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7월 17일 서반아 내란이 발발했을 당시 서반아 시문학은 다양하고 풍부한 양상을 띄고 있었다. 미겔 데 우나무노Miguel de Umauno, 안또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뾫 Jim럑ez의 영향을 받은 27세대1) 작가들이 나름대로 작가로서의 원숙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미 1934년 가르시아 로르까Garc뭓 Lorca는 미겔 에르난데스Miguel Hern뇆dez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들은 서반아에서 창작되고 있다.” 그러나 내란은 이들 시인 집단의 해체와 시인들을 탄압하는 사건들을 야기시켰다. 우나무노, 마차도, 가르시아 로르까는 세상을 떠났으며2), 27세대에 속하는 대다수의 시인들이 해외로 망명의 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다마소 알론소에 의하면, 1930년경 이미 27세대의 시인들은 기존의 예술적 유희에 식상하여 그들이 속해 있던 세계와 독자들과 좀더 긴밀한 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그들은 전통적 형식에 눈을 돌렸으며, 마침내 초현실주의는 27세대의 시인들에게 예술 작품에서 인간적인 면들을 중요시하게 만들었다. 결국 서반아 내란은 적지않은 시인들에게 정치적 역경을 가져다 주는 구실이 되었다. 이밖에도, 1936년 시를 장려하는 참신한 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은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기존의 자유로운 형식을 거부하며 시의 연(聯)에 있어서 보다 엄격한 형식을 추구하는 경향이었다. 이때 가르실라소에3)대한 전문가로서 새로운 시운동의 선구자인 루이스 로살레스는 『4월 Abril』에서, 미겔 에르난데스는 『끊임없는 빛 El rayo que no cesa』에서 소네트 양식을 썼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을 주도하는 시인들은 그들이 아직 젊은 탓으로 무엇인가 확실하고 독자적인 것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운 일면을 남겨주고 있다. 즉, 로살레스, 리드루에호, 비방꼬, 빠네로 등은 27세대의 작가들의 미학과는 늘 거리를 유지하며 상이한 예술세계를 추구했던 안또니오 마차도의 인간성과 작품들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내란이 시작되자 이들은 모두 작품활동에 방해를 받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투쟁을 창작의 중요한 동기로 여기고, 자신의 성격을 특징지우는 격정적인 어투를 극적인 상황에 불어넣는 한 시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미겔 에르난데스 Miguel Hern뇆dez(1910~1942)이다. 에르난데스는1939년 3월 내란이 끝나기 직전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선고받으나 친구들의 도움으로 징역 30년으로 감형된다. 그는 1942년 알리깐떼 감옥에서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옥중에서 끊임없이 시를 썼다. 그의 부친은 염소와 양을 치는 목축업자이었다. 아홉살부터 열네살까지 예수회 학교에서 수학하였는데, 에르난데스의 타고난 문학에 대한 재능은 집안의 불안정한 경제사정으로 말미암아 중단해야만 했던 학교 교육을 어느 정도 보상해 주었다. 줄기찬 독서와 싯귀를 형상화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목동으로서의 경험 그리고 친구 등 이 세 가지 요인이 그의 독학을 가능케 하였을 것이다. 목동으로서 자연과의 교감은 그의 작품에서 지울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피부에 와닿고 일상적인 경이로움들이 생에 있어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이해했으며 이러한 연유로 그의 작품은 대지에 그 뿌리를 내린다. 1931년 처음으로 마드리드 땅을 처음으로 밟았지만 좌절감과 대도시에 대한 거부감으로 얼마후 고향 오리우엘라로 돌아온다. 그 후 1934년 다시 마드리드로 향해 사교 모임에 가입하여 향후 그의 시세계와 사상적 발돋움을 하는 데 결정적인 전기가 된 빠블로 네루다 Pablo Neruda를 만난다. 네루다는 1934~1938년 사이에 마드리드 주재 칠레 영사를 지냈다. 프랑코의 파시즘에 반대하여 1936년 공화군에 입대했고, 일년 후에 결혼하여 러시아에서 한 달을 보낸다. 1936년 인민 의용군에 입대한 이후부터, 미겔 에르난데스는 보다 아름답고 진지한 인민투쟁을 다룬 시의 창작에 몰입하기 시작해 『민중의 바람 Viento del pueblo』(1937)을 발표한다. 이때 그는 시인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우리 시인들은 민중의 바람이다. 우리는 민중의 숨구멍에 바람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눈과 감성이 저 아름다운 정상을 향하도록 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다.” 에르난데스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노동을 예찬하고 부르조아를 적대시하는 시를 써왔지만, 내가 시를 무기로 삼아 휘두르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저 찬란한 7월 18일이다.(서반아 내란의 발발) 그것은 위대한 바람, 위대한 슬픔, 내 가까이에 머무르고 있던 엄청난 시적 경험으로서 나의 인생에 모질게 다가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나서, 나는 태어난 이후 국민에 묻혀 있던 것보다 더 깊숙히 국민 속으로 파고 들어, 그들을 확고하게 지켰다.
1939년 역시 내란을 배경으로 한 시집 『인간은 정탐한다 El hombre acecha』를 출간한다. 그러나 비극은 단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가혹한 운명이다. 「민중의 바람」에서와 같이 열정적인 시들도 있기는 하지만 인위적인 단어들 없이 진지하고 심각한 어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적나라한 진리를 담은 시이다. 『부재의 가곡집과 시가집』(1938~1941)은 대부분을 옥중에서 썼다. 이때 그는 민중적 서정시의 소박한 형식에 영감을 받아서 자신의 표현방법을 새로이 정제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금 사랑의 시를 쓰게 되는데, 이제 그 사랑은 이전과는 달리 부인과 아들에게도 향하는 것이다. 이 경우 시인은 투옥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이별을 하였기 때문에 이 사랑은 일종의 좌절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진정한 일기로서, 고통과 죽음 앞에 홀연히 선 한 인간의 역사와 고백이다. 그의 마지막 유고시들도 적나라함과 ‘사랑을 하는 자만이 날 수 있다’는 확신을 계속 견지하며 전과 유사한 주제로 일관했다. 먹을 것이 없어 빵과 양파만으로 자식들의 배를 채운다는 부인 호세피나의 편지를 받고서 형무소에 있는 시인은 떨고 있는 그의 아들에게, 『양파의 자장가 Nanas de la cebolla』를 바친다.
병사 남편의 노래
당신 속에 나는 사랑과 생명을 심었소 당신의 사랑에 답하고자 나는 피의 메아리를 연장하였고, 쟁기가 고랑 위에서 기다리듯 나는 당신의 심연에까지 갔었소.
