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일봉.
지리산 차일봉 산행지도
|
천은사(泉隱寺)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지리산 남쪽 기슭, '남방 제일 선원'.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
828년(신라 흥덕왕 3) 인도승려 덕운(德雲)이 창건하고
앞뜰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 하여 감로사
875년(헌강왕 1) 연기 도선(烟起 道詵)이 중건했고,
고려 충렬왕 때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화로 완전히 소진
1678년 이조시대 (숙종 4) 중건하여 천은사라고 명명
중건 당시 이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한 승려가 잡아 죽이자 그 후,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
하여, 샘이 숨었다는 의미로 천은사(泉隱寺)라고 개명.
그 뒤 이상하게도 원인 모를 화재와 재화가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샘을 지키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했다.
그 때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李匡師; 1705-1777)
물이 흐르는 듯한 수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고 쓴 현판
일주문에 건 뒤부터는 천은사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의 고요한 시간에 일주문에 귀를 기울이면
현판 글씨에서 신운(神韻)의 물소리가 들린다고 전해온다.
1774년(영조 50)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는 지리산 3대 사찰.
현존하는 건물들은 대부분 1774년 중건한 것
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을 비롯
팔상전, 응진전(應眞殿), 진영당(眞影堂), 칠성각,
첨성각(瞻星閣), 승회당(僧會堂), 보제루(普濟樓),
방장선원(方丈禪院), 종무소, 일주문, 수홍문(垂虹門)
문화재로 나옹 혜근(1320-1376)의 원불(願佛)
불 완전한 석탑 1기 만이 사찰 내에 남아 있다.
....................찾아가는 길....................
구례읍 북쪽 9km지점, 지리산 일주도로 입구에 위치
올림픽고속도로 남원 IC에서 나와 구례`하동 방향 19번 도로를
밤재 터널을 통과하면 지리산온천, 조금 더 가면 천은사 이정표.
약 10분 더 가면 지리산 차일봉 천은사 매표소 곧 이어.. 천은사.
화엄사는 천은사에서 동쪽으로 5.5km 떨어져 있으며,
연곡사는 다시 하동방면으로 22km 떨어진 피아골 계곡
운조루는 화엄사와 연곡사 중간 지점 문수골 안쪽에 있다.
1) 구례에서 천은사행 직행버스 이용
/09:40-15:30, 하루 6회 운행/40분 소요
2) 구례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15분 소요.
..........................................................
규모는 크지 않으나 은근히 정이 가는 천은사.
바람같고 물줄기 같은 천은사 일주문 현판 글씨
사찰 입구 계곡의 저수지 앞에 있는 정자 수홍루
계곡 물소리를 듣노라면 속세를 벗어난 느낌.
천은사는 소박한 절, 단청도 그리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옛스러워서 위엄이 엿보인다.
극락대전 좌우로 약 350년 수령의 동백나무가 있다.
극락대전 오른쪽에는 꽃이 활짝 핀 보리수 나무.
천은사 매력은 극락대전 뒤쪽 아름다운 계곡 건너
방장선원이 있고, 응진전, 팔상전, 관음전, 삼성각.
천은사에서 동쪽으로 5.5km 떨어진 곳에 있는 화엄사
화엄사에서 나와 하동쪽 20km 지점 피아골 입구 연곡사.
화엄사와 더불어 천은사와 연곡사는 지리산의 3대 사찰
화엄사와 연곡사 사이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
원래 99칸 짜리 집터였으나 현재 60여 칸쯤 남아있는 양반집.
안채 2층은 아녀자들이 바깥세상을 보며 시름을 달래라는 곳.
운조루 행랑채 뒤주는 가난한 마을 이웃을 배려한 쌀통.
운조루 집안 곳곳에 보관되어 있는 이조시대 생활도구들.
천은사 가는 길에 더불어 들러보면 후회없이 좋을만한 명소.
임진왜란 때 불탄 후 광해군 2년(1610년) 혜정선사가 복원.
숙종2년(1676년)에 다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복원했다
영조49년(1773) 불탄 후 영조 51년(1775년) 혜암선사가 복원.
천은사 입구에서 일주문을 바라보고
오른쪽 소나무숲 위에 위치한 부도군
일주문 현판에 '지리산 천은사' 글씨
석자씩 두줄로 세로로 쓰여 있는데,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은 글씨체.
