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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새로운 것을 쫓는 것이 패션지의 사명이라면, ‘전통’이라는 이름의 무게쯤은 가벼이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들이 오래된 것들을 대체하리라 믿었던 생각들은 ‘레트로’라는 트렌드 아닌 트렌드 앞에서 너무도 쉽게 깨져버렸다. 오래된 어떤 것은 힙하고, 또 다른 것은 낡았다며 버림 받는다. 그러나 그 갈피를 잡기 힘든 복잡한 대중의 기호와 언제나 순환하지만 단순히 반복되지 만은 않는 오묘한 트렌드 위에서도 변치 않은 위력을 가진 문화 코드들이 있다.
60년대를 풍미한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비틀즈(Beatles)’. 그 이름으로 연상하는 수많은 명곡들과 ‘존 레논’, ‘오노 요코’ 등 그 이름에서 파생된 또 다른 문화 아이콘,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게 만드는 수많은 ‘카피 밴드’들이 그 이름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마이클 마이어스의 영화 <오스틴 파워>, 한국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그리고 밴드 ‘오 부라더스’는 비틀즈의 유산을 공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수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의 배경 음악으로 그들의 노래를 계속 들려주고 있다.
비틀즈가 음악사에 남긴 대기록들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활동을 접은 그들에게 비공식 타이틀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카피 밴드를 보유한 그룹’이란 타이틀이다. 50년대의 유행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그들을 모방하려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고, 단순한 코스프레에 그치지 않고 연주실력까지 갖춘 그들 스스로 ‘비틀즈 카피 밴드’로서 자부심을 가졌다. 심지어는 더 이상 진짜 비틀즈의 콘서트를 볼 수 없게 된 팬들은 그들의 콘서트에서 추억을 곰씹으며 열광하거나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카피 밴드들도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비틀즈 마니아’, ‘Dr. Fink’, ‘미스터리 밴드’가 명성을 얻었고, 한국에서는 크고 작은 카피 밴드들이 밤무대와 대학가 축제에서 근근한 이름을 이어왔다. 그 중 ‘더 원’, ‘메이비’ 등은 지금도 활동중이다. 비틀즈에 대한 애정이라면 한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일본에서는 더 많은 카피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다. 1991년에 결성된 ‘위싱밴드(Wishing Band)’가 대표적인데, 10년이 넘도록 국내외에서 콘서트를 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98년에는 비틀즈의 고향인 리버풀에서 대규모 공연을 갖기도 했는데, 비틀즈의 고향에서 비틀즈 카피 밴드의 공연을 보는 영국인들의 감회는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지난 7월 14일,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의 펍 레스토랑 ‘그랑 아’에서 마침 그들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어로 열심히 멘트를 하지만 관객들 대부분은 알아 듣지 못하는 듯 했지만, 비틀즈를 추억하러 온 이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가장 따라 부르기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유난히 비틀즈의 카피 밴드가 많은 것은 그만큼 그들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 그들이 남긴 음악만으로도 평생을 연주하기에 충분하다는 카피 밴드들의 자부심은, 반 세기를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았음에도 ‘비틀즈’는 여전히 유효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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