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중에서 가장 으뜸은 위스키라 할 수 있고, 빨리 취하는 동시에 또 쉽게 깬다. 한 두잔 정도는 안주 없이도 마실 수 있으며, 브랜디(꼬냑)가 여성적인 술이라면, 위스키는 강렬한 남성적인 술이다. 위스키는 더운 지방에서는 무더위를 이겨내는 청량제 구실을 하고, 반대로 추운 지방에서는 마시면 열량을 보태어 추위를 덜하게 하는 술이다. 위스키는 맥아와 보리와 밀, 옥수수 등 곡류를 원료로 해서 발효시켜 증류한 술로서 기본적인 제조법은 원료를 당화시켜서 효모를 섞어서 발효시켜 몇 차례 증류를 반복하여 오크통 속에 채워서 3년이상 숙성시킨 술이다.
위스키의 역사
오늘날 위스키의 원형은 12세기에 만들어 졌는데, 그 제조법은 두가지 역사적 사건에 의하여 우연한 기회에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전파되고, 제조되었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카톨릭의 수사들은 중동의 연금술사로부터 증류주의 비법을 전수받고 돌아왔다.아랍의 연금술사들로부터 기독교의 카톨릭의 수사들에게로 전수된 알코올 증류비법은 순식간에 유럽각지로 퍼져 나갔고, 서로 앞 다투어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증류를 해서 이 신비의 묘약이자 무병장수의 약을 최고의 요매체 혹은 염색한 약초의 방부제로 사용했다. 이후 이들에 의해서 증류주가 탄생하였는데 오늘날의 우리가 주로 마시는 위스키, 브랜디 등 고급증류주의 시초가 된다.
위스키는 1170년 헨리 2세의 잉글랜드 정복에 의해 스코틀랜드에도 전해져 15세기에는 고지대인 하이랜드(Highland)에서 위스키가 제조되었다. 이리하여 위스키는 아일랜드의 아이리시(Irish) 위스키와 스코틀랜드의 스카치(Scotch) 위스키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위스키의 맛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또 하나의 사건은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합병으로 대영제국이 탄생한 후 정부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술에다 높은 주세를 물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증류업자들이 스코틀랜드의 산속에 숨어 밤에 몰래 증류하여 위스키를 밀제조했다. 그 바람에 이들을 '달빛치기(Moon shiner)'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들이 밀조자들은 맥아의 건조를 위해 이탄(泥炭, peat)을 사용했는데 이 건조방법이 훈연취(熏煙臭)가 있는 맥아를 사용하여 스카치 위스키를 만들게 된 시발이 되었다. 또한 증류한 술을 은폐하려고 셰리주(sherry)의 빈통에 담아 산속에 숨겨 두었는데 나중에 통을 열어 보았더니 증류 당시에는 무색이었던 술이 투명한 호박색에 짙은 향취가 풍기는 술로 변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목통(오크통) 저장의 동기가 되었다. 밀조자들이 궁여지책으로 강구한 수단들이 위스키의 주질 향상을 획기적인 기여를 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후 19세기 중반 유럽의 포도나무가 휘로키세라 기생충에 의해 전멸되었는데 그 여파로 당시 명성을 떨치는 브랜디(꼬냑)을 생산할 수 없게 되자 그 대체수요로 위스키는 전 유럽에 소비되었고, 비약적인 품질의 향상을 통한 세계적인 술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켄터키를 중심으로 아메리칸 위스키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버번(bourb on)은 세계적인 술로 성장했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캐나디안(Canadian) 위스키로 독특한 발전을 이루었다.
<한국위스키>
우리나라에서의 위스키 제조는 1970년대 월남전과 더불어 청양산업(주)이 군납을 목적으로 기타재제주 위스키를 제조했다. 그후 1974년에는 백화양조(주)와 (주)진로가 수출조건부로 외국 위스키 원주를 수입, 이를 기주(基酒, base)로 사용하여 인삼주, 즉 인삼위스키를 제조했다.
