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4년(단종 2)에 완성된 ≪세종장헌대왕실록 世宗莊憲大王實錄≫의 제148권에서 제155권에 실려 있는(全國地理志).
내용
8권 8책. 실록지리지는 본서가 편찬되기 이전의 관찬 지리지와 관계가 깊다.
세종은 즉위 6년(1424) 11월 15일에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에게 지지(地誌) 및 주·부·군·현의 연혁을 찬진(撰進: 임금에게 글을 지어 바치는 것)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춘추관(春秋館)에서 이 사업을 맡게 되어 우선 전국적으로 자료가 될만한 것을 수집하는 한편, 사원(寺院) 사료로서 각 주·부·군·현의 비보사사(裨補寺社)창립에 관한 문적(文籍)을 찾아서 정확한 지리지의 편찬을 기하였다.
찬진의 명령이 내린 그 이듬해(1425)에 ≪경상도지리지 慶尙道地理志≫가 발간되었고, ≪경상도지리지≫와 같이 발간된 나머지 7도의 지리지를 한데 모아서 ≪신찬팔도지리지 新撰八道地理志≫가 편찬되었다.
세종이 명을 내린 지 8년 뒤인 세종 14년(1432) 정월 19일의 실록 기사에 의하면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 맹사성(孟思誠), 감관사(監館事) 권진(權軫), 동지관사(同知館事) 윤회(尹淮)·신장(申檣) 등이 ≪신찬팔도지리지≫를 세종에게 바치었다고 한다.
이는 곧 변계량에게 명한 지지편찬사업의 결과라 하겠다. 그 뒤 다시 22년이 지난 1454년(단종 2) 3월에 ≪세종실록≫ 중에 실록지리지가 포함되어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 실록지리지 맨 첫 면에 “우리 나라 지지가 ≪삼국사 三國史≫에 간략히 기재되었고, 다른 데에는 상고할만한 것이 없더니 세종대왕이 윤회·신장 등에게 명하여 주·군의 연혁을 고증하여 이 책을 지었고 임자년에 책자가 완성되었다.”라는 기사가 있다. 임자년(1432)이라는 것을 보아 이 책은 바로 ≪신찬팔도지리지≫이다.
그러면 ≪신찬팔도지리지≫와 실록지리지와의 관계는 ≪신찬팔도지리지≫가 그대로 실록지리지가 된 것은 아니고 ≪신찬팔도지리지≫를 다소 가감, 정리하여 실록지리지가 된 것이다.
결국, ≪경상도지리지≫와 같은 각 도의 지리지를 모아서 ≪신찬팔도지리지≫를 만들었고, 이 ≪신찬팔도지리지≫를 다소 수정, 정리하여 실록지리지가 된 것이다.
원래 조선 시대의 역대 실록은 이른바 실록체(實錄體)라는 주자(鑄字), 즉 을해자(乙亥字)를 사용하여 인쇄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춘추관·충주·전주·성주(星州)의 4대사고(四大史庫)에 나누어 그 전승의 완벽을 기하였다.
그 뒤 다소의 변경이 있다가 임진왜란을 치른 뒤, 1606년(선조 39)에 이르러, 당시 오직 한 벌만 남아 있던 것을 원본 삼아 3벌을 다시 만들어 새로운 사고, 즉 강화의 정족산(鼎足山), 무주의 적상산(赤裳山), 봉화의 태백산(太白山), 평창의 오대산(五臺山)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게 되었다.
이 중 오대산사고본은 일본인에 의하여 없어지고, 다른 3사고본은 현재 규장각 등에 소장되었다. 흔히 태백산사고본이 학자들 간에 많이 이용된다.
태백산사고본은 모두 사본으로 되었는데, 표지는 감지(紺紙)를 사용하였으며, ≪세종장헌대왕실록≫이라 쓰여 있고, 그 아래에 권수가 기입되었다. 지리지 부분을 8도 8권으로 나누어 기입하였다.
이것은 제148권의 경도한성부(京都漢城府)·구도개성유후사(舊都開城留後司)·경기도관찰(京畿道觀察)에서 시작하여, 충청도·경상도·전라도·황해도·강원도·평안도의 순서로 되었고, 제155권 함길도(咸吉道)에서 끝난다. 기재 항목은 경도한성부와 기타와는 차이가 있다.
경도한성부를 보면, 처음에는 수도로서의 개관적인 내용으로 연혁(沿革)·부윤(府尹)·판사(判事) 등의 관직, 명칭의 개폐, 종묘·궁실의 건립, 도성(都城)의 주위,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 등을 소개하고, 다음에 한성부 내의 행정구역인 동·서·남·북·중의 오부(五部)와 그 소속 방명(坊名)·방수(坊數)·호수·간전(墾田)·결수(結數)를 밝히었다.
이어서, 종묘·사직·문묘·왕궁·궁전·누(樓)·교(橋)·관(館) 등에 관하여 각각 명칭 유래를 비교적 자세히 서술하였다. 다음에는 산천·제단(祭壇)·적전(藉田)·도진(渡津)·빙고(氷庫)·조지소(造紙所)·수년(水輾)·활인원(活人院)·귀후소(歸厚所)·사찰·봉경(封境) 등의 주석을 달면서 그 위치·수량·유래 등을 설명하였다.
