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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13명의 장인이 있다. 나무가 기둥이 되기까지 해와 바람을 맞으며 지내온 수십 년 세월처럼, 한옥에 그리고 전통 건축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행복>에서는 지난 2007년 12월호 독자엽서를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과연 독자들은 얼마나 한옥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꼭 알고 싶은 정보는 무엇인지. 설문에 응답한 <행복> 독자 573명 중 무려 78%에 이르는 사람들이 한옥에 살고 싶어 했고 다양한 궁금증을 전해왔다. 경복궁에서부터 남양주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전수교육관, 경주 한옥 호텔 라궁 등을 거쳐 전남 장성과 충남 부여, 다시 서울의 북촌에 이르는 긴 동선을 그리며 한옥 짓는 이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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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 최기영·신응수 씨와 소목 설석철 옹은 중요무형문화재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인이다. 두 대목은 궁궐이나 사찰 같은 문화재 보수·복원과 큰 규모의 한옥 건축을 겸하며 전통 건축의 계보를 잇고 있다. 설석철 옹은 한옥을 채우는 가구를 전통 기법 그대로 계승해 만들고 있다. 대목 최웅희·박석규·김길성·조전환·송혜종·정영수·홍덕길·문석환 씨는 북촌뿐 아니라 전국을 오가며 전통 한옥을 지금 시대에 맞춰 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성환 화문장은 손 많이 가는 꽃담을, 박천동 창호장은 한옥에 설치될 창과 문을, 노행용 가구장은 한옥에 들어갈 살림살이를 만드는 장인이다. 다시 태어나도 목수가 되겠다고 말하는 그들의 인생과 연륜을 나무와 흙과 종이에 묻고 혼을 담아 지은 집이 바로 한옥인 게다. 그들과의 동행 취재가 마치 어깨너머로나마 한옥 한 채를 지은 듯 하다면 과장일까. 과연 누가, 어떻게, 우리의 드림 하우스, 한옥을 짓고 있을까.
“혼을 불어 넣어 천 년 가는 집을 짓는다” 대목 최기영(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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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수만 개 조각품이 이룬 한 채”
대목 신응수(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
지난 11월 말, 지름 94cm, 높이 20m, 수령 150년 된 소나무가 신응수 씨의 지도 아래 몇 가지 의식 뒤 베어졌다. 이후 강릉으로 옮겨져 치목 과정을 거친 뒤 경복궁 광화문 복원 시 기둥으로 사용될 가장 굵은 나무였다. 신응수 씨는 이렇듯 적게는 25년, 길게는 300년 정도의 수령을 지닌 나무를 재료로 삼는다. 그가 중점적으로 하는 일은 문화재 복원. 그러면서 때때로 한옥을 짓기도 한다. 그가 짓는 한옥들은 북촌의 한옥에 비해 규모가 크며, 철저히 전통적인 방식에 따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용인 호암장. 고 이병철 회장의 별장으로 호암미술관 옆 230여 평 대지에 들어선, 정원이 아름다운 전통 한옥이다. 어려서 목수 일을 시작할 때는 3년 가까이 밥만 먹고 돌아서면 밤낮 없이 대패질을 했다. 그때는 다 그렇게 일을 배웠다고. 그는 1975년 수원성 장안문을 복원하면서 도편수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해 뜰 무렵부터 해가 져서 먹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목 일을 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전통 건축에만 몰두해온 것이다. “한옥은 시간으로 짓습니다. 하나하나가 조각이고 그것이 수천, 수만 개 모여 하나의 집을 완성하죠.” 목수란 결국 나무를 다루는 사람. 그래서 좋은 나무에 욕심을 갖지 않는 이가 없다. “처마 선이 잘 나왔을 때처럼 기쁠 때가 없어요. 인위적으로 만든 형태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긴 나무를 찾은 뒤 추녀 재목으로 삼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굴곡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기술이 발달해 서까래까지 기계로 깎는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사람 손이 최고지요.” 그와 함께 세월을 보내온 국산 목재들이 얼마 전 뉴욕으로 실려 갔다. 108평 규모의 대지에 한국 전통 건축을 선보이기 위해. 대목 신응수 씨는 이제 한국의 목수들을 이끌고 세계의 중심에서 한국 전통 건축의 사절단 역할까지 하고 있다.
