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재-노고단-임걸령-노루목-삼도봉-뱀사골 등산로
지리산 등산 안내도
성삼재 휴계소
성삼재 휴계소 에서 본 "老姑壇"
노고단에 세워 놓은 개념도
"老 姑 壇" 대피소
"老 姑 壇" 은 휴식중
노고단은 (1,507m). 천왕봉(1,915m), 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봉의 하나이다. 백두대간에 속한다. 신라시대에 화랑국선(花郞國仙)의 연무도장이 되는 한편, 제단을 만들어 산신제를 지냈던 영봉(靈峰)으로 지리산국립공원의 남서부를 차지한다. 노고단이란 도교(道敎)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仙桃聖母)를 일컫는 말이다.
"老姑壇"을 뒤로하고
文洙臺(1,507m) 쪽에서 바라본 老姑壇
등산로 거리 표지판
문수대에서 바라본 임걸령,노루목의 능선들
1,386 봉
1,386봉에세워진 이정표
임걸령 못 미처의 "피아골"
희미하게 반야봉이 보인다.
1,432m의 "임걸령"
임걸령을 지나며
피아골 삼거리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며
이 철죽들이 만개 했다면....
임걸령 샘터의 이정표
샘터주변에 지천으로 깔린 야생화
노루목에 서있는 이정표
노루목에서 바라본 "반야봉
백두산에서 서식하는 "자작나무"가 이곳에도 많이 있다.
1,490m의 삼도봉(전라북도(남원),전라남도(구례).경상남도(산청.함양)
"三 道 峰" 에서
三도峰 갈림길 이정표
삼도봉에 세워진 개념도
지리산은 단순한 육산이 아니고 암벽도 많고 너덜 지대도 많다
"화개재"로 접어드니 철죽이 제법 피어있다.
철죽 넘어로 보이는 반야봉
해안지방 상인들과 산간내륙 상인들 간의 물물 교환 장소인 "花開재"
화개재에서 바라본 토끼봉과 주능선
화계재에서 뱀사골로....
화개재를 200m 정도 네려 오면 뱀사골 대피소가 나온다.
대피소 근처의 야생화
튕기는 물방울에 흠쁙 젖어있다.
뱁사골의 물은 여기 에서부터 발원 하고
뱁사골 중간 중간에 서있는 이정표
계곡의 넓이나 물량도 늘어 나고
이틀전에 100mm 정도의 네린 비 덕택에....
"祭 僧 臺"
"祭 僧 臺"에대한 유래
뱀사골 대피소와 半仙 사이의 이정표
"병 풍 소"
"甁 沼"에대한 유래
甁을 닮았다 해서 "甁沼" 라 했단다.
"濯 龍 臺"에대한 유래
昇天 하지 못한 龍 이 떨어저 죽었다는 濯龍沼
"搖龍臺"에 대한 유래
搖龍臺 에서 흘러네리는 玉流
갑작이 곰이 나타났을때 대처요령
山內面 "臥雲里 "와 "半仙" 사이에 서있는이정표
지리산 전적 기념관과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
이곳 지리산이 6,25 전쟁 당시에 격전지 였음을 알려준다.
이 忠魂塔은 80년대 까지 南原 廣漢樓園 에 세워저 있었다.
"忠 魂" 雲南 李承晩 대통령의 친필
뱀사골하면 한국의 명수(名水)로 통한다. 지리산의 깊고 깊은 산록에서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빚어져 즐비한 징담을 거쳐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뱀사골의 청정계류는 가히 손색없는 우리나라의 으뜸 물줄기라 부를 만하다.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사이의 울창한 원시림 지대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기암괴석을 감돌아 흐르면서 절경을 일구어 놓아 뱀사골의 계곡미 또한 장관이다. 우리나라 계곡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 만큼 잘 알려져 찾는 이도 많지만 그 품이 너무도 넓고 깊어 쉽게 오염되지 않는다.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의 화개재에서 남원시 산내면 반선리 집단시설지구까지 12km, 장장 39여리의 물줄기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소(沼)와 징담이 뱀사골의 가장 큰 자랑이다. 대표적인 것만 하더라도 오룡대, 뱀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가 그림같이 전개돼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뱀사골의 특징은 화려한 소와 징담의 잔치와 더불어 산행을 하다보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힘들이지 않고 어물쩍 길손의 발길을 산마루에 올려 놓게 하는 그 완만하고 고른 경사도를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뱀사골에는 연중 등산객 뿐만 아니라 가족단위의 행락객들이 많이 찾아든다. 옛날 뱀사골 입구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매년 칠월 칠석날 밤이면 주지 스님이 사라져 마을 사람들은 스님이 부처로 승천했다고 믿고 있었다. 서산대사가 이 소리를 전해듣고는 사람이 부처가 되어 승천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 어느해 칠석날 장삼 속에 비상(극약)주머니를 달아 주지 스님에게 입혀 예년과 똑같이 독경을 하도록 시켰다. 새벽녘이 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큰 뱀이 송림사에 왔다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 갔다고 한다.