이조 4대 명필 이광사가 쓴 일주문 현판.
828년 인도승려와 덕운조사가 창건할 당시
경 내 이슬처럼 맑은 차가운 샘물이 감로수
'흐렸던 정신까지 맑아진다' 알려졌던 감로수
하여, 한때는 천명이 넘는 스님이 지냈던 천은사.
고려 충렬왕 당시에 남방제일 사찰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중건할 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죽였더니
그후부터 감로수는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샘이 숨었다 하여 천은사(泉隱寺)로 개명했다.
이조 숙종 4년(1677년) 이름을 바꾸자 잦은 화재.
원인모를 화재가 잦은 이유는 구렁이를 죽였던 탓.
그 소문을 전해들은 이조 4대 명필 원교 이광사
물이 흐르는 듯 한 글씨 '지리산 천은사'
그 후부터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한다.
새벽녘 고요한 시간에 천은사 경내.
일주문 현판 글씨에서 물 흐르는 소리.
일주문은 천은사의 내력을 담고 있는 곳.
천은사는 주위의 풍광이 아름답다.
극락보전 아미타불 탱화인 보물1점
지방문화재 2점이 있고 정자 수홍루.
절 입구 계곡을 가로질러 있는 수홍루.
물그림자 어린 한 폭의 동양화와도 같다.
천은사 입구에서 보면 보제루는 2층
극락보전에서 보면 단층 맞배집이다.
단층 쪽 계단에서 맞은 편 극락보전
그 좌우로 설선당, 승회당, 첨성각.
한 단 높은 뒤쪽으로는 팔상전, 웅진전, 진영단, 칠성각
<극락보전. 팔상전> 건축 양식은 국보급 수준 건축물
천은사는 주위의 풍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극락보전 아미타후불 탱화와 지방문화재 2점
절입구 계곡을 가로질러 서 있는 정자 수홍루
'한폭의 동양화 같은 수홍루 개울물 그림자.'
....................................
....................................
천은사를 왜 '남방 제일 선원'이라 할까?
우번대 종석대 관음대 전설과 관련 깊은 듯.
우번대 종석대 관음대는 차일봉 정상에 위치.
우번대 종석대 관음대는.. 지리산 十대 기도처
천은사는 노고단과 이어진 연봉 차일봉에 위치.
차일을 쳐 놓은듯한 산세로 정상은 자연 전망대.
종석대, 관음대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는 정상 암불
차일봉 남쪽 천은사 계곡 상류 깊은 곳에 상선암
신라 고승 우번 조사가 젊은 시절 수도 정진하던 곳.
9년째 수도하던 어느 봄날에, 암자에 나타난 절세미인
요염한 자태로 유혹하자 우번은 수도승이란 사실을 망각
온갖 기회요초 만발한 숲을 지나 높은 곳으로 올라간 그녀.
우번은 그녀를 놓칠 새라 정신 없이 뒤따르다 보니 차일봉 정상.
그런데 우번을 유혹하던 여인은 간데 없고
난데없이 나타나 우번을 바라보는 관음보살.
이는 필시 관음보살이 자기를 시험한 것이라 깨닫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자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없고 대신 큰 바위만 우뚝 서있었다는 전설.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달은 우번은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토굴 속에서 수도
우번도사가 도통한 그 토굴자리가 우번대
그가 도통한 순간 석종소리가 들려 종석대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서 있던 자리를 관음대.
천은사 극락전에 있는 아미타후불 탱화
옛부터 전해져온 전설을 탱화로 표현한 듯.
.........................등산 코스.......................
천은사 - 시암재 - 성삼재 - 달궁(22.5㎞, 8시간 소요)
.....................주변 관광지...................
지리산, 섬진강,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사성암, 운조루, 피아골, 산수유마을
...............
아미타후불 탱화
...............
천은사 극락전에 보관되어 있는 아미타후불 탱화(1776년)
영상회상도(1715)·제석천룡도(1833)·칠성도(1749) 등.
보물 제924호.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360cm, 가로 277cm.
아미타불과 8대보살·10대제자·사천왕 등의 군상이 묘사
각 존상의 명칭이 적혀 있어 이조 후기 불화의 연구 자료.
중앙 본존불 아미타불은
대좌 위에 앉은 설법자세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표현
신광 안에 '광명보조수명난사사십팔대원무량수여래불'
(光明普照壽命難思四十八大願無量壽如來佛)이라 표기.
