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총칭하는데 영문표기로 onggi, 흔히 우리말로는 독이라 부르는 것이 한자어로 옹(壅) 또는 앵( 물이나 술을 담그는 도기)이라 일컫는다. 질그릇이란 오지잿물을 입히지 않고 진흙만으로 700도~900도에서 구운 그릇을 이야기하며, 오지(烏只; 옻그릇)는 약토와 재를 수비한 자연유약으로서 1200도 내외에서 구운 발효용기이다.
우리 문화 중 고유하게 면면히 이어 온 것을 꼽으라면 옹기문화일 것이다. 특히 옹기문화가 가지고 있는 소박한 우리 옹기의 심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온갖 비바람 풍상에 씻겨 이 땅을 지켜 온 어머니의 젖무덤과 같은 것이다. 잠시라도 우리 생활에서 손을 뗄수 없었던 음식문화와 옹기문화. 한마디로 옹기문화는 발효음식이 가져다 준 식생활 문화이다. 그러나 식문화(食文化)의 서구화로 옹기문화는 서서히 퇴조를 겪고 있으며 주거공간의 변화, 생활문명의 편리성으로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 일찍이 음식물을 발효시켜 옹기에 저장한 우리 민족은 요즘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의 인스턴트 시대와는 전혀 다르게 지속적인 삶을 누려왔다. 옹기에 발효시킨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이 훌륭한 영양식품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들이다.
장독대는 우리 민족의 민간신앙의 예배터임에 틀림없다. 정갈하게 모셔진 장독대, 양지바른 뒤뜰에서 우리 어머니는 무엇을 기원했으며 매일 매일 쓸고 닦은 그 터전에서 무슨 생산을 기대했을까. 기다리고 침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바로 우리 옹기의 심성이다. 이제 그러한 모습을 더 이상 현대 여성에게 기대한다거나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이 즐겨 먹던 것은 쌀이라든가 콩, 김치, 젓갈 등인데 오랫동안 선조들은 쌀을 저장하는 용기로 큰항아리(大甕), 물을 저장했던 물항아리, 찌개를 끓여먹던 뚝배기, 떡을 찌는 시루, 불을 담던 질화루, 밥을 담던 질밥통, 식초를 담갔던 식초항아리, 소주를 내렸던 소줏고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심지어 인분을 넣었던 똥항아리, 온돌 문화에 대표적으로 쓰였던 옹기굴뚝, 연통 위에 얹었던 연가(煙家) 등은 아주 환경친화적인 생활도구였다. 훈(塤)으로 표기되는 흙 악기는 오음계로 되어 있는 구멍이 취구를 포함해서 6개가 나있다. 또 부(缶)라는 흙악기는 대끝이 9개로 쪼개진 진죽이라는 채로 두들겨서 소리 내는 타악기의 일종인데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또 옹관은 사람을 매장할 때 쓰던 질그릇 관이며, 업단지는 잡의 모퉁이나 장독대 뒤켠에 짚으로 엮은 주저리를 씌워 보관한 일종의 주술적인 생산(生産)단지이다. 용도로 보아도 발효식품 옹기뿐 아니라 일상 생활용구까지도 거침없이 사용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의 옹기 모습은 그저 친숙한 흙내음, 흙소리이다. 흙바람 소리를 내는 훈의 흙바람은 거친 환경오명으로 스러져 가는 21세기의 마지막 전율일지 모른다. 최근 우리의 식수는 심각하게 오염돼 가고 있다. 물독에 하루를 침전시켜 쓰면 중금속이라든가 유기물질은 밑으로 가라앉든가 정화작용이 일어난다. 특히, 찻물을 달이는 차인들에게는 더 없는 필수품이라고 여겨진다. 옹기는 쓰는 이의 심성에 맞게 닮아 간다. 급하게 생각하면, 쓰임새의 멋을 놓칠 수가 있다. 무겁다고 느껴지는 옹기는 긴 겨울에 적정한 온도로 유지시켜 차 맛을 배가시켜 주며 구수한 뚝배기 맛을 느끼게 한다. 끓는 그릇 안의 음식과 바깥 온도와 적절히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옹기토라는 것은 주로 입자가 굵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옹기의 표면으로 수분이나 공기가 자주 드나들어 건강 용기로 매우 우수하다. 특히 다른 청자나 백자보다도 숨쉬는 바이오 세라믹인 셈이며 오지 그릇 옹기는 1250℃ 안팎으로 굽는 석기로 단단히 구워진 점에 완벽하다.
