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의 돌’을 쟁취하는 연금기준
연재의 마지막 글을 쓰게 되니 가슴이 다 후련하다. 자발적으로 쓰는 시와는 달리 산문은 언제나 부담이다. 그래서 나는
청탁에 의하지 않고는 산문을 결코 쓰지 않는다. 소설가들이 존경스러운 이유이다. 시를 고르기 위해 잡지를 의무적으로 뒤적이다보면
참으로 많은 다양한 시들을 접하게 되고 시인들의 정신적 고투가 눈에 보인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시들이 곧 잊혀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서글프기도 하다. 시인자신에게야 평생을 따라다니는 시들이겠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매혹하기란 매우 어렵다. 글은 결국
자신과 사물의 마음읽기인데 자신의 마음을 읽기는 어렵지 않으나 타자의 마음읽기가 어렵다. 내 마음만 진실하게 혹은 내 인식만
화려하게 드러내면 타인이 알아주겠지 하는 태도로는 안된다. 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과거에 술집에 가보면 아가씨들이 왠 화장을
저렇게 짙게 하지? 수입에 비해 비싼 옷들을 걸친 허영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심정을 이해한다.
손님을 끌기 위해 다른 아가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미인처럼
타고난 재능으로 좋은 시를 쓰는 드문 시인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필사적으로 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경험은 ‘시간의 주름’사이로 접혀져 들어간다. 과거는 흘러갔으므로 소유할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므로 내 소유가 아니며 현재는 순간순간에 변화하므로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불경은 말한다. 그러나 시인들은 과거의 기억을 혹은 오지 않은 미래의 희망을 현재에 붙들려고 한다. 과거를 현재에 불러오고자 하는 시인들의 시부터 시작한다.
버린 구절들의 노트
글 쓰다 버리는 구절 중에서
빠른 글씨로 옮겨 둔 노트가 있다
혹 다른 의복의 단추로 쓰일 일 있겠는지,
그 쯤의 궁리로 미련을 두었다가
오래 잊고 지냈다
어느 시에서 잘라 낸 혈관인지가
왜 오늘에도 기억나는지 몰라
바싹 마른 풀씨로
하늘 공중 멀리멀리 날아들 가지 않고
한 점 붉은 심장의
곤충으로
왜 이적지 살아 있는지 몰라
무모 적나라한 어휘들엔
생 피딱지 이리도 분명하거늘
...그래서 버렸었구나
내 문학은 심약하고 겁이 많았었구나
겁 많아 내 생에서 밀어낸 사람 있었고
어떤 이의 문장에서
내가 서럽게 잘려 나온 일도 있었지
그래 그랬었지, 그랬었지
-김남조(현대시 2008,9월호)
물위에 새긴 약속
칠흙 강물 위에 달 떠 있다
강 건너 간다 다시 보니, 물결 위에 급히 찍고 간 발자국이다 수억 년 매만지고 궁굴린 말 맨 발자국 다만 묶음인 이 긴 밤에는 또렷하다
물 위에 새긴 약속이여
다시 오마던 그 말
당신, 가고 없어도 아마빛 둥근 말이 고요하니 떠 있다
강가에는 샛노란 달맞이꽃
고요를 잡아 비트니 꽃잎이 젖어 있다
-윤은경(화요문학 2008, 가을호)
김남조는 퇴고과정에서 잘라버린 시들의 아픔을 사람들의 관계에 빗대고 있다. 시를 쓰다보면 멋진 구절이라도 전체의 주제나
정서에 벗어나면 자르게 마련이다. 미련으로 갈무리 했다가 다른 시들에서 부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장된다. 시를 순간의
상황과 정서는 그때의 고유한 개성이 스며든 순간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되살리기가 어렵다. 시인은 겁 많아서 과감히 사용하지 못한
구절이나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들을 아쉬워하고 있다. 자른 시나 잘려진 사람도 생존을 위해 꼬리를 자른 도마뱀처럼 그 상황에서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상황을 반추해보니 다른 선택도 가능했으나 인생은 일회적이고 ‘모두 운명이다’라는 페이소스를 노래했다.
윤은경 역시 “물위에 새긴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영원을 담보한 약속도 물의 파도나 무늬처럼 지워지고 마는 슬픔을 노래한다.
