라에게 맞도록ㆍ가루라는 가루라에게 맞도록ㆍ지옥 중생에게는 지옥에게 맞고ㆍ그래 32응신이라는 말도 있고 그러잖습니까? 그래서 보살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보살의 몸을 나투고ㆍ부처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부처의 몸을 나투고ㆍ비구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비구의 몸을 나투고ㆍ장자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장자의 몸으로 나투고, 이것이 부처님의 應化身(응화신)의 그 한 모습입니다. 그것을 달에다가 비유를 해서 참 멋지게 표현을 했지 않습니까? 불교는 이치가 깊기 때문에 그 이치를 표현하는 글도 이렇게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아름답습니다. 그 다음에는 經을 설한 장소에 해당 되는 것인데요.
不起樹王(불기수왕)하사 羅七處於法界(라칠처어법계)하시며, [經을 설한 장소] 이렇게 했습니다. 樹王이 뭡니까? 보리수나무입니다. 보리수나무 밑에서 부처님이 成道를 하셨는데, 거기에서, 성도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한 채 = 不起樹王. 아니한 채 七處를 法界에다가 펼쳤다. 그랬어요. 우리 첫 시간에 나눠드린 화엄경 구성표에 보면 7처9회. 일곱 곳에서 아홉 번에 걸쳐서 법회를 열었다. 화엄경이 그렇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 七處라고 하는 것을 法界. 온 법계에다가, 거기 보면 온갖 하늘이 다 있고요. 보리수 밑도 있지만 여러 곳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七處를 온 法界에다가 펼쳤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곧 뭐 도솔천궁 품. 무슨 천상에 올라가는 그런 품들이 이제 나옵니다. 거기에 처음 시작할 때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不起樹王처럼 보리수. 부처님이 성도하신 보리수를 떠나지 아니한 채 무슨 야마천에 올라가고ㆍ도솔천에 올라가고ㆍ화락천에 올라갔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항상 깨달음에 근거해서, 깨달음의 안목에 근거해서 별의별 그 장소의 별의별 수준의 사람들에게 맞추어서 설법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어른들이 어린아이 손자 하고 논다고 손자 수준이 된 것 아닙니다. 또 초등학생하고 놀아준다고 해서 초등학생수준이 된 것이 아니라고요. 어른의 자리에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어른의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그 상대에 따라서ㆍ또 근기에 따라서ㆍ수준에 따라서 다 이렇게 맞춰준다고 하는 그런 의미지요. = 不起樹王하사 羅七處於法界. 그 다음에
無違後際(무위후제)하사 暢九會於初成(창구회어초성)이로다.[경을 설할 때] 그랬습니다. 마지막 법문을 後際라 그래요. 後際를 어기지 않고 九會를, 七處九會. 아홉 번의 법회를 열었는데 그 九會를 처음 成道해서 나타내도다. 그렇습니다. 처음 成道 = 初宣(초선). 처음 成道하는데 그 九會 법문이 그 속에 다 드러나는 것이지요. 보리수 밑에서 말하자면 七處를 열고, 成道한 그 도리에서 저~기 화엄경 끝까지 법문을 다 이야기한 것이지요. 화엄경 끝까지 법문뿐만이 아니라, 크게 따지면 저~ 열반경 법문까지도 처음 성도한데서 부터 시작한 것이고요. 처음 성도의 자리에서 펼친 것이다. 참 이것 깊이 음미해보면요? 이것이 정말 의미심장하고, 또 아주 멋지고요.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盡宏廓之幽宗(진굉곽지유종)하사 被難思之海會(피난사지해회)하시니,[가르침 받는 대중] 크고 넓고 유현한 종지를 다 설한다. 그래서 한량없는 대중들에게 베푼다. 難思之海會 = 불가사의한 대중의 모임. 바다와 같이 드넓은 대중모임. 제가 참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이 시대에 이 문수경전연구회가, 이 문수선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이지만 정말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모이셔서 이런 법회를 하는 것. 그대로 海會입니다. 바다와 같이 드넓은 회상입니다ㆍ바다와 같은 그런 드넓은 회상입니다. 여러 스님들. 한 스님에게 일반 신도 100명만 딸려있다손 치더라도 얼마입니까? 대단한 숫자거든요. 그런데 100명이 넘는 스님들도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요. 1000명 이상 되는 스님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니 그야말로 難思之海會. 불가사의한, 헤아릴 수 없는, 생각하기 어려운 그런 드넓은 대중들에게 입힌다. 대중들에게 베풀었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圓音落落(원음락락)에 該十刹而頓周(해십찰이돈주)하고, [경을 설하는 근본] 원만한 음성이 멀리 퍼져 온 十佛刹塵에 한꺼번에 두루하고,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품은 39품 중에 두 품 뿐입니다.