신응수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된 1991년부터 지금까지 경복궁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원식-조원재-이광규로 흐르는 한국 대목장의 계보를 이어가며 전통 건축 문화재 복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1989년 신축한 청와대 대통령 관저와 1979년 지어진 서울 한국의 집 외에 고 이병철 회장의 자택이었던 이태원 승지원도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나무, 흙, 돌, 종이로 지은 숨 쉬는 집이다”
대목 최웅희
대목 박석규
이야기 도중 박석규 씨는 습관처럼 직각자를 들고 있다. 대목에게 직각자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했다. “바로 이 안에 바닥이 있고 기둥이 있고 지붕이 있어요.” 그는 작업 도중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간격을 찾으라”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그야말로 목수의 본능으로 알아챌 수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아름다움이 차곡차곡 쌓이고 끼워 맞춰져 온전한 한옥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공사 진행 중에는 사실 작업 반장이나 마찬가지죠. 여기서 현장 진행도 하면서 소목들이 와서 창호 만들고 하나씩 구색 맞추는 동안 나는 대문도 짜다 달고 하죠.” 언젠가는 자신도 한적한 동네에다 한옥 한 채 짓고 살고 싶다는 그는 거친 손과 나무를 느끼고 다루는 섬세한 감각으로 4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이제는 복잡하고 좁은 서울에서 벗어나 넓은 공간에 여유 있게 한옥을 짓고 싶어요. 요즘 사람들이 한옥을 찾는 것이 참 좋다가도 이렇게 좁고 복잡한 서울 안에다 지으려고 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네요.”
박석규 씨는 가회동의 쌍희재와 취죽당을 비롯해 여러 채의 한옥을 지었다. 처음 목수 일을 시작할 때는 창호 짜는 소목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북촌 일대에서 생활 한옥의 달인이 되었다. 요즘 그는 대형 한옥, 공공 공간으로서의 한옥을 짓는 꿈을 꾼다. 북촌의 엄격한 규제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심도 있다.
박석규 대목의 가회동 공사 현장엔 웃음소리와 나무 부딪치는 소리, 톱질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툇마루에 사용하기 위해 잘라놓은 부재와 그가 직접 손으로 짠 공구 상자가 놓여 있다.
좋은 건 몸이 먼저 아는 법. 한옥도 그렇다. 채광과 통풍을 고려해 터와 방향을 잡고 나무와 돌, 흙으로 집을 지으니 몸에 해로울 게 전혀 없다. 40여 년을 한옥 건축에만 매진해온 이답게 김길성 씨의 한옥 예찬은 그칠 줄을 모른다. “우리 몸에 좋은 걸로만 고르고 살펴 지은 집이 한옥이에요. 집을 지을 때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정말 대단하다는 걸 몸소 체험한다니까요. 게다가 네모반듯한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는 달리 한옥은 나지막한 처마와 추녀 선 그리고 기와가 멋들어진 운치를 전하니 얼마나 근사해요?” 과묵한 천성조차 한옥에 대한 애정을 이길 수는 없나 보다. 그간 지었던 한옥 중 대표작 몇 개만 꼽아보라는 말엔 “일평생 한옥만 했는데, 대표작이랄 게 따로 있나?”하고 눙치더니만 한옥의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는 끝도 없이 대답이 늘어지는 걸 보면.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잖아요. 한옥은 흙 냄새 맡아가며 흙 기운을 마냥 느낄 수 있는 집이니 몸에 이로울 수밖에요.” 너나 할 것 없이 힘들던 시절, 먹고사는 방편으로 선택한 목수 일이 햇수로 40년이다. 도면이 있을 리 없었다. ‘한 칸에 몇 척’, 이런 식으로 계산해 머릿속에 그린 집을 척척 현실화해냈다. “노하우는 별 거 없어요. 정해진 한도 내에서 제일 좋은 수종을 선택하는 거죠. 우리 육송도 수준이 천차만별이거든요. 그중에서도 우리 옛날 한옥에서 뜯어낸 고재古材가 제일 좋아요. 좋은 고재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가 놓치기 아까운 놈은 미리 사서 저장해두는 거죠.” 한마디로 좋은 것을 보고 고를 줄 아는 눈, 이것이 김길성 씨의 40년 목수 인생을 가능케 한 원동력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옥은 변함이 없어요. 자연에서 온 그대로 지으니 아토피 같은 게 생길 리 없지요. 최근 한옥이 살기 좋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요?”
