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리나야, 엄마를 부탁해
- 노무라 소지로의 공연을 보고 -
“아들. 엄마는 열심히 살아왔다 자신하는데, 언젠가부터 참 허망하더라”
촉촉한 눈망울로 엄마는 속마음을 들추었다. 술을 머금고 있던 잔 속의 각얼음이 순간 ‘꽈작’ 하고 침묵을 깼다. 하지만 차마 어떠한 위로를 건낼 수가 없었다. 내가 바로 당신이 베푼 희생의 가장 큰 수혜자였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녀였다. 학창시절 수석을 도맡아 한 수재, 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소위 ‘엄친딸’인 그녀는 결혼과 함께
가정에 전념했다. 그녀는 시댁과 친정에서 인정받는 며느리이자 딸이었으며, 남편에게는 내조의 여왕이자 현명한 아내였고, 두 아들을 일류 대학에
진학시키는 유능한 엄마였다. 하지만 오랜시간동안 놓쳐버린 하나, 바로
그녀 자신의 삶은 그 안에 없었다.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몸과 얼굴, 일 때문에 여전히 바쁜 남편, 상경한 뒤에 가끔 전화로만 소식을
듣는 두 자식들 가운데서 그녀는 사무치는 외로움과 허무함을 느낀 것이다. 가족 모두를 위해 살았지만,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한 아쉬움이 슬픔의 깊이를 더욱 아득하게 했다. 주변에선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다’고 다독였다.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의
숙명이라고 위안하기엔 지독히도 잔인한 명예였다.
그러던 엄마가 동네 마트의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단다. 적적한 일상을 벗어나 취미생활을 만들어보려고 오카리나 교실에 수강신청을 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나도 가족들도 ‘그래, 아주
좋은 결정이다’며 응원을 해줬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참 못난
우리였다. 엄마를 보듬어줘야 할 사람은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힘을 다하느라 지친 엄마에게, 또
스스로 알아서 일어서라고 방치한 꼴이었다. 모두 그녀에게 혼자 싸워 이겨내라 했던 것이다. 엄마가 오카리나 연주에 심취하기 시작 한 건 그때부터 였다. 혼자
있는 시간만큼 열심히도 연습했다. 가족들이 집에 있으면 방해되기 싫다며 뒷산이나 공원에 악기를 들고
가 연주했다. 책상 위에 쌓여있는 수 백곡의 반주와 악보들이 그 열정을 가늠케 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슬픔을 전하는 듯한 엄마의 오카리나 소리가 점점 밝고 풍성해졌다. 그 정성 덕분일까, 10여년이 지난 오늘날 시간과 함께 실력이 쌓인
엄마는 한 오카리나 앙상블 팀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때때로 오카리나 교육까지 하는 프로가 되었다.
오랜만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밥은 먹었느냐, 무엇을 먹었느냐,
추운데 옷은 몇 겹 껴입었느냐 등등 심심한 물음만 계속됐다. 그러다 평소와 다른 질문이
날아들었다.
“회사 일이 많이
바쁘지?”
엄마는 분명 나에게 무언가 하고싶은 말,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바쁜지를 물었었다. 엄마는 뭐가 그리도 어려운지, 내 눈치를 보며 입을 뗐다. 아들의 눈치를 보는 엄마의 모습이 참 속상해서 그러지 말라 했지만, 엄마는
그게 익숙해진 것 같았다. 엄마가 공연에 참가하게 됐단다. 서울에서
하는 큰 공연인데 아들이 함께 자리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첫째 아들은 워낙 바빠 초대하기 어려우니
둘째라도 와줬으면 한다고, 초대권은 우편으로 보냈으니 곧 받을 수 있을 거라 덧붙이며 말이다. 별별 약속과 송년회가 많은 직장인의 연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흔쾌히, 아니 조금은 귀찮은 마음으로 달력에 빨간 표시를 했다. 며칠 뒤
우편으로 온 초대권에는 엄마의 짧은 쪽지가 적혀있었다. 공연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기에, 꽃다발은 가져오지 말라는 충고였다. 참으로 엄마다운 쪽지였다. 자신의 욕심은 언제나 뒷전이 되었던 내 엄마의 모습 말이다.