그런데 전부 부처님을 의지해서 보살들이 부처님을 설하는 겁니다. 다른 경전은 부처님이 설하는 것이고, 이 화엄경은 부처님을 설하는 겁니다.
부처님을 표현하는 거라고요. 지금까지 우리가 3권까지 보아왔습니다만,
전부 부처님의 지혜와ㆍ자비와ㆍ그 능력과ㆍ방편과ㆍ과거의 수행과ㆍ과거의 수행의 내용ㆍ과거의 수행의 어떤 시간, 이런 것을 쭉~~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끝없이 부처님의 교화의 그 어떤 행적들을 설하고 있는데요. 화엄경은 그야말로 부처님을 설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주 오히려 부처님말씀 보다도 더 멋집니다.
부처님말씀이 아니라 하더라도 보살의 음성이지만 圓音落落이라. 원만한 음성이 멀리 퍼지는 겁니다. 그것이 十佛刹塵에 한꺼번에 다 그렇게 두루한다. 이런 말입니다. 경을 설하는 근본이 그렇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설법하는 위의를 따로 보이는데요.
主伴重重(주반중중)에 極十方而齊唱(극시방이제창)이라. [설법하는 위의를 따로 보임] 주인이 되면 상대는 벗이 되고, 또 상대가 주인이 되면 그 사람이 伴이 되고, 主와 伴. 주인과 벗이,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도반 절에 가면 도반이 주인이고, 찾아오는 사람은 벗이 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내 절에 오면 내가 주인이고 그 도반은 어제는 주인이었지만 나에게 올 때는 그 사람이 벗이 되고, 이런 식입니다. 법회를 할 때도 늘 그 수준이 누가 높고 누가 낮겠습니까? 하지만 설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면 듣는 사람은 무조건 伴이 되고요. 伴이 설하면 나머지는 전부 또 伴이 되고 그 사람은 주인이 되고요. 그것이 重重ㆍ重重ㆍ重重하고, 無盡(무진)ㆍ無盡ㆍ無盡하다고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화엄경법문은요. 화엄경을 공부해보면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본 것만 하더라도 重重ㆍ重重ㆍ重重아닙니까?
거듭ㆍ거듭, 無盡ㆍ無盡입니다. 그래서 主伴이 重重하며 極十方而齊唱이라. 모든 시방에서 다 같이 노래하도다. 어느 누구 하나 안 빠진다고요. 예를 들어서 한 보살이나ㆍ한 주산신이나ㆍ한 주림신이나 나오면 10명이 다 나오는 겁니다. 원만을 뜻하는 것이고ㆍ시방을 뜻하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꼭 방향을 나누면 우리는 흔히 “사방” 이러지요? 또 잘게 쪼개면 “팔방” 그러지요. 그런데 불교에는 굳이 시방을 말하네요.
그것이 방향도 열 가지 방향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 세상은 현재 있는 이대로 알고 보면 완전무결한 곳이다. 우리의 삶은 완전무결하다. 또 완전무결한 세상에 살고 있고요. 그리고 우리의 삶은 이대로 완전무결하다.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이 화엄경은요. 그래서 따로 애써서 무슨 수행을 하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고요. 그래서 주인과 벗이 重重하여 시방에서 다 같이 노래한다. 서로서로 다 같이 부처님의 경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이야기 다 되어있고요.
그 다음에 제5門은 말씀이 근본과 지말을 다 갖추다.[言該本末(언해본말)] 그랬어요. 이 該자를 잘 쓰는데요. 정말 이것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글자입니다. 그런데 잘 써요. 該十刹而頓周라든지 여기도 또 言該本末해서, 사전을 찾아보면 끓일 해ㆍ포함할 해ㆍ갖출 해, 그런 뜻입니다. 여기는 “모두 갖추고 있다.” 그렇게 했는데 원문 또 같이 읽겠습니다.
