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말이라고 하는 것이 요즘처럼 그 품격을 잃어버린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말이 스스로의 품격을 잃어버리게 된 모습을 우리는 말의 타락이라고 한다. 말이란 원래 인간의 것이니 말의 타락은 곧 그 시대 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생활. 인간정신의 타락과 다름 아니다. 이러한 말의 타락현상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장 첫 번째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식언일 것이다. 앞서 행한 자신의 말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것은 실천보다 목적이 더 급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모든 분야에서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식언은 뭇사람의 도덕성을 마비시키는 현상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감언이설도 말의 타락현상 중의 하나이다. 남의 비위에 맞도록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이니 식언의 앞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요, 식언 이후에도 무더기로 확산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말의 타락현상의 하위개념들로 이어지는 것은 실속 없이 오버액션으로 떠들어대는 훤사,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며 교묘히 둘러대는 교언, 껍질의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는 미사여구, 그 성질 자체가 천하고 더러운 비어, 난폭하게 내뱉어버리는 폭언, 따위라 할 수 있다. 러스킨이 말한 바, <가면을 쓴 외교관> <교활한 외교관> <표독한 독살자> 따위는 모두 이 말의 타락현상을 풍자하는 말일 것이다.
인간의 말이 요즘과 거의 버금갈 정도로 극심한 타락현상을 보였던 것은 나라의 주권을 강도 일본에게 빼앗겨 유린당하던 일제 말기가 아니었던가 한다. 전통가치를 포함한 기존의 모든 민족적 가치가 일제의 계획적 조직적 파괴로 깡그리 무너져가던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서 우리는 시인 백석(1912-?)의 민족언어를 위한 고결한 노력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처럼 당시 식민통치자들의 주된 목표는 제국주의적 규격화, 규범화, 구별화의 강압적 개편으로 한반도에서 진작부터 살아온 토착민들을 일본국민으로 동화시켜버리거나, 아예 점령지 밖으로 추방해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상당수의 기회주의적 지식인들은 일제의 정책을 고분고분 접수하여 그들만의 살길을 찾으려 했다. 그 극단적인 모습들이 일제말의 친일문인들로 표상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인 백석은 민족의 주체적 자아를 문학 쪽에서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활동영역을 농촌공동체의 생활과 그 정서에서 찾으려 했다. 그 무렵 도시공간에서는 이미 말의 타락현상이 극심하게 일어나 인간의식의 붕괴 및 파탄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민중들이 믿어왔던 지식인들은 참으로 그 모습이 말이 아니게 달라져서 소일본인화되어 버리고, 그들이 내뱉는 말이라곤 학병지원을 독려하는 강연, 전시체제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선무성 시국강연 따위로 분주하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었고, 신뢰할 수 있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농촌만큼은 제국주의자들의 극악한 농촌파괴정책에도 불구하고 혈연과 거주지로 함께 엮어지는 생활공동체의 끈끈한 유대를 여전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 백 석의 본명은 백 기행. 평안북도 정주군 출생이다. 역시 동향인 관서 출신의 시인 김 소월과는 당시의 유명했던 사학 오산고보의 선후배 사이로 백석은 선배시인 소월을 매우 흠모하고 존경했지만, 서로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소월의 시에도 민요가락에 실어서 표현되는 관서지방 특유의 정서가 있지만, 백석은 소월보다 어쩌면 훨씬 더 짙게 마천령 서쪽지역인 평안도 쪽의 정서를 특이한 문체로 노래하고 있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의짙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모닥불] 전문
이 시의 첫연에 나오는 사물들은 생물, 무생물의 구분을 따로 나눌 것 없이 우리들의 유년체험과 친숙하게 맞닿아 있는 모닥불의 재료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요긴하고 쓸모 있는 것들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거의 쓸모 없게 되어 뒷전으로 밀려나 있거나 아예 버려진 하찮은 사물들끼리 모여서 이처럼 따뜻한 [모닥불]의 광휘와 온기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1-2연에 등장하는 각 낱말 끝에 <-도>라는 특수조사가 낱낱이 붙어 있는 것은 [모닥불]이라는 공간이 애틋한 소외존재들이 서로 만나고 있는 평등한 장소임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시적 장치로 여겨진다.