김길성 씨는 40여 년 경력의 목수다. 그 스스로 가회동에 살며 가회동 일대 한옥을 재건축하는 데 앞장서왔고 무무헌과 같이 보기에도 좋고 살기에도 편리한 한옥들을 두루 지었다. 현재 조선조한옥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김길성 씨는 대목이기보단 연구소장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지금은 겨울이라 그림이 될 만한 현장이 없다며 최근 완성한 북촌의 한 한옥으로 안내했다. 하늘색 스웨터는 빨 질레리, 조끼는 존 스메들리, 팬츠는 갤럭시 제품.
“최고의 연장은 노트북이다”
대목 조전환
조전환 씨의 관심사는 한옥의 현대화다. 이전 경복궁 복원 작업에 참여하면서 ‘유령’이 된 왕의 집보다는 살아 있는 사람의 집을 만들고 싶어 한옥 살림집을 짓기 시작했다. 보다 많은 현대인들이 한옥을 누리기를 꿈꾸며,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건축 방식을 연구 중이다. 특히 작년에 모습을 드러낸 경주의 한옥 호텔 ‘라궁’은 그의 실험적인 방식이 빛을 발한 프로젝트. “라궁은 모듈화된 설계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방식으로 완성한 최초의 한옥일 겁니다. 나무를 짜 맞추어 만드는 한옥은 보통 각 부분의 목재를 그때그때 대목이 다듬어 완성하게 되지요. 그러나 라궁은 목재를 표준화하여 기계 작업으로 먼저 준비했고, 이를 한 번에 조립, 시공할 수 있었어요. 이는 건축 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물론 공사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한옥의 대중화에 도움이 됩니다.”
라궁에 이어 요즘은 골프장 내 한옥 클럽하우스를 짓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그가 매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애지중지하는 제1의 연장은 망치도, 대패도 아닌 노트북. 밤마다 노트북과 씨름 중이라는데, 그 안에는 한옥 각 부분의 목재를 샘플화한 그만의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이는 미래의 대목이 한층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줄 것이다.
조전환 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한옥 짓는 일을 익혔다. 경복궁 복원 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고, 경주에 있는 한옥 호텔 ‘라궁’에 이어, 골프장 내 한옥 클럽하우스를 짓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대목 송해종
대목 정영수
“살면 살수록 참 맛을 알게 된다”
대목 홍덕길
사진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미장이 김득혁 씨, 북촌HRC의 황명주 씨, 대목 홍인조 씨와 문석환 씨, 북촌 HRC 김장권 대표, 대목 이유만 씨가 계동 공사현장에 모였다. 김득혁 씨가 입은 갈색 체크 집업 점퍼는 갤럭시, 검정 머플러는 코데즈컴바인. 황명주 씨가 입은 블루 체크 프린트 니트는 갤럭시. 홍인조 씨가 입은 빨간 니트는 갤럭시, 아가일 패턴의 브이넥 카디건은 막스앤스펜서. 이유만 씨가 입은 퍼 트리밍된 블루 니트 집업 카디건은 갤럭시 제품.