雖空空絶跡(수공공절적)이나 而義天之星象(이의천지성
상)이 燦然(찬연)이요 湛湛亡言(담담망언)이나 而敎海之波
瀾(이교해지파란)이 浩澣(호한)이로다 [理와 事를 상대하여 本末을 논함]
若乃千門潛注(약내천문잠주)는 與衆典爲洪源(여중전
위홍원)이요 萬德交歸(만덕교귀)는 攝群經爲眷屬(섭군경
위권속)이로다 [모든 敎를 상대하여 本末을 논함]
두 단락으로 나눠졌는데, 理와 事를 상대하여 本末을 논하는 것이 첫 단락이고, 雖空空絶跡(수공공절적)이나, 비록 비고비어 자취가 끊어졌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텅 빈자리인데 그러나 而義天之星象(이의천지성상)이 燦然(찬연)이요. 진리의 하늘에는 별들이 찬란하고, 우리 의천 대각국사 있지요? 義天. 그래서 저도 그 의미가 좋아서 “如天” 如도 사실은 義나 같은 뜻이거든요. 불교에서 진리라고 하는 “如” 니까요. “여여하다.” 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런 호를 쓰고 있습니다. 진리의 하늘에는 별들이 찬란하고, 정말 한 마디도 붙일 수 없는 그 자리이면서 또 그 이치를 낱낱이 들어서 이야기하기로 하면 그 멋진 이치와, 그 이치를 표현하는 멋진 말들이 너무너무 좋지요. 그 다음에
湛湛亡言(담담망언)이나 而敎海之波爛(이교해지파란)이 浩澣(호한)이라. 그랬어요. 고요하고 고요하여 말이 없으나 가르침의 바다에는 물결이 크고 넓도다. 그렇습니다. 정말 할 말이 없지만 가르침의 바다는 浩澣하지요. 가르침의 바다에 그 물결은 얼마나 넓고 넓습니까? 특히 화엄경을 대해보면 그렇습니다. 법화경이나 금강경 같은 것도 다 대승경전으로 훌륭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정말 浩澣하다. 정말 넓고 깊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화엄경입니다. 그래서 이 화엄경은 그냥 화엄 바다에 푹~ 빠져 가지고 그 맛을 그저 읊조리고ㆍ읽고ㆍ음미하고ㆍ가슴으로 느끼고 하는 그것이 사실은 화엄경을 제대로 공부하는 길이지요. 뭐 설명해 봤자 100분의 1ㆍ100분의 1도 이야기 못하지요. 그러나 조금 안내의 역할이나 할까 하는 그런 기대는 합니다만, 정말 浩澣한 경전입니다. 또 “甚深(심심)한 경전이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단락은 모든 敎를 상대하여 本末을 논한다. 그랬어요.
若乃千門潛注(약내천문잠주)는, 천문으로 스며 흘러드는 것은 온갖 경전의 큰 근원이 되고, 그렇습니다. 與衆典爲洪源(여중전위홍원)이요. 모든 경전의 근원이 되는 것이 화엄경입니다. 화엄경은 없는 이야기가 없으니까요. 또 萬德交歸(만덕교귀)는 攝群經爲眷屬(섭군경위권속)이로다. 만덕이 함께 돌아오는 여러 경전을 거두어 권속을 삼도다. 전부 다른 경전은 화엄경의 권속입니다. 꼭 화엄경의 권속이라고 표시된 경도 있습니다. 그것도 언제 소개해 드리겠는데요. 그렇게 이것은 화엄부다. 화엄부의 경이다. 뒷사람들이 그 내용을 보아서 “화엄부에 속하는 경이다.” 라고 이렇게 명명해 놓은 경이 있습니다만, 여기의 내용은 그 경뿐만이 아니라, “모든 경전들이 전부 화엄부의 권속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攝群經爲眷屬이라. 여러 경전을 포섭해가지고 그것을 전부 내 권속으로, 화엄경의 권속으로 삼았다.
옛날에 어떤 노스님이 해인사에 계셨는데 그 스님은 사실 본래 경을 그렇게 많이 본 분이 아닙니다. 선방에 늘 계셨고 참 자비로웠던 분인데요. 그래 늘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학인들이 그 노스님한테 붙잡히면 보통 두 시간이니까 저 멀리 오면 피하고ㆍ피하고 그래요.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이야기 듣고 그러다가... 그랬던 스님인데 “스님, 그 말씀이 부처님경전 어느 경전에 있습니까?” 하면 무조건 화엄경입니다. “화엄경에 있는 말이지요.” 화엄경 보신 분도 아닙니다. 그렇듯이 이 화엄경은 그만치 불교 경전에서는 그렇게 추앙을 받고 대접을 받는, 그래서 없는 것이 없는 그런 가르침이다. 이런 내용입니다.