드높은 탑, 높은 빛, 커다란 눈동자의 갈색 여인이여 나와 살을 섞은 여인, 나의 삶의 위대한 동반자여, 새끼를 밴 암사슴의 박동처럼 당신의 미친 듯한 가슴이 나에게까지 와 닿는구려…
나의 분신이여, 나의 날개의 원동력이여 이 죽음 가운데에서 당신께 생명을 바치오 여인이여, 사랑하는 이여,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이 납덩이 속에서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땅 속에 묻힌 잔인한 관 위에서 아니 죽은 시체 위에서 무덤도 없이 당신을 사랑하며, 가루가 되어 죽을 때까지 온 마음 바쳐 당신에게 입맞추고 싶소
전쟁터에서 당신을 기억하노라면 내 이마는 사랑의 열기로 식을 줄 몰랐고, 당신의 모습은 사라지지도 않았소 굶주린 여인처럼 삼킬 듯 내게로 다가오는 당신의 그 모습이
이곳으로 소식을 전해주오, 참호 속의 나를 느껴주오 나는 이곳에 총부리로 당신의 이름을 새기고 또 새기오 나를 기다리는 불쌍한 당신을 그리고 당신 뱃속에 있는 우리들의 생명을 지키고 있소
우리의 아이는 주먹을 꽉 쥔 채로 태어날 것이오 승리의 찬가와 기타 소리와 함께 나는 당신의 문전에 병사로서의 삶을 바친다오 미움도 증오도 없이
새로운 생명을 위해 죽음은 불가피한 것 언젠가는 당신의 머리결 그림자 사이에 파묻힐 날이 오겠지요 당신이 풀먹이고 곱게 바느질한 이불 속에서 잠을 청하게 되겠지.
당신의 강인한 다리는 별 어려움없이 분만 할거요 당신의 타오르는 열정적인 입술에 너무나도 벅찬 나의 고독과 우리 사이의 이 간격을 뛰어 넘어 우리는 뜨거운 입맞춤을 할 수 있겠지
나의 이 희생은 우리들의 아이의 평화를 위한 것 끝내는 무수한 시체로 가득할 저 바다 위에 당신과 나의 가슴은 빠지고 입맞춤으로 지친 여자와 남자만이 남게 되겠지. ―『민중의 바람』 중에서, 1937년
부상자
전쟁이 있는 저 들판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부상자들이 널려 있는 그곳에 사방으로 뜨거운 핏줄기가 솟아오른다 분수에서 뿜어대는 물줄기처럼
피는 항상 하늘을 향해 토하고 파도처럼 상처에서 피가 한꺼번에 솟구칠 때 소라껍질처럼 상처의 외침 소리가 들린다. 피는 바다 냄새가 나고, 바다맛이 나고, 술 창고 맛이 난다. 바다의 술 창고에서 사납게 포도주가 폭발한다 그곳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부상자가 빠져서, 피를 쏟고 죽어가네
나는 부상당했다. 아직 더 생명이 필요한데 남은 피는 자유를 위한 것 나의 상처로 솟을 피가 누가 부상당하지 않았는지 말해보라
나의 삶은 행복스러운 젊음에 생긴 상처 부상을 입지도, 삶에서 고통을 느껴보지도 못한 나 살아서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리 나, 기쁘게 부상을 입었어
병원에까지 기쁨으로 가는데 반쯤 열린 상처로 피비린내나는 밭이 되오 그곳은 피로 솟구치고 문에도 피가 묻어 있구려 『인간은 정탐한다 』중에서, 1939
2. 내란 직후의 시세계(1939~1943)
내란 직후의 몇 년간(1939~1943) 서반아에서 창작된 시는 비현실적이고 형식적이었다. 이미 멀리 사라진 조국의 옛 영화에 시선을 돌리는 고전적인 형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통적인 상징주의시가 되기 위해 일정한 요소들을 충족한 시들과, 파국적인 현실 앞에서 서반아 내란 종식의 메세지를 전달하며 파국을 회피하는 시의 역할을 충족하는 시들을 우리는 접하게 된다. 내란 후의 서반아시는 가르실라소의 흔적으로 문을 여는 것이 당연하다. 그의 사후 400주년 추모식이4) 1936년 거행되었다. 내란이 끝난 얼마동안, 오랜 적대감 뒤에 언짢은 현실에 반기를 들며 마음의 평정, 감정과 증오를 잠재우는 침묵을 찾는 일은 퍽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런 연유로, 겉으로 드러나는 음악성이 있는 시를 창작하는 일보다 더 마땅한 것은 없었다. 멜로디를 조금 사용하는 것이 단어의 살이라고 한다면, 많이 사용하는 것은 내란 삼 년 동안 지치고, 모진 현실 속에서 날카로운 빛으로 인해 흐리멍텅해진 눈에게 잠을 주는 자장가일 것이다. 또한 많은 시인들이 진지할 때 가질 수 있는 두려움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내부적인 부르짖음을 조용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탁월한 섬세함과 형식주의자들이 유리구슬을 꿰는 기교로 기분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내란 이전에 자취를 감추었던 종교적인 시가 다시 등장 했다. 진지하든 또는 그렇지 않든간에, 모든 시인에게 있었던 신에게로의 귀의는 시인 자신이 설명하기 어려운 생활 체험들이 종교적인 색채를 띄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던 탈출구였다. 27세대 시인들에게는 신을 찾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신을 언급하는 일이 매우 빈번해지고 지속적일 것 같다: 시인에 의해 신봉되거나 창조되어진 신은 많은 시들이 바쳐지는 대상이다. 내란 직후의 시인들은 표현수단으로, 『가르실라소』라는 잡지를 이용했다. 이 잡지는 뻬드로 데 로렌소 Pedro de Lorenzo, 헤수스 후안 가르세스 Jes쐓 Juan Garc럖, 그리고 호세 가르시아 니에또 Jos?Garc a Nieto 등 그 밖에 많은 시인들이 준비했으며 마침내 1943년 창간호를 냈다. 이 잡지를 매개체로 해 일어난 시 운동이 소위 ‘청년 창조가들 Juventud creadora’이다. 가르시아 니에또Garc뭓 Nieto는 곧이어 보다 인간적인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젊은 시인들에게 형식주의의 옷을 입히는 일은 끊임이 없다. 1943년에 완성된 『아도나이스 Adonais』총서의 전반부 책들은 새로운 시학의 언어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새로운 시학에는 고전주의로 되돌아가는 것 이외에 신낭만주의 어투가 엿보인다. 그러나 확실한 충격은 망명의 길에 오르지 않고서 서반아에 거주하는 27세대 시인들로부터 온다. 헤라르도 디에고 Gerardo Diego로부터 미적지근하게, 비센떼 알레이산드레 Vicente Aleixandre로부터 뜨거운 열정으로, 그리고 다마소 알론소 D뇅aso Alonso로부터 찢어지는 절규로 온다.