본존의 대좌 앞 좌우에 보관에 화불(化佛)이 있고
손에 정병을 든 관세음보살과 보관에 정병이 있고
손에 경책을 든 대세지보살이 전신을 드러낸 채 섰다.
두광 안에 '문성구고관세음보살'(聞聲救苦觀世音菩薩)과
'섭화상생대세지보살'(攝化象生大勢至菩薩)이라 각각 표기.
본존의 신광 좌우에 상체만 드러낸 보살상들
각각 문수보살·보현보살·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
제장애보살(除障碍菩薩)·미륵보살·지장보살이 서 있다.
본존의 두광 좌우에는 10대 제자가 자연스럽게 묘사.
본존을 둥글게 둘러싼 청문 중 아랫단 좌우에 사천왕
좌측에 칼을 든 상은 '동방천왕'(東方天王),
비파를 든 상은 '북방천왕'(北方天王),
우측에 여의주와 용을 잡은 상은 '남방천왕'(南方天王),
보탑과 창을 든 상은 '서방천왕'(西方天王)이라고 표기.
본존 대좌 아래 중앙에는 아미타불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비구형 인물상의 두광에
'금리불존자'(金利佛尊者) 라고 씌어 있다.
'10대 제자 중 1' 사리불존자가 설법을 기원하는듯.
전체적으로 중간색조의 붉은색과 녹색을 두껍게 사용
각 상의 형태가 정연하고 균형 있게 표현된 탱화이다.
특히 본존상의 오른팔을 덮고 있는 투명한 옷자락이나
지장보살의 민머리에 있는 투명한 모자표현은 상당한 수준
금어(金魚)인 신암(信庵) 등 모두 14명이 참여하여 제작했다.
.........
작설차.
..........
동왕 5년(830) 진감 선사가 차를 번식시켰다
쌍계사 대웅전 계단 아래 위치한 국보 제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에는 고은 최치원이 쓴 글.
차를 마신 기록은 있지만
차 번식에 관한 기록은 없다.
830년에 진감선사 차번식 기록은 고증되지 않았다.
또한 대렴이 차씨를 심었는지도 고증되지 않은 사실.
대렴은 쌍계사가 창건되기 훨씬 이전인 150년전 인물.
하여, 대렴은 차씨를 화엄사 장죽전에 심었을 듯.
지리산 쌍계사 화개골은 우리나라 차문화 본 고장.
화개장터에서 신흥까지 12㎞는 전통차 문화의 거리.
"작설차는 자색 잎이 가장 좋고
대밭에서 나는 죽로는 그 다음.."
- 초의 스님은 <다산전>에서 -
'이른봄 참새 혓바닥 모양의 어린 찻잎'
'햇볕 3 그늘 7' 산비탈에서 극소량 자생.
그윽한 향기와 빛깔 그 맛이 뛰어난 작설차.
옛부터 정동향을 중히 여긴 우리 민족.
정동 방향을 성스럽게 여기는 불교문화.
아침 햇볕과 아침 이슬을 머금는 작설차.
한반도의 전통 토종차로 뿌리내린 작설차.
6월부터는 하늘과 땅이 달궈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이 본격적으로 몸을 익히는 철로 접어든다.
들에서는 모내기가 끝나 모포기 푸르름이 더해가고
산에는 새끼를 부르다가 지친 어미 뻐꾸기 쉰 목소리
이때는 벌써 앵두, 버찌, 산딸기, 뽕(오디) 등 햇과일
잠자리, 곤충, 녹음 속의 자벌레들 활발한 모습
먹잇감을 찾는 동물들의 몸짓에도 생기가 넘친다.
산은 더욱 푸르러 온통 짙푸른 세상이 열린다.
초록동색 녹음 속에 생명의 싱그러움이 넘친다.
장마철을 예고하는 빗줄기, 세찬 폭포수와 개울.
산위에서 부는 바람에 실려오는 찔레꽃 향기.
고사리, 참나물, 곰취 등 나물류도 살찐 모습
산딸기 오디 등 야생 과일까지 달게 익는 시기.
이 무렵 야생 차잎을 따 우린 한반도 고유의 차.
푸른 빛에 풋비린내 나는 녹차는 일본차.
한국 야산에서 보이는 야생상태의 차나무
일본차 야부기다는 화산토양 특성의 횡근성
일제 때 퍼진 일본산이 한반도 토종으로 정착.