오늘 여기까지 왕복서 두 번째 시간입니다. 간단하게 이렇게 살피고 경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大方廣佛華嚴經 卷 第四(대방광불화엄경 권 제사)
四, 世主妙嚴品(세주묘엄품)
(6) 第五行의 主火神(제오행의 주화신)
가, 主火神衆의 得法(주화신중의 득법)
復次普光焰藏主火神(부차보광염장주화신)은
得悉除一切世間闇解脫門(득실제일체세간암해탈문)하고
普集光幢主火神(보집광당주화신)은
得能息一切衆生(득능식일체중생)의
諸惑漂流熱惱苦解脫門(제혹표류열뇌고해탈문)하고
大光遍照主火神(대광편조주화신)은
得無動福力大悲藏解脫門(득무동복력대비장해탈문)하고
衆妙宮殿主火神(중묘궁전주화신)은
得觀如來神通力(득관여래신통력)으로
示現無邊際解脫門(시현무변제해탈문)하고
無盡光髻主火神(무진광계주화신)은
得光明照耀無邊虛空界解脫門(득광명조요무변허공계해탈문)하고
種種焰眼主火神(종종염안주화신)은
得種種福莊嚴寂靜光解脫門(득종종복장엄적정광해탈문)하고
十方宮殿如須彌山主火神(시방궁전여수미산주화신)은
得能滅一切世間諸趣熾然苦解脫門(득능멸일체세간제취치연고해
탈문)하고 威光自在主火神(위광자재주화신)은
得自在開悟一切世間解脫門(득자재개오일체세간해탈문)하고
光照十方主火神(광조시방주화신)은
得永破一切愚癡執着見解脫門(득영파일체우치집착견해탈문)하고
雷音電光主火神(뇌음전광주화신)은
得成就一切願力大震吼解脫門(득성취일체원력대진후해탈문)하시
니라
主火神衆의 得法 : 주화신들이 법을 얻은 내용. 이것은 불의 속성.
“主火神” 했으니까요. 사실 모든 것은 다 신격화해도 좋습니다. 꽃은 꽃대로 꽃神 이요ㆍ차[茶]는 차대로 차신. 茶神傳(다신전)이라고 하는 책도 있듯이요. 심지어 야구하는 데도 “야신” 그러지 않습니까? 도반 하는데도 “도신” 그렇게 하고요. 사실 그런 정신은 좋아요. 특히 화엄경에서는 그렇게 봅니다. 모든 것을 신성시하고ㆍ신격화하고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것 뭐 거기 ‘신이 있다.’ 라고 이렇게 새로운 어떤 존재가 거기에 스며있어서 함부로 하면 무슨 “동티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꽃 한 송이라도 신성시하고, 심지어 꽃 한 송이가 그대로 “보살이다.” 꽃 한 송이가 그대로 “부처님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겁니다. 그럼 불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불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는 이제 불 없으면 못살지요. 글도 못 보는 겁니다. 책도 못 보고 밥도 못 해먹고요. 여기 불의 속성과 불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름들을 이렇게 보면 상당히 서로 잘 맞아 떨어지고 재미가 있습니다.
1. 復次普光焰藏主火神(부차보광염장주화신)은, 普光焰藏 = 크고 활활 타오르는 불을 갈무리하고 있다. 藏자가 있으니까요. 갈무리하고 있는 겁니다. 불이 아직 밖으로 안 나왔나 봐요. 그런데 일체 세간의 어두움을, 得悉除一切世間闇解脫門(득실제일체세간암해탈문)하고, 일체 세간의 어두움을 悉除. 다 제거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그 다음에
2. 普集光幢主火神(보집광당주화신)은, 빛 光자가 1번에 있었지요? 또 있고ㆍ또 있고 그렇습니다. 여러 번 나옵니다. 불, 이라고 하는 것은 뜨거운 성질도 있지만, “불” 하면 일단은 빛입니다. 첫째 性, 특징이 빛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성질이 열기고요. 그런 것이 있으니까 빛 光자를 많이 썼습니다. 得能息一切衆生(득능식일체중생)의 諸惑漂流熱惱苦解脫門(제혹표류열뇌고해탈문)하고, 일체 중생들의 여러 가지 미혹으로써 熱惱苦. 뜨거운 번뇌의 고통에 표류 하는 것을 식히는 해탈문을 얻었다. 그렇지요. 뜨거운 번뇌의 열기에 표류 하는데, 그 열기를 식혀줘야 됩니다. 그런 해탈문을 얻고, 그 다음에
3. 大光遍照主火神(대광변조주화신)은 得無動福力大悲藏解脫門(득무동복력대비장해탈문)하고, 無動福力大悲藏이라는 해탈문을 얻었다. 사실은 복력이 있다 말면 참 그렇지요? 끊임없이 있어야 됩니다. 無漏福(무루복). 그래서 無漏福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가... 그러니까 우리가 뭘 복을 지어도 無漏福이 되도록 지어야 됩니다. 無動福力이라고 하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ㆍ변화가 없는 그런 복의 힘. 그것은 大悲로부터 올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해탈문을 얻고, 그 다음에
4. 衆妙宮殿主火神(중묘궁전주화신)은 得觀如來神通力(득관여래신통력)으로 示現無邊際解脫門(시현무변제해탈문)하고, 여래의 신통력으로써 無邊際를, 가없는 경계까지 示現하는 것을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고,
