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며 유명산 어비계곡의 비경을 보다
(기행 수필)
루수/김상화
매일같이
불볕더위가 대지를 달군다. 농작물은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인간의 마음마저 메말라 가고 있다. 파란 하늘에서 녹아내린 뙤약볕이 이 땅에 숨
쉬고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생명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며칠 전에 내린 비로 해갈이 되어 한숨은 돌렸다. 그런데
어제 오후엔 서쪽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황홀한 구름을 보았다. 그 구름은 서쪽 하늘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붉은색으로
곱게 물들여 놓은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 사이로 나르는 기러기의 행렬은 또 얼마나 보기 좋고 사랑스러웠던지 모른다.
이런 것을 바라볼 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황홀해지는 까닭은 웬일일까? 우리는 누구나 근심과 걱정이 있는가 하면 행복과 사랑도 있다. 또 아름다운
물체나 형체를 볼 때면 복잡했던 마음 한구석을 향기롭게 만들어 낸다. 오늘은 행복을 잡으러 가평에 있는 유명산의 어비계곡을 향해 떠나는 날이다.
새벽부터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오늘 산행을 하러 갈까 말까 하는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간다고 신청했기 때문에 가야만 한다.
무엇보다 산울림과 한 달에 한 번 가는 산행이다. 정들었던 회원들도 보고 싶고 남자의 멋없는 수다도 떨고 싶다. 배낭을 부산하게 챙기고 있을 때
처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당신 오늘 비가 많이 내리는데 산엘 가요? 하고 묻는다. 그럼 가야지 하며 얼굴을 바라보니 내가 한심하고 딱하다는 듯
빙그레 웃는다. 아무리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라 할지라도 잠시나마 부끄러움이 앞을 가린다. 비 내리는 날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간다는 것은
여자로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비록 여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다른 소리를 더 듣기 전에 배낭을 얼른 메고 집을
빠져나왔다. 대문을 닫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집사람이 무어라 해도 의기양양하게 간다는 것이 잘한 것 같다. 비 내리는 날 낭만을 만들어
보자. 낭만은 젊은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나도 낭만이 있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고 오늘 하루를 만끽하고 올 것이다.
우산을 쓰고
구민회관 집결지로 갔다. 벌써 많은 회원이 모였다. 신인희 리더와 조진순 총무가 눈을 마주치자 반갑게 인사를 한다. 차에 오르니 이준태 고문과
가철노 고문도 오셨군요 하며 반가워한다. 보는 회원마다 모두 반가웠다. 창밖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지만,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표정은 모두 밝다. 입가엔 미소가 흐르고 눈엔 행복한 표정이 가득 담겨있다. 오늘 산행은 재미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는 회원들이다. 필자
역시 난생처음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붕붕거리며 달린다. 비가 잠시 멈춘 것 같다.
창밖을 내다볼 때 산의 허리는 얼룩빼기 황소처럼 흰 구름으로 아름답게 수를 놓았다. 구름이 서서히 움직여 살아있는 그림이 되었다. 생동감이
넘치는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버린 산의 풍경이 하도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유명산(862m)은 용문산 줄기로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유명산은 원래 지형도상에는 산 이름이 없었던 것을 1973년 3월 1일 엠포르산악회에서 국토 자오선 종주
등산 중 이산에 이르자 당시 대원중 홍일점이었던 진유명(당시27세) 이라는 여성 이름을 따 산 이름을 지은 것을 후에 산악잡지에 기재되어 그 후
유명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옛 지도에는 이곳 일대에서 말을 길렀다 해서 마유산(馬遊山)이라는 산 이름이 분명히 있으나 지금은 유명산으로
통칭하고 있다.
