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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원사 코스를 택했을까
신문과 담을 쌓은지는 워낙 오래되어 그것들의 존재가 내게 의미 없지만 TV는 시청
각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거부되지 않는 괴물이다.
그러나 집을 떠나면 전원을 켜고 끄고, 채널 돌리는 일로 아내와 실랑이하지 않아도
되고, TV 공해에서 벗어나면 눈도 귀도 모처럼 편히 쉴 수 있어 참 좋다.
어차피 나쁜 세상, 더 나뻐질 것 없으므로 궁금하지도 않아 마음도 편하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다 여유작작하며 등을 대고 누울 수만 있으면 거기가 안식처다.
잠이 깬 새벽의 이 상념이 40년도 더 지난 어느 겨울, 눈 덮힌 소백산을 불러왔다.
한 영리산악회의 소백산 코스에 동참해 밤 늦게 서울을 떠났다.
소백산을 잘 아는 나는 눈 많고 칼바람 산의 새벽 산행 때 한쪽 팔에 장애가 있는 한
중년에게 도움되어 주리라 다짐두었는데 희방사 입구 숙소에서 그 다짐을 철회했다.
침대 아니면 잠 자지 못하는데 맨바닥이라며 그의 불평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데 한 밤을 참지 못한다면 고생이 더 필요한 사람이니까.
실은 어떤 일로 모두 떠난 후에 나홀로 출발했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도 없었지만.
집의 개념이 지극히 단순한 내가 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옹졸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오는 새벽, 이 날 만은 늦게 일어나고 싶었다.
케이블카 체질이 아니라 해도 문 하나를 두고 향토사료관과 마주하고 있으며 독도
박물관이 지척에 있으나 새벽같이 하산하기 때문에 등하불명이며 그림의 떡이다.
오늘 일정은 성인봉 등산이므로 여유롭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지만 엘리베이터문
열리는데 태연히 누워있을 수 있는가.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단골식당에 깔판을 반납하고 이르지만 아침식사도 했다.
담소 중에 성명을 확인할 기회도 생겼다.
사연이 있기에 뭍에서 섬식당 종업원으로 오게 되었겠지만 음식솜씨가 아주 깔끔한
그녀는 박춘화.
내가 아는 감리교 목사(지금은 은퇴)와 동명이라 잊혀지지 않을 이름이다.
건망증 또는 치매로 박목사의 이름을 잊어버린다면?
성인봉 등산을 위해 필요한 것만 챙겨 색(sack)에 넣고 큰 배낭은 식당에 맡겼다.
해발 984m 성인봉의 주 들머리는 대개 4곳으로 잡는단다.
도동의 대원사와 KBS중계소, 사동의 안평전, 북면 나리분지 등.
이틀간의 일주에서 들.날머리를 대략 확인했는데 식당에서 들은 조언은 도동에서는
KBS중계소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는 것.
그 조언을 받아들일 요량을 하고 식당을 나왔다.
해안 일주 첫날 처럼 90번도로를 따라 울릉터널 앞까지 가면 된다.
느지막하게 길에 나선 때문인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적지 않은 사람이 인사해왔다.
요 2일 반 동안에 울릉도에 머물며 관광길에 나선 사람은 대부분이 나를 보았다.
각종 차편을 이용한 그들은 달리는 차 안에서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보았거나 관광지
에서 마주친 사람들이다.
특히 어제 나쁜 기상으로 발이 묶여 낙담 중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제는 종일 기상이 나뻐서 배가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했다.
울릉도숙박업소들은 새 손님을 받지 못해도 뭍으로 나가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있기
때문에 큰 손실은 없겠다.
그러나 여정이 끝났는데도 뭍으로 나가지 못하는 관광객들과 새 손님을 받지 못하는
관광 현장은 낙심이 여간 아닐 것이다.