5. 無盡光髻主火神(무진광계주화신)은 得光明照耀無邊虛空界解脫門(득광명조요무변허공계해탈문)하고, 광명이 照耀해서 無邊虛空界. 무변허공계를 광명으로 照耀하는 = 환히 비추는 해탈문을 얻고,
6. 種種焰眼主火神(종종염안주화신)은 得種種福莊嚴寂靜光解脫門(득종종복장엄적정광해탈문)하고, 種種福으로, 가지가지 복으로써 장엄한 寂靜光의 해탈문을 얻고, 그 다음에
7. 十方宮殿如須彌山主火神(시방궁전여수미산주화신)은 得能滅一切世間諸趣熾然苦解脫門(득능멸일체세간제취치연고해탈문)하고, 시방궁전이 마치 수미산과 같은 주화신은 능히 一切世間의 諸趣熾然苦. 모든 갈래들. 諸趣가 여러 번나오지요? 이 세상 여러 형태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ㆍ모든 생명. 이것을 諸趣 그래요. 우리가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 그런 교리적인 용어를 많이 씁니다만, 다종다양한 삶의 그런 모습들을 거기에서 示現하는 고통. 불이 활활 타 오르듯이 그런 고통을 받는 그런 것을 능히 소멸하는 해탈문을 얻은 사람이다. 그 다음에
8. 威光自在主火神(위광자재주화신)은 得自在開悟一切世間解脫門(득자재개오일체세간해탈문)하고, 自在開悟一切世間. 일체 세간을 자유자재 열어서 깨닫게 하는 해탈문을 얻고,
9. 光照十方主火神(광조시방주화신)은 得永破一切愚癡執着見解脫門(득영파일체우치집착견해탈문)하고, 一切愚癡執着見. 정말 집착, 어떤 소견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어서 그래요. 그래서 一切愚癡執着見이라고 그랬어요. 一切愚癡로써, 어리석음으로써 어떤 견해에 집착하는 것을 깨뜨려야 됩니다. 永破. 영원히 깨뜨려주는 해탈문을 얻고,
10. 雷音電光主火神(뇌음전광주화신)은 得成就一切願力大震吼解脫門(득성취일체원력대진후해탈문)하시니라. 일체 원력으로 大震吼. 크게 부르짖는, 그것을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그렇지요. 원력이 큰 사람은 세상의 빛이 됩니다. 또 당당하게 큰소리 칠 수 있습니다. 말소리 한 마디도 안 해도 큰소리가 됩니다. 조용히 있어도 원력이 강한 사람은 큰소리가 됩니다. 음성 크다고 큰소리가 아닙니다. 약한 사람이 괜히 음성이 크지요.
一切願力으로 大震吼하는것을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나, 偈頌讚歎(게송찬탄)
爾時(이시)에 普光焰藏主火神(보광염장주화신)이
承佛威力(승불위력)하사
普觀一切主火神衆(보관일체주화신중)하고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汝觀如來精進力(여관여래정진력)하라
廣大億劫不思議(광대억겁부사의)에
爲利衆生現世間(위리중생현세간)하사
所有暗障皆令滅(소유암장개영멸)이로다
衆生愚癡起諸見(중생우치기제견)하야
煩惱如流及火然(번뇌여류급화연)이어늘
導師方便悉滅除(도사방편실멸제)하시니
普集光幢於此悟(보집광당어차오)로다
福德如空無有盡(복덕여공무유진)하야
求其邊際不可得(구기변제불가득)이라
此佛大悲無動力(차불대비무동력)이시니
光照悟入心生喜(광조오입심생희)로다
我觀如來之所行(아관여래지소행)컨대
經於劫海無邊際(경어겁해무변제)라
如是示現神通力(여시시현신통력)이라
衆妙宮神所了知(중묘궁신소요지)로다
億劫修成不可思(억겁수성불가사)여
求其邊際莫能知(구기변제막능지)라
演法實相令歡喜(연법실상영환희)케하시니
無盡光神所觀見(무진광신소관견)이로다
十方所有廣大衆(시방소유광대중)이
一切現前瞻仰佛(일체현전첨앙불)이어늘
寂靜光明照世間(적정광명조세간)하시니
此妙焰神所能了(차묘염신소능료)로다
牟尼出現諸世間(모니출현제세간)하사
坐於一切宮殿中(좌어일체궁전중)하야
普雨無邊廣大法(보우무변광대법)하시니
此十方神之境界(차시방신지경계)로다
諸佛智慧最甚深(제불지혜최심심)이라
於法自在現世間(어법자재현세간)하사
能悉闡明眞實理(능실천명진실리)하시니
威光悟此心欣慶(위광오차심흔경)이로다
諸見愚癡爲闇蓋(제견우치위암개)하야
衆生迷惑常流轉(중생미혹상류전)이어늘
佛爲開闡妙法門(불위개천묘법문)하시니
此照方神能悟入(차조방신능오입)이로다
願門廣大不思議(원문광대부사의)라
力度修治已淸淨(역도수치이청정)하사
如昔願心皆出現(여석원심개출현)하시니
此震音神之所了(차진음신지소료)로다
爾時(이시)에, 그 때에
普光焰藏主火神(보광염장주화신)이 承佛威力(승불위력)하사,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普觀一切主火神衆(보관일체주화신중)하고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一切主火神衆들을 널리 관찰하고 게송을 설해 말하되,
1.汝觀如來精進力(여관여래정진력)하라.그대는 여래의 精進의 힘을 보라. 정진력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여래의 精進力을 한번 잘 관찰해보라.
