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 다른 종교, 다른 신앙, 어떻게 살까요?
21세기는 다양한 신념과 서로 다른 가치관들이 한 사회 집단에 공존하는 다원주의 시대라고 불린다. 과거 동일한 가치체계와 사회적 위계질서로 획일화된 가부장적 사회구조는 사라지고, 사회와 가족 구성원 각자의 고유한 선택과 가치관이 상호 인정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무조건”, “절대적”, “전통적 관습”보다는 “상황과 맥락”, “개성과 창의성”, “대화와 상호인정”이 시대정신으로 군림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사회적 갈등은 대개 시대의 표징을 읽지 못하고 우위다툼을 위한 경쟁과 독단에 머물면서, 서로 대화하고 함께 사는 능력의 결핍에서 나온다.
다원주의는 종교적 신념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종교적 선택의 폭이 넓은 한국의 가정들은 가족 구성원이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갖고 사는 것을 과거보다는 훨씬 관대하게 여기게 되었다. 개인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부부가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지거나, 자녀들이 부모와는 다른 신앙을 선택하고, 결혼 후 시부모와 다른 종교를 갖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남편을 집에 놔두고 주일미사와 봉사활동을 하기에 눈치가 보이는 외짝교우 신자의 어려움이나, 시부모가 불교 신자라 사찰을 함께 방문하면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해야 하는지, 기일에 천도재를 함께 바쳐도 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행여 무당에게 점을 치고 받아온 시부모의 부적을 집안에 둬야하는 어려움을 겪는 천주교 신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성당에서는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내 가정의 성화와 복음화가 먼저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지 못하는 자괴감을 갖는 신자들도 있다. 주일의 의무를 지키기에는 너무 시부모님의 눈치가 보이고, 행여 개신교 신앙을 가진 배우자나 자녀, 시부모를 만나면 가톨릭 신자로서 성호를 긋는 일이 어색하고, 가톨릭에 대한 비판을 고스란히 들어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한 가족 안에 서로 다른 종교와 신앙은 과연 평화롭게 공존할 수는 없을까? 솔직히 종교적 신념은 다른 삶의 가치관과는 달리 사람이 살고 죽는 문제와 관련된 절대적 신념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가 다른 종교적 신념과 상충될 때 적지 않은 갈등을 유발한다. 과거 가톨릭 교회도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독선적인 주장으로 이웃종교들을 백안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교회를 제도 교회의 틀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부르신 인류 전체를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로 이해하기 때문에 교회는 더 이상 배타적인 선교가 아닌 전 인류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른바 포용주의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로부터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가톨릭적 신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가 이웃 종교들인들과 대화하고 그들과 사회적 공동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들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렇다면 가정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가톨릭 신자라면 내 가족의 다른 종교적 신념 안에서도 하느님의 손길과 그분께서 마련해주신 옳고 성스러운 진리의 요소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성령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통해 당신의 흔적을 남겨 놓으셨고, 우리의 편견과 오해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하느님의 흔적을 다른 종교들 안에서 발견하는 지혜를 갖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자인 시부모와 사찰에 가면 공손하게 부처님 상 앞에서 인사를 드리고, 이웃 종교를 탐방하게 될 경우에 그 곳의 법도와 예의를 갖추어주는 것이 좋다. 만일 누군가가 성당에 와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될 경우를 상상해본다면 쉽게 이해가 간다. 경우에 따라 부처님께 절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생의 신비를 찾고 구도의 삶을 보여준 인류의 스승인 부처에 대한 경의와 공경의 표현이어야지, 나의 종교적 신념을 훼손하거나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여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자신의 신앙에 대한 지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행여 그런 행위가 자신의 신앙에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피하는 것이 옳다.
외짝교우라면 신앙의 의무를 가정 성화로부터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부부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갈등은 배우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신앙인의 작은 말투, 행동하나의 변화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오랜 인내 속에 굳건히 지켜낸 신앙은 가정 안의 작은 순교행위이고, 훗날 배우자를 변화시키고 선교하는 중요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시부모가 열심한 불자라면 사찰에서의 기본적인 법도를 배우고, 불교적인 신념과 가톨릭 신앙과의 다름을 공부해보는 것도 좋겠다. 성숙한 신앙은 다른 종교적 신념을 통해서 변질되거나 혼합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를 더 넓게 체험하고 확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한 가톨릭의 교리적 지식 없이 불교나 다른 종교의 교리에 심취하거나, 수양법을 따르는 것은 자칫 가톨릭적 신념을 훼손시키거나, 신앙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성직자로부터 적절한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
배타성과 독선은 더 이상 우리 시대의 언어가 아니다. 가정에서 겪는 종교적 신념의 갈등은 단순히 교리적인 지식의 결핍이 아닌, 신앙을 살아가는 능력이 부족한 우리들의 오해와 편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나의 신앙에 대한 확신이 깊을수록 더 겸손하게 신앙을 삶으로 증거하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성령의 손길을 다른 종교인들의 삶과 신앙 안에서 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시대 한 가정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은 아마도 신앙을 증거해야 할 하느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정은 다름을 아름답게 사랑하는 능력을 배우는 신앙의 훈련소인 셈이다.

첫댓글 제가지금,,할수있는 순교행위,,,,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나아가 배우고자 하는 자세...
다름을 아름답게 사랑하는...
참!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같아요.
이런 자세는 인간관계 안에서, 신앙공동체안에서도 갖추어야 할
덕목인것 같습니다.
역시~ 청량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좋은글 잘 읽고 제 카페로 모셔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