정부는 1976년 국민소득 증대로 고급주류 개발정책을 수립하고 백화양조(주), (주)진로, 오비씨그램(주), 롯데칠성음료(주), 해태산업(주)에 위스키 국산화에 필요한 시설을 갖출 것을 조건부로 하여 위스키 제조면허를 발급했다. 그러나 면허발급 회사 중에서 백화양조(주), (주)진로, 해태산업(주)만 원액을 수입하여 국산 주정과 혼합한 기타재제주 국산 위스키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 양주류 특히 위스키에 대한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국산주류 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수입 위스키 원주와 국산 주정으로 제조하던 기타재제주 위스키의 생산을 중단시키고, 위스키 제조면허를 받은 오비씨그램(주), 진로위스키(주), (주)베리나인에 몰트 위스키 원주함량 30%의 국산 위스키를 개발 시판하게 했다.
또한 1983년에는 위스키 산업의 육성, 주질의 고급화, 외화절약 등을 위해 ‘국산위스키 개발계획’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위스키 개발을 위한 첫번째 단계로 몰트 위스키 원주 제조시설을 1983년에 완비하고, 국산 몰트 위스키 제조가 시작되었다. 두번째 단계로 주질의 고급화를 목표로 1984년부터 국산 대맥을 원료로 한 그레인 위스키 제조가 개시되면서 위스키 원주 국산화가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88 서울올림픽 등 국제행사에 대비하여 수입 몰트 위스키 원주 40%와 그레인 위스키 60%로 블렌딩한 스카치 타입의 특급 위스키를 제조하도록 하여 주질의 고급화를 꾀했다
1987년부터는 국내 위스키 3사가 국산 위스키 원주와 수입 위스키를 혼용하여 ‘국산 특급위스키’를 개발 시판했다. 그러나 수년 내지 10여년의 숙성에 따른재고 증가로 인한 자금부담, 수입원주와의 가격 경쟁력 문제 등으로 국산화가 어려워 국산 위스키는 1991년부터 생산이 중단되었고 이후 국내 위스키 제조는 전량 수입원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1991년 주류의 수입이 개방되면서 세계 각국의 양주가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에 따라 국내의 위스키 회사들도 기존 위스키와 차별화 하기 위하여 임페리얼, 윈져 등 12년산 프리미엄급 위스키를 내놓아 국내 브랜드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2002년 현재 위스키는 더욱 고급화되어 21년산 스카치블루를 비롯하여 18년산 윈저, 15년산 임페리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위스키 한방울도 생산하지 않고 있다. 단지 외국에서 원액을 수입하여 브랜딩하든지 급수하여 알코올도수를 맞추어 병입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국민의 위스키 소비 패턴은 점정 고급화 되어 세계적 위스키 생산국인 영국에서도 일반인들이 마시기 힘든 슈퍼 프리미엄급이 대중을 이루고 있으니, 한편으론 씁슬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원인은 위스키의 소비처가 고급술집이거나, 혹은 선물용, 그리고 위스키 제조사들의 위스키에 의한 고급화 마케팅을 들 수 있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저장기간이 5년 이상되면 주질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꼭 고급 위스키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세계 유명 위스키>
스카치 위스키
유럽대륙과 달리 스코틀랜드에는 포도가 자라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그 대신 보리가 평원은 물론 협곡까지도 뒤덮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보리를 식용 이외로 이용할 가치를 찾다가 이 곡물을 증류시켜 생명의 물이라 불리우는 위스키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의 Scotch Whisky가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은 Scotland의 토양,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네가지가 미묘하게 조화되어 오랜 세월 계승되어 온 숙련된 기술과 함께 합쳐진 결과이다.
하일랜드의 토속주에 불과했던 스카치 위스키가 세계의 술로서 비약하게 된 계기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의 블렌드를 시도한 데서 비롯된다. 향이 풍부하기는 하지만 너무 무거운 성격의 몰트 위스키가 가볍고, 온화하며 개성이 순한 그레인 위스키와 블렌딩 됨으로써 부드러운 풍미를 지니는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가 완성되었다.