이에 서산대사가 뱀을 따라 올라 가 보니 용이 못된 이무기가 뱀소에 죽어 있어 뱀의 배를 갈라보니 주지스님이 죽어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死)골이라고 하였고 끝내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를 일러 반선(半仙)이라 부르다 어느 때부터인가 반선(伴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전설속에 등장한 송림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며 그 터에 전적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뱀사골의 유래는 이 외에 여러 이야기가 많다. 옛날 석실(石室) 부근에 배암사라는 절이 있어서 뱀사로 줄여 뱀사골로 됐다는 얘기도 있고 뱀소(沼)에서 유래되어 뱀소골, 뱀사골로 부른다.또 뱀사골은 수많은 소(沼)가운데 간장소가 있는데 여기에는 화개재를 넘나들며 소금 장사를 하던 운봉 소금장수의 얘기가 있다.
그 옛날 화개장터에서 소금을 사서 화개재를 넘어오던 소금장수가 너무 지친 나머지 발을 헛디뎌 소금과 함께 웅덩이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웅덩이의 물이 간장처럼 짜다고 해 간장소라 불렀다 한다. 그리고 화개재에서 삼도봉을 거쳐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목 왼쪽에 이름모를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 무덤이 운봉 소금장수의 무덤이라는 얘기도 있다.
뱀사골의 소와 징담마다 그에 얽힌 얘기가 전해지는데 제승대는 정진 스님이 산을 향해 제를 올렸던 곳이라고 하는 등 뱀과 용에 얽힌 설화가 수두룩하다. 곳곳마다 징담이 이름과 함께 그 유래를 간략하게 소개해주고 있어 찾는 이를 흥미롭게 해주고 있다.
또 간혹 오래된 지도상에 삼차, 막차라고 나오는 지명이 있는데 이는 산간도로를 만들어 지리산의 거목을 나르던 당시의 지명들이다.뱀사골의 절경은 빼어나지만 이 곳에는 잊지 못할 우리나라 근대사의 아픈 흔적이 남아있다. 반선의 옛 송림사 터에 세워져 있는 전적 기념관만이 당시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 전적기념관은 지난 79년 국방부가 조성한 것으로 광복 이후 6·25를 거치는 동안 지리산에서 벌어진 동족 상잔의 역사를 유일하게 상기시켜 주는 곳이다. 기념비와 2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각각의 전시실에는 당시의 각종 무기류와 사진, 모형물들이 전시되어 교육적으로 큰 가치를 갖고 있다.
전적기념관에서 시작되는 뱀사골은 화개재까지 이어지는데 대개 등반객들은 화개재 200m 아래 뱀사골 산장을 목표로 산행을 한다. 12km의 긴 등산로는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데다 지리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완만한 경사를 하고 있는 탓에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뱀사골 등반은 등산이라기 보다 산책하듯 즐길 수 있는데 전적 기념관 옆으로 널따란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한동안 이어진다. 큰 길 대신 계곡변 소로를 택해 오를 수도 있다. 두 길은 결국 석실부근 제 3야영장에서 만난다. 감나무와 간이매점을 지나면 용이 머리를 흔들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는 일명 흔들바위 요룡대가 나타나고 곧 반야교가 나온다.
곧이어 탁용소가 나오는데 긴 암반위로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탁용소에서 금포교를 건너면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살던 곳이라는 뱀소가 나오고 병모양의 기묘한 형상을 한 소가 연이어진다. 천장이 아치형인 명선교, 옥류교를 거쳐 계속 오르면 정진스님이 산신제를 올리던 제승대, 소금장수가 빠졌다는 간장소가 이어진다.
