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게 하십시오! 감동을 주십시오! (엡 5:10)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마음의 감동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움직이려고 아무리 유창한 말을 하고 때론 으름장을 놓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받으면 자발적으로 신이 나서 행동에 옮기게 됩니다. 감동은 “크게 느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 입니다. 감동할 때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면 행동이 움직이게 됩니다.
어떤 글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당신과 나는 날개가 하나밖에 없는 천사입니다. 우리가 날기 위해서는 서로를 안아야 합니다.”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품에 안아줄 때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온전해 진다는 참 아름다운 글입니다. 이처럼 감동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런데 감동은 어떻게 하면 받게 될까요? “감동을 받을지어다!”라고 하면 감동받게 될까요? 감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유재필 목사님이 최근에「전도는 감동이다」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목사님은 전도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전도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진심어린 감동의 말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 교회는 여성구역을 중심으로 부침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부침개를 먹고 배부르게 한 다음에 전도의 물꼬를 튼 것입니다. 인천에 있는 주안장로교회 나겸일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목구멍이 열려야 마음이 열린다.” 전도대는 아낌없이 주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리하여 불신자들이 전도대의 정성에 감탄하고, 맛에 감탄하고, 끈기에 감탄하면서 소통이 이루어져서 마침내 교회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유재필 목사님은 “하나님의 역사는 감동 속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하면서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감동 바이러스’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감동이 되어야 마음이 움직여서 교회로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는 감동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많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므로 우리에게 한 분뿐이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사랑한다. 너는 내 아들이다. 사랑한다. 너는 내 딸이다.” 이것보다 더 감동적인 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감화 감동시켜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기쁘신 뜻을 잘 깨닫고 잘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꼬박꼬박 잘 듣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반대방향으로 내리달리던 불량아들이었습니다. 호세아 14장 4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아멘. 우리가 반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기뻐하시므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돌이키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사건은 이 외에도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가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믿음으로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해주십니다.
또한 우리를 교회로 인도해주셔서 함께 예배드리게 해주신 것도 있습니다. 이사야 56장 7절입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아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집으로 불러 주시고 그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사건입니까? 이 시간 우리 모두 주님께서 주시는 이 기쁨, 이 감동을 풍성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이에 반응할 차례입니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서로 마음이 오고가야 합니다. 전해져야 합니다. 반응할 때 더 감동이 오고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기쁘고 더 즐겁고 더 신이 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우리도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쁨을 가져다주는 이런 감동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아멘. 무엇 때문에 시험해 보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서 마음에 감동이 되면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면 하나님의 손길이 움직여서 그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온 사람에게 온전한 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룻 2:12). 하나님께서 너무나 기뻐서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감동이 되면 이처럼 마음이 움직이고 행동이 뒤따라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감동의 역사’라는 말처럼 하나님께서 기쁘게 감동하시면 우리에게 보다 더 풍성한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기뻐하시고 감동을 받으실까요?
첫째로, 시편 92편 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아멘. 주님께서 그동안 베풀어주신 사랑의 수고와 구원의 역사, 다시 말해 우리를 기쁘게 하신 감동의 역사에 대해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로 인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입니다. 시편 69편 30~31절을 보면 보다 분명하게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아멘. 주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찬양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에녹은 죽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믿음으로 옮겨졌다고 했습니다(히 11:5). 우리 역시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올라가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 수가 있습니다. 또한 믿음이 있어야 이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오는 사람에게 온전한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에녹이 그렇게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받을 정도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셋째로, 의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 21장 3절입니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아멘. 넷째로, 전도하여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아멘. 다섯째로, 선행과 서로 나눔의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입니다. “오직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누어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특별할 때 시험해보라고 하십니다. 십일조로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해야 할지를 시험해보라고 하십니다. 시험은 언제 칩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자격시험을 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이 전문적이고 특수할수록 시험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더 어려운 시험을 치게 하십니다. 더 귀한 직분을 주시고 더 풍성한 축복을 주시려고 시험치게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 시험은 무척 어려운 시험입니다.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통과하면 그에 합당한 자격과 특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창고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꽉꽉” 채워주십니다. 메뚜기가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고,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십니다. 또한 그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보고 “너희가 복되다” 고 부러워하게 해주십니다(말 3:10~12).
그렇다면 오늘본문처럼 시험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어떤 특별한 상을 받을까요? 잠언 16장 7절입니다. “그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아멘. 원수와 화목하게 된다? 그렇게 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원수가 감동을 받고 원수가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됩니다. 서로 기쁨을 주고 서로 감동을 주면서 다정다감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