울릉도를 대표하는 새 건물 KT와 90번도로변의 보건의료원을 지나면 대원교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원교와 무릉교, 울릉대교가 8자 같다 하여 '88다리' 라 부르며
울릉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중 하나라는 다리.
한데, 이 대원교 앞에서 직진하지 않고 방향을 왜 대원사로 틀었을까.
크게 보면 모두 성인봉의 품 안에 있지만 삼각형(型)이라 삼각산이라고도 부른다는
관모봉(冠冒峰/도동)에 자리한 대원사는 조선 말기의 사찰로 불국사의 말사다.
비구니 박덕념(朴德念)이 서울삼각산에서 관음기도를 하다 관세음보살을 현몽한 후
미지의 울릉섬에 입도해 움막에서 예불을 시작한 울릉도 최초의 근대 비구니 도량.
섬의 토착무속신앙과의 타협이 불가피했기 때문인가 성황당신을 모신 신당이 있는
사찰이다.
이 정도로 대원사(大願寺)를 살펴보고 나오려 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돌연 대원사 코스를 택한 까닭은?
어쩜, 최고의 난코스라는 이유로 울릉도민이 기피하기 때문에 굳이 그 길을 걸으려
한 엇나가는 늙은이라고 하면 납득되겠는가.
성인봉은 고산 반열에 들어 마땅하다
5월 9일 08시 20분쯤, 대원사를 떠났다.
초입부터 지그재그 급경사 시멘트도로가 기를 죽이려 하는가.
오르기 보다 내려오기가 더 어렵겠다.
오를 때가 힘은 들어도 사고의 위험과 대미지(damage)는 내려올 때 더 많으니까.
가파른 고지대에 거주해도 너나없이 차를 이용하고 걷는 일이 없으니 불편을 느끼지
않겠지만 강설량이 많다는 겨울에는 어찌한다?
울릉군민 아무도 원치 않는 등산로 라는데 방치된 쓰레기는 왜 많을까.
지루한 시멘트길이 끝나면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시작된다.
동남(컴퍼스로 확인) 바다쪽만 열어놓고 3면이 산으로 감싸인 아늑한 도동마을.
이른 시간이기 때문인지 카(car)는 없고 케이블만 현(絃)처럼 늘어져 있는 망향봉을
시야에서 차단하는 원시림 같은 칙칙한 숲 길이다.
소나무와 동백과 산죽이 어울린 길 도중 산비탈에 웬 집?
산 속에서 산나물을 파는 집?
많지는 않으나 나뭇가지에 울긋불긋 리본들이 매달려 있다.
이 길을 찾는 사람이 더러 있다는 증언에 다름 아니다.
나 처럼 괴팍한(?) 사람일까 정보가 부족했거나 길을 잘못 든 뭍에서 온 등산객일까.
대간, 정맥에서는 개인 이름도 적지 않은데 하나같이 산악회 이름인 것으로 보아 멋
모르고 따라왔다가 물먹은 사람들도 있겠다.
왜 자라지 못했는지 땅딸이 동백나무 하나가 나홀로 늙은이를 위해 꽃을 피웠나.
길가에 앉아서 빠알간 미소로 반기고 있는 그를 디카에 담는 것으로 답했다.
도동에서 1km지점에 나무식탁과 벤치 등이 있는 휴식소가 마련되어 있다.
고도를 높여가고 비상구급함과 119비상연락 위치 표지도 늘어가고 고산에 오르는
느낌이 조성되어 가는데 하늘만 일부 열어줄 뿐 사방이 막혀 답답함도 느끼게 한다.
해발1천m 미만이라면 내륙에서는 고산 대접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해안 또는 제주도를 제외한 도서에서는 다르다.
해발1.915m 지리산이 높기는 하나 1.300m성삼재를 들머리로 하면 정상(천왕봉)의
실높이는 600m남짓 될 뿐이다.
그러므로 해발100m미만, 거의 해수면에서 오르는 성인봉이 지리산 보다 훨씬 높고
(300여m) 등산거리가 짧기 때문에 가파르다.