차는 목적지인 유명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가일리" 마을에 도착했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덮여있고 우리가
도착하면 비가 내리기로 약속한 듯 정신없이 퍼부어 댄다. 비가 오든 말든 계획대로 산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산행하는 팀과 이곳에 머물러 물놀이를
즐기며 점심 준비를 하는 팀으로 나뉜다. 필자는 산행하기로 했다. 모두 17명의 회원이 행복한 표정으로 출발한다. 믿음직한 장복열 대장이 앞에서
인솔한다기에 마음이 놓인다. 우중에 비를 맞으며 험한 계곡을 간다는 것은 어떠한 일이 닥친다 해도 감수하겠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때론 죽음
까지도 각오 해야 한다. 산울림의 용감한 회원들이 탄생하는 날이다. 우산을 쓰고 한참 동안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걷다 보니 삼 갈래가 나와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명산 자연휴양림이란 세움 간판이 보인다
유명산의 자연 휴양림은 유명산 산행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다. 휴양림에 조성되어 있는 시설을 이용해 하룻밤 숙박하고 산을 오르면 훨씬 여유롭게 산행을 할 수 있다. 특히 울창하게 들어선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야영테크에서 즐기는 캠핑은 말로는 상상할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선어치 고개의 유래는 중미산과
소구니산의 골이 깊어 하늘이 서너치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가마 타고 시집가던 새색시가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느냐는 물음에 서너치 남았다고 대답하여 선어치 고개로 명명하였다고 알려졌다. 또 하나의 전설은 신선이 앉아 휴식을 취할 때 고기가 갑자기
신선해졌다고 하여 선어치(鮮魚峙)라 부른다는 유래도 있다. 고개가 하도 높아서 서너 치만 더 오르면 하늘과 맞닿는다고 하여 "서너치"고개라
했다. 이 고개는 양평 쪽 "농다치"고개로 이어지는데, 고개 너비가 3~4치 정도도 안 되는 좁은 고개라는 뜻으로, "1촌(약 3cm)을
한치라고 하니, 고갯 길의 너비가 세 치 내지 네 치가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좁다는 뜻도 있다. 또는 서너치만 넓으면 좋을 터인데 하는 소망을
담은 고개"라고도 한다.이 모두 고증되지 않은 전설일 뿐이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옷은 흠뻑 젖었다. 옷이 젖어 시원하기는 하지만
몸에 감겨 걷기가 힘들다. 참으로 야속한 비다. 왜 하필 오늘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릴까? 신께서 우리가 다정하게 산행하는 것을 질투하시는
것일까? 아니다, 운치 있는 산행을 하라고 비를 선물로 주시나 보다. 옆에는 계곡물이 불어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소나기는 마치 프라이팬에 콩을 볶을 때 팔딱팔딱 틔면서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는 콩 튀는 소리처럼 들린다. 떨어진 빗방울은 금세 도랑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신이 빚어낸 아름다운 비경과 비가 내려 불어난 계곡물 흐르는 자연의 소리는 감히 무엇에 비교할 수 없구나!
우리는
어비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어비계곡의 유례에 대해 적어본다. 이 계곡은 물이 맑고 고기가 많아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마치 계곡을 따라 날아다닌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이 계곡에는 산천어, 메기, 송어 따위의 물고기들이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날아다닌다. 어비계곡은
물이 깊지 않아 어린이들의 물놀이 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며 돌 틈 사이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원시림이 빼곡히 들어차고 기암괴석이 여기저기서 손짓하는 어비계곡이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 위에는 파란 낙엽 위에
핑크빛으로 정성을 들여 쓴 사랑의 편지 한 통을 싣고 임께 주려고 달려간다. 마침 그때 필자의 옆에는 사랑스러운 젊은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서 있다. 부부의 얼굴에는 선한 기운이 맴돌고 눈에선 사랑의 레이저 광선이 쏟아져 나온다. 눈만 바라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지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메시지가 똑똑 떨어진다.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원앙새 같은 이승기 회원과 조정희 회원 부부다. 처음 대하는 부부지만
매우 사랑스럽다. 이 아름다운 부부의 앞날에 건강 행복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회원들은 연신 웃음이 끊기지 않는다. 어비계곡엔 오로지 비 내리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 회원들의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밖에 안
들린다. 아마도 이렇게 운치 있고 환상적인 장면은 우리 이외는 누구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7부 능선까지 올라왔다.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내려가자는 회원과 정상을 밟아보자는 회원이 있다. 장복열 산악대장과 대여섯 명이 끝까지 올라가자고 한다. 필자도 정상을 밟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비가 많이 내려 행여 물이 불어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위험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으므로 눈물을 머금고 내려가기로 했다.
정상을 밟아보지 못하고 내려가는 기분 씁쓸하다. 섭섭한 마음은 7부 능선에 버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젊은 미인 이미희 회원이 옆에 동행하므로 위로가 된다. 산도 잘 타지만 마음씨 또한 곱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맛있는 점심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회원들이 있는 곳까지 왔다. 오늘 점심은 백숙 보양식이다. 그 많은 인원을 먹이기 위해 집행부 간부들과
보조를 해준 회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많은 고생을 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신인희 리더와 조진순 총무는 먹을 것을 계속 갖다 준다. 황명연
국악 회장도 나에게 먹을 것을 자꾸 권한다. 조금이라도 맛있는 것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눈치다. 고마움을 가슴에 간직하고 갈 것이다. 1인당
닭 한 마리씩을 맛있게 먹었다. 고생한 회원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점심을 먹고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가철노 고문 황진남 회장이 물로 뛰어들어간다. 여경희 대장을 박종술 대장이 반짝 안아 물에 집어넣었다. 산울림 산악회가
아니면 언제 어디서 이렇게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을까? 물에 들어가서 상대에게 물을 퍼부어 대는 장면을 보노라니 필자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고 학창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모두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유명산 계곡이 떠내려가도록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마침 깨끗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잘도 논다. 이런 것이 우리가 사는 재미난 세상이 아닐까요? 산울림 산악회 회원들은 7월 마지막 주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장식했다.
비를 맞으며 한 산행은 두고두고 추억의 꽃을 피울 것 같다. 회원 여러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필자도 아름답고 행복한 7월을 마무리하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2017년 0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