廣大億劫不思議(광대억겁부사의)에, 우리는 무슨 10년 공부했다ㆍ20년 공부했다ㆍ30년 공부했다. 그것 명함 못 낸다 이 겁니다. 廣大億劫불가사의한 세월입니다. 爲利衆生現世間(위리중생현세간)이라. 그 외에, 그 많은 세월들을 전부 중생을 이익하기 위해서ㆍ중생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ㆍ중생의 이익을 위해서ㆍ세상에 이익을 위해서 세상에 왔다 이 말입니다. 現世間입니다. 사실 우리 스님들은, 또 그리고 모든 불자들은 부처님 제자가 된 이상은 중생들에 이익이 돼야 됩니다. 보탬이 돼야 됩니다. 우리가 “아이고 저 사람 아무 보탬이 안 된다.” 고 그런 소리 가까운 사이에 잘 쓰지요? 정말 세상에 어떤 면에서든지 보탬이 돼야 됩니다. 어떤 면에서든지... 爲利衆生現世間이라. 중생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세간에 왔다 이 말입니다. 세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왔습니다.
所有暗障皆令滅(소유암장개영멸)이로다.
있는바 어둠의 장애. 그 중에서도 불교는 다른 종교ㆍ다른 단체, 온갖 무슨 복지 단체 세상에 많지요? 그런데 불교는 진리의 가르침ㆍ바른 이치를 통해서 어리석고 어두운 그런 장애들을 소멸하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일차적인 우리의 임무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所有暗障을 皆令滅이로다. 다 소멸하게 한다 그 뜻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2. 衆生愚癡로 起諸見(중생우치기제견)해서, 그랬어요.
중생이 어리석음 때문에 여러 가지 소견을 일으켜요. 어리석은 한 생각은 평생을 좌우합니다. 그것 참,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의 소견을 비우고ㆍ비우고ㆍ비우면서 다른 사람의, 또 다른 가르침의 어떤 말씀을 널리 이렇게 받아들여서 자신을 거르고, 또 바로잡고 하는 그런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衆生愚癡로 起諸見이라. 그래서 煩惱如流及火然(번뇌여류급화연)입니다. 번뇌가 마치 어떤 좁은 소견에 얽매어버리면, 번뇌가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애.
그래서 導師가 方便으로 悉滅除(도사방편실멸제)하시니, 도사께서 방편으로 어떻게 하면 중생들의 그 어리석음을 다 소멸해줄까?ㆍ저 치우친 소견을 소멸해줄까?ㆍ어리석음을 소멸해줄까? 그 생각 하나입니다. 그래서 悉滅除하시니, 普集光幢於此悟(보집광당어차오)로다. 普集光幢主火神이 이것을 여기에서 깨달았더라. 부처님의 그 면을 보고ㆍ불교에서 그 면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해온 것 중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된 것이 어리석음 문제, 그 반대로 지혜 문제, 그 다음에 중생들이 고통 받으니까 자비, 또는 연민심, 그 중에서도 慈자 보다는 悲자를 더 많이 쓰지요. 어여삐 여기고 연민히 여기는 것.