1) 다마소 알론소 1898년 마드리드에서 출생하였으며 법학과 문학 학사과정을 이수했다. 그후 역사학 연구소에 들어가 메넨데스 삐달 지도하에 연구를 계속하였다. 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공고라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으로 『고독 Soledades』을 출판했다. 『공고라 작품에서 구문론의 발전과정』은 그의 박사논문으로, 후에 『공고라의 시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비평가와 문헌학자로서 연구를 정진해 『공고라 연구』, 『서반아 시』, 『서반아 현대시인』, 『산 후안 데 라 끄루스의 시』등 연구물을 발표한다. 다마소 알론소는 또한 작품을 길게 쓰지 않는 시인으로, 글을 쓸 때 쉽게 풀어가는 작가이기보다는 호르헤 기옌처럼 숙고 끝에 순간의 영감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그는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시 작품을 발표했다: 『순수시 Poemas puros』, 『도시 시편 Poemillas de la ciudad』(1921), 『바람과 시 El viento y el verso』(1925), 『분노의 자식들 Hijos de la ira』(1944), 『인간과 신 Hombre y Dios』(1955). 그의 시 작품중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대표적인 작품은 내란 이후에 등장한다. 특히 『분노의 자식들』은 40년대 시를 대표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다마소 알론소를 27세대의 작가로 분류할 것인가 아니면 내란 후에 재인간화(Rehumannizaci뾫)를 표방하며 ‘뿌리 뽑힌 시’를 쓰는 그룹으로 분류할 것인가를 놓고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가 말년에 순수시와 거리감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그의 나이, 인격 형성, 산문, 20년대의 시, 비평의 스타일 등을 고려해볼 때 다마소 알론소는 그가 속했던 세대의 작가이다. 내란의 소용돌이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27세대 작가들이 느끼는 고독감과 승전자들의 틈바구니에 버려진 낭패감은 그로 하여금 표현과 해방의 수단으로 하나의 새로운 시를 찾게 만든다. 내란후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다마소 알론소는 같은 해에 두 권의 명시집을 출판한다. 그 책들에서 그는 순수에서 ‘비순수’로, 고전주의자에서 ‘뿌리 뽑힌’ 자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그의 변신 때문에 내란과 망명의 시절이 끝난 후, 대부분의 27세대 시인들은 그를 비난한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다마소보다 당시 서반아 시단에서 더 주목을 받고 영향력이 있지는 못했다. 따라서 우리가 다마소 알론소를 27세대의 위대한 이론가로 명명은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내란 후의 시를 주도한 인물이다.
불면(不眠)
“마드리드는 100만 명이 넘는 시체의 도시이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밤이면 내가 그 묘구덩이 속으로 돌아가서 시체들과 함께 썩어온 지가 45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신음하는 듯한 회오리 바람소리, 개짖는 소리, 또는 은은히 흐르는 달빛을 들으면서 긴 시간을 지낸다. 폭풍우처럼 신음하면서, 미친 개처럼 짖으면서, 크고 누런 암소의 따뜻한 젖에서 흘러나오는 우유처럼 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신에게 왜 나의 영혼이 서서히 썩어가는지를 물으면서 긴 시간을 보낸다. 왜 마드리드의 도시에서 100만 이상의 시체가 썩어가는지를, 왜 이 세상에서 수 억의 시체가 서서히 썩어가는지를, 말해주시오, 우리들 죽음의 거름으로 당신의 어떤 밭을 기름지게 하려함입니까 ? 당신의 커다란 장미원이 말라 비틀어지는 것이 두려워서입니까 ? 당신의 밤에 죽어가는 서글픈 흰 백합 때문입니까 ?” ―『분노의 자식들』 중에서, 1944
괴물들 Monstruos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이런 기도를 한다: 오, 신이여,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마소서. 나를 에워싼 이러한 두려움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씀해 주소서. 나는 괴물들로부터 포위당해 있습니다. 그들은 입을 꼭 다물고 나에게 묻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똑같이 아마도 당신에게도 물을 것입니다. 나의 찢어지는 절규로 당신의 변함없는 밤의 침묵을 헛되이 어지럽히는 것과 동일하게 별들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태양빛의 무시무시한 어두움 속에서 적들의 눈이 나를 정탐합니다. 거대한 형체가 나를 지켜봅니다. 자극적인 색상들이 나에게 밧줄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괴물들입니다. 나는 괴물들에게 포위당했습니다! 나를 삼키지는 않습니다. 나의 열망하는 휴식을 삼켜버립니다. 나의 내면 세계에 고뇌를 만들어냅니다. 나를 인간으로 만듭니다. 괴물들 중에 괴물인 인간으로…. 오 신이여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마소서.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런 괴물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밤에 당신을 향해 신음하는 이런 내면의 유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 주소서. ―『분노의 자식들』 중에서, 1944
1944년 봄 발표된 다마소 알론소의 『분노의 자식들 Hijos de la ira』은 전후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 이 시집이 나오자 발표된 여러 작가들의 비평을 살펴보기로 하자.
“물론 형식과 어조면에서, 시인들을 포함한 모든 이가 바란 대로, 실제로 감탄할 만하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고갈된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미학과 비교해 볼 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가르시아 고메스> “처음으로 가장 진솔하고 체계적이며 또한 곧 선보일 대다수의 새로운 시의 특징을 이루는 표정이 풍부한 표현을 구사한다. 낯설은 책이다. … 서반아시로 완연히 새로운 기법들과 주제를 가지고 우리를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 그에게까지도 완전히 생소한 모습으로 엮어졌다” <까를로스 보우소뇨> “언어 이전의 정신의 자유, 영원한 창조자, 영원한 독창성. 시가 부여하는 이 진정한 자유는 이 시간에 다마소 알론소가 가져오는 자유이다. …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다마소 알론소는 우나무노, 안또니오 마차도 이후로 서반아시에 또 한번 현실에 대한 하나의 완전한 사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인간이 찾는 진리에 대한 간결하고 깊으며, 집합적이고 극적인 직관이다” <레오뽈도 빠네로> “『분노의 자식들』은 사실상 형식주의를 타파하며 통렬하게 시적 무력감을 강타해서 양심을 뒤흔든다. 이렇게 해서 깊은 성찰의 고백과 어떤 경우에는 공포적이지는 않지만 무시무시한 고백을 통해서 그 소망의 시는 전반적으로 신성을 저주하는 것으로 변한다” <알라르꼬스 요라시 >
다마소 알론소 자신은 그의 시집에 대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분노의 자식들』은 서반아에서 아무도 항의를 하지 못할 당시, 글로 항변한 한권의 시집이라고 수차에 걸쳐 말한 바 있다. 항의와 모색을 한 한권의 책 바로 그것이다. 무엇에 대한 항의인가? 모든 것에 대한 항의이다. … 우리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서반아 내란과 세계대전을 통해 두번의 집단적인 광란을 겪었고 두 전쟁의 후유증을 앓았다. 나는 세상의 메마른 부조리와 인류의 총체적인 환멸감 앞에서 『분노의 자식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2) 헤라르도 디에고 이미 내란 전에 헤라르도 디에고는 실험적인 전위주의(첨단주의 Ultra뭩mo와 창조주의 Creacionismo)와 병행에서 이른바 ‘표현의 시’를 개발하였다. 헤라르도 디에고에게 있어서 가장 개인적인 서정성은 첨단주의와 창조주의풍의 시들에서 엿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위대한 시인이 자신에게로 끝없이 몰입할 때, 그의 감정을 인간화하고 문체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대표작인 『진실의 종달새 Alondra de verdad』(1941)는 소네트시를 모은 것으로 전통적 요소들과 현대적 요소들을 교묘히 융합시키고 있다. 헤라르도 디에고의 전작품 중 가장 시다운 시들을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평한다. 『행운이냐 죽음이냐』(1963)에서처럼 투우를 다루는 시인의 모습은 디에고 예술의 또다른 한 면을 제시하고 있다. 1972년 바르셀로나에서 발표된 시집 『공동묘지 Cementerio civil』에 들어` 있는 「시의 한가운데에서 En mitad de un verso」를 소개해 본다.