화려한 소와 징담을 지나 고목이 뒹굴기도 하는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어느샌가 뱀사골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78년 반야봉산장으로 탄생했던 뱀사골산장은 그 후 85년 개축돼 지금은 8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89년 12월에는 전화도 개통돼(0671-626-1732) 대피소 기능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풍부한 샘물 덕분에 많은 등산객이 붐벼 다소 지저분하다는 인상마저 든다. 뱀사골을 찾는 등반객들은 이곳에서 1박 한뒤 반야봉을 오르거나 산을 넘어 피아골, 멀리 노고단과 화엄사를 거쳐 하산하기도 한다. 또 연하천산장을 지나 세석이나 천왕봉을 오르는 등반객도 많다. 한여름철 뱀사골을 찾아 지리산 계곡의 진수를 만끽해 봄직하다.
지리산 최대의 계곡미를 자랑하며 갖가지 형용사들이 동원돼 표현된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과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면서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그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있는 칠선계곡은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가 펼쳐지는 대 자원의 파노라마처럼 천왕봉정상에서 마천면 의탄까지 장장 18km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다.
지리산자락 가운데 유독 여성을 상징하는 지명이 가장 많으면서도 들어가면 갈수록 골이 더욱 깊고 날카로운 칠선계곡은 그 험준함으로 인해 숱한 생명을 앗아 가기도해 죽음의 골짜기로도 불릴 정도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칠선계곡을 꼭 등반하고 싶어 하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 전문 산악인들도 히말라야등 원정등반에 앞서 겨울철 칠선계곡에서의 빙폭훈련등반을 거칠 정도로 겨울의 칠선은 고난이도의 등반 기술을 요구한다. 일반인들의 경우 칠선계곡을 등반하려면 여름철에도 계곡 아래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루트는 피하고 주로 다른 코스로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 길로 칠선계곡을 택한다. 칠선계곡의 총 연장은 18km이지만 등반코스는 추성동에서부터 천왕봉까지 14km이다.
지난해 까지만해도 버스편에 의한 마을까지 밖에 연결이 안됐지만 지금은 한시간 간격으로 추성동-함양읍간을 운행하는 버스편이 있어 등산로가 4km줄어든 셈이다.
추성동에서 시작되는 칠선계곡 등반로는 전체적으로 계곡등반의 위험성 때문에 상당 구간이 계곡과 동떨어져 있다. 이는 등산로를 벗어나서는 마음놓고 발길을 둘곳이 없을 정도의 험난한 산세 때문이다.
추성동에서 등산로를 따라 곧장 가면 칠선계곡에서 처음 만나게되는 용소를 놓치기 쉽다. 등산로에 용소가는 길을 표기해 놓았으나 등산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계곡으로 거슬러 가면 5백여m 지점에 위치한 용소는 산신제를 지낼때 산돼지를 집어 넣는 곳으로 전해진다.
계곡을 따라 2km남짓 오르면 두지동(두지터라고도 함)이 나오는데 등산로는 계곡길 떨어져 별도로 나있다. 주로 등산로를 이용하고 있는데 두지동은 마을 모양이 식량을 담는 두지같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 화전민들이 기거하던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담배건조장과 농막등만 남아 이 마을이 등산객들의 휴게소로 각광받고 있는데 담배 건조장이 분위기 있는 찻집으로 변해있어 눈길을 끈다.
두지동에서는 창암산 능선을 넘어 백무동으로 갈수도 있다. 한동안 계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면 암반과 소가 어우러진 곳에 설치된 쇠다리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경사진 도로를 따라 힘겹게 오르다보면 잡초와 감나무, 호도나무가 어지럽게 뒤덮인 마을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이 옛 칠선동 마을 터로 한때 독가촌이 산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울창한 잡목 숲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계곡 물 소리는 아득한 발 아래서 들릴듯 말듯 하며 널따란 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여기가 전망좋은 쉼터인 추성망 바위이다. 여기서부터는 계곡등반이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의 험난한 산 길이 계속돼 추성동에서 4km 지점인 선녀탕까지 계속된다.
일곱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 지금은 돌과 모래등으로 메워 져 전설속의 선녀가 목욕했을 정도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다. 선녀탕의 전설은 선녀에게 연정을 품은 곰과 선녀를 도운 사향 노루가 등장하는 동화같은 얘기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곱 선녀가 이 곳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 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때 사향 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바위 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알고 선녀들의 옷을 숨겼던 것이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 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이주 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고 한다는 전설이다.
