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례원 국민학교
충남 예산읍 신례원리 1구. 신례원국민학교
촌놈의 눈에 비친 학교가 황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으리으리하게 보였다.
넓은 운동장, 여러 동의 건물은 물론 전깃불도, 숙직실의 텔레비전도, 학교 앞길을 씽씽 달리는 자동차도 신기하게 보일 정도로 벽지의 2년이 나를 완전 촌놈으로 퇴화시켰다.
신례원, 아산의 집에 다녀올 때마다 지나쳤던 곳이다.
아산에서 도고를 지나 예산과 당진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는 검문소가 있다.
검문소에는 헌병과 경찰이 함께 검문을 하는데 나에겐 기분 나쁜 추억이 있었다.
어느 일요일, 집에 갔다가 황계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천안에서 친구를 만나 얼큰하게 한잔을 걸치고 버스에 올랐다.
취중에 깊은 잠이 들었나 보다. 누가 흔들어 깨워서 눈을 떴지만, 제정신이 냉큼 돌아오지 않았다. 뭐라고 물어 보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도 않는다.
잠결에 “어버버” 한 것 같았다.
눈을 뜨고 보려고 해도 초점이 잘 맞지 않는지 뿌옇게 보였다. 술도, 잠도 깨지 않았나 보다. “내려”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잡아끈다.
그때서야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헌병 한명이 나를 끌고 내리는 것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문에 걸린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승객들이 눈이 동그래져 나를 쳐다본다.
‘혹시 간첩을 잡은 거 아닐까 ?’ 별 생각을 다 했을 테지. 굉장히 창피했다.
검문소 건물로 끌고 가더니 신분증을 달란다. 주민증을 줬다.
가방을 열란다. 열었지. 속에 있는 것을 다 꺼내란다. 꺼냈지.
꺼내봤자 양말, 팬티 그거밖에 더 있나. 한편으론 챙피했지.
“직업이 뭐야 ?” 반말이다. 나이도 내 또래밖에 안된 것 같은데....
“예산 황계국민학교 선생입니다”
“아, 그 학교. 거기 교장이 윤두수이지 ?” “ 예 ? 아닌데.....”
“그럼, 가도 돼” 나오라더니 버스를 세워 태워준다. 공짜랜다. ‘엠병, 병주고 약주나’ 한참을 투덜댔다. 이미 술 기운은 간 데 없고.....
참, 별 경험을 다 해봤다. 술 한 잔 먹고 오다 검문도, 유도심문도.....
정말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신례원에서는 하숙집을 구하지 못해 예산까지 나갔다.
신례원까지 후행왔던 우선생님이 소개해 준 나이 드신 선생님의 집이다.
첫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기분이 야릇했다.
학년은 5학년, 남자반. 50명의 개구쟁이들이 호기심으로 쳐다본다.
나, 선생님으로서는 아직도 자격미달, 엉터리지만 시치미 떼고 의젓하게 서 본다.
그래도 2년의 경력이 첫 부임 시 깜깜했던 당황스러움은 감춰주더라.
여자 동기동창이 4명이나 있어서 훨씬 부드러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꾸 황계가 그리워진다.
생소한 학교 환경, 낯 모르는 선생님들, 정 붙이지 못한 아이들....
퇴근 후 예산까지 움직여야 하는 일, 낯 선 하숙집에서 혼자 앉아 벽만 쳐다봐야 하는 긴 밤의 시간도...
이틀, 사흘이 되니 미칠 것 같았다. 황계가 그리워서.....
‘도저히 못 참겠어. 황계의 산과 들, 그리고 사람들. 우형, 흥식이.....’
사흘째 날, 퇴근을 하고 무조건 신양 가는 버스를 탔다.
신양에서 걷다 뛰다 해서 한 땀을 흘린 후 황계에 도착했다. 이미 어둑하다.
인적 없는 동네를 지나 냅다 학교로 뛰었다.
“나 왔어” 숙직실 언덕 밑에서부터 있는 힘껏 소리쳤다.
방문이 활짝 열리며 우형, 흥식이가 튀어 나온다.
“어, 이선생” “어 방장님” 셋이 다 입이 찢어졌다.
나만 정을 준 게 아니었다.
서로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헤어진지 불과 사흘인데 뭔 할 얘기가 그리 많았는지, 늦도록 조잘대다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아 ! 이 기분이 그렇게도 그리웠던가 ?’
다음날 어둠이 깔린 새벽, 둘이서 나를 깨워 밥을 먹인다.
6시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학교에 출근할 수가 있다.
버스로 신양까지 나와 예산으로, 예산에서 다시 신례원으로....
그런데 이상하다. 그 다음부터 마음이 아주 편했다.
더 이상 황계 생각이 그렇게까지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다.
정을 떼러 갔었나 보다.
신례원의 생활이 그렇게 시작됐다.
사람은 적응력을 타고난 동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