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
고영옥
시린 바람만 휘이 휘이 오가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일대에 있는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도 수군을 지휘하던 절도사가 머물던 충청수영을 두르고 있는 1,650m의 장대한 석성(石城)이다. 설치목적은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함이었다. 선조들의 얼이 바람이 되어 일깨워 주려는가.
4대 성문 중 남아있는 서문 망화문으로 들어섰다. 이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Arch)형으로 만들었는데 당시의 석조예술의 진면목을 보는 느낌이다. 만세를 부르는 저분은 뉘신가.
조금 오르니 진휼청이다. 이곳은 흉년이 들면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구제를 담당했던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당한다 했건만 하는데 까지 해야할 일이다.
빈민들이 봉당으로 가득 이네~~~
수사의 집무실이었던 공해관의 출입문 역할을 하던 내삼문이다. 지금은 객사 건물과 함께 오천 초등학교 자리로 옮겨져 있다.
조선시대 서해 해군사령부였던 충청수영성 영보정이 137년 만에 복원된 모습이다. 이곳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다고 한다. 시야를 멀리하니 바다가 하늘인지 하늘이 바다인지 하냥 가물거린다. 좀 더 머무르고 싶지만, 일행의 꽁무니가 저만큼 앞서간다. 늦었지만 한컽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오천항은 숨을 죽인 듯 고요하기만 하다. 저 선명한 바닷물 색, 장난감 같은 배들, 하늘의 구름은 어찌 저리도 곱던가. 한 폭의 그림이다. 한데 난 왜 자꾸 저 수많은 어선이 군선으로 보이는 것일까. 수없이 침입해오는 왜구를 막기 위해 밤낮없이 수고하던 수군들의 벙거지도 어른거린다. 이 성벽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개미떼 같이 기어오르는 왜구를 밟아 버리기라도 하는 양, 세게 발을 굴러본다. 야금야금 침략하여 들어오다가 급기야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통째로 삼켜버린 일본이다. 왜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충청수영성을 그대로 두고 보겠는가. 고종 33년인 1896년 폐영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수난을 겪었을까. 두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해방둥이인 내 촉에 해님 달님이 된 오누이란 전래동화가 오바랩된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랑이는 음흉스런 웃음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산 고개에서 어머니를 막아서는 호랑이에게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줄 떡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살아서 돌아가야 했으니까, 한번, 두 번, 세 번…. 결국 떡이 다 떨어져 버리자 호랑이는 어머니의 팔 하나를 요구한다. 그렇게 팔다리를 모두 빼앗기고 몸뚱이만 남은 어머니에게 호랑이는 이렇게 말한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떡도, 팔도, 다리도 이미 없는 것을 알면서도 능청을 떤다.
"이런, 떡도 없고 팔다리도 없네. 어쩌지. 잡아먹을 수밖에…. 흐흐흐"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끝에 처참하게 잡아먹히고 만다. 어머니를 먹고 난 호랑이는 더 욕심이 생겼다. 집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군침을 흘린다.
호랑이에게 잡힐 수밖에 없는 위기 순간에 아이들은 하늘을 향하여 기도한다. 그러자 동아줄이 내려와 하늘을 오른 아이들은 해님달님이 되었다.
나라를 통째로 삼킨 일본은 민족의 정신이자 희망인 아이들마저 잡아먹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그때 하늘이 동아줄을 내려주지 않았다면 나도 해방둥이가 될 수 없었겠지. 떡도, 팔도, 다리도 없는 약자의 몸부림이 하늘을 감동하게 했으리라.
음흉한 호랑이는 썩은 줄을 타고 오르다가 수수밭으로 떨어져 죽었지만, 남은 녀석들이 지금도 이빨을 드러내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며
독도를 노리고 이 땅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