선녀탕에서 조금 지나면 1백여평 남짓한 소와 매끈한 암반이 있는데 칠선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옥녀탕이다. 하늘을 뒤덮은 듯한 울창한 수림과 넓은 소가 연출해 내 는 옥녀탕의 전경은 위로 무명 소들과 이어져 깎아지른듯한 벼랑으로 연결되면서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벼랑으로 조심스럽게 오르다 보면 비선담이 또 색다른 모습으로 반긴다. 계곡등반의 묘미를 한껏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비선담을 지나면 다시 옛 목기막터가 있었다는 산죽밭을 지나 오른편 계곡으로 건 너게 되는데 계곡주변에 조그마한 바위굴이 있다. 과거 목기를 만들던 인부들이 지내던 곳으로 청춘홀이라 불리고 있다.
피아골은 아름다운 계곡이다. 특히 피아골의 아름다움은 봄철 진달래, 여름철 우거진 녹음, 가을철 단풍, 겨울철 설화로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가을의 단풍은 지리산에서 으뜸이다. 눈이 시리도록 선명하고 고운 피아골의 단풍은 찾는 이를 매료 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피아골의 단풍은 삼홍(三紅)이라 하여 산이 붉게 불타는 산홍(山紅), 붉은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치는 수홍(水紅) , 사람이 들어서면 사람도 붉게 물드는 인흥(人紅)이 절경이다. 그 가운데 표고막터에서 삼홍소 간 1km사이의 빼어난 풍경이 피아골 단풍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토록 아름다운 단풍을 빚어내는 피아골은 연곡천의 상류인 연곡사로부터 주릉을 향해 40여리에 걸쳐 이어져 있다.
반야봉 중턱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주릉과 불무장등릉, 그리고 노고단과 왕시루봉릉 사이의 원시림지대를 누비며 서남으로 돌고 돌아 왕시루봉을 따라 내려가 섬진강에 이른다. 노고단과 반야봉 사이 주릉에서 빚어지는 피아골의 물은 울창한 수림과 아름다운 수석을 감돌아 늘 청정함이 깃들여 있다. 즉 반야봉의 중턱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삼도봉과 노루목, 임걸령, 불무장등 사이의 원시림지대와 기암괴석을 감돌아 내려오다 노고단과 질매재에서 흘러내린 계류와 하나가 되면서 웅장하고 깊고 깊은 계곡을 만든다.
피아골의 어원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계곡 중간의 직전마을이란 지명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연곡사에서 2km정도 오르면 조그마한 마을이 나오는데 바로 직전(稷田)마을이다. 이는 오곡 중의 하나인 식용 피(稷)를 가꾸는 밭, 즉 피밭이 있던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옛날부터 이곳에서 오곡 중 하나인 피를 많이 재배했다는 의미가 바로 피아골의 어원이다.
처음에 피밭골 (稷田谷)이던 것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다. 피아골은 장장 40여리에 이르지만 차량이 직전마을까지 들어갈 수 있는 탓에 그 깊이를 그렇게 크게 느낄 수는 없다. 피아골 등반은 차량이 들어가는 직전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직전마을에서 선유교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 비포장의 넓은 길이다. 왼쪽의 아름다운 계곡미를 맛보며 거닐면 상큼한 기분이 압도한다.
선유교를 건너면 비교적 너른 야영장이 나온다. 표고막터라 부른다. 일제시대 때 이곳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했던 곳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철에 한해 이곳에서 야영이 가능하다는 국립공원 안내 입간판이 이색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왜냐면 지리산 어느곳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야영장으로 둔갑해 있는 현시점에서 구태여 이곳에 한해 여름철 한철만 야영을 허가한다니... 화장실 시설과 함께 잘 다져진 야영장 바로 아래 큰 나무 밑을 살펴보면 그물망을 쳐놓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서울대 농대에서 만들어 놓은 채종장이다. 종자를 받기위해 조그마한 그물을 나무 아래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표고막터에서부터는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선유교를 건너지 않고 그대로 계곡 오른편으로도 등산로가 이어져 있으나 잘 이용되지 않고 선유교를 건너 표고 막터를 거쳐 계곡 왼쪽길이 많이 애용된다. 울창한 활엽수림에서 내뿜는 상큼한 산소를 마시며 잘 다듬어진 돌길을 걷는 기분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다. 평탄하며 완만한 길을 흠뻑 물든 단풍의 정취에다 계류의 청아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피아골 단풍의 백미로 산홍, 수홍, 인홍 등 삼홍을 맛볼 수는 삼홍소까지는 30분 정도면 당도한다. 86년에 가설된 삼홍교가 주변경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삼홍소에서 10여분 오르면 구계포다리가 나오고 여기서 바라보는 피아골의 경치는 극치를 이룬다. 완만한 암반위로 영롱한 오색의 구슬들이 층층 계단을 타고 쏟아지는 장관은 탄성을 절로 나게 만든다. 절경을 뒤로 하고 다시 10여분정도 오르면 남매폭포가 기다린다. 3∼4m의 아담한 쌍폭이다. 여기서 다시 조금 오르면 와폭이 있고 기다리던 피아골 산장이 나타난다.
