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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설교 리포트
대한성공회 청주복대동교회를 다녀와서...
명칭 : 대한성공회 청주복대동교회
주소 : 361-813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 2333번지 273-4766 (팩스겸용), 4767(사제관)
관할사제 : 오동균 신부 (E-mail:cyprianoh@hanmail.net)
신자회장 : 윤박위(모세), 사제회장 : 이병화(모세)
<제10-42호> 2010년 10월 10일 연중28주일
대한성공회 청주복대동교회
St. Matthew’s Anglican Church
<연중 제28주일> 감사성찬예식 순서
집전: 오동균 신부 기도서 236쪽 <나해> 1양식, B곡, 녹색
1. 말씀의 전례
*입당성가 - 374장 (3분)
*본기도 - 집전자 (30초)
자비하신 하느님,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참 길을 가르쳐 주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죽음에이르는 죄의 길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참 길로 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제 1독서 <아모 5:6-15> - 민마리아 (2분)
*충계성시 <시편90편> - 집전자 (2분)
○ 우리에게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
*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 주여, 돌이키소서. 언제까지 노하시렵니까?
* 당신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 동틀 녘에 당신의 사랑으로 한껏 배불러
* 평생토록 기뻐 뛰며 노래하게 하소서.
● 우리가 고생한 그 날수만큼,
* 어려움을 당한 그 햇수만큼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 당신의 종들에게 당신께서 이루신 일들을,
* 또 그 후손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 주, 우리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어: 우리 손이 하는 일 잘 되게 하소서.
* 우리 손이 하는 일 잘 되게 하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제 2독서 <히브 4:12-16> - 전안드레 (2분)
*충계성가 - 372장 (3분)
*복음 <마르 10:17-31> - 집전자 (4분)
*설교 - 오동균 신부 (15분)
나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
사람마다 한 가지씩 약점이 있다.
저마다 자기 약점은 감추고 상대방, 혹은 경쟁자의 약점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성공의 법칙으로 제시되고 있다.
중국 고대 병법가 손자는 이미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이 성공의 법칙이라고 한 바 있다.
삶을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병법의 원리를 이용해서 성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르침은 ‘약점을 자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에서 보면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전쟁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나눔의 삶, 고백의 삶에서 약점을 고백하고 나누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덕이며 가치이다.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인 강영우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저를 칭찬할 때마다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저마다 약점과 콤플렉스가 있는데 이 약점과 콤플렉스는 오히려 나를 열고 고백함으로써 성공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전쟁이 아니라 나눔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제1위를 향하여 전쟁하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하지만 삶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은 타인과의 나눔, 타인과 교제에서 그 본질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님께 다가온 부자청년은 삶을 1등 경쟁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1등을 하기 위해 율법도 잘지키고 자기를 닦아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부족한 한가지를 지적하신다.
그의 부족한 점은 그가 약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부자였기 때문이다. 부자는 약점이 없다. 언제나 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자기를 열지 않고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자이다.
예수께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신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의미보다 자기의 것을 덜어낸다는 의미가 강하다.
부자는 덜어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부자중심의 가치관으로 볼 때 합리적인 것은 언제나 더하기만 있다.
후퇴하고 실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고 악이다.
그러므로 합리적이라면 언제나 성공할 것이고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자에게 실패한 가난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사람들 사이에서 찾지 않고 사람들을 계량화시키고 단자화시킨 경쟁세계에서 찾고 있었다.
부자청년은 현대의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대표적 표상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너의 약점을 공개하라고 하신다.
더하기만 하지 말고 실패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공개해서 나누어라고 하신다.
다른 사람과 삶을 나누기 위해서는 자기의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 이전의 단계이다.
자기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다.
먼저 하느님에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예배에 나오기 위한 준비단계이다.
이 준비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내려놓음>이다.
“가진 것을 다 팔아”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완전한 포기를 통한 완전한 새로움으로 가는 길이다. 내려놓는 단계에서 자기 포기와 새로운 자아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 말씀인 것이다.
우리의 예배는 자신의 완전한 교체에 해당하는 이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
즉 수난과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눈을 버리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데 필수적이며 이것이 수난이다.
*신자들의 기도 - 김아나타시아 (3분)
태백교회(주철주 신부)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신임 어머니회장(최바바라)님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김진황(야곱)을 위해 기도합시다.
교구장 선출을 위해 기도합시다.
2. 성찬의 전례
*평화의 인사 - 샬롬 (15초)
*봉헌성가 - 457장 (3분)
*성찬기도 제1양식 - 집전자 (30초)
*주의기도 - 다같이 (1분)
*하느님어린양 B곡 - 다같이 (3분)
*영성체 - 399장 (10분)
*성체후 기도 - 다같이 (1분)
3. 파견성가 - 부흥 (3분)
미사 관찰과 느낌
1) 예배의 분석(예배길이, 각 순서의 시간 등)
전체적인 예배는 짧고 간단했다.
순서 하나하나가 잘 짜여진 각본처럼 바로 바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예배의 지루함은 없었다.
모든 예배는 성례를 포함해서 1시간에 마쳐졌다.
특히 시간적으로는 군더더기가 없이 진행되는 것이 참 좋았다.
2)공간적 요소
작은 교회인지라 들어가자마자 눈에 딱 띄였다.
교회당은 작은 편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외관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도착해서 사제님을 직접 만났고 소개를 하니 어떤 중년 남성분에게 안내를 부탁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맨 앞자리에서 미사(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앞에서 하는 의식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이었다.
맨 앞에서 눈에 띈 것은 강단의 전면이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황금색으로 칠해졌으며, 예수님이 손을 양쪽으로 벌리고 인자하게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강단에는 성경말씀이 펼쳐져 있었다.