시의 한가운데에서
시를 노래하며, 꽃 피우면서 누군가 시의 한가운데에서 죽었노라 그러나 시는 영원을 향해, 열려 있었네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결코 그치지 않는 산들바람에도 끝나지 않는 시, 영원한 시인이여,
누가 한 음절의 시 속에서 그렇게 죽을 수 있을까. 시인의 그런 죽음을 알았을 때 나는 또 하나의 기도를 생각했네 “나는 항상 노래하며 살고, 죽기를 원하며, 나는 왜, 언제는 알고 싶지 않소”
그래, 시의 가슴속에서 신이시여, 그와 나를 끝장나게 해주소서. ―『공동 묘지』 중에서, 1972
헤라르도 디에고는 서반아 ‘창조주의 Creacionismo’ 운동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경험적 현실에 대한 여하한 대상 지시성과 모든 논리성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시를 썼다. 즉, 이는 고유한 독자적인 세계, 자율적인 실재를 ‘창조’하고자 한 시이다. 작가 자신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유형의 시세계를 간단명료하게 규정해주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신앙이라 부른다. 한편 우리가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이다.
헤라르도 디에고의 문학세계에 내포되어 있는 상반된 성격의 두가지 경향은 당시에 커다란 놀라움과 몰이해를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두 가지 경향에서의 자신의 독창성을 확신하였다.
나는 농촌과 도시, 전통과 미래가 동시적으로 나를 유혹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새로운 예술이 나를 매료시키고 또한 과거의 예술이 나를 황홀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책임이 없으며, 또한 기존의 수사학이 나를 미치게 만들고 그래서 내 고유한 습관을 위해, 새로이 수사학을 다시 만들려고 하는 변덕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책임이 없다. 3) 비센떼 알레이산드레 197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알레이산드레는 내란 이후에 줄곧 서반아에 체류하고 있었다. 내란 후에 그의 작품이 성숙되고 발전된 면모를 보여준다. 내란 이전의 시집들에서는 주된 감정의 흐름이 인간을 사로잡아 우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자연과 일치시키는 파괴적인 것이었다면, 내전 이후의 시집들에서는 인간화라는 주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60~70년대에 와서는 한발짝 더 성숙한 면모를 보이며 좀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과 인간의 삶으로 다가섰다. 그의 문체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웅장한 은유와 자유스럽고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극적이지만 거의 장엄한 운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알레이산드레에게 있어서 시(詩)란 늘 아름다움을 초월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기에 ‘시에는 결코 아름답거나 추한 말이란 없으며 그 대신에 살아 있는 말과 죽어 있는 말만 있을 뿐이다’. 시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은 어떻게 각 단어 ―아름답든지 추하든지 간에― 를 적절하고 필요한 곳에 배치하느냐 하는 것이다. 알레이산드레의 시세계 전체를 볼 때, 초기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짙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세계에서는 탁월한 독창성을 지닌 잠재의식과 비합리적인, 그리고 꿈의 이마쥬들이 풍부하게 나타난다.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알레이산드레는 늘 ‘우주적인 것’에 대해 무한한 이끌림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알레이산드레는 자신이 자신을 통찰하고 있는 어느 우주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불행에서 벗어나 만물의 근본인 대지와 일체가 되고자하는, 그리고 자연과 영구히 더불어 살면서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 ―즉, 그의 특유한 우주적 전망― 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그의 전망은 절망적이고 비관주의적인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이 인간적 고뇌와 황폐한 의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반면에 그는 정열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는 탁월한 에로티시즘 시인이기도 하다. 즉 알레이산드레에게 있어서 절망, 비관적 전망과 사랑은 대립관계라기보다는 하나의 표리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나는 작품집으로는 『입술같은 검 Espadas como labios』(1932), 『파괴와 사랑 La destrucci뾫 o el amor』(1935), 『홀로있는 세상 Mundo a solas』(1950), 그리고 『낙원의 그림자 Sombra del par?so』(1944) 등을 들 수 있다. 알레이산드레는 자기자신의 고뇌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과의 ‘유대, 혹은 결속’을 통하여, 자신을 억누르고 지배하고 있던 불행에서 빠져 나와서 안식을 취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그는 스스로 체념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그의 인간적 및 시적 궤적은 호르헤 기옌 Jorge Guillen이 걸어왔던 길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같은 변화 이후로, 그의 시적 표현은 더욱 간결, 명료해지는데 이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나누고, 또한 이 세상의 모든 형제들과 한마음으로 합일되기 위한 자신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집으로는 『마음의 역사 La historia del coraz뾫』(1954)를 들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알레이산드레의 내전 이전의 작품과 이후의 작품을 감상해 보겠다.
그녀와의 합일
내 두 손 사이로 흘러내리는 행복한 육체, 사랑하는 얼굴 속에서 나는 세계를 응시하고 있다. 또 그 얼굴 속에서 우아한 새들이 도망자같이, 아무것도 망각할 것이 없는 곳으로 날아간다.
당신의 육체는, 다이아몬드나 단단한 루비같고, 내 두 손 사이에서 반짝이는 하나의 빛나는 태양과도 같구나, 또 당신의 판독할 수 없는 치아들의 부름과 함께, 내면적인 음악으로 나를 불러들이는 분화구.
내 몸을 날려서 나 죽으리라, 왜냐하면 나 죽고 싶으니까, 왜냐하면 불 속에 살고 싶으며, 이 바깥의 공기는 내 것이 아니라 뜨거운 호흡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나의 입술은 안으로부터 타버리리라.
사랑으로 물들고, 자주색 으로 빨갛게 된 당신의 얼굴을, 보도록 해주오, 심오한 외침을 하는 당신의 속을 보도록 해주오, 그곳에서 나는 죽어서 영원히 살아 가는 것을 포기하리다.
나는 사랑과 죽음을 원하며, 나는 모든 것으로 죽기를 원한다. 나는 당신이 되고 싶소, 당신의 피, 그 포효하는 용암이 되고 싶소, 은거한 당신의 아름다운 손, 발의 끝까지 물을 주면서, 그리하여 인생의 아름다운 한계를 느껴보시오.
