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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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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스크랩 보은
별님 추천 0 조회 26 14.01.14 14:0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2013. 11. 13.

무작정 집을 나섰는데

속리산과 고등학교때 친구 선표가 생각났습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기전 통화한 친구 선표는 자신이 근무하는 회인면사무소로 오라네요

 

친구가 가르쳐준대로 청주로, 그곳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한참을 달려 어느정거장에서 안내판을 보니

다음이 회인이라고...

 

내릴준비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뒷자리에 앉은 분께 물으니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한다'고..

그 때 운전기사님께서 "왜 그러냐?"고

"다음이 회인이예요?"

"얼른 자리에 앉으세요"

'???'

 

그 넘어야 한다는 고개가 바로[피반령]

 

피반령고개는 여태까지 내가 가 본 중 가장 스릴 넘치는 길이었습니다

의자위에 놓았던 오는 길 재래시장에서 산 귤봉지가 데구룰 굴러 떨어졌지만

다 내려올때까지 그걸 집어올릴 틈도 주지 않았으니까요

 

운전기사님 : "어디서 왔어요?"

나             : "서울요"

운전기사님 : "에이~, 그럼 아까 내려줄 껄. 이 고개는 걸어서 와야 좋은데~"

버스승객들 : ㅋㅋㅋ

 

드디어 친구가 근무하는 회인면사무소에 도착

 

친구는 아주 반갑게 나를 맞아 주네요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들고 간 빵과 귤을 나눠 먹고...

 

친구는 근처에 [오장환문학관]이 있다네요

 

근무에 방해가 될까 면사무소에서 나와 문학관으로 향했습니다

 

생소한 이름 [오장환]

 

나중에 친구에게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했더니

북으로 가신 분이라 알려질 수가 없었노라고...

 

 

 

 

나의 노래 / 오장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 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아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여

 

단 한 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오장환(吳章煥) 1918~1951 충북 보은 출생

 

1918년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한학수 사이에서 4남 4녀중 3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오장환은 이곳에서 정지용시인을 만나 시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문예반 활동을 하며 [휘문]이라는 교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다. 1933년 2월 22일에 발간된 [휘문] 임시호에는 오장환의 첫 작품인 <아침>과 <화염>이라는 두 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후 오장환은 [시인부락], [낭만], [자오선] 등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시기에 발표한 시집 <성벽>과 <헌사>를 통하여 '시단의 새로운 왕이 나왔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병상에서 해방을 맞이한 오장환은 <병든 서울>을 통하여 해방의 기쁨을 감격적으로 노래했다.

<병든 서울>은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또한 시<석탑의 노래>는 1947년 중학교 5 · 6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오장환은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던 시기에 전국을 돌며 몸을 아끼지 않는 활발한 문화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테러가 자행되면서 몸을 심하게 다치고 북으로 가게 된다. 이후 오장환은 북한과 소련에서 지병을 치료하면서 소련기행시집 <붉은기>를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한국전쟁중에 사망하였다.

 

1988년, 광복 후 40여년간 논의조차 불가능했던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이루어졌다.

 

친절히 맞아 주시며

따스한 정이 담긴 다과를 건네 주시던

오장환문학관 식구들

 

 

 

 

 

압화로 손수 만들었다는

책갈피까지 선물로 주시네요

 

'무슨꽃이에요?'라는 나의 질문에

'글쎄~ 이름은 잘...

제비꽃과에 속한 식물이에요'

 

아마도 종지나물꽃인 듯...

 

종지나물은

제비꽃과에 속하는 귀화식물로

북아메리카 원산

미국제비꽃이라고도 한답니다

 

저 책갈피를 내게 주신 분께서는

퇴근길에 당신의 차에 나를 태우고 일부러 면사무소에 들러

친구의 퇴근시간을 한시간정도 앞당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또 친구와 나를 보은까지 태워다 주셨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친구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보은에 오면 꼭 맛보아야 한다며 친구가 데려간 곳은 [김천순대]

 

 

 

 

 

 

먹는 내내

소주한잔이 생각나게 하는...

 

진실한 기독교신자인 친구를 생각하며

꾸~욱 참았습니다^^*

 

 


 

2013. 11. 14.

오늘은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문장대를 가 보려구요

 

집을 나설까~하는데

텃밭에서 김장할 배추를 혼자서 다듬고 계신 친구의 남편이 보이네요

 

얼른 부엌에 가서 칼 한자루 들고 밭으로...

 

일을 마치고 나니 12시버스가 있다네요

 

친구어머니께서는

내가 아침에 냉장고속을 뒤져 쑤어 놓은 호박죽을

지금쯤 열심히 김장을 담그고 있을 교회식구들에게 가져다 주고 싶어하셔요

 

어머니께서는 미리 쪄놓은 백설기 한덩이 챙겨들고

나는 호박죽남비를 들고

어머니 따라 교회로...

 

도착해보니

마침 절인배추헹구기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가지려고...

아주 기가막히게 잘 맞춰 왔네요^^*

 

남비만 전하고 나는 속리산을 가기 위해...