원래, 한국 토종은 잔뿌리가 없는 직근성 뿌리.
전남 함평 야생 차밭에서 6월 덖음차 찻잎'을 딴다.
땅속 유기질만 먹고사는 토종 덖음차 향기.
비료를 먹고 자라는 녹차와 질적으로 다르다.
하동, 산청, 김해, 순창(적성면, 구림면 만일사),
정읍 두승산 중턱과 망상봉 일대,
부안 개암사 월정약수 오름길 주변
내소사 주변, 전남 진도 용장산성 주변,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월출산 국립공원 안,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 일대
다시면 청림산과 나주리 금성산,
장흥군 관산읍 찻등, 천관산 장천재,
해남 미황사 아래에 있는 주차장 주변,
화순군 능주면 만인 2리 만세동 뒷산 등지
예전에 큰 절이 있던 터 주변이거나 선비촌
한반도 토종차는 백제불교 전래와 함께 토착화
고려말까지 전통 차문화와 함께 번성한 차문화
이조 때 무거운 과세로 민간 지배도 쇠퇴했으며,
일제 때 녹차 유입으로 우리나라 전통차 쇠퇴.
오늘날 우리 전통 차문화를 되살리자는 움직임
전국 토종 야생차 밭에 차동호인들 발길이 잦다.
찻잎이 막 움튼 곡우(4월 20일)를 전후해 5월
몇 차례 많은 손들이 새 찻잎을 쓸고 지나간다.
그러나, 어느만큼 제대로 자라 나야 진한 제 맛.
엄지와 검지 손톱 끝으로 딸 때
똑 꺾어지는 찻잎이 크면 클수록
양이 많고 맛도 진해 잘 덖어진다.
한국 전통차는 솥덖음으로 만든다.
막 뜯어온 찻잎을 뜨거운 솥에 덖거나
물에 데치는(찌는) 첫 단계를 살청(殺靑).
덖음차의 맛은 첫솥과 둘째솥에서 결정된다.
살청을 얼마나 고루게 잘하느냐가 관건이다.
첫솥은 대체로 200도 안팎에서 10분 정도.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톡톡 튀어 오를 정도.
둘째 솥은 같은 온도에서 7~8분,
셋째 솥은 160~170도로 가열한다.
장갑 낀 손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이후 차츰 온도를 내려가며 7~9번 덖는다.
솥 안에서 덖어져 나온 찻잎은 부채로 식힌 뒤에
비벼야 풀 냄새가 가시고 청량한 향기가 유지
비비기는 당길 때 힘주지 말고
살그머니 밀 때 힘주며 강도조절
넷째 솥 이후 채로 찻잎 가루를 쳐 낸다.
9번 정도 덖어 수분을 3% 쯤 머금은 찻잎은
불 땐 방에 하루 널어 묵혀서 비닐 봉지에 담아
서늘한 곳에서 일주일 정도 숙성시킨 다음 마무리
마무리(향덖음) 솥 온도는 손 데지 않을 정도 15분.
후반 15분은 불 끄고 남은 열로 덖는다. (총 30분)
차 향은 덖기 전 생잎 상큼함을 많이 품을수록 좋다.
다갈색과 푸른색이 섞인 것이 좋은 차 빛깔.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월출산 남녘 절골
약 3천 평 안팎의 강진군 소유의 야생 전통차 밭
동향 아침햇살을 받은 것이라 향이 좋은 편이다.
시.
..........................
작설차 한 잔 따릅니다
..........................
조심스런 마음으로 차를 따릅니다
행여나 튈 새라 가슴 졸이며
조롱박에 버들잎 띄우던 옛 여인의 느긋함으로
살포시 무릎 꿇어 한 잔의 차를 따릅니다
차 잎에서 푸르름이 녹아나오 듯
밤새 비를 머금어 촉촉한 토양이 되듯
찻물을 따르는 잔잔한 이 순간
차돌 같은 이 마음도
보일듯 말듯 허물어지게 하옵소서
.........
작설차.
.........
