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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경 여사님은
텃밭시인학교 전신인 송앤포엠 시창작교실에서 수년 간 시낭송 수업과 시창작 수업과정을 함께 하신 회원이셨습니다. 텃밭시인학교 1기생으로 등록은 하시었으나 건강상 쉬고 계시든 중 계사년 섣달 스무 아흐레 날 숙환으로 영면하셨습니다.
오늘 텃밭시인학교 전회원 일동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옵니다.
어머니 같으신 정현경 여사님을 떠나보내며
이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여사님 ! 몇 주 전 안부를 여쭈었을 땐 이승의 가장 밝고 부드러운 음성이시더니 방금 전 여사님의 부음을 듣고, 쏟아지는 눈물은 가눌 길 없습니다 제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따뜻한 햇볕처럼 늘 귀하고 귀하신 어머니셨는데, 이 무슨 청천병력입니까 여사님 ! 이승에 남은 우리는 어떻게 살라하고 무엇이 바빠 그 후덕하신 육신을 벗고 혼령이 되어 저 파란 하늘 속으로 휘적휘적 떠나셨습니까! 만나면 언제나 어릴 적 사시 던 섬진강 매화 보러 꼭 한 번 같이 가자하시더니, 그 약속은 어찌하고 혼자 가셨습니까 여사님 ! 여사님 ! 이제 이승의 서럽고 서러운 인연의 매듭은 다 푸시어 이다음 저희가 저승에 놀러 가면 구름 속 하늘 위에다 붉고 흰 매화 꽃나무 많이많이 보게 심어놓으시어요, 여사님 !
2013년 1월 29일
삼가, 정현경 여사님께
시인 김동원 조시를 지어 올립니다.
김동원 시인,『시, 낭송의 옷을 입다』(2011년, 만인사) 출판기념회 정경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20년 만에
나는 오늘
정현경 여사님 댁에서
자식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승주 시인의 「발문」해설
□발문□
한국 시낭송 연출론의 초석(礎石)
이승주 (시인)
아름다운 것은, 이승이나 저승에서나 다 마찬가지다 ―김동원, 「詩聖 未堂先生 永生記」중에서
그의 첫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표지에 실린 김동원 시인의 사진을 보면 동그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웃는 모습이 천진한 아이 모습 그대로이거나 영판 갓 부임한 초등학교 총각선생님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을 상재하면서도 그 마음만은 그대로라서 동시도 꾸준히 쓰고 동시집 『우리나라 연못 속 친구들』도 펴냈다. 그래서 그런지 김동원 시인의 시편들을 읽을 때면 행간(行間)이 그렇게도 맑은 시는 못 봤다고 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김동원. 경북 영덕군 남정면에 소재한, 등대가 있는 아름다운 작은 어촌 구계항에서 태어나 현재는 대구수성초등학교 정문 앞에 사는 사람. 네 살 때, 그에게 주려고 “자전거 끌고 하늘로 사탕 사러 간 / 그 아버지”(「인연」, 3시집 『처녀와 바다』)를 여의고 “몸 뜯어지던 그 아픔”, “천지간 뒤바뀐 엄청난 오장 경련”과 “그 끝없이 빨려만 들어가던 몸속 블랙홀”(「靈感」, 3시집 『처녀와 바다』)의 8년간 투병을 거치며 “이 세상에서 아직 시보다 더 나은 것을 알지 못하”(3시집 『처녀와 바다』 ‘자전적 시론’)는 사람. 천상 시인인 사람. 지금도 그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일 사람.
시를 사랑하는 이는 다 그렇듯, 늦가을 어스름이 깔리는 뒷산의 산책로를 걸어 내려오며 홀로 생각에 잠기는 것은, 저 붉은 저녁놀과 나란히 짝이 되어 꼭 어울리는 것으로 이 세상 ‘시밖에 없다’는 그 무례한 느낌뿐이다
아마도 이 시를 읽어가는 많은 분들이 위쪽의 글귀 속에 들어앉은 좁은 예술의 자기 중심 사고를 책망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 ‘깊이 물들어가는 늦가을 단풍 속에 온몸과 마음이 몽땅 고독의 병으로 색깔이 바래어들었구나’ 하고 이해해 준다면, 이 또한 시를 사랑하는 행복한 변명의 한 가지 이유는 될는지……
시를 사랑하는 이는 다 그렇듯, 나 또한 이 가을 어둠이 깃든 참나무 잎새 속에서, 아주 작은 영혼들의 목소리로 나직이 둘러앉아 속삭이는, 저 사라져 간 시인들의 시 읽는 소리를 듣는다 머뭇거리며 돌아서서 읽는, 미처 알아채지도 못한 그 이상한 가을 밤바람 소리를 듣는다 ―김동원, 「시를 사랑하는 이는 다 그렇듯」(2시집, 『구멍』)
‘시천(詩天)’은 김동원 시인의 자호이다. 나는 일찍이 한국현대시 100년 중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서정시인 서른 명쯤과 그들의 대표시집 서른 권쯤의 반열의 앞머리에 그와 그의 두 번째 시집 『구멍』을 올린다고 말한 바 있거니와,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말 그대로 그만이 시를 하늘로 아는 사람인 줄 안다. 그만이 진정으로 사랑과 인생을, 사랑과 인생의 애환을 온몸으로 아는 사람인 줄 안다. 그만이 시에 오롯이 가슴판이 떨릴 줄 아는 시인인 줄 안다. 그런 시천이 나에게 이 책의 원고를 보여주었을 때, 그의 시에 대한 고귀한 열정을 존경하고 있던 나는 그의 높은 시사랑에 대한 경의로, 번다한 일상을 밀쳐두고 마치 수제작업을 하듯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었다. 