등산은 직삼각형의 빗변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동일높이일 때 등산거리가 짧을수록
경사가 심한데(가파른데) 성인봉 등산에서 대원사코스가 이에 해당하니까.
남반도의 최고봉 1.950m한라산도 750m 성판악을 들머리로 하면 실높이는 1.200m
밖에 되지 않으므로 우리나라에서 성인봉은 고산 반열에 들어 마땅하다.
KBS중계소코스와 합치는 지점, 성인봉2.6km 전방 삼거리에 이르는 위치에는 봉래
폭포 화살표지도 있다.
아마 사다리골로 가는 길일 것이다.
내가 만만디로 걷고 있으므로 나를 추월하는 힘 쫗은 젊은이가 있을 법 한데 삼거리
도착 때까지 하산자는 만났으나 오르기는 나홀로였다.
역시, 기피하는 코스라는 뜻일 게다.
삼거리에서 비로소 젊은 등산객들과 산나물채취자들을 만났으며 저쪽(KBS중계소)
코스를 타고 오르는 이들은 심심찮게 이어졌다.
붐빈다는 정보와 달리 매우 한가로운 것은 어제 배가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이 곳에서 만난 한 성인봉마니아의 말이며 그도 80늙은이를 괴이쩍게 보는 듯 했다.
범상치 않은 어르신이라고 추켜세웠지만 괴짜 같다는 뉘앙스를 풍겼으니까.
잠시 중년인 그와 함께 오르다가 그를 앞에 보냈다.
부러 늙은이에게 보조를 맞추려 하는 그가 호의를 접고 먼저 가게 하는 것이 산에서
터득한 내 에티켓(etiquette)이니까.
구름다리 직전의 긴 목교에서 모처럼 좁게나마 북서쪽이 열린다.
말의 잔등 같다는 말잔등(정상은968m간두산)과 공군 군사시설(?)이 눈에 잡히고.
목교가 설치된 골짜기가 사다리골(谷)이라는데 왜 하나같이 사다리꼴이라 할까.
경상도 발음이 그렇다 해도 표기는 제대로 하건만.
겨울에 눈이 많은 섬이며 성인봉의 적설량이 과연 대단한가 초여름이 다가오는 5월
9일인데 고도를 높일 수록 응달에는 눈이 제법 남아있다.
조난사고 위험 경고판이 서있는 것으로 보아 경사가 심한 이 지역이 위험구간인 듯.
얼마쯤 오르면 성인봉 1.3km 전방에 멋진 휴식소 팔각정이 대기하고 있다.
내 낡은 고도계 바늘이 800m에 다가가고 있다.(정확하지 않다)
우리나라 산 안내표지판의 고도와 등산거리 표기가 하나같이 제멋대로인데 성인봉
인들 예외가 되겠는가.
해발986.7m와 983.6m, 각기 반올림해서 987m와 984m, 등산거리4.1km와 4.3km...
고도를 높여가는 성인봉길은 동북사면의 산만한 길을 오른다.
곧, 벤치들 역시 산만하게 박혀있는 너른 지대에 당도하는데 여기가 안평전코스와
합류하는 해발900m(내 고도계) 바람등대 지역?
성인봉 바람의 통로라는데 바람등대를 비롯해 작은등대, 큰등대 등 등대의 뜻은?
대원사와 KBS중계소가 뭉치고 다시 안평전과 합쳐 3길이 하나되는 바람고개.
성인봉900m 푯말 이후는 잃어버릴 염려 없는 길 안내하겠다는가.
정상 한하고 푯말들이 마치 중계 플레이 하듯 촘촘히 서있다.
정상부에 목탁자를 비롯해 쉴곳들을 마련한 것은 평가받을만 하지만 편편한 지대에
설치된 방부목 데크 계단들은 아무래도 남설(濫設) 같다.