한창 추위가 매서운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포근함이 딱 하루 찾아온 날이었다. 연말 업무가 쌓여가는 회사에는 양해를 구하고, 막내로서 염치불고하게도 ‘칼퇴’를
했다. 따가운 눈총을 뒤로하고 단숨에 서울을 가로질러 롯데 타워 콘서트 홀로 향했다. 7시 이내에 도착하면 공연 시작 전 엄마를 잠시라도 볼 수 있다는 말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뛰고
또 뛰었다. 땀 범벅으로 도착한 공연장 앞, 수 많은 인파
가운데서 엄마를 찾았다. 하얀 셔츠를 곱게 차려 입은 엄마는 어느 때 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안아줬다. 볼이 발그레 상기될 정도로 긴장한 엄마의 모습이 사뭇 생소했지만, 참
예뻤다. 나는 긴장을 풀어주려 농담을 건냈다.
“동료분들 앞에서
엄마 기 좀 살려주려고 머리도 좀 힘주고, 안 입던 코트까지 빼 입고 왔는데 아들 안 멋있어?”
민망했는지 엄마는 괜히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어넘긴다.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엄마는 공연장으로 들어가봐야 한단다. 가기
전 힘내라는 ‘파이팅’ 응원을 보태며 엄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나도 공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해진 자리에
들어가 앉아보니 엄마가 저 멀리 보였다. 엄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수많은 객석 가운데서 내가 보였나 보다. 대규모 합주단 중에서 나도 엄마를 바로 찾아낸 것처럼.
“꽈작” 각얼음에 금이 가는 소리 이후로 한동안 아무 말 못하고 있는 가운데 먼저 말을 이어간 것 또한 엄마였다. 엄마는 어느 순간 당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최선을 다해 보살폈지만 언제부턴가 자기가 없어도 모두 잘 지내는 모습에 자신은 없어도 되는 사람 같았 단다. 갑자기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차오르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숨까지 허덕이며 울어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엄마가 나를 다독였다. 내가 엄마를 다독여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괜찮다고 했다. 당신의 삶, 당신이 즐거운 것을 찾고 싶었단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오카리나를 손에 쥐었고, 연주에 재미가 붙어 열심히
하다 보니 스스로 잘한다는 자신감마저 생겼다고 했다. 게다가 이젠 어엿한 단원으로까지 활동하고 있으니
그런 엄마를 앞으로 더 응원하고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여유를 찾은 아빠도 엄마의 활동에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는데, 그런 오늘날이 엄마는 매우 행복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북받치는 감정에 대답도 제대로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지만 나는 엄마의 그 당부를 가슴깊이 담아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내가 먼저 엄마를 위로하는 의젓한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날 엄마와의 대화를 추억하고 있던 중, 주인공 소지로와 400여명의 장엄한 협주가 시작되었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소리없이 탄식했다.
‘Lascia Ch'io
Pianga‘(날 울게 하소서).
영화 ‘파리넬리’에서 한 서린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로만 들어 보았던 이 곡이 부드럽고 포근한 오카리나의 소리로 다가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웅장한 합주단 가운데에서도 조심스레 내쉬는 날숨으로 한 음 한 음 눌러가며 연주하는 엄마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내 흐려졌다. 세상에서
자신만 빛을 잃었다고 느꼈을 그 때, 엄마는 이 음악처럼 홀로 흐느껴 울었으리라. 그리고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빛나는 오늘, 엄마의 숨결이 어린 그
음악은 이제 나를 울게 했다. 나는 엄마의 당부를 잘 지키고 있는가.
무심함에 익숙해져 여전히 엄마를 눈치 보게 하고, 아직도 엄마를 위로해주지 못하는 못난
아들은 아닌가. 연주가 끝날 때까지 내 사랑하는 엄마 그리고 이 시대 모든 어머니들을 향해서, 나는 향기로운 오카리나 선율 위에 먹먹한 눈물을 담아 외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용서해 달라고.
