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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타더스트>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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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마운트픽처스 | '당신에게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게!' 쌍팔년도 복학생도 웃고 갈 촌스러운 수법이지만, 가끔은 이런 유치한 애정표현이 먹힐 때도 있다. 사랑에 눈먼 어느 순정남의 허무맹랑한 약속 때문에 벌어지는 모험담을 다룬 <스타더스트>는, '판타지'의 기본이 CG나 스케일이 아니라 '상상력의 진정성'에 있다는 보편적인 미덕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의 영향 탓인지는 몰라도, 언제부터인가 판타지 영화는 '블록버스터'와 동의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요즘의 판타지 대작들은 하나같이 몸집이 비대해지고,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분위기는 어둡고 진중해진다. 장대한 신화와 역사의 창조, 선악의 대결구도나 웅장한 스케일은 판타지 장르에 있어서 하나의 미덕이 될 수는 있어도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다.
영국의 판타지 소설가 닐 게이먼의 동명 작품을 영화화한 <스타더스트>는 아직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판타지 장르 본연의 독특한 상상력과 유머, 허를 찌르는 풍자가 살아 있는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국식 판타지 소설의 매력은 근본적으로 '신세계에 대한 매혹'에 있다. 극중 신세계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상향이자, 현실을 거꾸로 비추어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처럼 거창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CG로 승부하는 경박한 오락물도 아니다. 보통 할리우드화된 판타지 블록버스터들이 영웅과 신화의 '완성'에 주력한다면, 원작 특유의 영국적인 색채가 좀 더 강한 <스타더스트>에서는 전통의 '발견'과 성장이라는 테마에 주력한다.
전쟁이나 혁명 같은 거창한 모험담을 통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미국적이라면, 숨겨진 신분의 비밀이나 진리의 본질을 발견함으로써 기존 질서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영국적인 판타지의 특징이다. 주인공의 선천적인 신분이나 혈통이 극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얼핏 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듯도 하지만, 권력과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을 고찰하는 촌철살인의 유머, 허구의 세계를 비집고 등장하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풍자 감각은 영국 판타지를 단순히 체제옹호적이거나 현실도피적인 장르에서 구원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다분히 현실의 인간군상이 반영된 각 캐릭터들이 공존하는 신세계의 모습, 선악의 대결구도와 주인공의 성장담, 사랑과 명예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질문, 멜로-스릴러-SF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충돌을 통한 컬트적 감성 등은 보는 이들의 취향에 따라 영화에 풍성한 코드를 선사한다. 반면 판타지 영화로서의 비주얼은 (기존 할리우드식 판타지에 비하면) 평균 정도의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판타지에서 있어서 가장 큰 미덕이라 함은, 대중들의 꿈과 환상을 가장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CG와 스케일의 중요성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상상력과 캐릭터의 설득력이다. <스타더스트>의 미덕 또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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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더스트>에서 마녀 역을 맡은 미셀 파이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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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마운트픽처스 | 반가운 것은 오랜만에 돌아온 중견배우들의 재발견이다. 로버트 드니로와 미셀 파이퍼, 피터 오툴에 이르기까지. 요즘 들어 이상한 작품에서 커리어 후반기를 망치고 있거나, 좀처럼 판타지 같은 장르에서는 보기 드문 실력파 배우들이 오랜만에 비교적 괜찮은 배역을 맡아 어깨에 힘을 빼고 경쾌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한결 든든하다.
특히 미셀 파이퍼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이토록 매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배우다.(참고로 배역은 마녀!) <배트맨 리턴즈>의 캣우먼을 연기할 당시 보여준 팜므 파탈의 치명적인 섹시함은 사라졌지만, 특유의 기품과 깊이 있는 눈빛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배역상 악역임에도 20여년의 격차가 나는 클레어 데인즈를 연기력에서나 여성적 매력에서 여전히 압도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연로한 나이에 젊음과 섹시에 집착하다가 조롱을 샀던 동갑내기 배우 샤론 스톤(원초적 본능)과 비교되는 행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