왜 성인산이 아니고 성인봉일까
울릉읍과 서면, 북면의 삼각점에 정점을 찍은 성인봉!
11시 10분, 정상 표석 앞에 섰다.
많이 쉬고 만만디로 걸었는데도 2시간 50분이 걸렸다면 평균치에 거뜬히 안착한 것
이며 팔십 늙은이로는 뽐낼 만한 기록이다.
그러나, 돌무더기로 두른 자연석의 '聖人峯(성인봉)' 세 글자 처럼 거룩하거나 신령
스러운 이미지는 갖지 못한 산봉이라는 것이 첫 인상이다.
백두산과 한라산 처럼 거대한 분화구가 연출하는 신비감 또는 거느린 고봉 준령이
즐비한 지리산 같은 장쾌함은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지만.
전망도 한라산 백록담 처럼 독보적이지 못하다.
간두산 전경이 정상보다 9.8부쯤의 위치에서 더 확보되고 울릉도의 진산이라 하나
막히는 데가 더러 있는 것은 절대적 우위(높이)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북동쪽에 비슷한 높이의 간두산이 버티고 있어 다행이다.
외롭지 않으며 위엄에 힘을 실어주니까.
한데, "산의 모양이 성(聖)스럽다 하여 성인봉이라 부른다"는데 내력이 있단다.
비가 많은 울릉도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산 정상을 파보라는 한 점괘대로 산꼭대기를 팠을 때 묻힌지 오래되지 않은 시신이
나왔으며 이 시신을 꺼낸 후 곧 흡족한 비가 내렸다.
이후, 울릉도에 변고가 생길 때마다 그곳을 파보면 시체가 나왔다.
성스러운 산이라 꼭대기에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이 번창한다고 믿기 때문에 몰래
묘를 썼다는 것.
또한 실종되었다 찾은 나물소녀의 꿈에 나타난 노인을 성인화,"성인이 사는 산"이라
해서 성인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지만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간두산 보다 높은 최고봉인데 왜 성인산이라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할까.
백두대간 '소백산국립공원'역내에는 해발1.314m도솔봉이 있다.
대간을 북상하고 남하할 때마다 아쉬움을 가졌던 산이다.
산세로 보면 소백산과 무관해서 독립된 도솔산으로 격상해 마땅하나 국립공원 지역
이기 때문에 소위 피를 보고 있다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아쉬워 하는 산이다.
'산(山)'과 '봉(峰/峯)'은 이처럼 미묘한 차가 있건만.
정상에 도착했을 때 뒤따라온 중년 한쌍의 인사를 받았다.
낯선 그들의 인사가 산에서 나누는 통상적 의례려니 했는데 뒷말이 따랐다.
내 단골식당 Mrs(?) 박의 친구인데, 식당에서 친구로부터 나를 소개받았단다.
혼자 올라가신 어르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는데 뵙게 되어 반갑다는 그들은
경주의 집으로 가기 위해 오후 배를 타야 한다며 바로 하산했다.
밤에 식당에서 들었는데 그들이 많은 걱정을 하며 갔단다.
낮에 성인봉에 헬기가 떴기 때문인데 노인이 홀로 하산하다가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고 전화로 확인해 보라고 신신당부하며 갔다는것.
낙동정맥종주 때 폭설 속에서 도와준 산내면 메아리농장의 김재선이 있고 서남동길
걸을 때도 양북온천의 김민수가 그랬는데 경주에 고마운 부부가 또 있다니.
돌이켜 보면 고도(古都) 경주와의 인연도 이처럼 굵은 동아줄 같다.
천연원시림 성인봉을 망가가뜨린 데크 계단
대부분의 경우 그래온 것처럼 하산 코스를 정하고 떠나지는 않았다.
나리분지 코스는 정상에 도착해 내 남은 체력, 시간 등과 타협해 정한 것이니까.
선택은 잘 했으나 정신건강에는 손해를 봤다.