“달/발자국/약속/아마빛 둥근 말”은 같은 원관념의 보조관념들인데 1연과 2연이 화자가 투사한 대상의 묘사라면 3연은 자신을
달맞이 꽃에 투사해서 꽃잎이 젖어있는 자신의 슬픔을 드러냈다. 3연이 좀 약하다. 같은 무게의 묘사가 있었더라면 시가 훨씬
깊어졌을 것이다. 그게 안된다면 3연을 잘라버리는 것도 시의 암시와 아름다움이 더 좋아질 것 같다.
TV부처
홀어머니에게 TV는 부처
반백년 안방에 모신 생불生佛
일일연속극, 9시뉴스, 연예가중계, 심야토론
TV부처께서 오늘의 법문 끝날 때까지
법문 끝나고 지쳐 지지직거릴 때까지
당신이 모신 부처 앞에
절대 눕지 않는 저 독실篤實!
쿵쿵 방바닥에 이마 찧어가며 수행한
내 어머니 TV불자 안安보살의
저 용맹정신의 장좌불와長坐不臥!
- 정일근(시안 2008, 가을호)
빚
오늘도 불은 들어오지 읺아요. 스위치를 올리면 어김없이 차단기가 작
동하지요. 너무 바쁜 전생을 살다 온 여자, 그 여자 때문이예요. 잠자리도
귀찮아 아이들도 귀찮아. 마음에 불 꺼버린 여자. 누전된 사랑을 수리해보
려고 밤낮없이 일상을 돌고 돌지만, 빗줄기만큼이나 끊긴 가닥이 너무 많
아요. 병원 처방전으로도 관계는 회복될 수 없어요. 서로를 잇고 있는 건
이제 두 아이뿐. 그래도 전생의 빚 다 갚지 못하면 헤어질 수 없는 게 부부
라는데. 전생과 현생 잇고 있는 아이들한테는 차단기도 듣지 않아요. 빚을
독촉하는 빗방울 창문을 또 두드리네요. 술 몇 모금 털어 넣고 저도 이제
불을 꺼야겠어요.
-길상호(현대시학 2008. 9월호)
무엇이 사실이고 현실인가? 라는 철학적 의문이 있으나 이 시들을 일단 리얼리즘시라고 분류를 해보자. 요사이는 정치경제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적극적 리얼리즘대신 일상생활 특히 가정의 불화와 소외로 인한 개인의 고통을 고발하는 시들이 많이 보인다.
정일근은 어머니인 노인이 텔레비전을 부처처럼 모시고 사는 일상을 풍자하고 있다. 풍자지만 현대인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살기에
웃음보다는 슬픔이 느껴진다. 정일근은 다양한 시선을 가진 시인이다. 연애와 생태 현실과 불교적사유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는 주제가
없다. 전업시인의 자유로 여겨진다. 길상호는 사랑이 사라지고 관습과 일상에 갇혀 생존하는(생활이 아니다) 현실가정을 고발하고
있다. 가정은 혈연의 사랑과 현실의 경제가 같이 맞물려서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비 정규직 문제와 실업등 가정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본적인 가족의 유대마저 위협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가지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이
고통에 갇혀 산다.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인 고통으로 치환해서 생각한다면 타인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는 자본주의 세계의 비윤리성까지 이
시의 배경으로 등장할 수 있다.
맑은 물은 바닥을 감추지 않는다.
이십 년 전 지금의 문학과지성사 채호기 사장이 현암사 편집부장으로 재
직중일 때의 어느 여름날 편집부 직원들과 강원도 홍천강으로 야유회를 가
게 되었는데, 나는 거기 채부장과 우정을 핑계로 그 모임에 무임승차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는 바, 일박 이일 동안 홍천강에 풍덩 빠져서는 속진을 벗
고 천진과 무구를 즐기던 중 그만 귀인으로부터 하사받은 손목시계를 물속
에 빠뜨리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가 논 곳은 물가였는데 시
계는 물살에 휩쓸린 탓인지 강 가운데 놓여 있었다. 물이 맑지 않았다면 아
무리 눈이 밝은들 어찌 그 자를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주인의 심사와는 하
등 상관없이 시치미 뚝 떼고 천연덕 스럽게 정좌한 그 자를 꺼내기 위해 눈
짐작만으로 얕아보여서 성큼 들어섰다가 어른 키보다 깊은 물에 그만 와락
감겨 목숨이 위태로울 뻔하였다 지금은 고물이 되어 서랍 속에 처박힌 채
무 시간을 살고 있는 그 자를 어쩌다 늦은 밤 대면하는 날이면 홍천강 그 세
모래와 눈이 부시도록 투명한 물이 눈에 거듭 밟혀온다.
