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출신은 선뜻 자신의 고향을 밝히기를 꺼린다. '전라디언'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깔려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전라도 출신들은 출세하기를 포기할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공직 뿐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전라도 출신들은 승진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아 아예 호적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전라도 중에서 목포 출신들의 웃지 못 할 해프닝은 더했다. 아니 어쩌면 거친 타지에서 살면서 목포 출신이라는 덕을 봤는지도 모른다. 목포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깡패들인 줄 알고 무서워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에 하나인 '세발낙지'도 영화에선 목포 출신 건달들의 별명정도로 불렸다.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에 하나인 목포가 어쩌다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 참 안타깝기 짝이 없다.
착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 목포
|
▲ 목포청년100인포럼 회원들은 매월 1회 오전 7시에 모여 지역과 지역민의 발전에 대해 학습한다. |
ⓒ 이혁제 |
관련사진보기 |
목포를 한 번 방문해본 관광객들이라면 목포가 정말 아름다운 항구 도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유달산에 올라 목포시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보면 지중해의 항구도시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운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연 환경만큼이나 아름다운 시민들이 힘들지만 서로를 위하며 정겹게 살아가는 도시가 바로 목포이다.
이런 살맛나는 삶을 만드는데 200여명의 목포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청년 네다섯 명만 무리지어 다녀도 무서워서 옆을 지나가지 못하는데 200여명이 모였으니 그 험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정장을 하고 단체로 서있다고 상상해 보면 아마도 조직폭력배 무리들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매달 한 번씩 정장을 하고 모여든다. 그것도 오전 7시에 호텔을 점령한다.
이 집단의 공식 명칭은 '목포청년100인포럼'이다. 처음엔 100명의 청년들을 목표로 시작하였는데 참여자가 늘어 정확히 201명이 되었다. 요즘 포럼이 대세라고 하지만 여느 포럼처럼 교수집단이나 아니면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포럼과는 그 구성원부터 다르다. 200여명 중 140여명이 자영업자이고 나머지는 직장인들이다. 이들이 거창한 포럼을 만들어 모인 이유는 단 한 가지, 오로지 고향 목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이다.
새벽에 눈 비비며 공부하는 청년들대한민국 어느 곳에 오전 7시에 매월 정기적으로 청년들이 모여 지역을 위한 공부를 하는 도시가 있을까 싶다. 대부분의 포럼이나 사적인 모임은 일과시간이나 일과를 마치고 행해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목포청년100인포럼' 청년들은 자영업자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고 활동을 하기 위해서 새벽 공부를 택했다.
처음에는 생업에 매달리며 살아가던 청년들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힘들기는 초청 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7시, 아직 목도 풀리지 않은 시간에 시커먼 청년들이 눈을 껌벅껌벅 거리며 쳐다보고 있노라면 모르긴 몰라도 괜히 강연을 왔다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딱딱한 수학이나 어려운 영어 수업이 아니라 목포 또는 우리 삶과 관련된 수업을 듣기에 청년들의 이목은 강사의 입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발표자의 애를 먹이기 일쑤였다.
단체장을 초청해 시정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였고, 탈북자를 강사로 모셔 북한의 실정을 들었고, 교육감과는 지역 교육의 현 주소를 이야기 하였다. 3년에 걸쳐 이어진 공부는 강사의 폭을 전국으로 넓혀 경제신문의 논설실장, 두 명의 전 장관들 등을 초청하여 사고의 폭을 확대해 나갔다.
평범한 청년에서 지역발전 연구가로 변신하다이들은 2013년 초에 거대한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바로 그간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지역 발전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하여 3주년 기념식에서 시민들에게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전문가들이야 며칠 준비하면 될 일이지만 장사하느라 바쁜 청년들이 리포트를 작성한 다는 것은 거대한 프로젝트임에 틀림없었다.
세 개의 분과가 각 분과에 맞는 주제를 선택하고 연구하여 프레젠테이션을 갖기로 하였다. 각 분과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이었다. 각 분과에선 가장 학구적인(?) 회원들을 뽑아 경쟁에 들어갔다. 1등부터 3등까지 상금이 걸려 있었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각 분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무슨 007작전도 아닌데 각 분과에선 주제조차도 비밀에 부쳤다. 발표 날이 다가올수록 리포트 위원들의 긴장감과 부담은 더해갔다. 이것은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시민들에게 비춰질 우리들의 모습이 초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청년들의 노력은 8월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웠다.
|
▲ 학력고사 출제위원처럼 합숙하다 호텔에 숙박하며 리포트를 마무리 하고 있는 회원들의 모습에서 목포의 미래를 본다 |
ⓒ 이혁제 |
관련사진보기 |
막판에는 무슨 학력고사 출제라도 하듯이 호텔을 잡아놓고 합숙까지 하였다. 물론 응원 차 한아름의 술과 음식을 싸가지고 찾아온 회원들과 거의 노닥거리긴 했지만 이때의 모습은 어떤 청년들의 모습보다도 아름답고 선한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청년들로 가득한 도시가 어떻게 깡패 도시라는 낙인을 달고 사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지난 12일 3주년 기념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지역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어른들은 다 모였다. 내년 지방선거에 뜻을 둔 예비 지역 일꾼들도 청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대거 동참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리포트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솔직히 청년들은 전날 점심부터 모여 리허설을 했었다.
수백 명이 운집한 무대 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국회의원, 시장 등 범상치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리허설 덕분인지 각 분과의 발표자들은 거침없이 그간 준비한 내용들을 내뱉었다. 그리고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내용의 질을 떠나서 지난 6개월간의 노력만으로도 청년들은 갈채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자신들 보다 지역민을 먼저 생각한다목포를 아름답게 만드는 청년들의 선행은 지역민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청년들의 객기를 부리는 것만으로 사용하기에는 무엇인가 허전했던 것이다. 각 분과에서는 상금 중에서 절반씩을 떼어 150만 원을 모았다. 때마침 우리 지역 해양경찰들이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단속하다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방문을 받은 해양경찰 측에서는 다른 기관의 도움은 애써 사양했지만 청년포럼의 성의는 감사히 받았다고 한다. 청년들의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민을 위한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작년에도 지역 공무원이 근무 중에 순직하는 사건이 있자마자 청년들은 후원금을 모금하기 시작했었다.
목포는 척박한 항구도시임에 틀림없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항구도시 사람들은 거칠기도 하다. 하지만 목포사람들도 어느 도시 사람들처럼 따뜻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목포는 지역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많기에 더욱 살맛나는 도시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