구도개성유후사조에서는 대체로 경도한성부의 항목과 비슷하나, 다소 간략하고 송도 8경(松都八景)·영이(靈異) 등을 더하였다. 경기조를 보면 처음에는 관원(官員)과 정원·연혁·사경(四境 : 위치·면적)·행정구역·명산·대천 등의 역사적 고찰과 자연환경을 기록하였고, 다음에는 호구·군정(軍丁)·간전·공부(貢賦)·약재(藥材)·진영(鎭營)·역(驛) 등 경제·재정적 항목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였다.
경기조 다음에는 이에 속한 1목(牧)·8도호부(都護府)·6군(郡)·26현(縣)을 모두 단위조(單位條)로 들어 설명하였다. 경기도를 비롯하여 각 도 및 그 아래의 단위조의 내용 구성을 정리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20개 항목이다.
연혁·사경·산천·궐토(厥土)·풍기(風氣)·토의(土宜)·호구·군정·성씨·간전·토산 및 토공(土貢)·약재·목장·어량(魚梁)·염소(鹽所)·철장(鐵場)·도자기소(陶磁器所)·고적·역전·조운(漕運) 등이다.
현대 지리학에서 본 실록지리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재 내용이 정확한 점이다. 기재 내용의 정확을 기하기 위해 숫자와 통계를 중시하여 인구·거리·면적 등을 정확한 숫자로 표시하였다.
경기도의 예를 들면, 호(戶) 2만 882, 구(口) 5만 352, 시위군(侍衛軍) 1,713명, 선군(船軍) 3,892명, 간전 20만 347결(밭 12만 4173결, 논 7만 6173결), 동서 264리(里), 남북 364리, 강화도의 매도(煤島)의 주위 60리, 국마(國馬) 327필, 목자(牧子) 7호, 수군(水軍) 16호 등으로 되어 있다. 후세의 관찬 지리지는 숫자·통계에 있어서 이에 미치지 못한다.
둘째, 지역성을 파악한 점으로, 그 지방의 특이한 지리적 성격을 파악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기후 조건에 특성이 없는 곳은 기재하지 않았고, 독특한 기후 조건으로 간주되는 곳만 기재하였다.
평안도 벽동군조(碧潼郡條)에 “7월에 벌써 춥고, 이듬해4월에야 비로소 따뜻하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민속 항목에서도 강원도 이천군조(伊川郡條)의 “귀신을 숭상한다.”, 삼척부조(三陟府條)의 “해산물 얻는 것을 업으로 하고 무예를 숭상한다.” 제주목조(濟州牧條)의 “어리석고 인색하다.”는 것과 같이 그 지방의 특이한 민속을 파악하는 데 힘썼다.
셋째, 산업을 중요시한 점이다. 이것은 앞에서 열거한 기재 항목 중 토지의 비척(肥瘠)·토의·토산·토공·간전·철장·약재·목장·어량·염소·도자기소 등과 같은 산업에 관한 항목이 비교적 많이 차지하고 있음을 보아도 짐작되는 바다.
특히, 목장·철장·염소·어량·약재에 관한 내용은 현대에서도 보기 드물 만큼 자세히 기록이 되었음은 주목할만하다.
넷째, 지인상관론(地人相關論)에 맞게 항목을 배열한 점이다. 근대 지리학의 중심 사조 중의 하나인 환경론(環境論)의 핵심이 되는 지인상관설의 입장에서, 앞에 든 20개 항목을 구체적으로 대비하면 다음과 같다.
연혁은 역사적 고찰이 되고, 사경·산천·궐토·풍기·토의 등은 지인(地人)의 지, 즉 자연환경이며, 호구·성씨·군정 등은 인, 즉 인간측에 해당된다.
또한 간전·토산·약재·목장·어량·염소·철장·도자기소·고적 등은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교섭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경관을 의미하고, 역전·조운은 통신·교통을 의미한다 하겠다. 즉, 15세기 조선 초기의 시대상을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조선 초기의 전국 지리지로서 사서의 부록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내용이 국가 통치에 필요한 여러 자료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국토의 위치와 연혁에 치중하여 지명의 설명과 나열을 중요시한 ≪삼국사기≫ 지리지 체제를 탈피하여 인문지리, 자연지리, 경제·군사적인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초기의 지리지 편찬 체제가 확립되었으며, 그 뒤의 지리지 편찬의 모범이 되었다. 특히, 지방 명칭의 변천, 행정 단위의 승강(陞降) 등이 기록된 연혁·소관조 등의 행정 관계 사항과 호구·군정·공부·전결·토산 등의 경제·재정 관계 사항, 명산·군영·성곽·목장·관방조 등의 군사 관계 사항, 성씨·인물조 등 주민들의 신분 구성에 관한 사항이 상세하여 조선 초기에는 통치 체제 확립에 주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15세기 조 선시대의 경제·사회·군사·재정·교통·산업·지방 제도 등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하고 있어 역사지리학과 지방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도 1929년에 편사한 ≪세종실록지리지≫ 8권 8책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고, 1937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도 ≪교정세종실록지리지≫를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