대목부터 미장이까지, 북촌 한옥을 짓는 사람들
종로구 계동에 자리한 미완의 공간에 북촌 HRC의 김장권 대표와 문석환 대목을 중심으로 한 한옥 장인팀이 모였다. 문석환 씨와 그의 제자 홍인조, 이유만 씨가 기둥을 세우고, 마룻대와 서까래를 놓아 지붕의 구조를 짜놓았으며 그 위에 와공이 기와를 얹어 지붕을 완성했다. 이제는 미장을 할 차례다. 대목들이 기둥과 기둥 사이를 메워 수장을 들여놓으면 미장이가 와서 흙을 바른다. 미장을 맡은 김득혁 씨는 꼼꼼하게 그려진 도면에 따라 기왓장을 이용해 담에 물고기 문양도 넣는 등 좁은 마당이지만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미장이 끝난 뒤에는 창호장이 만들어 온 창과 문을 달아 집을 완성할 것이다.
이 집을 설계한 김장권 씨는 한옥을 보수·개축하며 한옥 짓는 방법을 배운 뒤 지난 1998년부터 북촌에만 100채 이상의 생활 한옥을 지었다. 그는 스스로를 대중적인 생활 한옥을 짓는 사람이라 말한다. 작품이기보다는 생활에 유용한 살림집을 만드는 것이다. 그때마다 문석환 씨는 김장권 씨와 참 많이 대립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짓고 싶은 대목의 욕심과 요즘 사람들의 생활에 맞게 변화를 주고 싶은 건축가의 욕심이 상충했기 때문이다. 이 둘이 함께 일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문석환 씨는 열다섯 나이에 목수 일을 시작했고 1952~53년 즈음에는 요즘 말하는 땅 장수들이 북촌 일대의 땅을 대거 사들여 마구잡이로 집을 지어 판매하던 시절에 북촌 한옥을 지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북촌에서 한옥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작업하기 까다로운 환경이 되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집주인을 만나고 설계하는 역할은 이제 건축가의 몫이 되었고, 대목은 그 이후의 단계부터 참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건축가의 도면에 대목의 연필 끝에서 나온 그림이 더해져 현장은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사내들끼리 하는 일이어서 거칠지만 재미있고 현장감도 넘쳐나는 그곳은 말 그대로 공사장이지만 양식 건축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이나 철을 갈아내는 날카로운 소리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둔탁하지만 정겨운 나무 망치 소리, 강약이 있는 톱질 소리에 사람 소리가 뒤섞여 활기찬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옥 짓는 장인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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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나무와 동백기름이면 됐지”
가구장 설석철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보유자)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설석철 옹의 작업실. 1970년부터 여기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구에 들어갈 장석(장식)을 만드는 작업대 위로는 장석 만들 때 쓰는 다양한 도구들이 놓여 있다. 청계천에서 좋은 철물 사다가 여기서 깎고 다듬고 조각한다.
“이치대로 살과 살을 끼워 맞춘다”
창호장 박천동
용인 희원의 꽃담. 화사한 색감에 정교한 디테일로 아름다운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서성환 화담장 같은 이가 아닐까. 그에겐 따로 전시장이 필요 없을 듯하다.
“담 위에 꽃도 피우고 십장생도 살게 하지요”
화문장 서성환
가옥의 둘레를 따라 이어지는 전통 담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그 제작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땅의 기초를 다진 후 장대석과 사구석을 쌓고, 정교하게 계산해 문양을 쌓고, 강회다짐으로 속을 채우고, 기와를 올리고…. 가장 손이 많이 간다는 꽃담은 10m 정도를 완성하는 데 꼬박 세 달이 걸린다. 전통 담은 땅의 모양새에 따라서도 달라졌고, 지역, 재료, 신분에 따라서도 제각기 달라졌는데 그 안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었다. “궁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꽃담은 직각과 직선으로 이어졌어요. 이는 왕가의 권위를 살리면서도 담의 문양이 잘 표현되도록 한 것이죠. 민가에서 쌓던 막돌담은 집 둘레를 휘둘러가며 쌓은 것인데, 막돌담은 그처럼 곡선으로 쌓아야 담이 넘어가지 않고 힘의 균형을 잘 유지합니다.”