나는 그 원고를 내 정신이 가장 명료한 때 오전 한두 시간을 할애해 한 달 남짓 동안 고시공부하듯 읽었다. 두어 편 읽고나서 지치면 더 꼼꼼히 읽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때때로 나의 그 원고 읽기가 그것을 써 온 그간의 그의 노고에 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와 그의 글에게 미안스러울 때도 없지 않았다. 마침내 마지막 편을 덮고 나서는 마치 내 자신이 대하소설 한 편을 탈고한 것 같은 시원함과 허전함이 뒤섞인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천의 원고를 읽으면서 아쉬움과 미안스러움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고백컨대, “이별이 있어 첫사랑은 아름답다.”(김선굉,「그리움의 시」편) 같은 문장은 오래 마음에 아릿하게 남아서, “밀물과 썰물 위로 한없이 주고받는 섬과 섬의 끝없는 사랑의 밀어”(유치환,「행복」편) 같은 말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시는 그 어떤 역사 위에서도 강자다.”(김준태,「불이냐 꽃이냐」편)라거나 “언어의 절벽을 건너뛸 수 있는 힘이 상상력이다.”(김동원,「거짓말」편) 같은 말들은 시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에 새기고 싶어 노트에 배껴적어 보기도 하였으며, 허만하 시인의 「프라하 일기」편을 읽다가는, 문득 그 순간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좋은 시를 쓸 수 있겠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 것도 들지 않은 바가 아니었으며, 또 서종택 시인의 「나비」편을 읽다가는 너무 좋은 시를 읽게 된 기쁨으로 과일 행상을 하는 아줌마나 택시 기사에게도 마냥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이기도 하였다. 하여, 내가 살고 있는 이 남도(南道) 밀양에도 몇십 년만의 폭설이 내리던 날은 전기난로를 끼고 그 원고를 읽다가 신발 앞코의 고무창이 불에 거슬려도 아깝지 않아야 했다.
시낭송은 시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천의, 시와 시낭송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아니면 쓰여질 수 없었을, 한국 시낭송 연출론의 초석이 될 이 저작이야말로 삼라만상, 이승 저승 뭇 중생들의 혼령을 살뜰히 보듬어 안고 위로하기 위해 벌인 한판의 시낭송굿이겠다. 그리고 또 이 노작을 통해 그는 나에게로부터 ‘최초의 시낭송 연출가’란 수식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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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현경 여사님! 어찌 급히 가셨습니까. 어머님 품 같이 따뜻하다고 김동원 선생님은 늘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여사님을 처음 뵌것은 햇수로 2년 전 입니다. 그리고 여사님댁으로 두 번이나 초대받아 맛 있는 음식을 먹었던 것을 기억 합니다. 지난 가을 우리들의 시 축제에 내외분께서 참석 하시고 찬조까지 하셨는데 감사 말씀 드리지 못했습니다. 부디 편히 가십시오. 명복을 빕니다.
정현경 여사님께서 마지막 유언이 텃밭시인학교를 도우라고 말씀 하셨답니다. 우리들의 문제 입니다만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리들은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공부할 따름 입니다. 기름진 텃밭으로 가꾸겠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님의 향기로운 삶, 향기로운 인연에 합장하여 깊은 절 올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애석한 마음이 앞섭니다.다정하게 손 내밀며 하동사람이 반갑다며 시집 한 권 부탁하시며 한 번 집에 꼭 오라는 말씀이 귀에 선합니다.진즉 갔어야 할 만남을 놓쳐서 몹시 후회스럽습니다. 먼 곳에서도 평안하소서.
다사롭고 너른 품을 지니신 정현경 여사님께서 우리 곁을 훌쩍 떠나시다니! 슬픈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생전의 거룩한 뜻을 기립니다. -장하빈 합장
래여애반다라! "겨울하늘 아득히 잃어버린 연처럼" , 텃밭에 숨어있는 씨앗처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상환 두손모음.
지금 아버지께서 이 사진을 보시고 그리움에 잠시 몸을 떨었습니다. 황급히 사진을 스크롤하여 흩어지는 말들로 격한 감정을 추스리시는 아버지를 돕습니다. 잊어서는 안될 어머니 모습, 그 얼굴에 새겨진 의미들을 곱씹어 보려하나 작은 가슴이 허락치 않아 안달이 나고야 맙니다. 잡힐 듯 하던 당신 존재감을 자주 못느끼게 되고 허망하게 부여잡는 나 자신만을 느끼고야 맙니다, 일상의 그 싸늘한 무심함에 잠식된 듯한 그것을 다시 살리려 제 마음을 다시 익숙하던 그 품 안으로 옮겨봅니다. 그러나 어머니 품은 이제 이 사진과 함께 컴퓨터 책상을 떠나는 내 걸음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은 사라진 듯 나 자신이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