내 부족함을 느꼈던
회한의 감흥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얼마나 공연을 지켜보았을까, 거장 소지로의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 라는 곡에 다시 한 번 눈이 띄었다. 엄마가 작년 가을 한 공연에서
독주를 위해 열심히 갈고 닦은 노래였다. 후반부에 박자가 빨라짐에 따라 운지법을 익히기가 꽤나 버겁다고
토로하는 엄마의 귀여운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 대가는 대가였다. 더욱
화려한 기교로 그 곡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절정에 치달은 곡의 마무리 부분, 소지로의 모습에서 엄마가 보였다. 종결부를 시원스레 마치고 허공에
손을 뻗어 올려 박수갈채를 받던 작년 가을의 엄마. 소지로와 엄마의 겹쳐진 모습을 보니 근래에 엄마가
유독 활기차 보였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기회, 엄마는 그것을 찾았던 것이다. 대가 소지로의 공연이기 때문에 스스로
주인공이 되길 부정했던 엄마였지만, 엄마는 나에겐 그에 버금가는 멋진 주인공이었다. 남은 공연 동안 엄마에게 이처럼 좋은 기회를 제공 해 준 거장 노무라 소지로님과 하늘소리 오카리나 앙상블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앞서 흘렸던 눈물과 엄마를 향한 나의 다짐을 되새기며
염원했다.
‘오카리나야, 앞으로도 엄마를 부탁해’
2018. 1. 8. 새벽
나의 어머니
광주 예향오카리나 박숙현을 위해
둘째 아들이 글을 바칩니다.









첫댓글 읽으며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내조 하나는 똑소리 나는 우리샘~
아드님도 참 잘 키우신듯 합니다요~~^^
예향과 함께 음악 인생 맘껏 펼쳐보아요~
아드님이 멋지네요~~~~
샘~
엄마를 보는 아들의 존경과 사랑이 좔좔 흘러넘치네요
저도 샘 응원합니다 ^^
대단해~
효심 넘치는 아들이
엄마한테 큰 선물 안겨주겠네~ ^^
아~
감동 이네요
역쉬~멋찐쌤과 듬직한 아들
연주전 두분 상봉시 아드님의 따스함과 사랑스런 모습의 긴대화모습에 딸같은아들의모습 인상적이고 우리광주멤버43인을 가이드 해준 덕분에 무사히 ㅎ
코끝이 찡한 후기에 감동이네요~~
진심어린 후기 감동입니다.
이런 멋진 아들 두신 숙현샘 부럽네요
광주예향 화이팅!!!
제목부터가 감동입니다
멋진 아드님을 두셨네요.숙현샘~
부럽습니당
숙현샘께 좋은 일이 생길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뭘까요~^^
화이팅!!!입니다
400인의 1인으로 선생님과 같은 멋진 열정을 가지신 분과 함께하였음이 영광스럽습니다^^
얼굴도 뵙지 못한 분께 글을 남기는 용기를 주신 아드님께 감사드립니다..
울면서 읽은 글의 진정한 의미는 뜨거운 미소가 아닐까 싶네요^^
감동적인 후기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아드님 훌륭한 청년으로 잘 키우신 어머니의 노고에 박수를!!!
따숩네요^^그날 울게하소서대합주의 감동처럼~소지로상의 연주처럼 진솔하고 군더더기없는 후기~ 훈훈합니다^^
엄친딸께서 엄친아를 두셨군요. 감동입니다. 내아들이 아니지만 안아주고픈 훈훈한 아들, 광주의 아들!!!
박숙현님, 아드님이 어머니들을 울게 했습니다
1등에 입상하신 것을 진심 축하드립니다~
훌륭한 어머니, 그리고 그 훌륭한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글로써 잘 표현해준 대견스런 아드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후기를 읽어 내려가며 코끝에 찡한 감동을 느끼게 해줬던 좋은글..
입상예감~!!!ㅎ
1등을 축하드립니다!!!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셨으니 당연한 결과인듯요...
멋진 아드님을 두신 어머님이 참 부럽네요~~
축하합니다. 멋진 엄마에 멋진 아들이네요.
오카리나에게 엄마를 부탁한 그아들도 장합니다. 거장소지로님의 대황하로 마음을 굳히고
양성석님의 the hunk on the mountaintop으로 오카리나의 마력에 빠져들었답니다.
그전 후기는 어땠나?
하고 뒤져보다가 나를 울게 했어요. 감동적인 글이였답니다.