항아리의 형태는 우리의 산천을 닮았다. 그래서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온갖 형상을 상상하기도 한다. 가끔 언덕배기는 항아리의 배를 닮았으며, 산등성이는 큰독의 어깨춤이다. 가끔 우리는 농업박물관에서 농기구를 보게 되는데 그렇게 다양한 생활도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어떤 예술가들은 농기구를 차용해서 설치하기도 한다. 마치 과거의 농부들의 생이 예술로 이관된 느낌이다. 예술은 그리 대단한 제스처는 아니다.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 들 때만이 자신의 철학이나 예술이 빛날 뿐이다. 차후세계까지 자신의 생을 몰고 가려했던 진시황의 토용이라는 엄청난 군단의 병사상을 우리는 불가사이로 보고 있다. 현대 조각가들도 이런 형상 앞에선 겸허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의 모든 집 뒤켠에서는 여지없이 발견되는 장독대의 크고 작은 옹기들은 훌륭한 조각품일 수 있다. 더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옹기 기면에 그려진 수화문(手畵紋) 또는 지두문(指頭紋)이라고 하는 실로 붓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또 다른 손가락 그림이 우리를 감동케 한다. 역동적이고 손 빠른 그림의 당찬 획의 기운이다. 수십만 번의 획이 옹기의 부분 부분을 스쳐갈 때 옹기 장인의 숨결이 거칠게 느껴진다. 일획성을 가지고 있으나 초보자는 모방하지 못할 선의 비밀이 있다. 손끝의 일획은 오랜 수련 과정에서만 얻어지는 독특한 진수의 결정체다. 붓이 담아낼 수 없는 둔탁한 몸 빠름의 손씨름이다. 열 손가락이 함께 움직여 주는 익은 솜씨는 상상할 수 없는 우주 속으로 파고든다. 모든 것은 순간 결정되고 만다. 단 10초 안에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면 성형 그릇 위의 오지유약이 말라서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그리거나 풀을 그리거나 꽃을 그린다면 이미 상상력을 앞서 손을 움직여야만 가능한 지두화(地頭畵)이기 때문이다. 마치 유아기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천진성에 기인하는데 매력이 있다.
옹기는 거의 굽이 없다. 불필요한 치장을 원치 않는다. 굽이란 치장하기 위한 뽐냄에 불과하다. 바닥을 쳐서 타렴을 올리고, 발로 물레를 돌리며 도개와 수레질을 하고 근개로 가다듬고 밑가새로 따내는 일은 옹기 만들기의 기본이다. 도개는 안에 대주고 수레는 바깥의 기물을 때려서 늘려주는 기본동작이다. 가끔 솜씨 있는 이의 큰항아리 안에서 도개문양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 옹기들을 굽는 가마는 어떤 종류의 것이 있을까. 이제 세계 널리 gama(영어로 kiln)는 보편화된 듯하다. 우리는 사람의 머리 꼭대기에 머리카락의 소용돌이를 가마라 하고 조선 시대 때 여자가 남자에게 시집올 때도 타고오는 것이 가마이다. 불을 때서 밥을 지어먹던 솥도 가마솥이라 일컫는다. 모름지기 우리 전통 장작가마 구조상 경사도가 20도 안팎으로 축조되었음에 꼭대기를 올라가는 정수리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옹기굴은 대개가 등요(登窯) 또는 칸가마와 조대불통가마로 나뉜다. 용(龍)가마는 가운데가 풍 터진 가마이다. 흔히 뻘불통가마, 대포가마, 통굴 등으로 불린다. 이 가마는 옹기를 여러 개 포개서 굽고 아주 획기적이고 과학적인 가마이다. 한꺼번에 큰 기물을 다량 굽는 경제적인 가마이나 고도의 기능을 요구하는 귀중한 소성 방법이다. 이것이 또 오지잿물을 입힌 그릇을 포개서 쟁임할 경우로 필히 차돌가루를 뿌려서 소성과정 중 붙지 않게 한다.
보통 큰 기물의 통굴은 일주일씩 걸리는데, 밑불(피움불) 500℃까지 삼일, 중불(베낌불)은 500℃∼800℃로 이틀 정도, 본불(큰불)은 1100℃로 하루, 창불은 길게 뚫려져 있는 가마등 위에서 창솔나무를 넣게 되며, 하루를 피게 된다. 칸가마 또는 등(登)가마는 용가마가 개량된 가마로 열 손실을 줄이는 경제적인 가마이고 조대불통가마는 화구(火口)가 구조상 ㄱ형(形)의 가마이다.
옹기의 제작과정은 원료의 채취과정에는 수비라든가 분쇄방법이 있으나 먼 옛날에는 자연채취해서 낫자루 같은 깨끼칼로 일일이 돌이나 나무뿌리를 골라내고 떡메로 쳐서 옹기를 만들곤 했다. 성형이 된 옹기는 반건조 시켜서 오지잿물을 치는데 바람이 자주 드는 곳을 피해 서서히 건조시켜 옹기굴에 쟁임을 하여 불을 지피곤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옛 옹기 도공들에 있어서 지극히 그들만이 가지는 엄격한 삶의 공간을 지켜왔다. 다시 말해 철저한 장인의식의 계통구조에 두고 있다. 만일 어느 한 부분이 누수가 나면 영락없는 실패가 있을 뿐이다.
먼 옛날 집단으로 모여 살던 옹기점말, 점촌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고, 실제로 전국에 1968,9년 경에는 옹기점수가 500여 점에 달했다고 하나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최근 도예촌 형성에 있어서 있어야 할 실질적 가마굴은 없고 오히려 위락시설의 건설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서 겪게될 재앙을 스스로 막아야 한다. 과학시대가 우뚝 솟구치기 전에 우리가 이미 스스로 파놓은 파괴의 나락으로 떨어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예술의 자각은 우리의 원시방법으로 우리의 수준을 스스로 낮추는 일이며, 우리의 옹기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쓰일 때, 우리 옹기의 심성은 스스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