흐린 물은 바닥을 감추지만 맑은 물은 바닥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바닥만으로 깊이를 어림할 수는 없다 사람이라고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재무(시작, 2008 가을호)
징
우리집 바람벽에 걸린 징 한 개, 크로키 된 내 얼굴이 표면에 새겨있
지요 올의 한쪽이 끈을 꿰어 매달렸다가 채에 맞으면 音과 音을 물고
깨짐 없이 방짜로 울려 퍼지는데 그러니까 내 몸이 울림통이 되어 지이
잉-소리의 끈을 물고 가는 맛, 어거 別나답니다
아내는 내가, 생각나거나 미워질 때면 한 번씩 두드려보고 처조카 꼬
맹이는 가끔 귀뚜라미를 잡아 안쪽 허방에 넣어주는데 이젠 내 몸이 징
의 미세한 울림에도 반응을 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
도 사분사분 귓속질을 하지요
저 놋쇠가 불에 익었다가 다시 방짜로 펴질 때까지 볶이고 망치에 맞
은 매에 비한다면 내 삶이란 것 別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나들며 바라
보다가 지치고 비틀거릴 때 슬며시 두드려 깨워보곤 하는데 켜켜이 삼
킨 울음 안에 나를 들어앉힌 저 풍장의 깊은 내공에 감사할 뿐입지요.
-이영식(불교문예, 2008 가을호)
이재무는 시계를 소재로 이영식은 징을 소재로 사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시로 풀어냈다. 사물을 소재로 얽힌 관계를 풀어내는
수법은 소설에서도 등장하는 기법이고 영화에서는 히치콕이 즐겨썼다. 시계와 징은 동원된 상징일 뿐 배후에 숨은 주제는 따로 있다.
드러난 상징은 주제를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바다에 뜬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얼음을 가지고 물에 잠긴 빙하의 크기를
짐작하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기술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 시들은 다소 독자에게 친절한 시 일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의 시선을
상징과 은유 환유 제유로 피곤하게 하고 어려운 인식으로 시에 정나미를 떨어지게 하는 시들 속에 이런 시들은 한 모금의 청량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시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읽어서 즐거우면 그만이지.
사랑의 온도 0.5℃
1. 실수의 온도
태초에, 남자의 체온은 18℃ 였다고 합니다 태초에, 여자의 체온도 18℃ 였
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초에 남자와 태초의 여자가, 태초로 몸을 합해서, 태
초의 아기를 만들었는데, 그 아기의 체온은 36.5℃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18 더하기 18은 36이 분명한데 …… 어디서
0.5의 불순물이 섞였던 걸까…… 어쩔 수 없이, 그들은 태초의 실패작을 내
다버렸답니다 태초의 실수였죠 그들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어요 태초
의 실패작 속에 그들이 만든 태초의 사랑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2. 두려움의 온도
태초의, 버림받은 이 기억 때문에, 또다시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오늘날도 아기들은 태어나는 순간 심하게 운다고 합니다 간혹 울지
않은 아기도 있는데, 울지 않으면 의사들이 아기의 엉덩이를 때려준다고 합
니다. 의사들은 태초의 기억을 살려주는 것도 자기들의 의무라고 생각 한다
는군요.