저토록 마른 잎도 따듯한 물 만나면
스르르 제 몸을 풀며 향기를 뿜어내는데
하물며
사람이고서야
마음문을 닫겠나
차의 양 조절하고 물 온도 가늠하여
제 시간 잘 맞추면 그게 바로 중정이라
넘치고
모자라는 순간 순간
차 맛보며 헤아리네
작설향 그 속으로 스멀스멀 다가가서
그대와 나 소원했던 쓰고 떪은 그 맛들을
간 맞는
우리사이로
되돌이켜 볼꺼나
-강무강-
..........
초의선사.
...........
전남 무안읍 남쪽 몽탄면과 청계면 사이
승달산이 있고 그 기슭에 법천사가 있다.
이조 국운이 차츰 기울어가던 왕조 말기.
어느날 느닷 없이 승달산으로 찾아온 무안군수.
법천사에 이름난 고승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
당대 학자들과 교분이 두텁고 시문과 서화에 뛰어났다 해도
그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던 군수가 대뜸 초의에게 호통
“중놈아, 너는 과연 승달(僧達)했느냐?”
승달이란 바로 그 산의 이름도 되지만
'중으로서 깨달음을 얻었느냐’는 질문.
초의는 빙긋이 웃으며 서슴없이 대답했다.
“무안 태수 놈아, 너는 과연 무안(務安)했느냐?”
무안이란 바로 그가 다스리는 고을 이름도 되지만
'백성을 위해 편하게 다스리는 일을 했느냐'는 질문
무안군수가 그만 고개 숙이고 꽁무니를 쳤다고 한다.
초의는 1786년(정조 10년) 4월 일 무안군 삼향면 출생.
속성 장씨, 본관 흥성, 이름 의순, 자 중부, 초의 법명.
어머니가 큰 별이 품에 들어온 태몽을 꾸고 초의를 잉태
다섯 살에 강가에서 놀다가 깊은 곳에 빠져 죽을 뻔
마침 지나가던 스님이 구해주어 불문에 들게 된 인연.
강진 보은산 고성사 스님에게서 곡우차를 얻어 마신 다산
1808년 봄 다산초당으로 옮긴 뒤 차를 가까이 하게 된다.
그에게 차의 진미를 전한 주인공은 백련사 아암혜장 스님
대둔사 연담선사 제자로 알려진 혜장은 다산보다 10년 연하
의기상통한 두 사람은 차와 선에 관해 자주 논하는 교우 사이.
다산은 혜장에게 <주역>의 깊은 뜻을 가르쳐주었고
혜장은 사찰에서 전래되어오던 다도를 가르쳐주었다.
혜장은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온 초의를 다산에게 인도
초의가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고 <주역>과 시문을 배우게 했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선사와 동갑이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30세 되던 무렵
강진에서 다산에게 배우던 초의는
월출산을 거쳐 여러 명산을 다녔다.
29세 되던 1815년(순조 15년) 생애 처음 올라간 한양.
그때 다산의 두 아들인 정학연, 학유 형제를 비롯하여
신위 홍현주을 만나 교분, 정학연 소개로 추사와도 조우
다산의 둘째 아들 학유도 초의와 동갑이었다.
초의와 추사는 차와 선을 통해 이내 깊은 사이
2년 뒤 다산은 소치를 추사에게 보내 그림을 배우게 했다.
초의는 시,서,화에 뛰어나고 고매한 선비들과 두터운 교분
55세 때인 1840년 헌종이 초의선사라는 호를 내리기도 했다.
1856년 동갑이며 평생의 벗이었던 추사가 먼저 운명했다.
그보다 20년 전에는 세속의 스승인 다산이 세상을 떴으며
절친한 차 벗 홍석주, 백파선사도 모두 저 세상으로 갔다.
초의도 어느덧 71세. 그리고 9년의 세월이 흘렀다.
1865년(고종 2년) 8월 2일 초의선사는 조용히 입적.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다도의 중흥조로 알려져 있다.
<동다송> <다신전> 같은 차에 관한 명저를 엮어
우리 고유의 차 문화의 역사와 우수성을 재 정립
하여 그를 우리나라 ‘다성(茶聖)’이라 일컫는다.