스카치 위스키의 종류는 2,300여종으로 위스키의 60%의 생산량을 가지고 있다. 몰트 위스키(malt), 그레인 위스키(grain) 그리고 양자를 배합한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가 있는데,우리가 대부분 마시는 위스키가 블랜디드 위스키로 스카치 위스키의 약 97%를 차지한다. 위스키의 맛은 숙성연도 뿐만 아니라 몰트와 그레인의 혼합기술에 따라 좌우된다.
더 글렌리벳(The glenlivet)
스카치 위스키의 본 고장인 하일랜드 지방의 리벳강유역에 있는 증류소 중의 하나로 리벳강의 이름을 따서 글렌리벳이 되었다.글렌리벳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1800년대 초 영국정부는 밀조를 양성화 하려 하였고, 이를 아무도 믿지 못하여서나, 용감한 조지 스미스가 최초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합법적이라 공장의 설비를 마음대로 개량할 수 있어 품질이 최상급인 위스키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조지 스미스는 수년간 밀조자들에게 위협을 받았는데 이에 대응하여 항상 쌍권총을 지니고 다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더 글렌리벳은 풍부한 향과 감칠 맛 나는 맛의 최고급 싱글 몰트 위스키로서 전세계 애주가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글렌리벳사 제품중 유명한 것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로열살루트가 있는데 이것은 1931년 글렌리벳사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5세때 21년 후에 있을 그녀의 대관식을 위하여 특별히 준비한 위스키로, 국왕의 공식행사때 21발의 축포를 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어 21년간 오크통에 숙성하여 제조한 최고급 위스키로 로열살루트(왕의 예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니워커(Johnnie Walker)
스코틀랜드의 아이워셔 지방의 존 워커가 잉글랜드인들에게 자체 브렌딩한 위스키를 도매하는 사업을 사작하였는데, 그의 뛰어난 상술과 맛으로 런던의 위스키 시장에서 명성을 날렸다. 조니워커의 상표에는 지팡이를 들고 걸어가는 영국신사의 심블마크가 있고, "1820년에 태어났지만, 아직도 건재하다"라는 문구가 있다.
조니워커는 스탠더드급의 레드라벨, 프리미엄급의 블랙라벨, 그리고 슈퍼 프리미엄급의 블루라벨이 시리즈 상품으로 출시되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조니워커는 위낙 인기가 좋아 한국사람을 겨낭한 골드라벨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블랙앤화이트(Black & White)
1897년 제임스 부케넌이 런던에 브랭딩업체로 위스키 판매점을 내면서 시작되었는데, 성공비결은 한꺼번에 많은 양의 위스키를 사들인 다음 자기가 직접 브렌딩을 해서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위스키를 제조한 것이다.
제임스 부케넌이 길렀던 애완견인 희고, 검은 한쌍의 하일랜드 테리어를 마스코트로 삼아서 상표명을 블랙앤 화이트로 정하였는데 부드럽고 순한 맛으로 애주가가 많은 위스키다.
시버스리걸(chivas regal)
시바스 리걸은 세계의 최고급 위스키 시장에서 최대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위스키로서 1801년에 자체 브랜딩 업체로 창립된 시바스 브러더스사가 내놓은 제품이다. 시버스리걸은 비운의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최후의 만찬에 있었던 술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고, 중후한 향기와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위스키이다.
글렌피딕(Glenfiddich)
윌리엄 그랜트 & 산즈 사에서 제조한 위스키로 하일랜드 산 싱글 몰트. 글렌피딕이란 게일 어로 "사슴이 있는 골짜기" 라는 뜻이다.
산뜻한 맛의 드라이 타입으로 남성적인 풍미인데, 마일드한 맛이 있어 몰트 스카치 중에서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브랜드이다.
인버하우스(Inver house)
마일드한 로울랜드 몰트 <브래도녹>을 중심으로 블랜드되는데, 문자그대로 전형적인 라이트 타입의 스카치 위스키이다. 라이트 위스키를 선호하는 미국인의 입맛에 맞았는지, 미국에서 인기가 급상승하였다. 8년산 인버하우스는 매끄러운 속에서도 기품이 있는 풍미가 있고, 판위니 로열은 12년 숙성의 디럭스 라이트 위스키이며, 31년산 인버하우스가 생산되고 있다.
