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교원단체에 실릴 글과 수업 자료 올려 봅니다.
더 이상 미술은 주변 교과가 아니다.
최근에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최고 존엄으로 인식되어 오던 바둑 세계를 굴복시켰고 또 그와 유사한 친구들은 많은 직업들을 소멸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던져주는 빵조각에 서서히 길들여져 가고 있으며 또 그것들에게 하나둘씩 정복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예술의 ‘창조’라는 부분만큼은 불모지나 다름없어서 정교한 몸짓이나 이름난 작가의 필력을 따라하는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 분야에 있어서 창조라는 것은 기계적인 반복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의 모방이나 정교한 동작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메탈이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감성과 뜨거운 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기능은 창조주가 마지막 보루로 남겨 뒀으리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일 모레면 쉰을 바라보는 필자는 흔히 말하는 대기 만성형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25년 넘게 작가 생활을 했으며, 가족의 생계를 붓으로 먹이고 입히며 살아온 화가이다. 46세의 늦은 나이에 아내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준비한 임용시험은 단번에 합격하였고, 2년 여 발령대기 끝에 부임한 학교는 세종시 신설 학교 소담중학교이다. 어린 제자들과 치열하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기도 하고 그들을 통해 힐링을 받기도 하며 미술 교사로서 1학기를 보냈다. 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열정이라고 믿고 있다. 오랜 병마와 싸우며 크고 작은 수술 속에서 인간의 열정이야말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이란 것을 알았고 삶의 열정을 찾아 오늘도 그들의 잠재적 열정에 불쏘시개가 되길 원한다.
필자는 스스로 실기력이 우수한 교사라고 자부하는 편이다. 소담중학교 발령 전 경북 예술고와 포항 예술고 서양화 3학년 실기 전담 강사를 12년간 지냈으며 대구 교육대의 겸임 교수로도 10년간 활동하였다. 임용생들을 직접 지도하던 스승이었으며 병마가 깊어지기 전에는 그래도 잘나가던 학원장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내가 14살 어린 비전공자들을 가르치려니 모든 것이 모호하고 정말 난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업 중 딴청 피우는 학생, 대 놓고 타 과목을 펼쳐 공부하는 학생, 떠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는 학생, 중요 과목만 중시하는 학부모님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필자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규 교사로서, 신규 학교에 배치되어 많은 업무와 생전 처음 접해 보는 많은 행정업무는 내겐 참 힘든 일이었다.
‘역사야 놀자’ 수업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나는 무엇보다 미술에 관심도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 남은 열정이 식어 버릴까 두려웠다. 그들을 나의 열정 속에 끌어 들이고 또 그들의 열정을 깨우고 싶었다. 내게는 주변 과목으로서의 미술이 아닌 당당한 커리큘럼으로서의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수업이 필요했다.
처음 접해보는 어린 제자들을 실험삼아 조심스럽게 접근하였다. 늘 조마조마한 나의 체력을 다독이며 나의 장점과 학생들의 지식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창조적인 수업을 개발해야 했다. 그래서 만들게 된 여러 수업 중 하나가 바로 역사 수업과 융합할 수 있는 ‘ 역사야 놀자’ 이다.
나는 발령 대기 중이던 작년 겨울, 대구 달성군에서 제작하는 미니 역사책의 삽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비싼 원고료도 고마웠지만 무엇보다도 역사책의 한 부분을 맡을 수 있는 것은 명예롭고 흥미로웠다. 흥미도가 높으니 당연히 작업도 흥이 났고 빠른 속도로 진행시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임진왜란 당시 항외 인물 김충선(일본 이름 ‘사야가’)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을 준비하였다.
‘역사야 놀자’ 수업의 진행 과정
수업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려 보고 싶은 역사 인물이나 전쟁터, 혹은 문화재 등을 사전 조사 해 오게 하였다. 준비한 PPT를 보여주고 흥미를 유발시켰다.
몇 번의 당부와 사전 설명에도 역사적 식견이 미비한 학생들은 관심도 없었고 수행평가에 반영된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끄떡하지 않는 학생들이 다수 있었다. 그 대부분은 역사공부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식견은 있지만 표현력이 부족한 학생들도 간간이 그 부류에 속했다.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둘째, 준비해 온 역사 관련 자료를 소재로 하여 자유롭게 표현하게 하였다.