화를 내고 원망도 하며 내려왔으니까.
"자연훼손 방지를 위하여 데크 계단형태로 등산로가 되어 있으니 산행에 참고하라"
는 길고 긴 계단들은 하나도 성한 곳이 없다.
형편 없기가 내 생전 처음 보는 날림공사다.
시공이 날림일 뿐 아니라 설계도 엉터리다.
한데도 울릉군수는 "...폭설로 인하여 목재계단 난간이 일부 파손되어...조속한 기간
내에 시설물 복구에 최선을 다할 계혹" 이니 양지해 달라는 "성인봉-성인수-신령수
2.500m구간" 에 대한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얼마나 심한 폭설이었기에 폭설도 이겨내지 못할 정도의 날림공사를 했단 말인가.
해변의 백사장에 말뚝을 꽂고 거기에 계단을 만든 것과 다름 없는 공사를 했다.
성한 데가 단 한곳도 없는데도, 모조리 철거하고 다시 시공해야 하는데도 일부 파손
운운하는 군수에게도 양심은 있을까.
민주주의의 강점은 이런 공복은 선거를 통해 단호히 퇴출할 뿐 아니라 응징하는 것
인데 저번 지방선거에서 어찌 되었을까.
우리의 지자체들의 행태가 오죽 염려되면 지자체 무용론을 고민하게 될까.
요 며칠 헤집고 다니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팽목항의 비통과 분노를 잠시나마 잊고 나라도 아닌 나라의 국민이라는 비애에서도
벗어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인 듯 해서.
그러나 내게 울릉도의 양지는 끝나고 구더기가 들끓는 음습한 곳만 남았는가.
철거비용, 재설치비용, 떡고물, 모두 국민의 혈세 아닌가.
새어 나가 시내를 이루고 있는 국민의 피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치려 했다.
도전적이던 흥미를 잃은 것 같다.
믿을 수 없게 된 계단 손잡이를 대신해 얽어 놓은 밧줄들, 무심코 붙들었다가는 사고
나기 십상인 뿌리 뽑힌 계단지주들이 화를 부채질 했다.
오를 때와 달리 북사면이기 때문인지 골짜기는 마치 눈썰매장처럼 눈이 쌓인채다.
성인정(井) 우물도 관심 없고 데크 휴게소나 전망대도 마음을 쉬게 하지 못했다.
위험 경고판이 붙어있는 습윤지역을 내려서면 나리분지로 가는 계곡길이고 곧 천연
기념물제189호로 지정된 성인봉원시림 표석이 있다.
정상 부근을 중심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너도밤나무,섬조릿대,솔송나무,섬단풍나무
등이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나무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문화재청의 지정 이유다.
이 밖에도 이 섬에서만 자생하는 나무와 풀 등 희귀식물들이 많이 분포하여 천연기
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는 것.
사전에 의하면 원시림(原始林)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중대한 피해를 입은 적이나
인간의 간섭을 받은 적이 없고 자연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숲"을 말한다.
"성인봉의 원시림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주민의 수가 적고 사람들의 접근이
거의 없어서였는데 최근 울릉도가 관광지화되면서 관광객이 찾아오고 도로가 발달
하여 훼손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훼손을 걱정하고 있다.
신령수 샘에서 물 한모금 마셨다.
흔한 전설 하나 없으나 시원한 물맛이 괜찮아 500ml 패트병의 물을 바꿨다.
보지 않으면 멀어지는가.
망가진 계단들로부터 멀어지니까 생각도 멀어지고 화도 진정되고.
울릉도 걷기 제1호 아쉬움이 학포~태하 옛길을 놓친 것인데, 간두산의 군사시설에
겁먹고 성인봉~간두산~나리령~나리분지 코스를 포기한 것이 제2호 아쉬움이다.
그 코스를 택했더라면 망가진 계단들을 보지 않았을 것이며 화도 나지 않았을 텐데.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