3. 호기심의 온도
오늘도 여자들과 남자들은, 지구 곳곳에서, 몸과몸을 포갰다가 뗐다가,
마음과 마음을 합쳤다가 쪼갰다가? 생채실험에 몰두하고 있답니다 태초에,
태초의 그 불순물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 불순물이 도대체 뭐길래,
사랑하다 이별을 하면, 심장이 얼어붙거나 영혼에 오한이 드는 것일까요
-유지소 (시작 2008 가을호)
지루한 본질도 죽이다
젠장, 419와 625를 경험하다 못해
입만 열리면 혁명의 함성과 전쟁의 참화
실존의 기투와 피투성이가 되었던 시들의 현장을 곱씹어
이제는 너덜거리는 오징어포 안주語群이 되었거나
켜 놀 때마다 방전될 만큼 성능 약한 유성기가 되었음직한
원로시인들은 419와 625를 사회시험에서 치른 우리에게
역사의식 부재자라고 힐난함과 동시에
현실인식 채무자임을 상기시키다 못해 강권한다, 하물며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라고 설파한 소크라테스를 부활시키고
본인들은 이데아의 원향 플라톤의 혈족임을 웅변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역시 시론의 진수임을, 어쩌면
고장도 나지 않고 조사 하나 빠트리지 않고 반복 재생한다, 더불어
두보와 이백의 이끼 낀 운율을 아직까지 교과서로 삼고
툭하면 에즈라파운드의 파워와 엘리어트의 엘리트 사상을
윌리엄 블레이크의 브레이크 잡을 수 없는 미학 운운
시의 스승으로 섬겨야 한다고 웅변한다
또한 그들은 잊을세라, 맨 마지막에는 으레껏
만해 소월이 일궈놓은 우리 고유 서정을 홀대하는 날품팔이 시인들
호통하며 우리의 뺨이나 엉덩짝을 짝 짝 친다
시에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조강지처인 메시지와 이미지라는 눈살 야무진 애첩이 있어야 하고
감동을 호화 궁궐로 지으면 후경으로
맑은 연못의 여백이 놓여야 한다는 그들의
열변은 85g짜리 종이 329쪽 단행본 상하권으로 분류
시의 본질 입문편과 심화편으로 나뉘어
시인필독서로 재판까지 찍어서 증정용으로 보급한다는데
시에 사진까지 첨부되고 해체시, 환상시, 구체시 등이 등장하는 시대에
이 책들은 너무도 많은 비애를 팔아버려
비매품이 나이라 비애품이 되었다는 후일담이 들리는 것은
나의 책장에 꽂히기도 전에 한 달 지난 신문지들과 함께
폐지로 분리수거 되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리라
-김명원(문학마당 2008,여름호)
시란 어찌됐든 새로운 시각이 중요하다. 유지소는 “사랑의 온도 0.5℃”라는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상상력을 개발해 냈다.
인간의 사랑이란 가상의 0.5℃에 들어있고 “실수의 온도, 두려움의 온도, 호기심의 온도”라는 소제목이 암시하듯 사랑 때문에
좌충우돌하는 인생은 “0.5℃”의 사소한 차이에 달려있다. 여기서 “0.5℃”는 이시의 키 워드이자 독자의 상상력을 붙들어 매는
꼬리표인데 이런 장치가 “사랑하다 이별을 하면, 심장이 얼어붙거나 영혼에 오한이 드는 것일까요”라는 고전적인 진술을 진부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양념역할을 한다. 재미있는 시다. 김명원도 시를 소재로 풍자를 했다. 풍자의 성공은 재미에 있다. 시가 “지루한
본질”이라는 발상은 팔리지 않는 지금시의 위치를 드러낸다. 시가 대량생산되는 현실만큼이나 시의 이론과 해석 창작방법이 난무하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자신들의 시가 잡지에 한번 실리는 것으로 끝나는 소비제품으로 전락한 시인의 당황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시인의 해석에 의하면 “지루한 본질”에 있다. 독자들이 재미있는 현상의 감각에 빠져있는 소비문화시대에는 “지루한 본질”을
재미로 여기는 창작자들만이 소비자다. 시간이 지나서 살아남은 “지루한 본질”은 고전이라는 타이틀로 일회적인 현상의 문화에게
복수한다.
봉쇄수도원
찔레꽃, 흰 지느러미로 조용조용 마당을 짓습니다.
닫힌 채 떠있는 저 창문, 지상에 맨처음 떠오른 산소처럼 원시미생물의 촉수처럼 캄캄합니다.
감춰둔 기도 방들 애초 먼별처럼 각을 키웁니다 오래 전에 죽은 신들이 매일 죽는 자리,날카
로운 공포로 흔들리지만
비루하거나 찬란하거나
제 슬픔이 전깃줄 엉킨 묵시인 것 같아 역사인 것 같아
우는 어머니를 버린 우는 어머니들, 그립습니다, 위태합니다 몸을 굳게 잠그고 그림자 속으
로 고스란히 살진 절망,그 절망으로 지구는 오늘 안전한가요
흰옷자락, 자꾸 심해를 저어갑니다 멀고 멉니다.