열여덟 살부터 평생 전통 담을 만들어온 서성환 화문장은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 만든 담에 만족했다”고 한다. ‘마흔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에게는 담이 곧 자신의 얼굴이었던 셈이다. 젊은 시절에는 재래식으로 손수 만들다가 요즘에는 편리한 기계가 많이 나와서 일이 한결 빠르고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배우려는 사람들이 오래 견디지 못해 안타깝다고.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담장 위에도 꽃을 피우려면 힘이 드는데 말이지요.” 일하면서 들이마신 먼지 때문인지 목이 쉽게 잠긴다는 그는, 경복궁과 운현궁, 청와대부터 재일교포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는 오사카 꽃 박람회 한국관, 프랑스 파리의 서울공원 담까지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전통 담장을 통해 소박하고 아름다운 한국의 멋을 알리고 있다.
서성환 씨는 나이 열여덟 때부터 궁궐 화문장이었던 한 씨 노인에게서 일을 배웠다. 청와대 본관과 살림집, 경복궁, 운현궁, 호암미술관 전통 정원 희원, 아름지기 함양한옥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소와, 일본 오사카 꽃박람회 한국관, 파리의 서울공원 등 세계 곳곳에서 소박하고, 때로는 화려한 전통 담을 선보이고 있다.
“한옥은 결국 큰 가구입니다”
가구장 노행용
투박한 손은 목수의 이력서나 매한가지다. 나이테마냥 늘어선 굳은살 하나하나에 인생이 박히고 연륜이 박힌 탓이다. 솜씨 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노행용 소목이지만, 그런 연륜이 없었다면 ‘아름지기 함양한옥’의 복원 전 과정을 감독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소싯적 한옥 수리하는 곳을 들며 나며 눈으로 익혀둔 게 도움이 되긴 했지만, 본업이 가구장인 그에게 어쨌든 한옥 공사는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촌이다 보니 제대로 된 일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어려움이 많았어요. 특히 목욕채에 억새 지붕을 얹어야 하는데 그 일을 해본 사람이 있어야죠. 이렇게 궁리하고 저렇게 연구하면서 어렵사리 완성한 터라 볼 때마다 흐뭇해요.” 황토 돌벽에 억새 지붕을 얹은 함양한옥의 목욕채는 ‘한옥도 이렇게 편리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절로 나오게 하는 곳이다. “한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업그레이드했다고 해야 할까요? 함양한옥은 그 완벽한 샘플이자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에 참여했으니 보람이 클 수밖에요. 게다가 머무는 분마다 이런 한옥도 있네요 칭찬해주시니 목수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지요.” 첫 작품을 이토록 훌륭하게 완성한 이도 흔치 않을 법한데, 정작 노행용 소목은 별로 한 일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런 그에게 한옥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냐 물으니 “안 중요한 게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한옥 짓는 덴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가 없어요. 깔끔하게 뒷마무리를 해줘야 다음 단계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가 있지요. 흙 한 줌을 올려도 정성스럽게 해야 해요.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할 수가 없죠.” 역시나 제대로 된 한옥은 제대로 된 목수의 손에서 지어지는 법인가 보다.
노행용 씨는 전통 한옥 문화 체험관인 ‘아름지기 함양한옥’의 복원 공사를 진두 지휘했다. 현장 공사 감독으로 상량에서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함께했다. 열예닐곱 살 무렵 목수 일에 입문, 45년여 동안 가구를 만들고 있다.
원래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한옥 짓는 일도 해보았다는 노행용 가구장. 그의 작업실은 구석구석 숨겨놓은 비법이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스트라이프 패턴의 폴로 티는 발리, 아가일 패턴의 스웨터는 프레드 페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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