끈적끈적한 가시처럼, 거울이 되어 비상한 바다처럼, 빛나는 날개처럼, 당신의 입술에 입맞춤은 아직까지 당신의 버석거리는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손들, 복수에 찬 빛의 바지직 소리, 나의 목둘레를 위협하는 햇빛과 죽음의 칼, 그러나 그녀는 결코 이 세상의 합일을 부수지는 않으리라. ―『파괴와 사랑』 중에서, 1935
시인은 자신의 삶을 기억한다
산다는 것, 그리고 죽는 것: 이것은 아마도 꿈꾸는 것이다 <햄릿>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나는 이제껏 자고 있었습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에게 평화를 주는 거야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살아있는 언어들을 내뱉거나 예감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 속에서 사느냐고? 언어들은 죽는다. 소리가 울릴 때에는 아름다운 법, 그러나 결코 지속되지는 않아. 그런 식으로 밝은 밤. 어제 여명이 밝을 때, 혹은 하루가 저물며 마지막 빛을 발하며, 아마 너의 얼굴에도 비출 때 빛의 화필로 너의 눈을 감겨버리면 잠들어라 밤은 길지만 벌써 지나가 버렸구나. ―『종말의 詩들』 중에서, 1968
3. 전후 서반아 시의 경향
1) ‘뿌리 뽑힌 시’와 ‘뿌리 내린 시’ 다마소 알론소가 『분노의 자식들』을 발표한 1944년에, 북부 도시 레온에서는 곤살레스 데 라마, 빅또리아노 끄레메르, 에우헤니오 데 노라가 운영하는 잡지 『에스빠다냐』5)가 창간된다. 『에스빠다냐』는 『가르실라소』와는 정반대 입장으로 시를 재인간화하려는 긴박한 필요성에서 태동되었는데 4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드름 피우는 공포주의의 색채를 띄기 시작한다. 2호에서 빅또리아노 끄레메르는 다음의 글을 발표한다.
오늘날 우리의 시들이 숨막히는 사각의 울타리와 소네트의 14줄 막대기를 향해 반기를 들며 소리를 지를 날이 올 것이다. 세상만큼이나 늙은 오늘의 젊은이들이 이러한 틀에 박힌 시들로써 우리의 시를 압박하거나 목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가벗고 빛나는 우리의 운문은 어떤 규범이나 공고라나 가르실라소와 같은 그 어떤 위대한 문학가의 보호 속에 우리를 가둘 필요성이 없다.
에우헤니오 노라는 1944년 발표된 한 시에서 아련한 아름다움을 반추하면서 사는 시인들에게 욕설을 퍼부은 다음 외친다.
아니다, 결코, 더이상, 밝은 달, 세련된 해거름, 장엄한 창공에 현혹되지 않은 채, 시인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잊고 거부할 것이다! 눈을 떴고 겁나는 세상을 보았다 단지 그 살점만 가진 인간의: 죽음 앞에 서 있는 고통.
40년대 말, 서점의 진열대에 우연히 같이 모습을 드러낸 작품으로는 루이스 로살레스의 『불탄 집 La casa encendida』, 루이스 펠리뻬 비반꼬의 『삶의 지속 Continuaci뾫 de la vida』 그리고 레오폴도 빠네로의 『매 순간 쓰여진 것 Escrito a cada instante』으로 소위 1949년의 세 작품이다. 이 보다 조금 앞서 1947년에는 호세 루이스 이달고의 『죽은자들 Los muertos』, 호세 이에로의 『우리가 없는 땅 Tierra sin noso -tros』과 『기쁨 Alegra』, 가브리엘 셀라야의 『폐쇄된 고독 La soledad cerrada』, 라파엘 모랄레스의 『추방된 자들 Los desterrados』, 빅또리아노 끄레메르의 『나의 피의 길들 Caminos de mi sangre』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950년에 블라스 데 오떼로는 『잔인할 정도로 인간적인 천사 Angel fieramente humano』를 편집한다. 이렇게 복합적이고 각기 다른 작품들을 분석한 다음에 다마소 알론소는 당시의 시인들을 뿌리가 있는 시인들과 뿌리뽑힌 시인들로 분류한다.
오늘날 서반아시가 처한 상황은 조화가 잘 되있고 하나로 통일이 되어 마치 하나의 닻에 단단히 묶여 있는 동시에 다양한 세상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본인은 이러한 종류의 모든 시를 뿌리내린 시라고 부르겠다. 지난 우리의 쓰라린 시절 동안 서반아에는 무언가에 대한 믿음, 이제는 즐겁거나 서글프거나 하겠지만 어쨌든 기쁨, 그리고 주변 현실의 구조에 대한 자랑스럽고 정제된 믿음이 동시에 존재했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가진 ‘뿌리내린 시인’으로는 로살레스, 비방꼬, 빠네로, 모랄레스, 발베르데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리드루레호를 꼽을 수 있겠다. 한편으로 다른 시인들에게 세상은 무질서와 고통을 뜻하지 않고 시는 정돈과 닻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행위이다. 분명 또다른 우리는 모든 조화와 차분함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다. 우리는 주위로 다시 눈을 돌렸고 마치 우리 자신과 같이 이해할 수 없고 사나우며, 아마도 불행한 겉모습들로 둘러싸이고 포위된 하나의 괴물스럽고 알아보지 못할 겉모습이 우리들임을 느꼈다. … 우리는 밤에 오랫동안 흐느꼈다. 그리고 어디를 향해 소리쳐야 할 지를 몰랐다.
‘뿌리뽑힌 시’를 쓰는 작가로 다마소 알론소는 블라스 데 오떼로를 꼽았지만, 여기에 끄레메르, 가오스, 보우소뇨, 이달고, 노라를 추가할 수 있다. 다마소 알론소에 의하면, 뿌리내린 시의 예로 대지, 가정 그리고 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레오뽈도 빠네로의 시를 든다. 이러한 뿌리 내림은 인간의 실체에 대해 제기되는 질문들을 피하지 않는다.
항상 홀로인 우리들. 바람은 스친다 떡갈나무 숲과 광야의 사이를.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시끄러움은 조용하고 먼지날리는 들에서 오고.
누군가 소리없이 옛날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 대해, 그리고 그림자는 눈먼 암탉과 슬프게 놀이를 하고; 한 손은 우리의 느낌을 움켜잡는다.
앙헬, 리까르도, 후안, 할아버지, 할머니, 가볍게 우리를 툭툭 치며, 말없이 말하고, 넘어뜨리면 그들을 우리가 툭툭 친다. 항상 홀로인 우리들, 항상 촛불 속에서, 우리가 노는 동안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십사 주께 기도한다.