백석의 시세계에서 또 하나 돋보이는 것은 농촌적 정서를 아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의 인용시는 이미 발간되었던 {백석시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발굴작품으로 관서지방 농촌의 여름, 저녁 풍경을 전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 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하늘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박각시 오는 저녁]
1987년에 발간된 전집에는 도합 94편의 백석 시작품이 실려 있고, 7편의 산문이 곁들어져 있다. 94편의 시작품이란 그가 1936년에 펴낸 유일한 시집 {사슴}에 실린 33편과 그 이후에 여러 신문, 잡지 등 각종 간행물에 실린 61편의 가랑잎처럼 흩어진 시작품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전집으로 엮은 것이다. 이 전집 발간은 시 [酒幕] [외갓집] 등 초기시에서 해방시기에 발표된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이란 시에 이르기까지 백석 시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1930년대의 우리 시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시인적 지위를 지니는 이 시인이 분단 이후 그의 고향인 북한에서 눌러살게 되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에게는 까맣게 잊혀진 이름이 되었던바, 이 시전집 발간을 분기점으로 해서 백석뿐만 아니라 이 용악, 오 장환, 정 지용, 김 기림, 임 화, 김 상훈 등 여러 시인들의 시작품이 전집으로 엮어져 나오게 되었다. 또 백석의 경우만 하더라도 전집이 발간된 이후 각계각층의 신선한 자극과 호응을 불러일으켜서 평론, 일반논문, 학위논문의 소재로 다루어지는 기회가 늘어나게 되었다.
전집 발간 이후에 발표된 논문, 평론들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십여 편은 족히 넘을 것이다. 이 가운데 논문에서는 백석시에 나타난 평북방언의 특이성을 분석한 연구도 있어서 이채롭다. 1988년에는 김 학동 교수가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박각시오는 저녁] 등 두 편을 새로 찾아내어 백 석 시집 {가즈랑집 할머니}를 발간한 바 있고, 다시 이번에 미래사에서 백석 시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시인 백 석은 영문학을 공부한 일본유학생 출신이었지만, 귀국 후 그의 활동은 이처럼 민족언어를 통한 민족본체성의 유지와 확보를 위한 노력에 바쳤다. 그의 시는 단 한마디도 민족주체를 말하지 않았으나, 동시대 어느 누구의 시보다도 더욱 진한 민족주체의 정신적 토양을 확고히 끌어안고 있었다. 그의 시에서는 1930년대 중년대 초반까지의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들이 다채롭게 그려진다. 메기수염을 한 늙은 과일장수, 앓는 아버지를 위하여 약물을 받으러 오는 산골소년, 굿판에서 작두를 타는 애기무당, 민물고기를 잘 잡는 뻐드렁니 소년, 주막집에서 왁자지껄한 떠돌이 장꾼들, [여우난골]이라고 불리는 지역마을의 주민들, 객줏집의 병들어 창백한 소녀, 달밤에 목매 죽은 수절과부, 타관 가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또 그를 기다리는 고향집의 아내와 아들, [가즈랑집]이라는 택호로 불리는 혼자 사는 할머니, 오리덫을 놓고 기다리는 아버지와 아들, 초겨울 양지바른 흙담벽에 붙어서 코를 흘리며 감자를 먹고 있는 산골아이들,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잡아서 살이 통통한 뒷다리를 구워먹는 소년들, 평안도의 어느 금광 입구에서 옥수수를 파는 한 여인의 슬픈 생애와 그 내력, 산골 여인숙에서 반들반들하게 기름때가 오른 목침을 베고 하룻밤을 자고 간 한없이 마음이 쓸쓸하던 사람들, 일본인 순사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던 손등이 모두 얼어터진 불쌍한 소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사람들은 일제 강점하를 살아갔던 민중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요, 또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말이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말이 지닌 본래의 질서, 본래의 기품이 현저히 상실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지난날, 민족언어의 질서를 회복하려고 혼자서 안간힘을 쓰던 눈물겹고 아름다웠던 시인 백 석의 시작품을 다시 읽으며 오늘의 우리 스스로를 팽팽한 긴장으로 가다듬고 추스려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백석론ㅡ이 동순 (문학평론가, 영남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