길고 깨끗하며 적막감마저 감도는 지리산 동부의 계곡이다. 써리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의 덕천강에 합류하기 까지 그 길이가 50여리, 20km에 이른다. 기나긴 여정을 요구하는 장당골은 골짜기 속의 골짜기로 곧잘 표현된다. 덕산에서 대원사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대포마을에서 계곡을 거슬러 가다보면 내원사 앞 계곡에서 물줄기가 둘로 나뉘어지는데 왼쪽은 내원골, 오른쪽이 바로 장당골에 해당된다.
장당골은 다시 바깥장당과 안장당으로 구분되는데 더 상류로 가면 무재치기 폭포로 이어지는 물줄기와 써리봉과 남단부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써리봉∼국사봉을 잇는 황금능선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경상대 연습림 장당보호소 주변에 모여져 내원사까지 흐르다가 내원골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합류, 대포마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상류의 무재치기 폭포는 지리산에서 가장 이름난 폭포수로 물줄기가 쏟아지면서 아래의 바위에 부딪쳐 아름다운 무지개를 빚어내는 폭포로 유명하다. 무재치기폭포 이외에 장당골에는 이렇다할 명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장당골의 속으로 깊이 파고 들수록 배어나오는 태고적 신비감과 순수함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독특한 형태의 물줄기는 하류, 다시말해 경상대 연습림이라는 널찍한 산판도로와 8차례나 엉키며 이어지고 있어 등 산로라기 보다는 산책로 정도로 평가되고 있으나 상류는 전혀 판이한 형국을 하고 있다.
울창한 수림이 뒤엉켜 넘어지면 넘어진대로 그대로 썩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하나가 되는 자연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바로 장당골 상류이다. 아직은 사람의 때를 덜 탄 때문이다. 진초록의 청류와 수림은 정적의 운치를 더해 찾는 이를 오히려 두려움에 젖게 할 정도다.
등산로는 치밭목 산장과 무재치기 폭포에서 내원사 주차장까지 17km구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대포마을에서 내원사까지는 차량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버스편으로 등반을 시작하려면 대포마을까지를 등산로로 간주해야 한다. 내원사 주차장 오른편 위로 계속되는 산판도로 입구에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차량운행을 통제하는시설을 설치, 차량운행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등산로의 시발점을 이곳으로 본것이다. 내원사에서 경상대 연습림 장당보호소까지 도로가 잘 다듬어져 있는데 8번이나 계곡과 만나는 탓에 지프차 이외의 일반차량은 운행이 불가능하다. 장마철 계곡 물리 불어나면 지프차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내원사∼장당보호소간은 대략 10km거리로 두시간 가량 걸어야 된다. 등산로라기 보다는 호젓한 산책로 같은 이 구간은 장당골 특유의 깨끗하고 짙푸른 계곡수로 유명하다. 거대한 폭포수가 있는가 하면 산중호수를 연상케 할 정도의 넓고 깊은 소등 오밀조밀 계곡의 풍치는 일품이다. 이런 탓에 이 일대는 아직 덜 알려져 있는데도 매년 여름철이면 피서 인파들로 붐빈다. 실제는 여름한철 뿐 아니라 장당골에는 사시사철 색다른 자연미를 보여주고 있는데 일반인들이 잘 몰라 아직은 여름 한철만 애용되곤 한다.
그래서 장당골을 잘아는 산꾼들에게만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 세계를 보여 주는 [소중한 비밀]로 아직 남아 있다. 이는 아마도 장당골이 천왕봉과 다소 동떨어진 탓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