실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전적이다. 마치 옛것을 찾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3)감각적 요소
미사를 드리면서 상징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징의 긍정적인 측면은 말씀의 의미와 여러 신앙적인 요소(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들을 오감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 피어오르는 향이 기도를 상징하는 모습, 사제나 평신도나 수십 번씩 십자가상을 향해 절하는 모습,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만져보고 맛보는 경험, 복음서를 낭독할 때 극진한 예(?)를 갖추어 받들어 읽는 모습 등 예배당의 인테리어와 예배 순서 하나하나가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많은 상징들을 통해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4)신학적 비판과 실천적 관찰(강정, 약점)
강점 - 상징의 긍정적인 측면은 말씀의 의미와 여러 신앙적인 요소(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들을 오감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 피어오르는 향의 냄새를 맡고 연기를 눈으로 보면서 기도가 하느님의 보좌에 올라간다는 메시지의 상징적 경험, 사제나 평신도나 수십 번씩 십자가상을 향해 절하는 모습,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만져보고 맛보는 경험, 복음서를 낭독할 때 극진한 예(?)를 갖추어 받들어 읽는 모습 등 예배당의 인테리어와 예배 순서 하나하나가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많은 상징들을 통해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점이었다.
약점 - 상징의 부정적인 측면은 상징적인 요소들이 지나칠 정도로 형식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징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내재적인 의미들이 쉽게 간과되고 형식화되어 버리는데, 실제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예배 순서의 각 요소마다 담겨져 있는 내재적 의미들에 진심을 쏟기도 전에 순서에 따라 넘어가버리는 것이 많았다.
아무래도 상징화-형식화 되어 있다 보니 의식을 치르는 것 자체를 중요시 할 뿐, 상징화된 의식에 담겨진 그 좋은 의미들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5)인터뷰
사제님과 대화하면서 몇 가지 성공회의 특징들을 장점으로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첫 번째는 예전이 매우 성서적이라는 것이다.
예전의 구조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말씀의 전례 / 성찬의 전례 / 파송예식으로 나뉜다.
특히 말씀의 전례에서 낭독되는 말씀이 구약-시편-신약서신서-복음서로 연결되는데, 이 말씀들을 신학적으로 연결시켜 설교를 한다고 하지만, 말과는 달리 당일 예배 때에는 복음서만을 설교할 뿐 다른 구절과는 전혀 연결시키지 못했다.
설교도 우리 교단의 설교자들에 비해 특별히 다르지도 않으면서 매우 밋밋해서 졸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두 번째는 매주 성찬이다.
사제님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 "매주 성찬하는 교회는 분열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성찬의 의미를 생각해 보니 그 말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는 개혁교회의 분열도 하느님께서 부흥의 선한 도구로 사용하셨으며 분열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제님도 개신교에 비해 성공회가 부흥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콤플렉스를 가진 듯 보였다.
세 번째는 루터가 그랬듯이 성공회도 가톨릭의 전통을 비성서적인 요소 외에는 모두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통을 따르지 않은 칼빈의 선택(성서적이지 않은 요소를 제거)이 비성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별로 수긍이 가진 않았다.
6)정리
성공회 예배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을 정리하면, 성서적으로도 잘 짜여진 의식들과 상징들은 인상적이었으나, 그 속에 담긴 내적인 의미들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면 역시 형식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고 사제님을 만나 인터뷰할 때 차마 하지 못한 질문이 있었다.
'예전 순서들이 상당히 성서적이고 상징적으로도 잘 표현이 되어 있는데, 평신도들은 이 예전에 담긴 의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해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린다면 아무리 예전적으로 훌륭한 구조를 갖추었다고 해도 결국 형식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배의 순서들이 매우 신학적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기에 평신도들로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면 내재적인 의미들을 쉽게 간과해 버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중세 시대에 라틴어로 된 예전을 드리는 독일인들이 떠올랐다.
출처: 김세광교수의 예배와 설교 (글: 장로교 임도현)

첫댓글 이런 글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늦게 발견하고 적이 당황스럽습니다. 작년의 일이니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장로교 신자로서 밝히고 예배에 참석한 후 저와 인터뷰(?)라고 할만한 대화를 나눈 분이 누구신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 올려주신 글의 내용이 당시의 몇가지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주보의 대도부분에서 신임 어머니회장 이름이 맞지 않습니다. 언제적 내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바바라 회장님은 5년전에 어머니회장을 처음으로 맡으셨고 3년전에 다른 분이 그리고 2010년(작년)에 다른 분이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학적 비판인데 우선 저의 기본적 견해와 다른 말을 제가 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제가 성찬을 분열을 방지하는 요소로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매우 새로운 관점입니다. 이것은 이글을 쓰신분의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이런말을 했다고 상상한 거죠.
그리고 전통을 따르지 않은 칼빈이 비성서적이라는 생각은 저의 신학적 입장과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자나 신학도가 아닌분들과 신학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성공회 예배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저와 인터뷰를 내용으로 삼고 있으니 저에게는 문제가 큽니다. 반박할 내용이 많지만 저와 대화를 하지 않은 내용을 저와 대화했다는 형식적 틀부터 오류입니다.
그러니 구체적 내용에 대한 반박은 펼쳐 보
아야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설교 내용도 주제는 제 설교의 내용이지만 내용의 전개와 제시된 예화는 제 설교와 거리가 멉니다.
우선 저는 사자성어나 관용적 표현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예화를 거의 들지 않습니다. 강 무슨 박사라는 분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이 글을 쓰신분의 자기 중심적인 보고가 사실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글이라 판단됩니다.
아 또 중요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2010년에 우리교회 주보에 교구장 선출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