-김수우(정신과표현 ,2008. 09.10호)
오르골 연가풍으로
1
조심스레 보석상자를 열자
하얗게 속살 씻기운 진주 조개잡이 배 그라베하게 유영한다
그라치오소한 목선을 따라 보랏빛 자수정 라알락꽂 향기 피워 올리고
하트 모양 투명한 크리스털 그라칠레하게 두근두근 별이 빛나는 밤에 가슴 뛰게 한다
앞니 앞세운 코끼리 무리 상아색 안개 걷어내며 그란디오소하게 밀림을 누비고
사파이어 어둠 속에서 아니마토하게 빛나는 고양이 눈동자
땡볕 내리 쬐는 슬레이트 지붕 위 잘 익은 호박 속을 개미들 안단테칸타빌레로 굳어간다
로렐라이 전설 적어나가는 붉은 촉수 아드리비툼하게 흔드는 산호초
오동나무 에메랄드 이파리 매달고 라르기시모한 그늘 드리운다
오색영롱한 돌들의 무덤
돌은 시간의 무늬를 새긴다
화석 파헤쳐 오래된 문자 다듬는
에너벨리의 루비빛 입술에 포우 렐리지오소하게 입맞춤한다
1-1
조심스레 음악상자를 열자
오선지 위를 매우 느리게grave 기차가 출발한다
우아하게grazioso 오렌지 향기 날리는 숲을 지나
뛰어나게 아름다운, 우미하게gracile 솔베이지의 노래 부르며
웅대하고 장쾌한grandioso 몰다우 강을 끼고 돈다
생기 있고 활발하게animato 쿠시쿠스 우편마차 소식을 싣고 황톳길 달리고
사바나 푸른 초원의 목동 양을 몰고 천천히 걷는 정도의 속도andantecantabile로 발걸음 옮긴다
바람은 어느 정도 자유롭게adlibitum 불어 초록 소매 흔들고
산허리에는 가장 폭넓게larghissimo 흰 구름 걸려 있다
새는 천 가지로 변주되는 악기다
빙글빙글 도는 운명의 문 두드리며
창 밖 내다보는 엘리제
경건하게religioso 소녀의 기도를 읽는다
-서징민(애지, 2008.가을호)
이미지를 전면으로 내세운 시들을 골라본다. 시인의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연상 때문에 울프의
“등대로”나 조이스의 “율리시즈”의 한 부분을 읽는 것 같다. 의식은 이미지의 연상을 따라 자유롭게 비약하다. 이런 시들은
나레이션의 내적통일이나 리듬의 외적인 통일이 있어야 어느 정도 독자들을 시인이 의도하고자 하는 지점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말(馬)을 강가로 데려갈 수 있으나 물은 말(馬)의 선택인 것처럼, 시인이 원하는 이미지의 풀밭으로 독자를 몰고 갈수는 있으나
의식이 이미지를 수용하는 가는 독자의 선택이다. 김수우는 관념을 주제로 이미지의 집을 지었고 서정민은 음악적 리듬을 주제로
이미지의 질주를 그렸다. 심장의 메시지가 많으나 표현의 제약으로 이미지의 도약을 하는 경우와 심장의 정열이 넘쳐흘러서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 두 시인들의 시적의식은 다소 대조적이다.
다시 ‘좋은 시란 무었인가?’ 하는 고답적인 명제를 생각해본다. 법제와 전통에 의지한 고전인가.
새로운 형식으로 기존의 시를 뛰어넘는 부정인가. 고전의 크기와 내용은 대양과 같고 실험시들은
날아오르는 새들 같다. 새들이 날아가면서 거울 같은 고전의 바다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때
추락하지 않는 새가 될 것인가 힘이 다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는 날개의 힘과 심장의 불꽃에 달려있다. 언어는 상징의 재료이며 의식의 연금술에서 용광로에 던져진다. 납이 금으로 변하는
상징적 변용은 심장의 불길과 재료의 배합비율에 의하지만 그 비법은 아마 시인마다 다를 것이다.
‘현자의 돌’을 쟁취하는 연금기준이 존재한다고 대가들은 말한다. 좌충우돌과 지름길을 반복하면서 시인은 詩作을 반복하고 자신의 詩가 금이 되었는가를 매일 확인하지만 아직은 납이라는 것을 알고 비애와 탄식에 잠긴다.
.김백겸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로 등단.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비밀 방』『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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