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H어린이집 사망사건]
울산 북구 H어린이집 사망사건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23개월 어린천사의 목숨을 되돌릴 순 없다.
어른들의 과실로 제2, 제3의 성민이가 생겨나지 않도록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그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다.
"진실을 밝혀주세요"
물증이 없는 공방
지난 4일 오후, 경주법원에서 울산 H어린이집 이성민군 사망 사건에 대한 3차 공판이 열렸다. 성민이의 가족들과 ‘23개월어린천사성민’ 카페회원 수십여명이 증인심문으로 진행된 이날 재판을 지켜봤다.
“소아 학대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계 문헌에 의하면 망인의 여러 상흔은 구타 등 학대로 인한 것과 흡사합니다. 소장 파열과 손등의 멍, 입술이나 두피하 상처 등을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다친 것이라고 하기엔 확률이 너무 낮은 것 같습니다” 이날 증인으로 나선 부산대법의학연구소 허기영 부검의의 증언이었다.
허 부검의는 지난 5월 18일 죽은 성민이의 사체를 부검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주경찰서가 제출한 부검의뢰서의 사건개요에 따르면 사인이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졌다’는 것인데, 정작 머리와 얼굴, 복부 등의 상처로 봐서는 도저히 납득이 어려웠다. 허 부검의는 경찰에 재수사의 필요성을 전달했다.
뺨을 맞았을 때 쉽게 생기는 입술 부위의 상처, 방어의 흔적으로 보이는 손등의 멍, 발생 시기가 각각 달라 보이는 머리 부위의 상처와 출혈, 그리고 무엇보다 외부의 아주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소장 파열과 절단에 의한 복막염. 이 모든 것들이 구타를 의심케 했다.
부검 결과 성민이의 소장 한 부분은 완전히 끊겨져 있었다. 그 틈으로 각종 이물질들이 흘러나와 염증을 일으켜 복막염이 진행됐고, 온몸으로 독소가 퍼져 폐혈증으로 사망했다.
소장 절단. 그러기엔 ‘75cm’의 피아노 의자가 너무 낮다는 것이 상식적인 견해다. 장 절단은 성인이 주먹으로 강하게 가격하거나 발로 밟았을 때나 일어날 일이다. 굳이 추락을 논한다면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모서리 같은 뾰족한 것에 찍혔을 경우가 있으나 이마저도 국내에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극히 드물다.
거실 한켠에 성민이의 장난감을 치워뒀다.
우두커니 그 빈자리를 지키는 아버지의 마음에 또 다시 구멍이 뚫린다.
그러나 원장부부(원장 채 모씨(27), 남편 남 모씨(30))의 주장처럼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지고, 미끌럼틀에서 떨어지고, 넘어지던 플라스틱 책상에 찍히고, 목욕하다가 상처가 덧나고, 다시 넘어져 그렇게 됐다는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숨을 쉬지 못하는 성민이에게 인공호흡을 하자 배가 더욱 불룩해졌다는 진술 또한 100%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우연의 우연이 겹치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확률이고 가능성이다.
이날 변호인은 반대심문을 통해 그 낮은 가능성을 재차 확인했다.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애를 안고 지켜보던 몇몇 여성들은 한숨과 함께 눈물을 훔쳤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심증은 많은데 물증이 없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진실은 분명 밝혀져야 한다. 성민이의 작은어머니 김 모씨(34)는 “합의해 달라고 찾아오지 말고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합시다. 그리고 꼭 밝혀주십시오”라고 원장부부와 법정에 목소리를 높였다.
2년을 채 넘기지 못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빠의 팔에 안겨 방긋 웃는
아들의 얼굴은 가슴 아픈 추억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성민이의 죽음이 아직 믿겨지지 않는다.
오는 18일 경주법원에서 4차 공판이 열린다. 이날 재판에는 성민이의 형을 심리 검사했던 울산대학병원 의사가 증인으로 나선다. 특히 여섯 살 난 이 아이는 이번 사건의 중대한 실마리를 쥐고 있다. 사건의 전말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유일한 목격자다. 경찰이 언어발달이 더딘 아이의 진술을 신뢰하지 못하자 가족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울산대학병원에 심리검사를 의뢰했다. 가족들은 “성민이의 형이 원장부부가 북구 홈에버 등에서 구타를 가했다고 말과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실은 어디에?
“저는 제 잘못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혀서... 꼭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이날 증인석에 선 성민이 아버지 이 모씨(39)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씨는 지난해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직장도 경북 강구에 있어 두 돌도 채 안 된 성민이와 여섯살 난 첫째를 돌보기 힘들었다. 성민이 할머니는 관절염으로 고생했으며 다른 친지들도 아이 둘을 24시간 맡아줄 만큼 여의치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더라도 가슴을 죄어오는 슬픔과 죄책감은 이 씨를 놓아주지 않는다. 다른 친지들 또한 마찬가지. 성민이 생각만 하면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진다.
23개월 성민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지 100일이 넘었지만 가족들은 성민이의 진실규명을 위해 아직까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3차 공판이 열리던 날 아침, 아버지와 할머니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마음을 추스려본다. '성민아, 미안하다...'고 되뇌이는 동안 집안에 정적이 가라앉는다.
재판에 앞서 이 씨를 만났다. 아이를 잃은 충격과 힘겨운 진실공방에 매우 수척해 보였다. 이 씨의 말들은 원장 채 씨의 진술과는 많은 것들이 엇갈렸다. 이씨는 “채 씨가 나와 주고받았던 대화를 부인하고 있다”며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다. 그 대화에는 숱한 의혹의 실타래가 얽혀있다. 그 속에 진실이 숨어있지만 당장은 풀어낼 방도가 없다.
이 씨는 북구청의 소개로 올해 2월 H어린이집에 아이 둘을 24시간 맡겼다. 보통 주말에 아이들을 데려왔는데 원장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놀러가는 날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 씨는 “젊은 원장부부가 아이들에게 각별히 신경을 써주는 것 같아 내심 고마워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4월에는 채 씨로부터 “성민이가 싱크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큰 병원에 가 정밀검사도 하고 치료도 했다길래 한 시름 덜었는데 나중에 조사해보니 진료기록이 없었다. 채 씨는 말을 바꾸며 피해갔고, 이런 식의 대화가 여러 번이었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이 씨의 말’을 듣고 있으면 ‘채 씨의 말’은 무언가 앞뒤가 안 맞다. 이날 공판에서도 또 하나 드러났다. 이 씨는 “사건 당일 동국대병원으로 정신없이 달려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채 씨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졌다는 원장부부의 진술은 거짓이다. 물론 이들은 극구 부인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첫 공판은 이번 사건을 다루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이날 담당 검사는 A4용지 19장 분량의 질의서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8월 21일 성민이 사건에 대한 특별재판이 3시간에 걸쳐 열렸다. 이때 원장 채 씨는 “단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교육철학입니다”는 일관된 입장을 확고히 밝힌 바 있다.
지난 4일 3차 공판에 이어 오는 18일 4차 공판도 증인심문으로 열린다. 현재로선 누구의 말이 맞는지 단정 지을 수 없으나 껍질은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오는 연말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어른들의 과실로 23개월 된 어린 생명을 잃었다. 원장 채 씨는 현재 아동복지법상 아동유기, 업무상 과실치사, 영유아보육법상 국가보조금착복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상해치사’에 대한 진실찾기 이면엔 이 같은 일이 재발해선 안 된다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다. 성민이의 가족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카페의 4천여명 회원들도 하나같이 재발방지에 뜻을 모으고 있다.
울산종합신문(www.ujnews.co.kr) 글=정필문기자 / 사진=이수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