3. 福德如空無有盡(복덕여공무유진)하야, 복덕이 허공과 같아서 다함이 없어 求其邊際不可得(구기변제불가득)이라. 그 끝이 어디까지인가 도대체, 부처님의 복이 끝이 없는데 그 끝이 어디까지인가를 구하려고 해봐야, 찾으려고 해봐야 찾을 길이 없어, 不可得이라. 부처님의 덕은 그와 같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 한 사람ㆍ한 사람의 저 깊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복의 끝 간 데 없음도 또한 같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 복이 많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분 인생이고, 이것이 내 인생과 바로 연결 지어져있고, 우리들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此佛大悲無動力(차불대비무동력)이시니,
이것은 佛大悲無動力이시니,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큰 어여삐 여기는 마음ㆍ움직일 수 없는 힘.” 그렇지요.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그 마음ㆍ움직일 수 없는 그 힘이 光照悟入心生喜(광조오입심생희)로다. 光照主火神이 깨달아 들어가서 마음에 기쁨을 내더라. 제가 그 전에 몇 번 이야기했지만, 대만 자제공덕회 증엄스님은 처음에 발심한 것이, 병원에 위문을 갔다가 산모가 피를 흘리면서 나가는데도 돈이 없다고 해서 병원에 입원을 하지 못하는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그때 발심을 한 겁니다. 물론 마음속에 정말 자비심이 평소에 있었겠지요.
증엄스님은 환자를 보고 참 연민히 여기는 그 마음이 지금까지도 無動力입니다. 도대체가 움직이지 않아요. 그 자비심이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갈수록 어떤 봉사활동이라든지 의료사업이라든지 이런 것이 더욱더 날로 번창하고, 救苦救難(구고구난)의 사업이 참 아주 뛰어납니다. 그것이 大悲無動力입니다. 크게 자비하게 여기는 그 마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변함이 없는 그런 힘. 우리는 뭐 좀 좋은 마음 냈다가도 크게 오래 안가지요. 그것이 자꾸 자비심이 많아지면 오래 가는데... 그 다음에 네 번째,
4. 我觀如來之所行(아관여래지소행)컨대, 내가 여래의 所行. 행하신 바를 관찰해보건대 經於劫海無邊際(경어겁해무변제)라. 劫海無邊際. 겁의 바다, 劫은 시간적인 것이지만, 역시 워낙 오랜 세월이다 보니까 바다 海자를 써서 표현합니다. 끝없는 겁의 바다를 지난다. 부처님은 그런 오랜을 지내면서 如是示現神通力(여시시현신통력)이라.이와 같이 神通力을 示現함이라. 衆妙宮神所了知(중묘궁신소요지)로다. 衆妙宮主火神이
요지한 바더라. 그 다음 다섯 번째,
5. 億劫修成不可思(억겁수성불가사)여, 억 겁 동안 닦고 이룬 것의 불가사의함이여 求其邊際莫能知(구기변제막능지)라.그 邊際를, 그 끝을 구하려고 해도 능히 알지 못하겠더라. 얼마나 수행을 많이 하셨는지, 얼마나 복을 많이 닦았고, 얼마나 지혜를 많이 닦았는지 그 끝을 알 길이 없더라.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뭘 하지요? 그 많은 수행을 가지고요. 演法實相令歡喜(연법실상영환희)입니다. 演法. 결국은 설법입니다. 무엇을 설법 하느냐? 존재의 실상을 설법합니다. 존재의 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한 이치ㆍ참다운 이치입니다. 모든 존재와 사건, 일체 사건과 사물의 참다운 이치를 설법하는 겁니다. 그래서 깨우쳐 주는 겁니다. 그러면 중생들이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기뻐하는 것이지요. 간단하게 하면 그 겁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오랜 세월. 億劫修成不可思한 그런 오랜 세월 수행한 것이 결국은 설법이고, 설법의 내용은 결국은 존재의 실상을 설법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들을 기쁘게 해준다. 이것이 불교의 전부입니다.
無盡光神所觀見(무진광신소관견)이로다. 無盡光主火神이 본 바더라. 그 다음에
6. 十方所有廣大衆(시방소유광대중)이, 시방에 있는 廣大한 대중들이
一切現前瞻仰佛(일체현전첨앙불)이어늘, 모두가 앞에 나타나서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어. 우리가 다 “불교ㆍ불교” 하고, “부처님ㆍ부처님” 하고 있지 않습니까? 寂靜光明으로 照世間(적정광명조세간)하시니, 寂靜한 光明으로, 고요한 광명으로써 세간을 비추시니 此妙焰神所能了(차묘염신소능료)로다. 이것은 妙焰主火神이 능히 깨달은 바더라.