그는 이조 말 선종사를 크게 빛낸 대선사였고,
시ㆍ서ㆍ화에도 ‘삼절’로 불릴 만큼 예술가
실학을 연구해 실사구시를 실천한 생활철학가
초의선사가 머물며 다도를 중흥시킨 차의 성지 일지암
일지암은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둔사 뒤쪽
대둔사 경내에서 서산대사 사당 표충사 지나 동쪽 대광명전
초의선사가 건립한 대광명전을 지나 두륜봉을 향해
1㎞쯤 오솔길 따라 올라가면 양지바른 곳에 일지암
초의가 <동다송>을 저술하며 만년을 보내던 일지암
초의선사가 강진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을 만난 무렵
다산은 초의보다 24년 연상인 48세(귀양 8년)
추사, 다산, 초의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3대 거목
1801년(순조 1년) 초의는 다섯 차례나 제주도 방문
초의는 위험한 뱃길로 추사를 찾아가 위로해 주었다.
추사는 고마운 뜻을 잊지 않고
자신이 쓴 시문과 글씨를 준다.
한 번은 반년이나 함께 지내며
차나무도 심고 참선도 같이 했다.
1817년 서울을 떠난 초의는 경주를 찾아
불국사와 기림사 같은 고찰들을 다녔으며,
기림사에서 천불을 조성해 대둔사로 옮겼다.
초의는 1823년 <대둔사지> 간행사업에 편찬자로 참여
그 이듬해 일지암을 짓고 그 이후 가부좌 자세로 입적
입적한 다음 따듯한 향내가 방안에 오래 남았다고 한다.
사찰음식.
절밥은 그 맛의 담백함과 정갈함이 독특하다.
조리료 또는 향신료를 쓰지 않은 자연의 향기.
'공양을 준비하는 행자 시절.'
'땔감을 구해오는 불목' 일부터,
상보는 간상, 반찬 만드는 채공,
국을 끓이는 갱두, 밥짓는 공양주
등의 역할을 두루 거쳐야 하는 스님.
행자시절 마지막 단계가 공양주
각 소임에 온 정성을 쏟아야한다.
예를 들면, 나물무침할 때 전심전력
무국 끓일때 딴 생각은 있을 수 없다.
국맛이 수행의 깊이를 나타내기 때문.
...................................
...................................
불교초기 승려들은 와발 또는 철발을 들고
산속 동굴에서 나와 성안으로 가서 걸식했다.
부자나 가난한 집을 가리지 않고
그릇에 차지 않아도 적당한 양이면
돌아와 오전 중 식사를 마쳐야 한다.
1일 1식 원칙을 반드시 지키며
정오에서 다음날 해 뜰 때 까지는
음식물을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다.
석가모니도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하며
일마일맥(깨 한알과 쌀보리 한알)에 의지
처음 출가자들에게는 거처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가 장마철만 허락된 거처가 안거제도.
이때 승려는 부처를 모시고 한곳에 모여 정진
안거(安居)제도가 차츰 발달하면서
왕족과 부호들이 집을 지어 기증했다.
이로 인한 불교 최초의 사찰이 죽림정사
주거공간의 변화로 승려 식생활도 차츰 개선.
탁발 승려도 신도가 공양하는 음식을 받았다.
옛 승려들은 수행을 위한 고행을 많이 겪었다.
건반(말린 밥), 맥두반(콩과 보리를 섞어 지은 밥),
초(미숫가루), 육(고기), 병(떡) 등 다섯 가지 주식.
식물의 가지, 잎사귀, 꽃, 과일, 우유, 꿀, 석밀.
병든 비구에 한해 삼정육, 오정육, 구정육을 허락
삼종정육(三宗淨肉)
1.죽이는 것을 직접 보지 않은 짐승의 고기(不見)
2. 남으로부터 죽인 사실을 전해 듣지 않은 고기 (不耳)
3. 자신을 위해 살생했다는 의심이 가지 않는 고기(不疑)
오종정육(五種淨肉 - 위 삼종정육 포함)
4. 수명을 다해 죽은 오수 고기
5. 맹수나 오수가 먹다 남은 고기
구종정육(九種淨肉 - 위 오종정육 포함)
6. 자신을 위해 죽이지 않은 고기
7. 자연히 죽고 나서 말라 붙은 고기
8. 사전 약속 없이 우연히 먹는 고기
9. 살생하지 않았는데 이미 죽은 고기
이러한 유래를 거쳐 세속과 달리
소식 습관은 기원 전 1세기 전후.
불교 초창기에서는 술과 고기를 먹었지만
양무시대 이후 점차 소식으로 바뀌어 갔다.
