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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엄마야 누나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꽃 산유화 초혼
못 잊어 금잔디 님의 노래
먼 후일 부모 옛 이야기
왕십리 풀따기 접동새 김소월(金素月)
가는 길
-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金)모래빛,
뒷문(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초혼
- 김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멀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못 잊어
-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틀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금잔디
-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님의 노래
- 김소월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드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 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먼 후일
- 김소월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부모
- 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랴.
옛 이야기
- 김소월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며는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며는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읍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 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었읍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어 두었던 옛 이야기뿐만은 남았읍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 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왕십리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 가서 울어나 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풀따기
- 김소월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옅게 떠 갈제 물살이 해적 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은 이 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접동새
-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뒷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읍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읍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김소월(金素月)
본명 : 김정식(金廷湜)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출생 1915년 오산 학교 중학부 입학 1923년 배재 고보 졸업 1924년 '영대(靈臺)' 동인 활동 1934년 음독 자살
시집 : 『진달래꽃』(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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