뿌리뽑힌 시를 쓰는 호세 루이스 이달고 Jos?Luis Hidalgo도 인간의 한계점으로부터 신을 찾는다. 그러나 빠네로에서 찬미로 끝나는 것이 호세 루이스 이달고에게서는 끊임없이 비통한 의문들로 남는다. 그 차이점을 보도록 하자.
주여: 모두가 당신의 것; 하나는 어둡고 또 하나는 밝은 빛과 하늘. 말씀해주소서, 죽은 모든 것들이 밤이었나요 아니면 그들이 찾았던 낮이었나요?
당신의 자식들, 분명 우리를 낳아주셨고, 인간의 살을 드러내며 발가벗은 채 슬픈 들녁처럼 우리를 바칩니다 당신의 커다란 두 손의 귀와 사랑에.
무시무시한 투쟁의 굉음이 늘 우리의 내부에서 어둡게 들리고, 당신의 땅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당신은 이기시지도 않으며 싸우십니다.
주여 말씀해 주소서: 왜 당신의 투쟁에서 우리를 택하셨나이까? 더구나 죽음으로, 무엇을 얻었습니까, 영원한 평화 아니면 끝없는 폭풍?
2) 사회시 이러한 시들의 뿌리없는 현상은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궤도에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현실로 연결된다. 이러한 경향은 1952년 후란시스꼬 리베스에 의해 출판된 『젊은 서반아시를 참고로 해 만든 시 선집』 출현으로 가시화되었다. 따라서, 소수의 심미주의를 거부하고 마차도가 ‘시는 시간속에 있는 단어’라는 시간의 개념 또는 1947년 알레이산드레가 ‘시는 대화다’라고 하는 모토 등에 한껏 심취해 있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시작된 방향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항상 소수를 지향한 후안 라몬적인 순수주의와의 결별은 ‘엄청난 다수를 지향하는’ 블라스꼬 데 오떼로의 『잔인할 정도로 인간적인 천사』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시의 개념은 이제 더이상 형식주의적이고 음율적인 시의 순수한 미적 요소들에 의존하지 않고 내용에 의존한다: 시의 감정, 내용, 사회적 정치적 문제점들에 대한 염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시간적인 삶과 시와의 관계를 말한다. 이렇게 해서 소설 (산체스 페를로시오, 페르난데스 산또스, 고이띠솔로)과 연극(부에로 바예호, 사스뜨레, 무니스)에서도 나타나는 동일한 경향과 일치하며 사실주의의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젊은 서반아시를 참고로 해 만든 시선집』에서 일련의 시인과 비평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선정된 ‘최근 10년 동안 지명도가 있었던 최고의 생존한 시인들’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보우소뇨, 셀라야, 끄레메르, 가오스, 이에로, 모랄레스, 노라, 오떼로 琉??발베르데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 중 보우소뇨만 제외한 모든 시인들이 그들의 시들에 앞서 발표된 성명에서 이 새로운 서정시 물결에 동조하는 자임을 천명했다. 셀라야, 끄레메르, 이에로, 오떼로 그리고 노라는 그들의 확고한 사회적 노선을 확인한다. 가브리엘 셀라야(라파엘 무히까 Rafael M쐅ica의 필명)는 ‘시는 여러 가지 사명 중에서 무엇보다도 세상을 변모시키는 한 도구’라고 확신한다. 이것은 어제의 시인과 오늘의 시인을 구분해주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생각을 대표해주는 작품 『시는 미래를 위해 장전된 무기이다』를 조금 살펴보자.
가난한 사람을 위한 시, 매일 먹는 빵과 같이 필요한 시 일분에도 13번의 호흡을 위해 필요로 하는 공기처럼…
가브리엘 세라야는 덧붙여 말하기를 “인간적인 것이면 아무 것도 우리들의 작품 밖에 있어서는 안된다. 시 안에는, 순수한 시만을 고집하는 시인들의 양해아래, 진흙이 있어야한다. 머리가 빈 가수들이 엉뚱한 것을 만들지라도, 사상이 있어야한다. 동물적인 따뜻함도 있어야한다. 그리고 수사법, 묘사, 그리고 심지어는 정치까지도 있어야한다. 하나의 시는 하나의 질문이고 ‘순수함’, ‘영원함’, ‘아름다움’의 미명하에 배타적인 원칙이 자행되는 경우, 남아도는 그런 찌꺼기가 아니 다. 시는 중립적이지 않다. 아무도 오늘날 중립적일 수 없다. 시인도 시인이기 전에 인간이다.” 에우헤니오 데 노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발가벗음, 열정 혹은 열성, 창조 그리고 투쟁이 생과 함께 하면, 거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실체인 희망이 약동하는 뿌리속에서 살고 노래하는 시인들이 된다. 한 싯귀절이 말해주듯 ‘애태움, 고통 그리고 절망’은 거의 모든 글쓰기에 있어서 강장제 역할을 한다.” 수년 뒤, 그의 시학에서 이러한 경향들에 반기를 들었던 까를로스 보우소뇨 자신까지도 말한다: “오늘날 문단의 많은 부분에서 초석을 이루고 있는, 인간의 삶을 결속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서사주의 지지자들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서정성의 상대적인 감소 현상은 낭만주의에 의해서 물밀듯이 소개된 예술적 개인주의가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센떼 알레이산드레는 『서반아시의 제특징들 Algunos caracteres de la poes뭓 espa뻩la』에서 요약한다.
우리가 사는 오늘날(1955), 시의 주요 주제는 역사적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그때그때 찬미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찬미는 말하자면, 그 자신에 속하고 따라서 그를 정의해주는 일련의 문제들을 가지고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시간에 위치하고 한정된 어떤 사회의 공간에 위치해 있는 동안, 그를 찬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망명작가들의 대다수에게 서반아가 고통 혹은 향수로 비추어지는 동안, 서반아 본토의 작가들 사이에서는 보다 정치적인 주제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전후 서반아 사회시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블라스 데 오떼로(1916~ 1979)를 손꼽을 수 있다. 그는 중국에서 쿠바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강연과 시낭송을 하였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서반아의 현대 시인이다. 블라스 데 오떼로는 최근 30년간에 있어서 서반아 시의 발전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알라르꼬스 요라시 Alarcos Llorach는 블라스 데 오떼로의 경향을 ‘나로부터 우리에게로’라는 말로 특징짓는다. 사실상 블라스 데 오떼로는 그의 초기 단계에서는 그의 개인적인 문제를 말한다. 후에는 집단적인 문제에 직면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문제를 제쳐놓는다. 마지막에는, 비록 인간적이며 정치적인 관심을 저버리지 않을지라도 새로운 방향들에 대한 추구가 그의 작품에서 보인다. ‘항상 소수를 위한’ 작품활동에 전념했던 후안 라몬과는 대조적으로 블라스 데 오떼로는 ‘무한한 다수를 위한’ 시를 썼다. 따라서 그는 가장 拈玟?언어를 추구한다. 비록 이 소박함이 단지 외견상이지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더욱 친근해지려는 의도 때문에 시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바램이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1939년 이후의 서반아 시의 발전을 대표한다. ‘뿌리 뽑힌’ 것에 대한 심각한 고뇌로부터 평화와 정의에 대한 공통적인 열망을 담은 사회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사회시로부터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에 이르기까지, 오떼로는 매순간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결코 무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표현에 대한 확실한 가능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서반아에 대항한 그의 확신 또한 모범적이었다.