중국 사원에서는 주식이 대부분 죽이었으며,
부식은 승려들이 생산한 채소나 두부, 버섯
대승불교 시기에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았다.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 5 가지가 오신채
5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생기고
날 것으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이 더하기 때문
남방불교에서는 탁발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반면
북방불교(한국, 중국, 일본, 티벳)는 다양한 음식.
사원 발달과 함께 승려들 건강을 우려한 때문이다.
첫째,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승불교는 엄격.
둘째, 채소 중에서도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산약초는 복용하되 양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넷째, 다시마, 버섯, 들깨, 날 콩가루 천연 조미료
다섯째, 제철에 따르는 음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지리산 화엄사에는 죽순나물과 갓김치, 김부각 등
여천 흥국사 쑥떡, 머위당이, 합천 해인사 찹쌀죽
수원 용주사에는 국화전과 두부소박이가 발달했다.
죽은 안색을 좋게 하고 수명을 연장한다.
감기에 안걸리는 효험과 대소변 조절 효과.
바죽, 현미죽, 연시죽, 팥보죽, 비지죽,
개암죽, 우분죽, 늙은 호박죽, 잣죽,
콩나물죽, 흑임자죽, 옥수수죽, 땅콩죽,
야채죽, 팥죽, 들깨죽, 호두죽, 미역죽,
아욱죽, 녹두죽, 버섯죽, 대추죽, 오미자죽 등
찰밥, 산나물비빔밥, 콩나물밥, 야채밥,
유부밥, 보리밥, 김밥, 김치밥, 무밥,
김초밥, 버섯덮밥, 보리밥, 오곡밥,
야채 영양소밥, 톳나물밥, 연잎밥 등
무국, 미역국, 우거지국, 시금치국,
감자국, 쑥국, 냉이국, 김국, 거프국
근대죽, 배추국, 토란국, 두부냉국, 냉콩국,
째가무냉국, 짠오이냉국, 청포묵국, 시래기국,
양해란국(음력 7,8월) 등 종류가 44가지나 된다.
젓갈류, 파 , 마늘을 쓰지 않는 사찰김치
지역마다 특성이 강한 담백하고 독특한 맛
경기 충청은 잣 백김치,보쌈김치, 고수김치, 깍두기
전라도는 들깨죽 고들빼기 김치, 갓김치, 죽순 김치
경상도는 늙은 호박죽과 보리밥을 이용한
콩잎김치, 우엉김치, 깻잎김치 등이 있다.
북한은 소금, 고추, 생강, 청각 동치미, 백김치.
시금치, 냉이, 비름나물, 더덕무침, 죽순채무침,
꽈리고추무침, 미사무침, 가지나물,고사리 31 가지.
감자조림, 우엉조림, 무조림, 고구마, 물엿조림,
꼇질콩조림, 송이버섯조림, 곤약조림 등 27가지.
감자볶음, 야채볶음, 호박볶음,
머우볶음,도라지볶음, 오이볶음,
말린추나물볶음, 죽순볶음 25가지.
가지찜, 배추찜, 채소찜, 연두부찜,
호박부침, 당근부침, 표고전, 김치부침,
감자부침, 녹두부침 등 19 가지 찜과 부침.
버섯튀김, 깻잎튀김, 쑥갓튀김, 고추튀김,
가지튀김, 늦싸리부각, 들깨송이부각,
산동백잎부각, 아카시아꽃부각,
우엉구이, 표고구이 등 31가지.
산초 장아찌, 절인 고추, 콩장,
무말래이,절인오이, 짠배추, 무, 오이,
양희 장아찌, 감 장아찌, 참외 장아찌
호박오가니떡, 쑥개떡, 풋고추장떡, 메밀떡,
감자송평, 물호박떡, 호박찰시루떡 100 가지.
율무다식, 찹쌀다식, 콩다식, 깨다식,
녹두다식, 밤다식, 송화다식, 팥다식 등.
유과 유밀과, 강정, 다식전고, 엿강정 등
된장, 간장, 고추장으로 나누는데
사찰 물맛, 조리법따라 독특한 맛.
차 : 쑥차, 솔차, 작설차 등.
...........................
...........................
구례의 맛은 지리산에서 나오는듯 싶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을 듬뿍 받은 산나물
송이, 닭, 흑염소 등 향토음식이 대표적.
천은사 초입 사찰음식 전문점 초가원가든
검정쌀, 검정콩, 검정깨, 찹쌀, 연잎가루
연꽃 잎으로 덮어 지은 대통밥이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