사전 조사한 역사관을 토대로 자신이 준비한 인물, 혹은 유물, 또는 전쟁무기 등을 자유롭게 그리게 하였다. 단 표현력 부재에서 오는 부분은 교사가 칠판에 직접 설명하고 그려가며 유도하였다.
인물이 유명하지 않거나 위인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해 준다. 또 같은 인물들을 중첩 하는 학생들이 많으니 분산시키거나 같은 설정을 다른 시각으로 표현해 볼 것을 권장한다. 많은 학생들이 유관순, 세종대왕, 이순신 등에게 몰리는 현상이 있었다.
표현법에 있어서는 비교적 단순하고 재미있게 유도하였다. 쓰기 쉬운 재료와 발색 효과가 높은 채색 도구들을 이용하여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점은 표현력이 다소 부족한 학생들도 흥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자신이 제작한 인물 작품을 발표하게 하였다.
학생들은 교사가 채점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좀 더 적극성을 보인다. 발표 순간 교사는 칭찬과 함께 채점하는 자세를 취해야 다음 학생이 더 적극성을 보인다.
직접 자신이 그린 인물을 발표하게 하고 나머지 학생들과 논쟁을 하게 한다.
논쟁은 지극히 흥미로워야 하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가정, 또는 설정을 해 놓고 토의하게 한다.
위의 사진 속의 두 여학생은 역사적 라이벌 김구 와 이승만을 주제로 서로 다른 입장을 얘기하고 있다. 또 경청하는 학생들을 토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역사적 현장에 놓인 현실과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 교사로서 그 순간의 보람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또 학생들은 기말 시험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수업에 대한 적극성은 한층 더했다.
발표 수업에서는 교사가 든든하게 뒤를 지켜주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교사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실기 표현력 또한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넷째, 시대별로 분류하여 장식한다.
발표가 끝난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시대별 순서에 맞게 오려서 붙인다. 여백을 자르거나 오려서 붙이는 이유는 여백이 없으면 여러 그림들을 같이 배치하기 좋고, 서툰 표현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많이 볼 수 있고 암기 효과가 높은 곳에 장식하면 더욱 좋다. 장소가 여의치 않을 때는 미술실을 이용한다.
아래의 예를 통해 미술실 뒷벽을 이용한 부분과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의 식당 유리면을 사용한 부분을 비교해 보자.
많은 학생들이 오가는 곳을 활용함으로써 역사 교육에 활용할 수 있고 자신의 그림 전시 효과로 학생 스스로의 성취감을 높일 수 있다.
수업의 효과
수업의 타이틀을 ‘역사야 놀자’라고 붙인 것은 딱딱한 수업의 현장에 유연성을 가지고 자유로운 학습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이 수업은 기본적으로 미술 표현력 향상 외에 몇 가지 유익한 지식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첫째, 수업 준비 과정과 표현, 발표, 전시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감상자나 발표자들 모두 반복적인 지식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단순한 암기 효과가 아닌 듣기, 말하기, 그리기, 토의하기 등을 통해 반복적인 학습 효과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둘째, 토의를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높이고 애국심을 기를 수 있다.
셋째, 발표와 전시를 통해 참여 의식을 높일 수 있다.
넷째, 타 과목과의 연계를 통해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을 이용해 2학기 때는 역사야 놀자2 ~세계 역사 편을 준비하고 있다.
‘역사야 놀자’를 마치며
통일한국 면적 크기의 작은 섬나라 영국은 세계를 호령하고 지배하던 국가였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웠으며, 지구의 많은 나라들이 그들의 언어를 쓰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 noblesse oblige : 사회 고위층의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를 가장 앞장 세워 실현했던 국가로서 전 국민의 애국심이 투철하여 오늘날도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은 스스로 작은 나라 즉, 약소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은 나라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그보다 더 작은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부를 축적했던 힘은 많은 위인들의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다.
대한민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뚜렷한 역사관과 조국에 대한 애국심은 강한 나라를 만들고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게 한다. 많은 위인들이 나오고 뚜렷한 역사관을 가진 어린 학생들이 무럭무럭 성장할 때 우리는 더욱 큰 나라가 될 것이다.
‘역사야 놀자’의 미술 수업이 이러한 큰 나라를 만드는 데 조그마한 힘이 되기를 바란다.
세종시 소담 중학교 미술교사 남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