 

서둘렀더니 좀 일찍 나왔네요

 

버스를 기다리며 친구동네 한 컷

오른쪽에서 두번째집이 친구네집

 

친구네집에서 보은까지 버스로 20여분

보은에서 속리산터미널까지 약20분

 

속리산행버스 옆자리에 앉은 분께 물으니

지금가면 문장대까지는 무리라네요

해가 짧아져 오후5시면 어두워지니 그전에 산을 내려와야 한대요

절대 문장대까지는 가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네요

 

처음보는 분께서 나를 염려해 주시는게 너무 감사해서

문장대는 다음으로 미루고 부지런히 산을 올랐습니다

 

계곡옆 나무들이 아직도 예쁜빛깔 잎을 가지고 저를 반기네요

 

멀리서 보았을 때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바위가...

 

 

[이뭣고다리]

 

다리이름이 신기하기도 하고

저~앞 단풍이 내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다른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었는데 홀로 곱게 남아있기에 한 컷 찍으려 할 때

갑자기 화면에 나타난 저 남자

 

 

옆을 지날 때

내 카메라에 잡혔노라 보여주니

 

카메라를 빼앗아

'왜 자기를 찍느냐?'

'고~기 서 보라' 며

사진한장 찍어 주네요

 

자신은 사진작가라고...

 

작가님!

고맙습니다^^*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커다란 바위에 떡~하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소나무 한그루 발견

 

 

 

요녀석은 지금 명상중인 모양이네요^^*

 

문장대 1.5km라는 팻말앞에서 조금 망설이다가 포기하고

옆길 중사자암(中獅子庵)으로...

 

중사자암으로 가는 길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은 듯

떨어진 낙엽들이 제 모양 그대로였습니다

 

저 바위뒷편 오른쪽으로 조금 보이는 기와집이 바로 중사자암

 

 

모두 낙엽이 되어 떨어져버린 늦은 가을

홀로 봄인양 연둣빛이파리를 자랑하며 바위을 기어오르는 아이

'넌 누구~?'

 

 

중사자암에서 바라다 본 전경(前景)

 

 

나는 저 암자의 아랫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홀로 앉아

속리산입구 편의점에서 사 가지고 간 김밥에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배를 채우고

정확히 PM3시에 하산길에 올랐습니다

 

올라갈때는 보지 못했던 [정신녀박순래기념비]라는 글이 길옆의 아주 커다란 돌에 새겨져 있네요

이분은 속리산과 어떤 인연이 있길래~?

 

거의 뛰다시피 내려왔더니

1시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친구가 살고 있는 내북면 이원리

 

얼마전까지만 해도 돌을 캐는 광산이었는데

하천오염으로 이제는 폐광이 되어버렸다는 곳

 

오늘은 친구가 살고있는 이곳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하천과 나란히 이어진 마을길을 따라 들어간 산골짜기엔 

아주 까맣고 종이처럼 얇은 편들이 층층이 쌓여서 만들어진 넙적한 돌들이...

 

돌 표면엔 마치 쇠붙이에 녹이슨듯한...

 

 

산 전체가 저런 돌들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나중에 친구의 남편에게 불으니

저 돌들은 지붕이나 구들장으로 쓰였다네요

 

 

 

 

 

 

 

 

 

 

                              생김새가 신기해서

                              조각돌 몇개 주워 왔어요

 

 

보은군민체육대회가 있는 날

9시버스를 타고 친구의 남편과 함께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는 운동장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운동장 안에서는 각종경기가 열리고

운동장밖에선 각 면에서 면민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따라 나도 회인면에서 준비한 아주 푸짐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면사무소에서 만났던 '양띠'주사님이 따라주는 소주한잔도...(주사님~, 담에 만나면 제가 소주한잔 살께요^^*)

 

배불리 먹은 후 경기를 구경하러 운동장안으로 다시...

 

마침 피구 결승전에서 회인면이 우승을 했습니다

 

팀을 이끌던

맨 뒤 까만운동복의 계장님(?)도 아주 신이 났네요^^*

 

우승트로피를 받고 있어요

 

선수들 아주 신이나서 함성을 지르네요

지켜보던 친구와 나도 함께 따라...

 

 

회인면의 피구우승을 끝으로 운동장과 하직하고...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보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친구의 마중을 받으며

서울강남행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추운데 들어가라는 나의 손짓에도

묵묵히 저렇게 서 있다

이제 막~ 버스가 출발을 하려할 때

얼른 버스에 올라

"유원아~!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고 내리네요

 

 

 

 

반갑게 나를 맞아주던 친구

나와의 헤어짐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던 친구

 

언제든 또 놀러 오라고 수없이 되풀이하던 친구

 

이런 친구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몸이 아파 괴로워 하면서도 매일 새벽5시 교회에 가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던 친구

그 기도와 찬송으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다던 친구

 

퇴근해 돌아오면 저녁식사도 못한 지친 몸으로

어머니를 모시러 교회로 향하던 친구

 

나의 하찮은 투정에

 "유원인 아직 애기구나~"하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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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1.15 07:55

    첫댓글 노을 유원인과의 따사로운 우정을 엿볼 수 있는 정겨운 글!^^

  • 작성자 14.01.15 11:57

    김유원,아주 솜씨 좋고 착~한 친구^^

  • 14.01.15 13:03

    아하, 유원인이 아니고 김유원이로구만.^^

  • 14.01.18 15:59

    덕분에 오랫만에 우리집 사진 잘 보았네요 김유원이라는 친구 정말 멋있는 분 이네요
    문장력도 있으시고 글을 편집 하는 솜씨도 배태랑 급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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