7. 牟尼出現諸世間(모니출현제세간)하사, 牟尼. “석가모니” 할 때 牟尼지요? 이것은 賢者(현자)ㆍ聖者(성자). 이런 뜻입니다. 성자가 모든 세간에 출현 하시사 坐於一切宮殿中(좌어일체궁전중)하야, 일체궁전 가운데 앉아 계시사 普雨無邊廣大法(보우무변광대법). 無邊한 廣大法. 무변하고 광대한 법을 널리 비 내리신다. 이것이 성자의 할 일이지요. 성자의 할 일은 설법입니다. 普雨無邊廣大法입니다. 광대하고 끝없는 법을 비 내리시니 此十方神之境界(차시방신지경계)로다. 이것은 十方主火神의 경계더라.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8. 諸佛智慧最甚深(제불지혜최심심)이라.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깊음이라. 於法自在現世間(어법자재현세간)하사, 법에 자재하게 세간에 나타나시사, 能悉闡明眞實理(능실천명진실리)하시니,여기 해놨네요. 다 능히, 能悉闡明眞實理라. 능히 모두 다 진실한 이치를 闡明한 겁니다. 설법해서, 결국은 진실한 이치를 설법해 주면 그러면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아무리 어떤 고통에 사로잡혔든지ㆍ아무리 어렵게 살든지, 그것 관계없이 진실한 이치만 깨우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것이 왜 가난한지 알고, 어떻게 하면 부자 되는지 알고, 전부 이치에 달렸으니까요. 일체가 이치의 문제지, 이치의 문제 아닌 것이 없거든요. 그 이치만 알면 되는 겁니다.
무엇을 하면 부자가 될는지ㆍ무엇을 하면 머리가 영리해 질는지, 이것도 다 이치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치를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또는 성자들은 끊임없이 진실한 이치를 깨우쳐 주는 것이지 다른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또 제일 큰 복입니다. 그것 제일 큰 복인가 봐요. 그러니까 저절로 有漏福(유루복)이 따라 오는 겁니다. 물질복도 따라 오는 겁니다. 제가 그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부처님 앞에 무슨 과일이다ㆍ떡이다ㆍ쌀이다ㆍ밥이다ㆍ뭐다. 그냥 산더미처럼, 돈까지도 그냥 산처럼 올리잖아요. 그 분이 무슨 물질 복 지어서 그런 것 아닙니다. 진리의 복ㆍ바른 이치의 복만 지어도 물질도 저절로 따라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둘이 아니니까요. 威光悟此心欣慶(위광오차심흔경)이로다. 威光主火神이 이것을 깨달아서 마음에 欣慶. 아주 기뻐하고 경사스럽게 여기더라. 부처님을, 그리고 불교를, 불교의 깊은 의미를 한껏 찬탄하는 그런 내용들이지요.
9. 諸見愚癡爲闇蓋(제견우치위암개)하야, 모든 소견, 중생들이 왜 어리석은가? 소견이 잘못 되어서 그런 겁니다.그래서 우리가 정견을 자주 이야기하지요. 바른 견해. 여러 가지 소견에 愚癡한 것이, 어리석고 어리석은 것이 캄캄한 것과 같고, 무엇으로 콱~ 덮어놓은 것과 같아요. 아주 두꺼운 흙으로 덮어놓은 것과 같아요. 안개와 같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모습이나 무엇으로 콱~ 덮어놓은 것과 같아요. 衆生迷惑常(중생미혹상류전)이어늘, 중생들이 미혹해서 항상 流轉하거늘 佛爲開闡妙法門(불위개천묘법문)하시니, 부처님이 그들을 위해서 妙法門. 미묘한 법문을 開闡하시니ㆍ열어 보이시니, 그렇잖아요. 끊임없이 부처님은 이렇게 진리의 가르침.
妙法門을 이야기합니다. 此照方神能悟入(차조방신능오입)이로다.
이것은 照方主火神이 능히 깨달아 들어갔더라.
10. 願門廣大不思議(원문광대부사의)라. 원력의 문은ㆍ원력의 문은 廣大해서 불가사의함이라. 부처님의 願力. 원력이 사실은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원력이... 요는 사람을 어떻게 만드느냐? 오직 원력에 달렸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꿈이요 희망이요 그 사람의 인생이지요. 願門이 廣大하고 불가사의함이여, 力度가 修治已淸淨(역도수치이청정)하시니,
力度. 力바라밀이요. 화엄경에서는 육바라밀에서 그 다음에 방편ㆍ力ㆍ願ㆍ智. ←이렇게 네 가지가 더 보태져서 “10바라밀”←이렇게 말합니다.
願門, 하는 것은 願바라밀에 해당이 되는 것이고, 力度, 하는 것은 力바라밀에 해당이 되는 것이지요. 力바라밀은 선행을 실천하는 힘과 참되고 거짓된 것을 판별하는 힘. 이런 뜻입니다. 그런 어떤 바라밀도 修治해서, 다 닦고 잘 다스려서 이미 청정해져서 如昔願心皆出現(여석원심개출현)하시니, 옛날에 願의 마음. 그 앞에 옛날에 원했던 그 마음과 같이 다 出現해. 力바라밀을 통해서 그 願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此震音神之所了(차진음신지소료)로다. 이것은 震音神이 깨달은 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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