4. 전후 서반아 망명 시인들
1) 뻬드로 살리나스 27세대 작가로서 1936년부터 망명을 하여 그는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한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뿌에르또 리꼬에서 거주한 후 1951년 보스톤에서 눈을 감는다. 살리나스 자신이 밝힌 연대를 근거로 해 이 시기의 작품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보다 선명한 모든 것 Todo m뇋 claro』(1937~47), 『신뢰 confianza』(1942~44), 『관조된 것 El contemplado』(1942~44). 주의해서 보면 살리나스는 몇년 동안은 세 권의 시집을 위해 동시에 세 권의 시 창작에 몰두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전의 그의 작품들은 성장기에 해당하며 개괄적이다. 『보다 선명한 모든 것』의 일부 시들은 그가 겪은 내란, 세계대전 그리고 망명이라는 세 가지 큰 사건들로 인하여 주제면과 문체면에서 서로 대조를 이룬다. 서문에서 살리나스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시들은 매순간마다 나의 사랑과 꿈속에서 나의 소중한 것으로 더욱 더 절실하게 와 닿는 나의 조국으로부터 이억만 리 떨어진 곳에서 씌어졌다. 친절한 미국인들의 땅에서 몸을 부지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에도 비길 데 없는 나의 언어에 붙들려있다.” 그리고 내란으로 야기된 고통스러운 상황에 연대의식을 느낀다.
이 모든 것 중에서 내게 허용된 것들만 영혼 위에 싣고 간다: 나로서의 인간, 느끼는 사람으로서의 유럽인, 주거지로 볼 때의 미국인, 태생을 생각할 때의 서반아인 그리고 확신하길 … 그러면 제목은? 제목과 대표적인 시는 나의 확고한 신념을 대변해 준다: 시는 늘 정의와 명확성을 좇는 작품이다. 아무리 고통이 밀려오고 고독한 절망이 몰아친다해도 시는 사랑을 노래한다.
『관조된 것』은 그의 작품 중 제일 짧고 아마도 가장 정성을 많이 들인 작품일 것이다. 기옌이 이야기한 대로 “대부분의 시는 느린 장단, 황홀한 분위기, 작시법의 엄격성 등을 고려해서 이루어진 연들로 계속된다. 음악적이고 회화적인 시 작법은 한 주제를 둘러싸고 변화를 주며 전개된다. 주제는 우리의 영혼과 눈 앞에 있는 바다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살리나스에게 있어서 지배적인 주제는 세상과 사랑을 관조하는 기쁨이다. 단지 전쟁만이 그의 생애 중 몇 년 동안을 우울하게 하지만 그것도 시의 덕분으로 극복된다.
2) 호르헤 기옌 27세대의 작가로서 서반아의 폴 발레리라고 불리던 호르헤 기옌의 작품은 세 권의 책으로 분류된다. 『찬가 C뇆tico』는 네 번의 출판을 거치는 동안 출판 부수가 증가된 작품으로 5부로 나뉘어진다(전후의 마지막 두 출판은 1945년과 1950년에 각각 있었다). 『애가 Clamor』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출판되었다: 『혼란 Marem 놿num』(1957), 『바다로 가는 것들 Que van a dar en la mar』(1960), 『주위와 같은 높이로 A la altura de las circunstancias』(1963). 『경의 Homenaje』(1967)는 5부작으로 마지막 부분은 그의 작품 활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끝이다. 이 부분은 후에 몇편의 시들을 더 묶어 1968년 『우리들의 공기 Aire nuestro』로 출판된다. 『찬가』는 피조물을, 『애가』는 추락, 무질서 그리고 이룰 수 있는 희망을 각각 다루고 『경의』는 시의 빛이다. 첫째 작품은 일반적으로 전쟁의 폐허 이전인 그의 젊은 시절과 완숙기에 형성된 것이다. 둘째 작품도 ‘나는 위대한 현재의 전문가’로 대변되는 그의 미학과 사상을 충실하게 견지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의 삶의 기저에는 매우 다른 요소들이 상존한다: 전쟁, 원자폭탄의 위험, 독재. 세번째 작품은 기억을 모아 담은 작품이다. 기옌의 중요성은 우리에게 순환적인 작품, 완벽한 시적 세계, 20세기의 인류가 그의 삶과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가능한 답변들 중의 하나 등을 보여주는 데 있다.
살아가는 법 Ars Vivendi
시간은 지나가고 나는 한숨을 내쉰다. 왜냐하면 나 역시 지나가기 때문이지. 비록 나는 내 속에 머물지라도, 결코 나의 소유가 되지 않는 더딘 시간의 행진은 시계없이도, 확 트인 하늘 아래서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계산하고, 인지하고, 한숨을 내쉰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닌 것처럼― 이같은 높이, 즉 나이 칠십에 삶에 대한 나의 열망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비록 내가 쌓아놓은 것이 허망한 것일지라도.
오, 신이시여. 저는 진정으로 제가 유일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의 삶에서 나를 앗아갈 그 순간은 유한한 운명이 아닙니다.
이 시간들이 최후의 시간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 앞에 살아야 할 삶이 있는 동안은, 나의 삶도 생생하게 살아 남아 있을 것입니다.
3) 라파엘 알베르띠 27세대 시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아직 생존해 있는 작가이다(1902년 생). 내전이 끝나자, 불란서에 얼마간 머무른 다음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한다. 집필 활동을 의욕적으로 계속하는 가운데 전세계를 여행해 마침내 중국에 도달한다. 이 여행의 결실이 『미소 지어라, 중국이여 Sonr뭙, China』이다. 그 후 몇 년간을 이태리의 수도에서 보낸 후 『로마, 보행자들에게 위험하다 Roma, peligro para caminantes』(1968)라는 작품을 남긴다. 마침내 서반아로 돌아간다. 이 시기에, 알베르띠는 같은 시집내에서조차도 의식적인 시들과 그자신이 부르조와풍 또는 순전히 미적인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시들을 번갈아 쓴다. 두번째 시집은 미주대륙에서 출판된 것으로 네루다에게 바쳐진 『카네이션과 검 사이에 Entre el clavel y la espada』이다. 이 시집에서 “나의 이름이 타협, 주어진 하나의 단어, 늘 드러내인 목, 너, 네가 지금 너에게 열어 펼칠 책 등을 뜻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것을 단지 꽃의 기호로서만 추구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전혀 기호가 아닌 정조준된 칼로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라파엘은 서술하고 있다. 정치와 전격적으로 타협을 하고 나서는 책들은 『후안 빠나데로의 민요들 Coplas de Juan Panadero』과 『미소지어라, 중국이여』이고 미와 타협을 하는 책들은 『회화에게 A la pintura』와 『빠라나의 민요들과 노래들 Balaldas y canciones del Paran눀뼈甄? 망명 시절은 그 자신을 다시 둘러보게 하여 종종 자서전적인 시들을 집필하게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아득한 삶으로 되돌아감 Retornos de lo vivo lejano』을 남기고,『로마, 보행자들에게 위험하다』에서는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삶을 담는다.