커티 샥(Cutty sark)
커티 샥이란 게일어로 "짧은 셔츠"라는 뜻으로 커티 샥 위스키는 색깔이 매우 엷고, 맛이 라이트하다. 라이트 스카치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로울랜드 몰트를 베이스로 블렌드한 것을 사용하는 하일랜드 몰트로 글랜고인처럼 온화한 성격의 몰트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리쉬 위스키
아이리쉬위스키는 스카치위스키의 경우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의 브랜딩에 의해 만들어지는 브랜디드 위스키와는 달리 발효과정에 맥아에 옥수수, 보리, 밀 등의 곡류를 첨가하여 만든다. 증류또한 단식증류기를 사용하여 3회에 걸쳐 증류하고, 피트(석탄의 일종) 훈연 과정이 없어 향이 깨끗하고 맛이 부드러운 위스키이다.
현재 아일랜드의 위스키업계는 1966년에 합병하여 탄생한 Irish Distillers Group 1사(社)뿐이고, 증류소도 아일랜드섬의 북측에 있는 Bushmills와 남단의 코크 주(州)에 있는 Midleton, 2개소 밖에 없으며 이름있는 아이리쉬 위스키로는 12년산 Old Bushmills, Black Bush, Tullamore Dew, Midleton 등이 있다.
아메리칸 위스키
미국의 증류주의 역사는 영국에 의한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이 시작된 17세기부터 시작되었고 주로 호밀(라이)을 가지고 만든 라이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후 켄터키 등 서쪽으로 이동한 증류업자들에 의해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버번위스키가 탄생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내부를 태운 통으로 숙성시키면 향이나 색이 좋아진다는 것이 발견히게 되었다. 남북전쟁 후 북부의 자본이 남부로도 흘러 들어가 미국의 경제는 급속하게 발전한다.
그러나 1920년에 시행된 "금주법"은 위스키 생산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금주법이 시행 후 13년만에 폐지되자 대기업 위스키가 시장을 지배 하고, 증류도 거의 연속식증류기로 사용하게 되어진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위스키는 증류법 뿐만 아니라 숙성법도 독자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져, 스카치나 아이리쉬 위스키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위스키가 되었다
위스키에 대한 맨해튼 지명의 일화가 있다.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의 세계에는 원래 술이 없었다. 1610년 허드슨 강가에 메이 플라워호가 상륙했을 때, 인디언 추장에게 처음으로 위스키가 전달되었다. 이때 추장은 그 술을 마시고 대취하였는데, 그 때문에 그 지역을 "처음으로 대취한 곳"이라는 뜻의 인디언 말인 맨해튼(Manhattan)이라고 불리어졌다.
짐빔(Jim Beam)
1700년대 미국이 독립하여 한창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 1795년 제이콥 빔이 증류소를 세우고 버번을 제조하였는데, 자연효모를 사용하여 품질이 뛰어난 버번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짐빔은 버번위스키로는 드물 게 다년간 숙성을 하여 고급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다.
잭다니엘(Jack daniel)
1846년 잭다니엘이 1846년 테네시 주의 링컨 카운티에서 잭 다니엘사를 창업하여, 미국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북군에게 위스키를 공급하여 유명해진 위스키이다. 특징은 사탕단풍나무로 만든 목탄으로 여과하여 맛이 부드럽고, 뛰어나며,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 자주 등장하여 영화와 함께 익숙하게 알려진 위스키이다.
캐나디언 위스키
캐나다는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캐나다로 이주하는 이민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제분업이 번창하고 차츰 증류소가 발전하게 되었다. 1850년대에 씨그램사와 하이렘 워커사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위스키의 산업화가 시작되었고, 1920년 미국의 금주법의 시행으로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다.
크라운 로얄(Crown royal)
캐나디언 위스키의 일종으로 미국의 금주령이 해제되면서 미국시장을 석권한 위스키다. 1934년 영국와 죠지6세가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그 영광을 빛내기 위해 진상한 것이 바로 크라운 로얄이다. 이 술은 캐나디언 위스키의 전반적 특징인 가벼움을 지니면서도 과일향이 은은하게 스며 나오며 비단같이 부드러운 맛을 내는 최고급 위스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