비둘기
비둘기가 실수를 했다. 실수를 했다.
북쪽으로 갈 것을 남쪽으로 가버렸다. 밀을 물이라고 믿었다. 비둘기가 실수를 했다.
바다를 하늘이라고 믿었다. 밤을 아침이라고 믿었다. 비둘기가 실수를 했다.
별들을 이슬이라고; 무더위를 강설이라고 믿었다. 비둘기가 실수를 했다.
너의 스카트를 브라우스라고; 너의 가슴을 자신의 집으로 믿었다. 비둘기가 실수를 했다. ―『카네이션과 검 사이에』 중에서, 1939
4) 루이스 세르누다 27세대 일원으로서 내전 직후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기 위해 먼저 영국으로 향한다. 1949년부터는 멕시코에 오랫동안 머무르는데 결국 거기서 1963년에 죽음을 맞이한다.
망명 시절의 시로는 『구름들 Las nubes』(1943), 『먼동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Como quien espera el alba』(1947), 『육체를 위한 시 Poemas para un cuerpo』(1957), 『키메라의 황폐 Desolaci뾫 de la quimera』(1962)등이 있다. 그리고 『살지 않고 있으며 산다 Vivir sin estar viviendo』(44과 49년 사이에 쓰여짐)와 『헤아려진 시간들로 Con las horas contadas』(1950~56)의 일부분은 『현실과 육체 La realidad y el cuerpo』(멕시코, 1958)의 3판에 첨가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그의 작품 중 가장 잘 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키메라의 황폐』는 시간의 흐름과 확실한 죽음으로 집약되는 여러 주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살아남을까 하는 염려를 하기도 하는데,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그의 영웅들인 랭보, 베를렌느, 모짜르트 등을 언급할 때에도 간접적으로 그러한 점을 제기한다. 위에서 본 죽음의 주제와 연관된 또하나 주제는 이별이다: 감정, 친구, ‘더러워진 늙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예쁜 어린이들로부터의 이별이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어린 시절과 서반아로 돌아가는 문제 그리고 심지어는 서반아 국적을 소유하는 문제 등을 다룬다.
세르누다는 상징주의 관점에서 통찰력을 가지고 그가 받은 시적 유산을 검토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인 노선을 견지하는 시의 개념을 정립해 전통적으로 받은 시적 유산에 반기를 들었다. 오늘날 단어의 생동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세르누다는 단연 우리 시에 있어서 고전적 인물이다. <까스떼옛>
의심의 여지없이 후안 라몬 히메네스 Juan Ram n Jim nez, 레온 펠리뻬 Leon Felipe, 마누엘 알똘라기레 Manuel Altolaguirre, 에밀리오 쁘라도스 Emilio Prados 등도 망명 시인 대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려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5. 최근의 서반아 시 동향
1970년 호세 마리아 까스떼옛은 『9명의 새로운 서반아 시인들(Nueve nov simos poestas espa뻩les)』라는 시선집을 출판한다. 9명의 주인공들은 바스께스 몬딸반 V뇕quez Montalb뇆, 마르띠네스 사리온 Mart nez Sarri뾫, 호세 마리아 알바레스 Jos?Mar뭓 Alvarez, 헬릭스 데 아스와 F럏ix de Az쏿, 뻬드로 힘페레르 Pedro Gimferrer, 비센테 몰리나 호와 Vicente Molina―Foix, 아나 마리아 모아 Ana Mar a Moix, 기예르모 까르네로 Gillermo Carnero, 레오뽈도 마리아 빠네로 Leopoldo Mar a Panero 등이다. 모두가 내란 후인 1939에서 1948년 사이에 출생한 신세대 작가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의 감수성과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사회적 대화 수단의 이점들, 외국 여행의 용이함 그리고 책과 저자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점 등이다. 모든 이러한 것들은 인간적이기보다는 심미적인 시에 반영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주제를 완전히 잊지 않은 채 전위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실험적인 기법들로 형식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시가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상실했으며, 많은 경우에 있어서 시의 예술적 역할을 영화와 텔레비전 그리고 코믹쇼 등의 요소들을 사용하는 언어만의 유희로 한정한다. 이렇듯, 27세대이후 서반아시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존해온 초현실주의의 현실화를 강화한다. 주제의 범위는 개인적인 사항(유아, 기억, 사랑)과 우리 세대의 집단적 문제점들을 포함한다. 이 밖에도 중요하지 않고 사소한 주제들을 통해 일반적으로 거부되었던 일련의 가치들을 탈신격화한다. 어떤 시인들은 반문화적인 운동에 명백한 동조를 표명하기도 한다. 따라서, 새로운 비이성적 표현과 새로운 상상의 모험 속에서 아마도 도덕적이기보다는 유희적이고 걱정하기보다는 상상하는 또다른 시의 시대를 향한 출발점을 찾으려는 우리 시대의 시 그룹으로 여겨진다. 『9명의 새로운 서반아 시인들』중에서 널리 알려진 시인들로는 뻬드로 힘페레르와 바스께스 몬딸반을 들 수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 교수)
쭥참고문헌 박 철, 서반아 문학사, 상(p.619), 중(p.526), 하권(p.411), 1992~1993, 송산출판사 박 철, 스페인 문학사, 1989, 삼영서관 Vicente Gaos, Antolog뭓 del grupo po tico de 1927, C뇍edra, Madrid Concha Zardoya, Poes뭓 espa뻩la del siglo XX, Tomo I―IV, Gredos Andrew p. Debicki, Estudios sobre poes a espa ola contempor nea, Gredos Victor Garc뭓 de la Concha, La poes뭓 espa뻩la de 1935 a 1975, Tomo I―II, C뇍edra. Miguel Jaroslaw Flys, La poes뭓 existencial de Damaso Alonso, Gredos Manuel Alvar, Estudios y ensayos de literatura contempor뇆ea, Gredos Carlos Bouso뻩, Teor뭓 de la excpresi n po tica, tomo I―II, Gredos D뇅aso Alonso, Poes a espa ola, Gredos, Madrid Jos Luis Bernal, Antolog뭓 po tica del 27, Cl뇋icos Edelvives,1991, Zaragoza Teodoro Villarreal y Gaspar Borreg뇆, Literatura espa뻩la, S.M., Madrid. Jos Luis Cano, Poes뭓 contempor뇆ea. Las generaciones de posguerra, Madrid, Guadarrama,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